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53
제753화. 그 순간
박살 난 이드갈 단면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것은 이안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고, 실낱같은 생채기를 남겼다.
이드갈에도 그림자가 있다고? 금안과 적안이 서로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그들 주위로 일렁이는 거대한 기운. 마법사들과 베릭은 차마 다가서지 못한 채 이안을 주시했다.
“그렇다면-”
이드갈에도 그림자가 있다면, 나에게도 그림자가 있겠구나. 그것이 너인가? 신께서 나를 보냈듯이 그림자가 너를 보내었지 않은가. 옳은 추론이라 보는데.
이안이 허리 힘을 이용해 왕의 공격을 밀어 쳐 냈다.
파아앙-!
“어디 한번 끝까지 따라 해 봐.”
이안의 반대쪽 주먹이 쿠마샤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거의 순간 이동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굉장한 속도였다.
쿠마샤의 눈이 커졌으나, 아이는 반사적으로 몸을 숙임으로 간신히 공격을 피했다.
퍼억!
이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무릎으로 아이의 가슴을 찍어 올린 다음, 반대쪽 손으로 머리채를 붙잡고서 벽에 밀어붙였다.
콰아아앙!
왕궁이 흔들리며 먼지 바람이 휘몰아쳤다. 후드득, 천장에서 떨어지는 석회 가루에 마법사들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이런 식으로 전투가 이어지면 오래가지 않아 왕궁 전체가 무너질 판이었다.
“하아, 하아…….”
이안이 왕에게서 거리를 벌린 채 숨을 헐떡였다. 다시금 환각의 마술이 그를 옭아매려는 순간, 희미하게 진동이 이어졌다.
마법사들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며 바닥으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 이안 님.”
“…지진입니다.”
지진.
이것이 균열을 비롯 마물의 등장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었다. 북쪽 대마물 지대에서도 그러했고, 클리포포드 수도에서도 그러했다.
이안은 골치 아프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힘이 강해지고 있다.’
공격을 받아치는 물리적인 힘을 이르는 게 아니었다. 기세, 혹은 기운.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아이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는 게 은근히 느껴졌다. 아이 또한 그리 느끼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결계를 쳐라.”
이안이 침묵 끝에 명령했다.
혹여 이 지하에 균열과 이어진 통로가 있는 거라면, 아예 이곳을 봉쇄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바깥과 완전히 차단하여 누구도 드나들지 못하게 하는 것.
하지만 그리하면 이곳의 모두가 죽을 것이다. 저마다의 보호막을 거두어야 할 테니까. 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지시나 다름없었다.
지이잉! 지잉!
하지만 마법사들은 일말의 주저함 없이 보호막을 확장해 왕궁 천장을 받쳤다. 이로써 왕의 ‘보이지 않는 공격’이 새어 들 틈이 많아졌지만, 방도가 없지 않나.
“바닥과 잇는 부분을 견고히 해!”
“헤일 대장! 이쪽은 제가 맡겠습니다!”
혹여 지하에서 균열이 일면, 일차적으로 막아서야 할 자는 자신들이기에.
마법사들이 왕궁, 정확히 이르면 그들이 있는 거대한 홀을 독립적 공간으로 떼어 내는 동안, 베릭은 검을 단단히 쥐고 신경을 날카롭게 했다. 자신의 검만이 마법사들을 지킬 유일한 수단이다.
“베릭! 정신 똑바로 차리고 우릴 지켜라!”
“닥쳐! 정신 사나우니까!”
“웃기는 놈일세. 힘은 우리가 쓰는데 네가 왜!”
위이이잉!
결계가 점점 견고해지며 형태를 만들어 갔다. 러더포드가 황궁에 침입했을 당시, 그들이 세웠던 그것과 같은 것이다. 바깥에서는 안쪽 말을 들을 수 없고, 안쪽에서도 안쪽 나름의 사정을 흘릴 수 없는, 단단한 결계.
“…제기랄.”
베릭은 불쾌한 기억이 떠올랐다는 듯 콧잔등을 찡그렸다.
한편, 이안은 계속해서 붉은 이드갈과 검을 맞부딪치며 생각했다.
‘가까이 가면 환각이 일고, 거리를 두자니 쉬이 잡히지 않는다. 이드갈의 힘을 완벽히 받아 내고 있어.’
까다로운 상대다.
‘그림자를 형성하기 위한 조건이 있는 듯한데.’
무엇일까? 그것을 간파하는 것이 우선.
