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55
제755화. 닿지 않는 존재
으스러진 신장(神掌) 조각이 아래로 떨어지다 서서히 사라졌다. 그것은 마치 신기루 현상 같기도, 혹은 일종의 승화 현상 같기도 했다.
무엇이 되었든 중요한 건 하나였다. 바로, 이안의 상위 마법이 그림자 앞에서 무력화되었다는 것.
‘저것이…….’
저렇게도 될 수 있는 것이었구나.
마법사들은 넋 놓고 그 광경을 보며 그리 생각했다. 우습게도 한 단계 지평이 넓어진 기분이었다.
이리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가설이 제기된다 한들 우스운 헛소리라 치부하며 넘겼을 테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발 딛고 있는 가이아에서 상위 마법은, 신과 제일 가까운 파급력을 지니고 있지 않나. 그것도 시전자가 이안이라면 가타부타 덧붙일 것이 없다.
“이…….”
이안 역시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 허공에 멈춰 있었다.
그림자는 고개를 기울여 그런 이안을 재미있다는 듯 구경했다. 미물을 바라보는 절대자의 시선이다.
-나는 그림자. 신이 없으면 나 또한 없는 것이지만, 반대도 마찬가지. 나 없이는 신도 존재할 수 없다. 재미있지 않은가?
신의 조각아, 너희의 힘은 나의 조각 선에서 멈추어 있단다.
제아무리 시간을 거스르고 신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들 한계라는 건 분명히 그어져 있었다. 그것은 균열로도 일그러뜨릴 수 없는 절대적 사실이리라.
지이잉! 지잉!
이안은 대답 대신 바로 마력을 응집시켰다. 혹여 신장 마법만 그러했던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마법 자체가 무력화된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퍼엉! 펑!
이안이 그림자 주위를 빙빙 돌며 연달아 폭발을 일으켰다. 그의 맹렬한 공격이 그림자에게로 가 닿았다.
그러나 어둠은 모든 걸 녹여 버리듯 이안의 공격을 집어삼켰다. 믿을 수 없었다. 다른 차원 그 자체가 이리 눈앞에 숨 쉰 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짓을 해도 소용이 없다?’
이안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결론. 그는 자신도 모르게 떠오른 생각을 얼른 지워 버렸다.
단정 지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리되면 길을 찾을 수 없고, 찾는다 한들 의심할 것이다. 이는 필패에 이르는 초입이었으니, 이안은 정신을 단단히 하여 숨을 골랐다.
‘분명히 있다. 있을 것이다.’
생각해 내라, 이안.
그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그림자를 노려봤다.
그리고 그때-
쿵.
가슴 아래, 지끈거리는 고통이 다시 고개 들었다. 자신을 잊지 말라는 듯이 말이다. 아까 이드갈로 군대를 궤멸시켰을 때 느꼈던 그 기이한 통증이었다.
‘그래, 이드갈이 남아 있어.’
이것으로도 그림자를 벨 수 있을지, 보자.
이안은 두 손으로 이드갈을 잡았다. 손끝이 희미하게 떨려 오고 있었다. 두려움이 아니라, 신체적 한계 탓이다.
토올룬의 심장부로 진입하면서부터 이안은 쉬지 못했고, 분신과 함께 나눠 들었던 상위 마법을 홀로 감당했다. 한계가 조금씩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것도 신의 힘이 아니던가?
그림자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그는 진정으로 즐거워 보였다. 균열 밖의 세상이 이리도 우스웠구나. 어찌하여 신이 그리도 사랑했는지 알겠다.
“아아.”
안 먹힌다는 걸 친절히도 말해 주는군.
하지만 이안은 멈추지 않고, 그림자 가까이 다가가 검을 휘둘렀다. 이것이 통한다 한들 놈에게는 생채기도 안 될 만큼 작은 상처일 터.
촤아악!
이안의 검 궤적을 따라 그림자가 살짝 갈라졌다. 마치 뭉쳐 있는 안개가 흐트러지는 것 같다.
그러자, 그 틈으로 솟구치는 마의 기운.
“……!”
심연이다. 두 번이나 심연에 잠겼던 이안은 그 기운을 단번에 알아챘다.
그림자의 내부는 심연으로 가득 차 있었다. 힘의 원천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아직 심연을 떼어 내고서는 가이아로 올라오는 게 불가하여 그런 것인지는 판단할 수 없었다.
그때 떠오른 한 가지 의문.
‘베면, 심연이 흘러나올까?’
문득 죽은 집시의 말이 떠올랐다.
러더포드와 함께 심연으로 잠겼을 때, 그녀는 나움을 데려가고 싶어 하는 이안에게 경고했다. 심연의 존재가 가이아 위로 올라가면, 끔찍한 재앙을 목도하게 될 것이라고.
