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49
제749화. 베끼다
심연의 바다에 잠긴 자들이 세상 밖으로 기어 나오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기생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들의 근간이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그림자란 무릇 무언가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
스윽.
쿠마샤는 빛을 등지고 제 그림자를 꾹꾹 눌러 댔다. 아이의 턱을 따라 계속해서 피가 흘러내렸고, 의원들은 기함하며 천을 갖고 와 아이의 코와 입에 대었다. 성벽 밖으로 대나무 바늘을 찌르고 난 후 내상이 심했던 것인지 출혈이 계속되었다.
“이보시오, 수상.”
“예, 전하.”
아이는 희멀건 눈동자를 들어 수상을 돌아봤다. 그들은 못 볼 거라도 보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더럽나? 내가?
“그대들은 마산타르 신전의 인재들이 아닌가. 이런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인데, 어찌 보고만 계시어?”
응? 어째서 나만 이리 피를 흘리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었다.
왕의 음성에는 단조로운 짜증이 섞여 있었다. 신하들은 서로를 힐끔거리며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했고, 수상은 그저 침묵으로 잠시 생각을 골라냈다.
“전하. 힘겨우십니까?”
“그대의 눈에는 내 피가 보이지 않는가.”
“…토올룬의 신께서 참으로 안타까워하실 것입니다.”
너는 신의 선택을 받은 아이인데 어찌 그리 볼멘소리를 내는가, 수상은 돌려 꾸중했다.
그 말에 쿠마샤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대나무 바늘을 집어 그에게 던졌다.
“안타까워!? 나를 안타깝게 여긴단 말인가? 신께서가 아니라 그대들이 그러하겠지!”
아비가 죽었고, 배다른 동생의 생사는 어찌 되었는지 알 바 아니었지만, 지금 와서 본인의 존재를 떠올리면 대체 무엇을 위해 서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토올룬이란 무엇이기에? 나에게 있어 어떤 의미이기에?
수상은 고개를 들어 날카로운 눈빛을 내었다.
“전하. 평정을 다잡으십시오.”
“수상-!”
“정 그리하시다면, 알겠습니다. 저희도 저희의 숨을 내놓아 전하께 힘을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저희의 숨?
뒤에서 엎드린 채 듣고 있던 신하들이 의아하여 멈칫거렸다. 그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칠 생각이 없었다. 여차하면 북산으로 도망쳐 수도 밖으로 빠져나갈 것인데, 목숨이라니? 누구 마음대로?
‘아니 지금, 수상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랍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참 나. 누, 누구 숨을 가져다가 쓰시겠다는 건지.’
‘상황이 희한하게 돌아갑니다.’
뜻이 다른 신하들이 시선으로 의견을 나누었다. 그들은 슬쩍 기회를 틈타 밖으로 나가는 게 좋겠다는 것을 직감했다.
공기의 흐름이 미세하게 변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수상은 잠시 호흡하고서 말을 이었다.
“전하의 존재는 신의 뜻입니다. 그걸 거스를 수는 없음을 가슴에 새기십시오. 아시겠습니까?”
스윽.
그러자, 수상을 비롯해 그를 따르던 신하들이 품에서 단도를 꺼내 들었다. 쿠마샤는 무슨 상황인지 몰라 인상을 찌푸렸고, 의원을 비롯한 시종들은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이보시게, 수상.”
“마산타르 신전의 기상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촤아악!
그들은 그리 이르며 스스로의 목을 긋기 시작했다.
피가 튀어 오르고 여기저기서 비명이 울렸으나 쿠마샤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검붉은 피들이 한데 모여드는 것을 가만히 지켜봤다. 형태는 점차 세심해지더니, 그림자처럼 인간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인형과 그림자. 그리고…….’
수상을 비롯한 신하들의 얼굴이 만들어졌다가 뭉개지고, 다시 반쯤 피어나고 지기를 반복하며 분열하는 듯 보였다. 상대에 따라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들. 그 마지막은…….
“거울을 보는 것 같군.”
핏덩어리는 쿠마샤, 본인의 모습으로 변했다. 입고 있는 옷, 굳어 버린 핏자국. 그리고 경멸스러운 시선까지 완벽했다.
“거울 같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대이니까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정말입니다. 저는, 그리고 저희는 그대의 내면이 보이는걸요.”
쿠마샤가 쿠마샤에게 가까이 다가와 고개를 기울였다. 콧대가 닿을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아이는 싱긋 웃으며 몸을 뒤로 빼더니, 희게 질린 시종들을 쳐다봤다.
