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59
제759화. 믿음으로 하여금
모두가 그리 느꼈다.
무언가 변화한 것 같다고.
이안의 빛이 이전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안이 그러했듯, 그들 모두가 변화했기에.
“이안 경.”
“이안아!”
“이안 님!”
콰아아아앙!
이안을 인지한 자들이 동시에 그의 이름을 불렀으나 거대한 굉음에 바로 묻혔다. 세상을 뒤흔드는 거친 폭풍이다. 산발적으로 칼바람이 휘몰아쳤고, 울림은 귀가 멍해질 정도로 깊게 파고들었다.
진은 흐린 시야 속에서 한쪽 눈을 찡그리며 정면을 응시했다. 뿌연 먼지 탓에 이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사아아악.
먼지가 걷히자, 단단히 서 있는 이안의 뒷모습이 보였다. 날뛰던 그림자의 촉수들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그림자는 천천히 허리를 세워 그들을 내려다봤다. 이목구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그림자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는 분명히 알겠다.
‘다…….’
‘당황하고 있다.’
그림자는 이안이 자신의 일부분을 ‘쳐 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마법사나 마검사는 닿는 즉시 잿가루로 화하여 사라지지 않았던가. 그림자의 움직임이 자못 신중해졌다.
“이안아아!”
달라진 이안의 모습에 놀란 베릭이 달려왔다. 이안의 손등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마치 살을 태운 것 같기도 하고, 맹독에 감염된 것 같기도 했다. 무엇이 되었든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안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손을 가볍게 털며 되물었다.
“베릭. 괜찮으냐.”
“어? 뭐가.”
그 허리춤의 상처. 이안이 시선으로 답하자, 베릭이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당연하지. 사지가 뭉개져도 문제없었던 나다.”
“…그래.”
베릭에게서 마물 피 냄새가 진동했다. 붉은 이드갈에 베였음에도 마력은 그대로였다.
이안은 다시 시선을 거두어 그림자신을 올려다봤다.
“네가 괜찮다면 되었어.”
이안은 베릭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괜찮노라 이르는 그의 담담한 대답에 구태여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이안은 남은 마법사와 마검사들의 수를 헤아렸고, 보이지 않는 얼굴이 너무 많다는 걸 깨달았다. 그의 입매가 단단히 굳어졌다.
“…폐하.”
이안의 시선은 그림자신에게 곧게 뻗어 있었지만, 그것의 시선은 저 멀리 나아가 있었다.
연신 피어오르는 연기와 불길. 그리고 성벽 쪽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비명…. 자신의 신도들이 남김없이 죽어 나가고 있음을 두 눈으로 보고 있는 게다.
“폐하!”
시간이 없다. 놈이 자신의 위기를 인지하게 되면 다음은 분명 모든 게 찰나일 터.
현 상황에 균열이 일고 변화가 보인다 한들, 그리되면 그림자신을 단번에 막아 내기에는 무리다. 살갗이 완전하게 타 버린 이안의 손등이 일러 주고 있었다.
“지금부터 제 말을 새겨들으십시오! 마법부와 황궁친위대, 그리고 제국군 모두에게 전할 사안입니다!”
스으윽.
그림자신의 목이 길어졌다. 그는 고개를 길게 빼내어 신도들이 죽어 가는 것을 자세히 보려는 듯싶었다. 바로 지금이 바리엘에게는 다시 없을 기회이리라.
“그림자신은 저 혼자서 어찌할 상대가 아닙니다. 그러니 모두가, 지금은 바리엘을 위해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각오되었다! 이안 경, 나는 각오되었어!”
“이안 님!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따르겠습니다!”
“무엇이든, 해낼 것입니다!”
“제국을 위하여!”
이안은 그림자신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잠시 숨을 골랐다. 머리가 어지러워 구역감이 몰려왔으나, 그의 낯빛은 담담하고 단호했다. 그 흔들림이 없는 모습에 모두가 마음을 굳게 먹었다.
“아무리 삿되었다곤 하나 저것 또한 신. 믿음을 기반으로 한 존재다, 이안 경.”
“예, 옳습니다. 그리고 폐하의 선택 역시 옳습니다.”
토올룬을 절멸하고자 제국군의 사기를 증진한 것. 어떠한 언질 없이도, 이안은 본능으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베릭 또한 급하게 덧붙였다.
“그리고 저 새끼, 왕궁 밖으로 못 나오는 것 같아. 마물들도 어느 정도 나오니까 변신이 풀리더라고.”
“토올룬의 왕도 저희를 쫓아오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림자신은 왕궁 터에 몸을 단단히 박아 두고서 목만 길게 빼고 있다.
