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57
제757화. 국가(國歌)
이안이 처음 바리엘 국가(國歌)를 들었던 곳은 중앙의 뒷골목, 어느 작은 술집에서였다.
마법사의 신분으로 황궁에 들어온 지 두어 달쯤 지난 때였을까. 솔직히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았다. 이안은 황궁에 적응하기 바빴고, 동료들의 시선은 늘 싸늘했으므로.
이안의 환영회가 정식으로 열렸던 게 꽤 나중이었다는 것만 기억했다. 그리고 참석자가 나움을 포함해 딱 네 명이었다는 것도.
“괜찮겠어?”
“무엇이요?”
“그러니까, 음.”
“태생이 귀족이라 이런 술집이 불편할 것 같다는 뜻입니까?”
이안은 희게 웃으며 먼저 자리에 앉았다.
언제나 나움의 걱정에는 근거가 명확했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돌아서서 보면 이안이 나움을 신뢰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기도 했다. 뜬구름 잡듯 걱정하는 자가 아니었기에, 언제나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었다는 뜻이다.
“그럼 다행이네.”
“제가 나움 님 단골집을 소개해 달라고 했잖습니까.”
“나움, 너는 돈도 많으면서 뭘 이런 데를 와? 이안! 차라리 나한테 말하지! 어차피 돈은 나움이 낼 건데.”
“어허. 음식의 질은 돈으로 결정될 수 있어도 맛은 전혀 다른 영역이라고.”
나움을 따라왔던 세 사람은 훗날 나움이 장관직에 올랐을 때 각자 부서의 대장직에 올랐다. 한 명은 나움을 마음 깊이 연모하는 자였고, 한 명은 나움의 어릴 적 친우,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루이지. 여기다.”
“뭐 이런 곳을 잡았어?”
“여기 염통 고기가 정말 맛있거든.”
이안은 루이지를 힐끔거리며 맥주잔을 들었다. 다른 두 사람은 어째서 나움을 따르는지 알겠는데, 루이지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중에 크로니가 그를 새로운 마법부 장관으로 추대한 것을 보고서 어렴풋이 짐작했을 뿐이다. 아아. 저자는 나움을 시기하고 있었구나, 하고.
“여기, 주문하신 염통 고기입니다.”
“아, 고마워요!”
“자자, 다들 먹자고!”
주인이 음식을 내주자 나움이 맥주잔을 집었다. 민망할 정도로 조촐한 환영회였지만, 이안은 상관없었다. 그저 이런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그 압도적인 편안함이 좋았다.
“마법부에 들어온 걸 환영한다, 이안.”
“환영해!”
“앞으로 잘해 보자.”
“애들이랑은 천천히 친해지면 돼.”
크로니와는 어느 순간부터 불편해져서 식사를 즐길 수 없게 됐고, 황궁 곳곳에서 끊임없이 느껴지는 시선은 몹시도 따가웠다.
하지만 지금은? 구석에 널브러진 취객들 외에 아무도 없지 않나.
“고맙습니다, 다들.”
맥주잔이 시원하게 부딪혔다. 이안은 잠시 멈칫거리다가 꼴깍꼴깍 들이켰다. 나움과 마법사들은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를 지켜봤다.
“하하, 잘 먹네!”
“어때? 첫 맥주 맛이?”
“음…….”
이안은 입가를 닦으며 잠시 말을 골랐다. 그는 한참이나 생각하더니, 주인 쪽 눈치를 보며 중얼거렸다.
“차가운 짚을 갈아 먹는 것 같습니다.”
“뭐? 하하하!”
“이번에는 염통 먹어 봐. 이것도 처음 먹지?”
술잔이 하나둘 비워졌다 다시 채워지고, 또다시 비워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나움은 의도적으로 황궁 사안을 제하고서 사담을 늘어놓았고, 여인은 하등 의미 없는 말에 의미를 부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친우와 루이지는 마법사에게 빗자루가 필요한가 아닌가에 대한 토론을 끝없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다들 거나하게 취했다는 뜻이다.
“저기, 선생님들?”
“네?”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혹시 마법사님이십니까?”
딸꾹! 루이지가 급하게 머리를 매만졌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이안도 시선을 돌렸고, 나움은 싱긋 웃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데요?”
“하이고! 세상에! 누추한 곳에서 이리 귀한 분들을?!”
“누추하긴 뭐가 누추해!”
“주인장, 솔직해집시다. 아닌 건 아닌 거지!”
“만나서 영광입니다. 이거, 운이 아주 좋았네요. 여기서 마법사님들을 만나고.”
“그, 제가 저기 사거리에서 잡화점을 하는데요. 예전에 라이난 북동쪽 산 무너져서 오가는 길 딱 막혔을 때 마법사님들이 물건 옮겨 주셨거든요.”