“…까다롭군.”
인정한다. 이안이 지금껏 만났던 그 어떠한 존재보다 까다롭고 거대한 존재다. 이럴수록 한 걸음 물러나서 잠시 파악하는 것이……
-드디어.
그림자가 속삭였다.
이안이 뒤를 돌아보자, 건물 위를 내달리는 마검사들이 보였다. 성벽 전투를 급하게 마무리 짓고서 마법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안은 기쁘기보다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오면 안 돼!”
모두가 모이면, 그림자의 움직임이 시작될 터.
지체 없이 내달리던 제이럿이 이안의 외침을 듣고서 멈칫거렸다.
“멈춰라!”
그의 명령에 마검사들은 곧장 멈추었으나, 이미 그림자의 기준에서 그들은 모두 영향력 안으로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일순 바람의 흐름이 바뀌었다.
“아.”
가까이서 본 신은 형언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대지였고, 하늘이었으며, 폭풍우가 치는 밤임과 동시에, 모든 걸 녹이는 사막의 태양이었다.
신의 선택을 받았다 하여도 한낱 인간이 당도할 수 없는 저편의 힘…. 마검사들의 뒷덜미가 쭈뼛 섰다.
‘온다.’
그림자의 영향력 안-
거기에 선 모두가 직감했다.
-기다렸다. 신의 조각들이여.
쿠궁! 쿵!
쿠구구궁!
신장(神掌)이 내리던 하늘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휘몰아쳤다. 대지 위, 앞을 볼 수 있는 모든 자들이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봤다.
“정신 차려!”
마법사들 쪽에서는 헤일이, 그리고 마검사들 쪽에서는 제이럿이 대원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온 힘을 다하여도 죽느니 마느니 하는 상황에 이리 넋을 놓으면 어찌하는가?
“이안 님을 보아라!”
이안은, 다시금 마력을 모으고 있었다.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법사들 또한 이를 꽉 깨물며 계속해서 눈앞의 왕을 잡기 위해 온 기력을 토해 냈다.
타앗!
지이잉! 지잉! 퍼어엉!
“제이럿 대장, 저희는 어찌합니까.”
“이안 장관께서 가까이 오지 말라 하시니-”
“이안 장관-!”
제이럿 대장이 단전 밑에서부터 소리를 끌어올렸다. 무슨 상황인지, 어째서 다가가면 안 된다는 것인지 묻고자 하였지만, 그림자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라져.
쿠구구궁! 쿵!
하늘이 무너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림자의 손짓을 따라 하늘의 경계가 사라졌다. 마르지 않은 물감을 손으로 문지른 것처럼. 대자연 일부가 교란된 것이다.
촤아아악!
짙은 어둠이 이안을 잡아채기 위해 날아들었다. 눈으로 인지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이안은 간신히, 아슬아슬하게 그것을 피하며 움직였다.
‘물러설 곳이 없다.’
본질을 알 수 없는 사특한 힘이다. 잡히는 순간 육체는 녹아내려 두 동강 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를 노리는 어둠 줄기는 어느새 더더욱 늘어나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촤아악! 촤악!
그림자는 즐기고 있었다. 발버둥 치는 이안을 가엽게 내려다보며, 분명히 웃고 있었다. 놈의 얼굴에는 이목구비가 없었지만, 이안은 분명히 느꼈다.
“이-”
지이잉!
이안이 이드갈을 크게 펼쳐 보호막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어둠은 너무도 쉽게 이드갈을 깨고서 파고들었다.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무력감이 엄습해 왔다. 이윽고, 이안이 저의 목덜미로 날아드는 어둠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서 막아내려 했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늦었다는 걸.
푸우욱!
무언가를 가르고, 꿰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렸다. 심장이 꿰뚫리는 소리였다.
그러나 이안은 죽지 않았다.
“……?”
어둠은 이안에게 닿지 못했다. 죽음을 직감한 찰나 펄럭이는 로브 자락이 이안의 앞으로 스쳐 지나간 게다. 붉은 피가 허공에서 터졌다.
촤아아악!
“……!”
오가다 몇 번 말을 섞었던, 안면 있는 마검사였다. 얼굴을 보면 이름이 생각날 것도 같은데도 그는 끝까지 이안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심장이 꿰뚫린 채 추락할 뿐.
“세미!”
그를 알아본 베릭이 부르짖었다. 하지만 마검사의 시체는 추락하는 그 짧은 찰나 완전히 녹아내려 재처럼 부서졌다.
사아아악!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마검사들이 그림자를 타고 오르며 제각기 마력을 터트렸다.