이안은 조금씩 감이 잡히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코렐라, 증폭제가 더 있는가?”
“네. 있긴 있습니다만, 수가 많지 않습니다.”
“헤일을 비롯한 전투조는 모두 복용하라. 그리고 전면에서 「견합(牽合)」 마법진을 상세히 그리도록. 가능하겠는가?”
동방에서 넘어온 귀물로 완성한 새로운 마법진이었다. 마법사들의 마력을 한데 모아 전개하는 상위 마법이었는데, 이안의 힘을 바탕으로 한 것인지라 일반 마법사들이 금기의 산물에 대적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동시에 개개인의 힘을 최대한 증폭시킬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고.
마법사들의 낯빛에 잠시 난감함이 스쳐 지나갔다.
“아.”
마법진은 복잡하고, 까다로우며, 체계적인 술식이다. 게다가 그들이 견합 마법을 일깨운 것은 루스웨나 전쟁 당시. 그 이후로 끝도 없이 전시 상황이었던지라 제대로 탐구할 시간이 부족했다.
즉, 마법진을 온전히 외는 사람이 몇 없다는 뜻. 하지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헤일이 손을 들었다.
아코렐라는 당시 자리에 없었던지라 아예 열외다. 그녀가 아쉽다는 듯 제 이마를 파파박 쳐 댔다. 천재 마법사인 그녀도 보았더라면 바로 외웠을 것인데!
‘시간이 좀 걸리겠군.’
그래도 좋다. 내가 여러 몫을 해내면 되니까.
이안은 헤일과 몇몇 마법사를 지목하며 역할을 분배했다.
“헤일 대장을 중심으로 왕궁 주위에 견합 마법진을 설치한다. 다른 마법사들은 마검사들을 도와 토올룬 왕을 처치하고, 그림자신의 시선을 앗아 시간을 번다.”
이안과 제이럿의 시선이 맞물렸다. 이안이 말했다.
“토올룬 왕이 위험에 처하자마자 그림자신이 나타났습니다. 아이의 존재 자체가 신도들을 결집할 수단이자 믿음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제이럿은 이안의 말뜻을 바로 이해했다. 그러니까, 토올룬 왕의 목숨을 앗는 것만으로도 놈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게다.
“제이럿 대장, 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제이럿은 ‘시간을 번다’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도 아주 잘 알았다. 희생은 불가피, 단 몇 초일지라도 그것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라는 뜻이다.
이에 대한 제이럿의 답은 확고했다.
“맹세하여, 할 수 있습니다.”
대장의 망설임 없는 결의에, 친위대원들 모두 그를 따라 경례하며 의지를 다졌다.
처억!
“물론입니다!”
“각오했습니다!”
그리고 베릭 역시 마찬가지. 마물의 피로 흥건한 손날로 경례하며 자신이 황궁친위대임을 증명했다. 이안은 희게 웃으며 잠시 숨을 내쉬었다.
곧이어 헤일과 마법사들이 아코렐라가 건네준 증폭제를 이로 깨물어 삼켰다. 몸과 정신이 피로하여 곧 쓰러질 것 같았는데, 약 기운이 조금이나마 그 무게를 덜어 줬다.
“그리고 폐하.”
이안은 진을 돌아봤다.
“미안합니다.”
100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왔음에도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 미안했다. 당치도 않았으나, 이안은 그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
“이안 경.”
“폐하가 이르신 대로 믿음은 승패의 열쇠입니다. 제국군을 다독이고, 승리에 대한 확신과 신의 존재를 강렬하게 각인시켜 주십시오. 이를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방법도 옳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한낱 인간의 명으로 너무 많은 것이 변한다. 황제였던 이안은 가끔 그것이 너무 버겁고 두려웠으나, 견디고 나니 그 또한 어쩔 수 없었던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진 역시… 언젠가는 깨닫는 날이 오겠지.
“…알겠다.”
이안이 오른쪽 귀에 손을 올렸다. 그러고는 전언 마법을 통해 인근의 모든 제국군에게 음성을 전했다.
-모두 들리는가?
신비로운 미성이 또렷하게 들려오자, 병사들이 화색을 띠었다.
“마, 마법부 장관님 목소리 아닌가?”
“아까 그림자를 쳐 냈던 게 이안 님이었나 봐.”
“그, 그래! 역시 쉽게 질 분이 아니라니까!”
“저기! 다들 저기 봐 봐!”
웅성거리던 소음이 한순간에 잦아들었다.
그림자가 성벽 쪽으로 손길을 뻗고 있었다. 기도하는 자들에게 응답이라도 하듯, 죽어 가는 신도들을 구원하고자 지하신이 직접 움직였다. 어쩌면 저것은, 스스로 구하고자 하는 행위일 수도.