“아. 좀 된 일 아닌가요?”
“예예, 하하하! 그때 쫄딱 파산할 뻔했는데 덕분에 살았습니다. 애도 무사히 학교 들어가고, 잘살고 있습니다.”
“다행이네요.”
“괜찮으시면 제가 술 한 잔 올려도?”
“아우, 좋습니다.”
몇 없는 손님들이 의자를 끌고 와 끼어 앉자, 다시금 탁자 위가 술과 음식으로 풍성해졌다.
해는 져서 어둠이 내려앉고, 주황빛 랜턴은 은은했으며, 오래된 나무 냄새가 가득한 아늑한 술집…….
시간이 갈수록 이안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다들 뭐가 그리 재밌고 웃기는지 연신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정작 자신도 웃고 있으면서.
퉁. 퉁퉁. 투두둥.
누군가 오크 통 의자를 가볍게 두드리며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노래. 아는 자들은 화음을 더하기도 했고, 모르는 자들도 술잔을 까딱거리며 함께했다.
이안의 눈꺼풀이 점점 감겼다.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취객들의 노래가 점점 커져 갔다.
바-리엘!
신께서 품고 있는 광영의 시작이라-
비 내리면 금빛으로 물드는 가이아의 심장이라-
높게 높게 고갤 들라, 그리하면 보이리니-
저기 높은 곳의 빛이, 바리엘의 등불이라-
* * *
콰아앙!
“이, 이안아!”
“이안 님!”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그 이안이 저리도 힘없이 날아가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래, 밀려나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 치자. 그런데 어찌하여 무너진 건물에서 나올 기미가 없나. 이안이었다면 바로 박차고 나와 다시 그림자에게 덤벼들어야 하는데.
“젠장!”
“가만히 있어!”
“뭘 어떻게 가만히!”
베릭이 핏물 흐르는 옆구리를 쥐고서 기어가려고 하자, 아코렐라가 그를 잡아끌었다. 그냥 이드갈에 베인 것만 해도 큰 치명상이건만, 심지어 그림자의 이드갈이었다. 어떤 식으로 몸 상태가 악화될지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다.
채앵! 챙!
퍼어어엉!
“아코렐라! 베릭을 데리고 물러서라!”
베릭은 쓰러졌고, 아코렐라가 그 옆을 지키고 있다. 즉, 전투 불능인 적이 둘. 쿠마샤는 자신에게 날아드는 마법사들을 계속해서 쳐 내며 베릭과 아코렐라를 집요하게 노렸다. 하나씩 끝장을 내고 말겠다는 저의다.
헤일은 두 사람에게 우선 멀리 피하라 명했고, 아코렐라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시발, 베릭! 내 어깨 잡아!”
“됐어, 나 아직 싸울 수-!”
베릭이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컥’ 소리와 함께 고꾸라지고 말았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아래가 찢어진 듯 아팠다. 제기랄, 갈비뼈가 부러졌나? 그럼 나가린데.
그 모습을 본 쿠마샤가 웃음을 깔깔 터트렸다. 너무도 청명하고 맑아서 괴이하게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저, 개-”
“베릭!”
콰아앙! 쾅!
헤일이 그만하라는 듯 베릭의 이름을 불렀다. 미안하지만 부상자가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짐이다. 마법부 전체가 왕에게 덤벼들고 있음에도 균형이 팽팽하지 않나. 부상자에게 신경이 분산되면 전체가 무너진다.
촤아아악!
“아아아악!”
마법사 한 명의 어깨가 베였다. 순식간에 마력이 사라지고, 그의 몸이 아래로 추락했다. 아코렐라가 한쪽 발을 절뚝이며 달려가 보호막을 펼쳤다.
지이잉! 지잉!
“벌레 같은 것들.”
“닥쳐라!”
왕은 추락하는 마법사들을 따라 급강하하며 검을 휘둘렀고, 헤일과 토미, 나키나가 필사적으로 아이를 따라 막아섰다.
‘아.’
짐…이구나.
힘을 잃은 지금, 자신의 존재는 동료들에게 짐이구나.
베릭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천천히 이안이 사라진 쪽으로 걸어갔다. 시발, 전쟁 중이라 고기를 많이 못 먹어서 그래. 몸 상태 좋았으면 진짜 개 발라 버렸을 건데.
‘…망할.’
숨 쉬는 게 점점 어려워졌다. 우선 이안에게 가서 상태가 괜찮은지 보고, 애 정신 좀 차리게 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아아아악!”
“안 돼! 모리스!”
