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61
제761화. 지워지다
…소모적이다.
이안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미친 듯이 지하신에게 덤벼들었다. 본인의 행동이 소모적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나, 멈출 수가 없었다. 멈추면, 심장이 찢어질 듯한 고통과 함께 무언가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에.
콰아아앙!
이는 그림자신도 알고 있다.
놈은 그저 이안의 공격을 묵묵히 받아 주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안이 붙들고자 하는 무언가가 무너지기를, 하여 기대를 건 모든 자들의 희망이 무너지기를.
‘…이상해.’
끝없이 몰아치는 폭격 속에서, 이안의 내면이 점차 고요해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떠오르는 물음 하나-
자신은 도대체 왜-
왜 이리도 동요하는가?
‘내가 베로시온이라는 것을 모두가 잊는다 한들, 그게 무슨 문제라고.’
이성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베로시온이든 아니든 결과론적으로는 문제가 없음을. 어차피 바리엘은 승리할 것이고, 지하신을 격퇴될 것이니까.
과정은 조금 힘들고 복잡해지겠지만,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왜…….
‘왜 이리 힘들지.’
정체를 숨기고 지냈던 시간과 그렇지 않았던 시간을 비교하면 더더욱 의문스러운 일이었다.
브라츠에서 황궁으로, 심연으로. 그리고 마지막 다시 황궁으로 되돌아오기까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과정 속 이안은 언제나 ‘이안 히엘로’였다. 변경의 서자 출신, 마법부 장관…….
‘베로시온이라 밝힐 의도도 없었다.’
오히려 입궁 처음에는 정체를 숨기고자 부단히 노력하지 않았던가.
회의장에서 황실 핏줄 논란이 일었을 때는 단호하게 부정하고, 감히 의심하는 자를 처단했다. 비밀을 먹는 집시에게 베로시온이라는 이름을 먹이로 던져준 것도 그런 의도였다. 혹여 자신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진실이 새어 나간다면, 홀로 남은 진에게 치명적이므로.
‘그랬는데…….’
그저 비밀 먹는 집시가 불러일으킨 혼돈을 막아 내려 한 것이다. 게다가 진이 장성하여 황제의 자리에 굳건히 올랐으니, 이전과 상황이 다르다 판단했다.
그래서 모두에게 전했다. 함께한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으며, 자신이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말이다.
‘…정말?’
이안의 내면에서 물음이 일었다.
정말 그게 다였을까? 스스로 이안 베로시온이라는 이름을 알린 이유가 그것이 다인가?
형형하게 빛나는 금안이 크게 흔들렸다. 답하지 못하겠다. 누구보다 자신이 제일 잘 아는 질문이건만, 이안은 단번에 적합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소중했던 것이지.
그때, 그림자신이 속삭였다.
-그게 인간의 본능이니까.
사랑하는 자에 대해 알고 싶고, 동시에 자신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들이 서로 인지조차 못 했던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하여 지금의 자신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마음으로 나누는 것. 놀랍게도, 그림자신이 정의하는 인간의 본능이었다.
이안의 숨이 가볍게 멈췄다. 파앗 하고 빛이 사방으로 갈라졌다.
‘아.’
이안은 비로소 깨달았다. 그림자신이 지운 것은, ‘베로시온’이라는 이름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추억 속에 홀로 남는다. 소중해 마지않은 기억 속, 나 혼자 남아…….’
지워진다.
“크로니, 그 새끼 진짜 개빡치네. 뭐 그런 인간이 다 있어? 처먹는 밥이 아깝다!”
포크와 나이프를 쥔 채로 연신 분개하던 베릭이 지워졌다. 그날의 그 순간, 베릭이 대신 화내 주는 모습에 슬그머니 희게 웃었던 자신만이 남는다.
“예? 이안 님이 화, 황제시라고요? 그것도 미래에서 온 금기의 마법 산물…….”
“어쩐지! 와, 그래. 어쩐지!”
“헤일 대장. 괜찮아요? 궐련 재 떨어지잖아요.”
“아- 뜨!”
“쯧쯧. 옷에 구멍 났네.”
“이안 님, 그때도 마법부는 건재합니까?”
“눈치 없는 새끼가, 그런 질문을 해? 뭔 일이 있으셔서 여기까지 오신 거지.”
“100년 후의 신(新)광물 매장지 좀 알려 주십시오!”
“끌어내. 아코 대장 또 눈 뒤집혔다.”
“이거 놔라아아앍! 저기 살아 있는 백과사전이! 사랑합니다! 이안 님! 앗싸, 충성!”
“이안 님. 그래도 이안 님은 저희의 상관이십니다. 그것만은 변하지 않습니다.”