‘지하신도 느꼈어. 이안 경이 뭔가 다르다는 걸.’
힘의 균열. 그것을 느낀 지하신이 원인을 찾아낸 것이었다.
진의 머리 위로 마수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어찌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그 순간-
-집중하라.
타앗!
이안이 날아들어 마수의 손길을 따라잡았다. 그것은 신호였다. 마법사들과 마검사들 그리고 진에게 보내는, 서둘러 움직이라는 신호.
“움직여라!”
“네! 대장!”
“헤일 대장!”
“가! 어서 가! 마법진은 내가 책임진다!”
“믿겠습니다, 대장!”
“모두 살아서 다시 만납시다!”
지이잉! 지잉!
촤아아악!
헤일은 바닥에 손을 대고서 마법진 초석을 세웠고, 다른 이들은 다시 왕궁 쪽으로 달려갔다.
토올룬 왕을 죽이고, 나아가 헤일 대장이 마법진을 완성할 때까지 시간을 번다. 이것이 지금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무조건 해내야 하는.
-나는 이안 베로시온이다. 100년 후의 미래에서 온 황제의 핏줄이자, 신을 증명할 수 있는 존재. 분명히 이르건대, 그대들은 승리했다. 바리엘은 영원했다.
촤아악!
이안은 그림자에게 날아들며 계속해서 전언 마법을 퍼트렸다. 믿음을 세우기 위해서는 그의 존재를 계속 일러 주는 수밖에 없다.
-한데 어찌하여 두려워하는가? 신은 분명히 존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함께하신다. 그럼에도 마음 깊이 불안이 자리한 자는, 나를 보라.
“트웰러 장관님!”
무차별적으로 도끼를 휘두르던 트웰러가 기척을 느끼고는 돌아봤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검은 무언가와 백색의 무언가. 피를 흠뻑 뒤집어쓴 노장은 침을 탁 뱉으며 두 손으로 도끼 자루를 단단히 붙잡았다.
“오는구나! 다들 검을 들어라!”
“검을 들어라!”
“전사는 등을 보이지 않는다!”
-나는 하늘을 날고, 어둠을 가르며, 빛을 만들어 낸다. 이래도 부정할 수 있겠는가? 나는 내 영혼을 걸고서 이를 수 있다.
내 영혼을 걸고서.
이 대목에 왕궁으로 달려가던 마법사들이 멈칫거렸다.
“이안 님, 설마…….”
혹 최후의 수단으로, 금기의 마법까지 생각하고 계신 걸까? 심장이 내려앉았다. 마법진을 그리던 헤일의 손도 잠시 멈칫했으나, 오래 지속되진 않았다.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집중해!”
이안이 제 모든 걸 걸었으니, 자신들도 걸 것이다. 이안이 심연에 들어간다면, 그들 역시 함께 들어가 손목을 붙들어 줄 것이다. 괜찮다, 정말로 괜찮다.
사아아악!
마수가 성벽 쪽으로 내리꽂히려 하자, 이안이 속도를 높여 그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다시-
퍼어어엉!
주먹을 내질러 그림자의 공격을 쳐 냈다.
다시금 세상이 울리고, 날카로운 바람이 터졌다. 채 마르지 못한 핏물들이 물결을 이루며 널리널리 흘러갔다.
사아악.
먼지가 걷혔다.
이안은 공격을 쳐 낸 자세 그대로였다. 숨이 거칠고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으나, 병사들은 알아채지 못했다. 이안의 손등이 완전히 갈라져 흰 뼈가 드러났다는 걸.
“와아아아아!”
“미래의 황제께서 함께하신다!”
“대제국 바리엘은 영원하다!”
“바-리엘!”
“바-리엘!”
다시금 곳곳에서 국가가 울렸다.
그림자는 허리를 기울인 채로 이안 쪽을 보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이안의 눈썹이 못마땅하게 휘었다.
-가소롭다, 가소로와! 네놈의 존재가 믿음이라니,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사아아악!
그림자가 창공으로 길게 늘어졌다. 이어서 먹구름이 몰려들며 순식간에 토올룬 하늘을 덮어 버렸다.
그림자는 이안에게만 들리도록 속삭였다.
-네놈의 존재가 세상에서 지워져도, 과연 그 믿음이 이어질까?
이안 베로시온이 미래의 바리엘에서 왔다는, 네놈들이 이르는 그 승리의 증거 말이다!
그것이 사라진다면, 저것들은 어찌 될까? 참으로 궁금하지 않은가?
-어디 한번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