그들은 전장에서 가능과 불가능을 따지는 자들이 아니었다. 오로지 승리를 위해, 바리엘의 안녕과 전사로서의 신념을 위해, 거대한 신의 그림자에게 기꺼이 몸을 내던졌다.
“흐아아아압!”
“이안 경! 호위하겠습니다!”
그들의 공격은 이안의 것과 마찬가지로 그림자에 흡수되었음에도 그들은 그러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안은 혼란했다. 정신은 이미 반쯤 물속에 잠긴 것처럼 마비된 지 오래. 거의 본능적으로 그림자의 공격을 피하고 있었지만, 점차 빈틈이 열렸다.
그런 이안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마검사들의 잔해로, 하늘은 까맣게 뒤덮여 갔다.
“…대장!”
지이잉!
번쩍! 번쩍!
선두를 달리고 있던 제이럿 역시 발을 디딜 때마다 절망을 인지했다. 이놈에게 우리는 그저 미물에 불과하구나. 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란 말인가.
“끝까지-!”
하지만 제이럿은 그것을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끝까지 임무를 완수한다!”
설사 그 끝이 죽음이라 할지라도.
제이럿의 명령을 받은 대원들이 계속해서 뛰어들었고, 이안의 앞에서 바스러졌다.
“젠장! 씨발 새끼가!”
베릭이 분노하여 이성을 잃고 몸을 돌렸다. 동료들이 너무도 허무하게 죽어 가는 이 광경을, 더는 두 눈으로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틈을, 쿠마샤는 놓치지 않았다.
“베릭!”
촤아아악!
쿠마샤의 붉은 이드갈이 베릭의 옆구리를 베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온몸의 힘이 빠지며 크게 휘청거렸고, 한 손으로 옆구리를 쥐었다. 손 틈으로 피가 범람했다.
“집중해!”
지이잉! 지잉!
“베릭, 젠장, 젠장!”
베릭이 무릎을 꿇자, 아코렐라가 그의 입에 알약을 욱여넣곤 연신 마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붉은 이드갈은 본래의 성질과 비슷하게 마력의 힘을 조금씩 눌러 댔다.
퍼엉! 펑!
퍼어어엉!
이안의 턱이 단단하게 굳었다. 그는 천둥과 같은 고함을 내지르며 그림자에게 내달렸다.
“찢어 죽일-!”
하지만 그림자는 작은 손짓만으로 그를 튕겨 냈고, 이안은 수백 미터를 날아가 건물과 충돌했다.
콰아앙!
무너진 잔해 속, 이안은 파묻혔다.
* * *
“…….”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진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는 고전의 수준이 아니다.
유희.
그래, 유희였다. 그림자의 손아귀 안에서 놀아나는.
“폐, 폐하.”
트웰러 역시 당황하여 연신 황제만 불러 댔다. 어찌하면 좋을지, 그간 전장을 수백 번 굴렀어도 답을 찾아낼 수 없었다.
만약 마법사와 마검사들이 저것을 저지하지 못한다면…….
‘바리엘은 파멸이다.’
파멸. 그것이 가져오는 무게는 진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진은 혼란스러움에 잠시 시선을 떨어트렸다. 이안 경이 앞서 싸우는 대신, 자신이 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게다. 분명히, 신께서 허락하신 무언가가 있을 터.
진은 자연스럽게 에이린을 돌아봤다.
“…….”
그녀는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감고 기도 중이었다. 신께 이르는 그 간곡한 부탁이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그걸 보고 있자니 진의 머릿속에서도 무언가 일어났다.
“폐하! 주민들이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폭동이라니?”
진이 기계적으로 되물었다.
하나 지금, 그런 건 하등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 건, 머릿속에 떠오른 무언의 실마리를 잡는 것.
“그, 그림자 신을 목격한 자들이 들고일어난 듯합니다.”
“하! 이런 상황에?”
“폐하, 제가 가서 정리를-”
‘……!’
타앗.
드디어 깨달았다. 진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보고하는 장교를 돌아봤다.
“그림자 신을 목격한 자들이 들고일어났다고?”
“예, 그렇습니다.”
토올룬의 신앙이었다. 그들이 믿는 신이 눈앞에 나타난 게다. 그것도 수도가 함락당하기 직전에. 이 상황에서, 그 누가 감격의 기도를 올리지 않을 수 있겠나?
진은 검을 잡으며 말에 올라탔다.
“그것이다.”
“예?”
“지금부터 저 그림자를 믿는 자들을 모조리 죽일 것이다.”
신은 믿음으로 기반한 존재.
한데, 그 믿음이 사라지면?
“모조리, 하나도 남김없이 죽여라. 저것의 이름을 지워 버린다는 각오로.”
그림자의 힘에 균열이 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