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62
제762화. 대장
헤일의 신호에, 마법사들은 즉각 반응하여 몸을 돌렸다. 그들이 치고 나간 탓에 바람이 일며 잿빛 가루가 이리저리 흩어졌다.
방금까지 존재했던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 이리도 한순간이라니. 베릭은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 동공이 계속 흔들렸고, 눈가로는 눈물이 차올랐다.
“아-”
제이럿의 주인 잃은 옷자락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베릭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비척비척 걸어가서는 무릎을 꿇었다. 호흡 기관이 멈춘 것처럼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제이럿.’
무어라 원망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제이럿 대장은, 아니 황궁친위대원 전원은 매 순간 목숨을 걸고서 임무에 임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러했듯 제이럿도 그러했다. 다만, 운명의 실이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끊어졌을 뿐. 베릭은 흩어지는 그의 잔재를 잡으려는 듯 바닥의 흙을 그러쥐었다.
꽈악.
토올룬 왕은 눈을 뜬 채 죽었다. 제이럿 대장과 같은 곳이 꿰여 온몸이 피로 흥건했다.
…못마땅하여 참을 수가 없다. 제이럿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저것은 온전히 저리 누워서 마지막을 맞이하다니. 베릭의 턱을 타고 눈물이 투둑 흘렀다.
“아…….”
“이게, 이게…….”
“제이럿 대장 죽은 겁니까? 지, 진짜로요?”
대원들도 충격에 빠져 정지 상태다.
제이럿은 삼대장의 중심이었다. 10년 전, 내란 사태 이후로 새로이 취임한 대장들도 전부 제이럿의 제자 격에 속했다. 그런 그가 전사했으니, 사실상 황궁친위대를 떠받치고 있던 큰 기둥이 무너진 것과 같았다.
‘어쩌면 좋지.’
이안이 러더포드와 심연으로 사라졌을 때 이후로 처음 느끼는 무력감이다. 베릭이 눈물만 뚝뚝 흘리며 멍하니 서 있자, 귓가에서 다정한 음성이 울렸다.
-베릭.
이안이었다.
이안은 제이럿을 구하는 데 실패하자마자 바로 다시 고도를 높여 그림자신에게 붙었고, 곧장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었다.
지금은 반대다. 끝도 없이 퍼지는 어둠의 기운 탓에, 어느덧 이안의 손등을 넘어 그의 흰 목까지 검은 상처가 번졌다.
-제이럿 대장의 마지막 말이 무엇이었지?
무엇이었냐고?
베릭이 울먹이며 더듬더듬 중얼거렸다.
“제, 제국의 명예를 위해, 모두들 끝까지…….”
나를 따라 싸우라고.
베릭이 손등으로 눈가를 벅벅 비벼 댔다.
-아직 기회가 있다. 대장은 죽지 않았다.
아직 그의 의지가 살아 있다. 그것도 베릭과 대원들의 곁에. 하지만 여기서 패한다면, 그마저도 바람을 따라 사라질 것이다.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저편으로.
-대장의 마지막 눈빛은 어떠했지?
굳건했다. 흔들림 없이 반짝였다. 기세는 날카로웠고, 걱정 대신 믿음이 가득했다. 황궁친위대원들은 해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만이 존재했다. 그리고 은근히 보이던 만족감. 임무를 완수하고, 전장에서 명예를 지키며 죽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 찰나 보았던 그의 시선에서 모든 걸 느낄 수 있었다.
베릭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잠시 엎드리더니, 이내 눈을 번쩍 떴다.
사아아악!
그때, 뒤에서 피어오르는 거대한 세계수. 마법사들이 힘을 모아 일으킨 견합(牽合) 마법이었다.
단단하고 싱그러운 줄기가 왕궁 터전을 두르며 끝없이 솟구쳤다. 넝쿨은 살아 움직이는 존재처럼 그림자 위에 올라타 놈을 단단히 옭아맸다.
촤아악!
마치 별이 공전하듯, 마법사들이 힘을 폭발시키며 그림자신의 주위를 계속 돌았다. 그럴수록 세계수는 점점 촘촘해졌고 두꺼워지며 그림자를 집어삼킬 듯 억세졌다.
스윽.
베릭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뒤를 돌아 허망하게 서 있는 대원들을 쳐다봤다. 하나같이 눈가가 붉다. 아무도 그것을 숨기지 않았다.
“일동-”
베릭이 손을 들며 이르자, 대원들은 애써 울음을 삼키며 복창했다. 황궁친위대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의례다.