‘인형술로 생각해 보면…….’
인형술사의 공격 조건 첫 번째는 ‘시간 선상’이 같아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대상자의 ‘공간을 시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차적인 것들을 제외하고 큰 틀만 보자면 그렇다.
‘하면,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이안은 필리아를 떠올렸다. 토올룬은 어머니를 납치하여 자신의 근거지로 데려오려 하지 않았다.
‘공간적 제약이다.’
즉 왕궁이나 신전, 두 공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뜻.
‘시간 선상은?’
현재를 공유하고 있는 것 외, 쿠마샤와 자신의 시간 사이 동일한 것이 무엇 있을까?
“아.”
이안은 문득, 깨달았다는 듯이 탄성을 흘렸다.
그는 신으로 인해, 쿠마샤는 그림자로 인해 둘은 태어나기 전부터 한 시간선을 공유하고 있지 않나.
‘점점 비슷해진다.’
이안의 공격을 쳐 낸 쿠마샤는 이안과 비슷한 몸짓으로 반격했다. 아이의 눈매는 점점 차가워졌으며, 군더더기 없는 검술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 이안이 마법까지 쓰게 되면-
‘…모른다.’
승리를 확신할 수 없었다.
마법사의 흉내를 낸 마물들이 잠깐이나마 힘을 보이지 않았던가. 쿠마샤라면 완벽하게 그를 복제할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생각이 거듭될수록 참으로 까다롭다. 이안은 계속해서 깨지고 박살 나는 이드갈을 끊임없이 생성해 내어 왕의 심장을 노렸다.
촤아악!
‘일격.’
지금으로는 그것이 정답이지 않을까. 상대가 나를 따라 하기 전, 단숨에 끝내 버리는 것.
이안은 단단히 서서 손에 든 이드갈을 바닥에 내던졌다.
채앵!
반으로 부서진 이드갈 조각.
결계를 받치고 있던 마법사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이안을 쳐다봤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상관이 두 손을 경건하게 모으고 마법진을 그려 내자,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마, 마법진을 그리신다.’
‘주, 주, 죽었다.’
너, 나, 그리고 우리 모두.
진언이 아닌, 마법진의 수식을 그대로 그려 낼 때마다 이안은 한계를 보여 줬다. 그리고 가끔은 그걸 넘어서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내고는 했다. 그러니까, 마법사의 상식을 아득하게 넘어서는 힘의 기준을 말이다.
헤일이 물고 있던 궐련을 툭 뱉으며 외쳤다.
“버텨!”
지이잉! 지이잉!
마법진이 빛날수록 이안의 머리칼이 가볍게 휘날렸다. 왕은 그저 이드갈을 쥔 채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슬쩍 입매를 말았다. 가소롭다는 것인지, 아니면 기다렸다는 것인지 모를 미소다.
「만천(萬千)」.
세상이 어둡게 변했다.
각자의 몸을 제외한 모든 것이 어둠에 잠겼다.
마법사들은 은은하게 빛나는 제 몸을 애써 못 본 척 눈 감았고, 베릭은 입을 살짝 벌리고 말았다. 우주 한가운데 있는 듯했다. 아주 작게 반짝이는 무언가들이 세상천지에 가득했다.
“와-”
감탄도 잠시-
그것은 유성을 이르듯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쿠마샤는 주문을 외우는 이안에게 달려들었고, 베릭이 그 앞을 막아섰다.
촤아악!
퍼어엉! 펑!
소리에 반응하듯, 휘몰아치는 유성들이 한데 모여 점점 커졌다. 이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그 궤적은 왕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안 베로시온.”
왕은 붉은 이드갈을 꺼냈다. 유성을 베어 낼 기세였다. 쉽지 않을 것임을 알지만, 그렇다고 하여 가만히 서서 죽을 생각은 없다. 이걸 버티고 이겨 내면, 그다음에는 네놈 머리에 유성을 때려 박아 주마.
“이안아!”
베릭은 연신 마법 주문을 중얼거리는 이안 앞에 서서 검을 비틀었다.
그리고 그때-
우우우웅-!
“온다.”
어두웠던 세상이 지워질 것처럼 환해졌다.
쿠마샤는 끝도 없이 이드갈을 생성해 내며 제 앞을 막았다. 하지만 유성은 지그시 힘을 더하며 밑으로 전진했다. 개미를 찍어 누르려는 어린아이의 치기 어린 장난처럼. 바리엘군에게 날렸던 그 바늘 공격처럼.