“전하께서는 여기서 맡은 소임을 다하십시오. ‘우리’는 가서 이안 일행을 상대하겠습니다.”
마산타르 신전의 라주 대신관과 정체성이 같은 자들이다. 인간의 탈을 쓴 채 마물과 감응하는 존재들. 그리고 그 말인즉, 왕인 쿠마샤보다도 지하신과 가까운 존재라는 뜻.
그들은 시종들을 잡아먹으며 기이한 소리를 내었다. 만족스러운 웃음인지, 아니면 사기를 드높이기 위한 기합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아아악!”
“살려, 살려-!”
인간을 많이 섭취할수록 마물의 냄새를 지울 수 있으니. 그들은 눈에 보이는 인간마다 족족 심장을 꿰어 내 살점을 뜯어 먹었다.
그 끔찍한 광경을 쿠마샤는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혐오스럽지만 자신은 그 감정을 부정해야 한다. 저것들을 혐오하는 것은 곧 스스로를 혐오하는 일이기에. 저것들과 자신은 근본이 다르지 않기에.
타닥타닥!
“바누사 놈, 마법사들이랑 같이 있다고 하였지?”
“이미 수도 안까지 들어왔다니 왕궁에 발 들이는 건 시간문제겠군.”
“정리하자고. 덫을 만들기에는 시간이 부족해.”
“놈들 틈에 한 번만 섞이면 된다.”
접촉. 그것만 이루어지면, 상대를 베끼는 것은 숨 쉬듯 쉬운 일이었다. 우선은 일반인으로 변하여 도움을 요청하고, 무리를 반으로 찢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지상으로 올라온 그들은 왕궁 곳곳에 날카롭고 예리한 실이 걸리는 걸 느꼈다.
“…왕께서 정신을 차리셨나.”
쿠마샤가 왕궁 내부에 실을 꿰며 함정을 준비하려는 것이었다.
어린것 같으니. 그들은 혀를 끌끌 차며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곧 있으면 왕궁에 손님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 * *
타앗!
베릭으로 변했던 마물은 모퉁이 뒤에 숨어 있다가 이안이 접근하기만을 기다렸다.
아주 잠깐이면 된다. 그저 닿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안의 모든 것을 따라 할 수 있으리라. 거울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그저 그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둘이 되는 세상. 이런 것쯤은!
“……!”
촤아아악!
이내, 이안의 모든 것이 그에게도 흘러들어 왔다. 심장이랄 것이 없었지만,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분과 함께 온몸의 피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듯한 감각이었다.
신의 조각이라 이건가? 그리고 먼 훗날 바리엘의 황제라 이거지? 마치 뜨거운 쇳조각을 삼킨 것처럼 온몸이 뜨겁게 타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내면의 고요한 요동일 뿐, 겉으로는 완벽하게 이안의 모습을 베껴 냈다.
“이안 님!”
“헉!”
두 이안이 헛웃음을 지으며 뒤를 돌아봤다. 바로 뒤따라온 마법사들이 두 사람을 보며 멈칫거렸다.
마물은 현 모습이 오래가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다른 인간 놈들도 길어 봤자 두어 시간이 최대인데, 이안의 경우에는 워낙 특별한 대상이 아니던가.
“이, 이안 님이 둘이다.”
“두, 둘…….”
그래서 빠르게 상황을 흔들어 놓는 것이 그의 최우선 목표였다.
그는 아무런 말 없이 황당한 얼굴로 서 있는 마법사들을 돌아봤다. 이안 히엘로라면, 이럴 때 절대 당황하거나 경망히 행동하지 않으리라.
“베릭.”
“어? 어어?”
“이자를 붙들어라.”
지이잉! 지잉!
하여, 그는 그리 짤막하게 이르고는 바로 마력을 터트렸다.
가까이 붙어 있었던 터라 진짜 이안은 뒤로 물러서며 반사적으로 보호막을 일으켰다.
퍼어엉! 펑!
바람이 세차게 일고 먼지바람이 천천히 걷히자 주변 상황이 서서히 드러났다. 이안으로 변한 마물은 제 목 끝에 무언가가 겨누어져 있음을 알아챘다.
“……!”
티잉!
베릭의 검이었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물의 목을 겨누고서 송곳니를 드러내 웃었다.
그리고 연달아-
사아악!
“이 자식이 어디서-!”
“이안 님인 척하고 있어, 엉?”
“뒈질려고.”