“일동!”
“지금부터 마법부를 지원하여 그림자신을 사멸한다. 우선순위는 무조건적인 승리.”
처억.
베릭의 음성과 제이럿 대장의 음성이 겹쳐서 들리는 듯했다. 대원들은 눈물을 훔쳐 내며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손바닥 아래에서 심장이 쿵쿵 울리고 있다. 제이럿 대장의 지시를 받들었던 그때와 같이.
지이잉! 지잉!
마검사들이 다시금 온 힘을 끌어내 마력을 터트렸다. 마법사들에 비하면 희미한 빛이었으나, 그들은 자신 있었다.
그들은 제이럿의 제자, 제이럿의 황궁친위대는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임무에 실패한 적이 없다. 죽음으로 마침표를 찍은 적은 있어도.
베릭은 눈을 감고 선언했다. 언젠가 이리 말했던 제이럿의 모습이 눈앞에 선명히 떠올랐다. 그리고 그 기억은, 베릭의 입을 통해 다시금 세상에 울려 퍼졌다.
“명심하자. 우리가 바리엘의 심장이다.”
심장을 찌른 자, 그 심장으로 갚게 하리라.
베릭은 천천히 눈을 떠 대원들을 쳐다봤다. 여기 남은 놈들은 모두 살려서 돌려보낼 것이다. 무조건, 이제는 누구도 떠나보내지 않겠다. 제이럿이 자신에게 이놈들을 맡겼으니, 무슨 짓을 해서라도.
타앗!
타닥타닥!
베릭을 선두로 하여 마검사들이 일제히 내달렸다. 그들은 세계수를 밟고 오르며 틈새로 새어 나오는 마수를 내려쳤다.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이안 정도가 되는 자가 아니라면, 힘을 하나로 합친 마법사 정도가 아니라면 결코 통하지 않는다는 걸.
하지만 그들은 이길 수 있는 상대에게만 맞서는 자들이 아니다.
촤아아악!
“……!”
마검사들의 검이 마수에 닿는 순간, 어디선가 새하얀 빛이 깃들었다.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즉각 알아챌 수 없었다. 오로지 그들의 검이 마수를 잘라 냈다는 사실에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통한다!’
‘어째서?’
‘베어 냈어!’
친위대가 동시에 환희했다. 견합 마법 덕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에? 무엇이 되었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딱 하나-
‘할 수 있다!’
작은 발걸음을 떼었다는 것.
변화는 믿음을 굳건히 하고, 믿음은 다시 한 걸음 나아가게 하여, 이는 모두에게 희망을 선사하리라. 견고한 선순환의 시작.
“하아, 하아-”
에이린은 두 손을 모은 채 그 모습을 올려다봤다. 놀랍게도 마검사들에게 깃들었던 흰빛은 그녀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녀의 눈빛에 벅찬 기운이 감돌았다.
“…에이린. 저것이 ‘우리의 기도’인가?”
“예, 폐하. 분명합니다.”
부우우-! 부우!
멈춘 노래 대신 물소뿔이 낮고 경건하게 울렸다. 이는 제국군의 간절한 기도에 무게를 실어 주었다.
제국군 모두가 마법사들이 주문 외우듯 연신 신을 찾았고, 이는 에이린을 통해 형상화되었다. 그것이 바로 저 빛이다. 그림자신에게 닿지 않았던 마검사의 공격이 어둠 속으로 배어들 수 있게끔 하는 힘.
스윽.
에이린은 두 손을 하늘로 뻗어 올리며 기도를 이었다. 그녀의 온몸이 백색 빛을 띠며 성스러운 기운을 흘렸다. 그것은 계속 넘치고 넘쳐 일대를 가득 채웠고, 마법사들은 힘의 농도가 짙어지는 걸 느꼈다.
“내면의 불꽃이 영원히 타오르게 하라!”
헤일의 선창에 마법사들이 그 뒤를 이었다. 빙글빙글 도는 궤를 따라 빛줄기가 흔적을 남겼다. 회오리치는 금빛 물결이 더욱 거세졌다.
“그것은 곧 세상을 밝히는 빛이며-!”
마법사들의 맹세였다. 1,000년을 넘게 이어 온 현자의 가르침이자, 그들이 나침반 삼아 나아가는 진리.
이에 세계수가 그림자신을 절단 낼 듯 단단히 조이기 시작했다.
‘그대를, 우리를 따뜻하게 하리라.’