“예,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듣고 나니 좋습니다. 이안 님이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서.”
또 지워졌다. 놀라서 기함하다가도 이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마법부의 모습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이들은 사라지고, 다시금 홀로 남는다.
“나 베릭이다!”
“나키나입니다!”
“토미 왔습니다! 헤일 대장도요!”
심연의 어둠에서 자신을 일깨워 주던 이들의 목소리도 사라졌다.
너무도 고마운데, 앞으로는 그것을 마음에만 묻어 두는 수밖에 없다. 이안의 눈가로 눈물이 차올랐다.
“이안 경. 나는 기쁘다. 그대와 내가 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진 역시 사라져 갔다.
“정말로 기쁘다. 이안 경. 베로시온이라는 이름이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게 느껴져.”
감격에 찬 듯 중얼거리는 진의 목소리가 희미해졌다.
자신도 그랬다. 미래의 바리엘과 지금의 바리엘이 한데 이어진 증거 같아서, 베로시온이라는 이름이 너무도 아름다워 마음 깊이 감사했다.
자신의 손을 붙잡던 진이 지워졌다.
‘이래서 마음이 힘든 거였나.’
함께 나누어 들었던 추억 속 상대가 사라진다.
버겁다. 추억의 무게를 오롯이 혼자 감당한다는 것이.
-안쓰럽구나. 신의 조각은 곧 나의 조각.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비는 베로시온의 이름을 지우고 있지만, 수 시간이 지나면 히엘로까지 지워 버릴 테지.
그러니까, 그 전에 모든 것을 단념하고 나에게 돌아서라. 그것만이 네가 아프지 않을 길이다. 그림자신의 속삭임이 이안을 유혹했다.
-미래로 돌아갈 것도 없다. 이곳에서 네가 소중히 여기는 자들과 함께하여 수명을 다하도록 하라. 신? 정말 모르겠는가? 그놈은 네 역할이 다하면 세상에서 단호히 도려낼 것이다. 나는 적어도 그러지는 않아.
끝도 없이 퍼붓던 공격이 멈췄다. 이안이 고개를 서서히 들었다. 얼굴은 젖어 있고, 머리칼 끝으로는 빗물이 투둑투둑 떨어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것이 그림자가 건네는 마지막 회유임을.
“…….”
이안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여전히 마법진을 그려 내느라 고전하는 헤일 일행, 토올룬 왕과 전투 중인 친위대와 마법사들이 보였다. 그리고 목이 터져라 부르짖는 제국군. 걱정스레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진까지.
그래. 모두가 소중한 자들이지.
‘그래서 나는 여기 있을 수 없다.’
자신은 이물(異物)이었다. 시간선을 명백히 다르게 달리고 있는 이방인.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그는 멈춰 있었다. 이안 베로시온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는, 아마 저들이 멈춰 있겠지.
함께 갈 수 없는 운명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잘 아는 것과 별개로, 마음이 아픈 건 어쩔 수 없지만.
‘모두를 위한 일.’
아주 작은 변화가 완전히 다른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이미 이안이 개입함으로 뒤바뀐 부분이 너무 많을 것이다. 한데, 여기서 자신의 흔적까지 남기고 돌아간다면?
옳고 그름을 떠나, 스스로 원치 않았다.
이안은 먼 훗날, 온전한 자신의 바리엘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크로니에게 꺾이지 않고 나아갈 자신의 운명을.
“…바리엘에도 비가 내리고 있나?”
버고스에도? 루스웨나에도?
이안의 물음에 그림자신이 낮게 웃었다.
-그렇다. 빗물은 우물로 스며들어 오랜 시간 잔존할 것이다. 나 이외에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고, 되돌릴 수 없다.
사막 너머까지는 닿지 못했나 보다. 그것이 그림자의 한계겠지. 이안은 부드럽게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이내 미소 지었다.
이만하면… 되었다.
“잘 됐군.”
지이잉! 지잉!
이안의 녹안이 다시 금안으로 번뜩였다. 지하신이 건넨 마지막 기회, 그에 대한 대답이다.
그러자 이제껏 가만히 이안의 공격을 받아 내던 그림자 역시 사특한 기운을 펼쳤다.
촤아아악!
수십, 수백 갈래로 터져 나오는 마수. 그것은 이안의 사지를 잡아 째려는 듯 거칠게 틈을 파고들었다.
퍼어엉! 펑!
콰지지직!
이안은 그것을 피하기도 하고, 쳐 내기도 하며 계속 합을 이어갔다.
촤악-!
그림자의 힘을 정면으로 받아 내면 어김없이 살갗이 찢겨 피가 터졌다.
하지만 그것은 금방 빗물에 씻겨 사라졌다. 점차 지워져 가는, 제 이름처럼.