마법사들도 하나 빠짐없이 마물을 둘러싼 채 공격 태세를 취했다. 금방이라도 목을 날려 버리겠다는 살기. 이는 그저 진정하라 이르는 자세가 아니었다.
그는 당황스러웠다. 아니, 분명히 이안과 겉모습은 하나도 다름이 없는데, 심지어는 마력도 먼저 썼는데, 어찌하여 저것들은 자신이 가짜라는 걸 알았을까?
“뭐 하는 짓들인가.”
“므하는 쥣들인가아아? 참 나, 그 얼굴로 그러면 내가 심장이 뛰어, 안 뛰어? 응?”
“…지금 다들 실수하고 있다.”
굳게 믿었던 세상 한 부분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마물은 대체 어떻게 저것들이 자신을 구분할 수 있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헤일은 궐련을 입에 물고서 작게 웃었다.
“실수라…. 그렇지. 이안 님으로 변한 게 네 실수긴 해.”
보이지 않는 여섯 번째 감각. 마법사들을 잇는 그 감각이 이안만큼은 또렷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바로 그의 육신 자체가 신이었기 때문이다.
신에게서 태어나 운명을 걸었다가 다시 신에게로 돌아가는 자들이, 어찌하여 그것을 모르겠는가?
“미안하지만, 감각이 다르다. 감각이.”
“엉. 그리고 냄새도.”
베릭은 이제 알 것 같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자신이 이안의 냄새를 감지했던 것이 어찌 가능했는가를.
마법사들이 여섯 번째 감각으로 이안을 느끼는 것처럼, 마검사인 자신은 제일 발달된 감각으로 이안을 느꼈던 것이다.
냄새라 표현했지만, 이는 결국 베릭의 여섯 번째 감각이었다.
“아잇, 이걸 어쩐담. 이안 님. 저희가 감히 이안 님 얼굴에다 손을 댈 수는 없는데요.”
“직접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마! 너, 얼른 다른 얼굴로 바꿔. 죽이려니까 마음이 아파서 안 되겠다.”
“그래. 아까처럼 베릭 얼굴로 돌아와.”
마법사들에게 완벽히 포위당한 이안이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어어, 저것 봐라? 잔뜩 찌푸리고 날 세운 눈매까지? 마법사들은 동시에 숨을 멈추고 말았다.
‘헉!’
‘…멋있어.’
본래의 이안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얼굴!
마법사들의 콧구멍이 저도 모르게 벌렁거렸다. 심장이 뛰고 땀이 나는 것이, 저놈, 여러 가지 의미로 위험하다.
“괜찮으니까, 죽여라.”
“아니, 그래도 이안 님. 그게 조금…….”
마물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더니, 얼굴에 손을 올렸다. 그러곤 다시금 모습을 변형시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누구로 하려나, 마법사들이 심드렁한 낯으로 그걸 지켜봤다. 완전히 포위하여 각자 자리 잡았기 때문에 누구로 변하든 헷갈릴 일은 없다.
“이제 그만하고-”
“…어라.”
마법사들의 입이 조금씩 벌어졌다.
실크처럼 흘러내리는 금빛 머리칼, 또렷한 녹안, 화사한 피부. 그들은 마물이 만들어 낸 자가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안.”
필리아다. 이안의 기억을 토대로 만든 것인지라 조금은 이질적인 부분이 있었지만, 그녀는 분명히 필리아였다.
팔짱을 끼고 있던 이안이 자세를 바로 하여 필리아를 쳐다봤다.
“이게 아닌가?”
다시 스멀스멀 흘러내리는 얼굴. 금발은 갈색으로, 가느다란 체형은 남성의 체격으로 변하였다.
헤일과 토미, 나키나 그리고 베릭을 제외한 마법사들은 저게 누구인가 싶어서 인상을 찌푸렸다.
“이안 님. 이래도 저를 죽이시려고요?”
목소리는 필리아와 같았지만, 겉모습은 나움의 것이었다.
“……!”
헤일은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고, 토미와 나키나는 작게 한숨 쉬며 눈길을 놀렸다. 이것이, 이안 님을 베끼면서 기억 속의 아픔까지 가져간 것이다.
“이안 님-”
신경 쓰지 마시고, 잠시 고개를 돌리고 계십시오. 헤일이 그리 이르려는 순간이었다.
타앗!
순식간에 그를 지나친 이안. 난생처음 보는 맹렬한 시선으로 나움에게 손을 뻗었다.
감히, 누구도 덧댈 수 없는 분노가 공간을 삼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