콰직! 콰지지직!
그림자의 형상이 찌그러지며 비틀렸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 놈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거세게 반응하듯 어둠이 깊어졌다. 강한 빛 아래 짙은 그림자가 나타나듯.
이안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손끝을 가볍게 움직여 마법진 하나를 그려 냈다. 공격인가? 모든 마법사와 마검사가 그를 지원할 생각으로 움직임에 집중했다.
지이잉! 지잉!
하지만 이안이 일으킨 것은 확성 마법이었다. 아까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토올룬 수도 내 살아 숨 쉬는 모든 이들이 그 대상이라는 것.
기도에 열중하는 제국군 병사들과 시체 더미에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토올룬 패잔병, 그리고 어디선가 숨어 희망을 놓지 않고 있을 그림자신의 신도들에게 이르는 전언이다.
-토올룬의 왕이 죽었다.
멈칫. 제국군 병사들이 놀라서 동시에 몸을 움찔거렸다. 그리고 곧이어 상황을 파악하고서 환호성을 내질렀다. 한 계단, 승리에 가까이 올라선 것이다.
“어, 어어-!”
“와, 왕이 죽었대!”
“토올룬 왕이 죽었다! 왕이 죽었어!”
“와아아아! 와아!”
“바리엘! 바리엘! 바리엘!”
바리엘 제국기가 크게 휘날렸다. 다부지게 쥔 병사들의 주먹이 연신 하늘을 찌르고, 듣기 좋은 함성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네놈들이 믿는 신이 직접 지상에 현현하였건만, 저 작은 인간 아이 하나를 지키지 못했다. 이것을 어찌 신이라 이르겠는가? 왕은 검에 심장이 꿰였고, 마지막 말도 남길 수 없었다. 저것의 시체는 비가 걷히면 친히 높은 곳에 매달아 모두에게 보여 주겠노라.
토올룬 왕은 신도와 그림자를 이어 주는 매개체다. 그러니 그것을 끊어 버린다면, 그림자의 힘은 계속해서 희미해질 것이다. 나아가, 제국군의 믿음은 점점 더 단단해질 터.
전언 마법을 이르는 이안은 그림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래도 이것을 믿는가? 직시하라. 이것은 신이 되고 싶은 마물에 불과하다.
이안의 음성에는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세계수 밖으로 비집고 나온 그림자의 조각들이 이안의 마법을 막기 위해 덤벼들었지만, 마검사들에 의해 파훼되었다.
퍼어엉! 펑!
지하신과 맞선 모두가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그림자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고.
“이안 님! 계속하십시오!”
“새끼, 죽어 가고 있습니다!”
“어디 계속 발악해 봐, 시발 놈아아아!”
“거기! 줄기가 터지려고 합니다!”
“집중해! 의식적으로 집중하란 말이다!”
“예, 대장!”
“으아아아!”
콰직! 콰직!
심기 거슬린 그림자가 세계수 줄기를 터트리며 비집고 나오려 했으나, 마법사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주르륵, 한 명씩 이목구비에서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네 이놈들!
구우우우!
조금씩 세계수 줄기가 벌어졌다. 그림자신의 몸체가 부풀었기 때문이다. 이안은 우아하게 손을 들어 올려 거대한 활을 만들어 냈다.
“이안 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더 버텨!”
이어서 활의 끝과 끝으로 가느다란 빛줄기가 새겨졌고, 이안의 손끝에는 화살이 만들어졌다. 이안이 깃을 시위에 걸자, 촉에서 불꽃이 몰아쳤다.
「화전(火箭)」.
“신의 그림자여.”
끼이이익.
이안이 시위를 세게 잡아당기며 놈을 불렀다.
“나는 신의 뜻을 따라 움직이는 자인지라, 모든 과정을 온전히 받든다. 한데, 너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 없는가?”
비가 점점 거세졌다. 이안이 겨냥하기 위해 한쪽 눈을 감자 굴곡을 따라 물줄기가 흘렀다. 폭우 속에서도, 화살촉의 불길은 더더욱 강하게 타올랐다. 더하여, 신성의 기운까지 깃들었다.
“너의 존재와 의지 그리고 행동 모든 것이, 어쩌면 신의 뜻이라 불리는 운명 위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그림자는 홀로 움직일 수 없다. 반드시 빛의 움직임을 뒤따른다.
“빛으로 돌아가 성찰해 보아라.”
티잉.
이안은 그리 중얼거리며 시위를 놓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