“잘 가라.”
베릭이 그리 이르자, 모든 것이 형체도 없이 지워졌다.
이안도 눈매를 찌푸렸고, 나머지는 모두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든 걸 앗아 갈 것만 같은 강력한 빛이었다.
“……!”
그 순간, 이안의 눈에 들어오는 이물질과 같은 것. 환한 세상에 조금씩 어두운 무언가가 스며들었다.
그것은 그림자였다. 누구의 것인지 의문 가질 필요는 없었다. 바로, 쿠마샤의 것이었으니까.
솨아아악!
아이의 그림자가 길게 이어지더니, 공간을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해졌다.
그것은 어둠 그 자체였다. 아주 가벼운 손짓으로 유성을 막아 냈다. 한없이 발하던 빛은 사그라들기 시작했으며, 마법사들의 결계 끝까지 어둠이 그득해졌다.
쩌억-!
“어!”
“안 돼! 버텨라!”
그것의 힘은 결계를 깨고 나가고자 크게 날뛰었다. 그에 베릭이 이안에게 몸을 바짝 붙이며 보호하듯 자세를 낮췄다.
두두두두-
쿠궁!
지진과 함께 건물 자체가 비틀리듯 진동했다. 마법사들은 계속해서 어둠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써 댔지만, 의미 없는 저항에 불과했다. 이안이 고개를 드는 순간이었다.
쩌어어억-!
채애앵!
결계가 완전히 박살 났다. 왕궁의 천장이 모조리 뜯겨 나가고, 사방의 틈으로 어둠과 이안의 빛이 한데 어우러져 흘러나갔다. 마치 묶여 있던 바람이 자유를 찾은 것처럼 거칠게 뻗어 나가는 모습.
“…….”
이안은 천천히 그것을 올려다봤다. 사람의 형상이되 사람이라 할 수 없고, 마물의 형상이되 경외감마저 느껴지는 존재감.
“…저게, 저게 신의 그림자구나.”
이안을 막아서고 있던 베릭이 중얼거렸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직감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이안, 네가 심연에서 맞섰던 그것이며, 지금까지 이어진 이 모든 사달의 진정한 역사.
놈의 고개가 조금 움직여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 작은 움직임에 모두의 몸이 꼼짝할 수 없게 됐다. 이는 초월적 존재를 목도한 미물들의 자연스러운 반응. 원초적 두려움이었다.
“하-”
비밀 먹는 집시의 배를 갈라서 나왔던 혼돈과는 차원이 다르다. 마법사들은 모두 겁에 질린 낯으로 뒷걸음질 쳤고, 그것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이안 베로시온.
심장을 멎게 하는 울림.
이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마법사들과 다르게 그는 살짝 웃고 있었다.
“그림자 아니랄까 봐, 하는 짓이 우습도다.”
심연에서 그림자가 이안을 삼키려 할 때 신이 도왔듯, 대지 위에서 이안이 쿠마샤를 삼키려 하자 그림자가 나선 것이다.
이안은 잘 되었다는 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내 이번에는 너를 놓치지 않겠다.”
* * *
왕궁에서 빛과 어둠이 새어 나옴과 동시에, 기이했던 적막이 깨졌다.
그들은 아직 알지 못했다. 왕궁 내에서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던 건, 전부 마법사들의 결계 덕이었음을.
물론, 그걸 인지할 틈도 없었다.
“히익! 저, 저게-”
“저게 무어란 말이오? 난생처음 보는 것인데.”
“마법사님! 마물입니까?”
“아니, 마물이라 하기에는 결이 다릅니다. 아무래도 저건-”
바리엘 본대는 발칵 뒤집혔다. 가까운 거리에 마탑보다도 거대한 무언가가 나타난 것이었다.
진 역시도 당황스럽고, 놀라운 마음에 어떠한 말도 꺼내지 못했다. 다만, 에이린의 중얼거림이 주위 사람들에게 답을 내주었다.
“…그림자입니다. 신의 그림자.”
마물의 근원이자 심연의 주인.
진은 자신도 모르게 옷깃을 꽉 쥐며 숨을 들이 삼켰다. 저 무지막지한 것이 신의 그림자라니. 상상 너머의 존재감에 압도되어 황제라는 이름조차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폐하.”
그때, 에이린의 결연에 찬 목소리가 그의 정신을 일깨웠다.
“침착하시어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이안 경을 비롯한 모두의 운명이 달린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