익숙한 목소리가 비명을 터트렸다. 베릭이 뒤를 돌아보자, 다시금 제 동료가 잿빛으로 바스러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베릭의 붉은 눈동자에 일순 상실감이 깃들었다. 눈 내리듯 하늘을 가득 채운 잿빛 가루들이 그의 세상을 무너트렸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런 꼴 보기 싫어서 강해지고 싶었던 것 아니었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 싶어서. 더는 자신의 부족함으로 누군가를 떠나보낼 수 없다.
-크르르…….
그때였다. 마물들이 낮게 그르렁거리며 베릭의 주위를 에워쌌다. 놈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상대가 다쳤음을, 그로 인해 마력을 잃었음을.
“하, 씨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먹잇감을 알아보는 건 너무도 당연한 섭리 아니겠나. 베릭이 헛웃음을 터트리자, 마물들이 동시에 사방에서 덤벼들었다.
타앗!
“너희 같은 건-!”
사지가 잘려 나가도 죽일 수 있다, 버러지들아! 물어뜯어서라도 나는 이겨! 힘껏 검을 휘두르며 마물을 베어 냈으나, 마력이 없는지라 폭발적인 힘은 나오지 않았다.
-키야아악!
마물의 기세가 거세졌다. 그들은 베릭 몸 곳곳에 들러붙어 송곳니를 드러냈고, 이내 모두 베릭의 형상을 띠었다.
쿠웅!
“아이, 아무것도 아닌 새끼가-”
“까부네, 응?”
“아까 네 덕분에 잘 처맞았다.”
“너 죽고 나면 네 자리는 우리가 잘 주워 먹을게.”
‘베릭들’은 베릭이 꼼짝하지 못하도록 얼굴과 목, 사지 따위를 단단히 눌렀다. 거칠게 반항하던 베릭이 잠시 멈칫거렸다. 포기했나?
“……?”
웃음을 지으려던 마물들은 그대로 굳었다. 놈의 눈빛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붉게 빛나고 있었으니.
“아아- 맞아.”
너희 마물이었지.
그리고 나는…….
“아탄이었고.”
“뭐?”
콰득!
“아아아악!”
베릭이 제 볼을 짓누르고 있는 놈의 손을 물어뜯었다. 그러자 검은 피가 왈칵 터졌고, 베릭은 피가 혀끝으로 들어오게끔 입을 벌렸다.
콰직!
미친개가 따로 없다. 그가 살점을 물어뜯으려고 하자, 마물들이 모습을 풀며 뒤로 물러서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은 이미 완전히 바뀌었다.
“아아악!”
베릭이 놈들을 붙잡고서 놓아주지 않는 게다.
더, 더, 더 많은 피가 필요했다. 베릭은 한 놈의 위에 올라타 검을 다잡고는 미친 듯이 난도질했다.
푸욱! 푹!
마물의 피가 몸에 흘러들어 올수록 숨죽였던 마력이 깨어나는 기분.
그간 죽을 만큼 지워 내고 싶었던 핏줄이었거늘 되레 지금은 너무도 반가웠다. 이렇게 해서라도 다시 일어날 수만 있다면, 전부 구할 수 있으니까.
“하아, 하아-”
쓰읍. 검은 피를 잔뜩 뒤집어쓴 베릭이 어느새 우뚝 멈추곤 거친 숨을 내쉬었다.
마물들의 사체는 이미 너절해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 베릭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이내 자신의 옆구리를 붙잡았다.
“피는 못 속인다더니.”
상처가 빠르게 아물고 있었다.
베릭은 멀찌감치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마물들을 쳐다봤다. 시선이 마주치자, 놈들이 재빠르게 달아나기 시작했다.
타닥타닥!
그런데 의아한 일이 일어났다. 놈들이 어느 지점을 벗어나자, 동시에 외형이 풀리며 검은 마물로 되돌아오는 것 아닌가.
베릭이 눈동자만 데굴 굴려 주위를 둘러봤다. 뭐지?
‘왕궁 밖으로 나가니까 풀린 건가?’
아아. 왕궁 내에서만 모습을 흉내 내는 게 놈들의 한계였구나. 하긴. 밖에서도 그게 가능했다면 진작 황제로 변신하여 혼란을 줬겠지.
베릭은 검 끝을 질질 끌며 마물들이 도망친 쪽으로 걸어갔다. 남김없이 씹어 먹어 주마.
쿵. 쿵쿵. 쿵.
그때, 희미하게 울리는 진동.
또 균열인가 싶었지만, 지진과는 결이 달랐다. 베릭은 저 멀리서 다가오는 제국의 깃발을 발견했다.
바-리엘!
황제를 선두로 하여, 제국군이 힘차게 이쪽으로 진격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