번쩍!
쿠그르르릉! 쾅!
그림자가 위세를 펼치자 하늘이 더욱 짙어졌다. 그 가운데 제이럿 대장의 백색 번개가 빗발치고, 이안의 궤적을 따라 금안이 흔적을 남겼다. 흔들리고, 터지고, 부딪쳤다가 폭발하는 과정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이를 바라본 제국군 병사들은 세상의 마지막을 목도하는 기분이었다. 위압감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죽어어어어!”
팽팽하게 이어지던 이안과 그림자 틈으로, 베릭의 기합이 들려왔다. 아래를 보니, 마법사와 마검사 모두가 몸을 내던져 토올룬 왕에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죽음을 불사한 검. 모두가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적을 베고 말겠다는, 숭고한 희생이 토올룬 왕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었다.
촤아아악!
베릭의 검이 왕의 어깻죽지를 베었다. 그와 동시에, 왕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가로막고 있던 마검사의 팔 역시 함께 베였다.
왕은 몸을 낮추며 공간을 확보하려 했으나, 마법사가 마력구를 날려 저지했다. 왕은 주춤했고, 마력구는 일직선으로 나아가 다른 마법사의 복부를 강타했다.
“…하아, 하아. 이러다 서로 죽이겠어.”
왕이 거친 숨을 내쉬며 이르자, 제이럿 대장이 손아귀 힘으로 번개를 부수며 고함쳤다.
“바라던 바, 너 역시 필연적으로 죽을 것이다, 쿠마샤. 마지막에 살아남는 자는 필시 제국의 전사일지니.”
번뜩!
제이럿이 번개가 폭발하며 왕에게 내리꽂혔다.
피할 수 있나? 시간이 멈춘 듯, 예민해진 왕의 감각이 주위를 살폈다. 앞뒤, 좌우, 그리고 위아래까지. 모두 포위당했다.
‘젠장.’
이곳은 왕궁 터전. 지하 장치가 망가지지 않았더라면 수월하게 공간을 확보했을 건데. 지하신의 현신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감각이 끊어졌다.
이 순간 아이는 바누사가 지하로 스며들었다는 사실을 절대 알지 못했다. 눈앞에 다가온 제이럿의 번개가 너무도 강렬했기 때문이다.
사아아악!
죽는다. 왕은 그리 직감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지하신이 움직였다. 마수 하나가 꿈틀거리더니 왕에게 날아갔다. 아이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를 알아챈 이안 역시 고도를 낮춰 그것을 따라갔다. 결전의 순간이다.
“……!”
제이럿 대장은 이쪽으로 날아오는 마수와 왕 사이의 거리를 찰나에 파악했다. 가까웠다. 그림자의 공격도, 왕과의 거리도.
여기서 멈칫거리고 물러선다면 마수를 피할 순 있겠지만, 다음 기회가 있을지는 기약할 수 없다.
“베릭!”
제이럿이 베릭의 이름을 부르자, 그가 반사적으로 왕의 뒤편으로 움직였다. 물러서려는 놈을 막아서고, 혹여나 밀려나면 붙들기 위해서였다.
푸욱!
과정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제이럿의 검이 왕에게 정확히 닿았다. 번쩍이는 검 끝이 아이의 등을 비집고 나왔다.
드디어 잡았구나, 베릭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스르륵.
왕이 피를 토하며 옆으로 쓰러지자, 맞은편에 있던 제이럿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역시도 가슴 부분이 꿰여 있었다. 왕이 그러한 것처럼, 마찬가지로.
“……!”
베릭의 눈동자가 끝없이 커졌다.
“대-”
촤아아악!
뒤따라온 이안이 마수를 끊어 냈다. 동시에 제이럿 대장의 몸이 반작용으로 밀려나 엎어졌다. 먼지투성이인 전투복 아래로 피가 흘러내렸고, 이내 조금씩 잿빛 가루가 흩날렸다.
“…아.”
“대장!”
“제이럿 대장님!”
모두가 놀라서 그에게 달려오려 했지만, 제이럿은 시선으로 단호히 거절했다. 제자리를 지켜라.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국의 명예를 위해, 모두들, 끝까지-”
이르지 않아도 알 것이라 믿는다. 내 새끼들.
“…베릭을 따라 싸워라.”
망아지 같은 놈. 덕분에 다채로운 삶이었다. 바르사베가 살아 있다면 안부 전해다오. 여기 없는, 모든 대원들에게도.
다음 대장은 너니까, 베릭.
사아악.
제이럿의 몸이 잿빛 가루로 화하는 순간, 멀리서 신호가 들려왔다.
두웅! 둥! 둥!
“마법진 준비되었습니다!”
헤일의 목소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