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63
제763화. 날이 개다
화살이 일직선으로 날아가자, 허공에 지평선이 생기듯 빛이 이어졌다.
그것은 그림자 자체를 노리는 게 아니었다. 바로, 그림자를 단단히 붙잡고 에워싼 세계수를 태우고자 한 것이다.
촤아악!
화르르륵! 화륵!
불길이 순식간에 위아래로 퍼져 세계수 전체를 집어삼켰다.
이안의 불길까지 더해진 터라, 마법사들은 힘을 버티기 어려워 크게 휘청거렸다. 그들의 이목구비에서 핏물이 줄줄 흘러 웃옷을 잔뜩 적셨다. 빗물로도 씻겨지지 않을 만큼 잔뜩.
“아으, 씨.”
“젠장! 젠장! 젠장!”
“괜찮아! 할 만해! 계속 버텨라!”
“우리! 죽어도 다 같이 죽고, 살아도 다 같이 사는 겁니다!”
“으아아아!”
세계수는 일종의 틀이었다. 그림자를 가두고, 그 주위에 빛을 두를 수 있도록 지탱하는 틀.
빛 앞에서 어찌 그림자가 고개를 쳐들 수 있겠는가. 이는 놈의 주위에 계속해서 신성한 빛을 쬐도록 만드는 ‘1차적’ 기틀이자 공격이었다.
마법진과 연결된 마법사들의 손끝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조금만 까딱 잘못했다가는 몸 안의 장기가 죄다 터질 것 같은 압박감이 엄습했다.
-이런 것으로는!
쿠르르응! 쿠릉!
지하신이 몸을 거칠게 비틀어 세계수를 떨쳐내려 했다. 가소롭다는 언성과 달리 생각보다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듯싶다.
그 모습에 마법사들은 희망 어린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버티자. 버티면 이긴다! 꺼져 가던 마법이 다시금 폭발하며 줄기가 거세졌다.
마검사들이 그들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저희는 무엇을 도우면 되겠습니까!”
“계속 그대로만 해 주십시오! 새어 나오는 마수를 잘라 내어 저희가 계속 힘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됩니다!”
타앗!
마법사들이 허공을 빙빙 돌며 결집하는 동안, 마검사들은 불타는 세계수를 디디며 그림자 신 주위를 맴돌았다. 놀랍게도 전혀 뜨겁지 않았다. 그들이 바람을 가르며 달리자, 불길이 흔들리며 더욱 크게 타올랐다.
-아무런!
그림자의 힘이 강해졌다. 신을 모방하며 여유롭게 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이안은 두 손을 모았다가 펼치며 중얼거렸다.
“그래. 이런 마법 하나쯤은 네놈에겐 아무것도 아니지.”
그렇다면.
“이것은 어떨까?”
지이잉! 지잉!
이안이 재빠르게 손끝을 움직여 마법진을 그려 냈다.
「분신(分申)」.
그리고 다시.
「분신(分申)」.
「분신(分申)」.
「분신(分申)」.
「분신(分申)」.
이안을 중심으로, 다섯 개의 거대한 마법진이 동심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그 속에 새겨진 신의 언어가 빛을 내며 일렁였고, 이내 사람의 형상을 갖추었다. 이안이었다.
여섯 명의 이안 중, 누가 본체인지 알아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끝없이 피를 흘리고 있는 자.
마법사들은 이안 쪽을 힐끔 쳐다보다 무의식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뒤이어 이안의 입에서 흘러나올 시동어가 무얼지 알아챈 것이다.
「추쇄(推刷)」.
미래의 자신에게서 힘을 빌려 오는 마법. 분신들로 인해 6등분되었던 힘이 다시금 온전하게 차올랐다. 여섯 명의 온전한 이안. 금빛 아우라가 폭발하듯 비산했다.
“어찌…….”
마법사들의 탄식이 흘렀다. 감탄보단 걱정이었다. 일전에 두어 차례 발동한 적 있는지라, 추쇄의 여파에 대해서는 솔직히 이안보다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시전자는 죽음의 문턱에 들어섰다 나오느라 기억이 삭제되지만, 그들은 계속 옆에서 지켜보았기에.
‘그리 곤욕을 치르셨으면서…….’
분신 마법까지는 괜찮다. 하나 추쇄는 치명적이다. 루스웨나 전투 때, 분신 하나에 추쇄를 시전한 후유증만으로도 그리 고초를 겪었는데…….
이번에는 추쇄 대상이 무려 여섯이다. 이는 인간의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게다.
‘살 수 있을까?’
이안 님이 저 그림자 놈을 봉인한다 한들,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아무리 무한의 힘을 지니고 있으시다지만, 저런 식으로 추쇄를 시전하면, 필시 끝이 있을 것인데.
스윽.
하지만 이안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손을 들어 올려 마법진을 하나, 둘, 계속해서 생성해 냈다.
「신장(神掌)」.
「신장(神掌)」.
「신장(神掌)」.
「신장(神掌)」…….
멈추지 않았다. 순식간에 수십, 수백에 달하는 마법진이 하늘을 빼곡하게 수놓았다. 별무리. 그래, 그 광경은 흡사 거대한 별무리를 올려다보는 것 같았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제국군은 마치 우주 한복판에서 부유하는 듯한 황홀감에 사로잡혔다. 사위가 적요해지고, 본인의 심장 고동 외에 모든 게 멈춘 듯한 착각.
“이안 님-!”
“가십시오! 따라가겠습니다아아!”
마법사들이 울부짖으며 그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이안의 결전은 상식선의 한계를 아득히 넘고 말았다. 정말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들은 울음을 참지 못했다.
“이안아아아!”
“할 수 있습니다, 장관님!”
“저희도 함께합니다!”
“바리엘 제국을 위하여!”
“만세! 바리엘 만세!”
마검사들 또한 감격에 차서 내질렀다. 제국군 병사들의 찬가가 서서히 울리고,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수백 개의 금빛 신장(神掌)이 떨어졌다.
이를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는 신의 그림자. 놈이 처음과 같이 손을 들어 헤치려 하자, 마법사들의 세계수가 그를 더욱 깊게 옥죄었다.
꽈아아악!
콰직! 콰지지직!
아름답고 고운 선계의 손길이 천천히 그림자신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가여운 것을 매만지듯 조심스럽게 놈을 그러쥐었다. 손등 위로 손등이 덮이고, 다시 그 위로 기다란 손가락이 틈을 메우니, 한 오라기의 어둠도 새어 나가지 못했다.
-네 이놈……!
파스스슷! 파슷!
그림자의 몸체가 조금씩 사라져 갔다. 성스러운 기운에 정화되듯, 어둠이 희석되는 것이다. 신장은 부드럽게, 하지만 단호하게 어둠을 으스러뜨렸다.
사아아악!
이안은 울컥 솟구치는 구역감에 입을 틀어막았다. 묽은 피가 끝도 없이 흘러내렸다. 몸 전체가 뒤틀리는 고통. 정신이 아득해지고, 오감의 인지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하나, 이안의 자세는 여전히 올곧았다. 그가 두 손을 들어 올려 손바닥을 맞대자, 주위가 완벽한 진공 상태로 변했다.
우우우웅-!
쩌억! 쩌어어억!
신장(神掌)은 진흙을 뭉개듯 어둠을 꽉 쥐어 짜냈다. 어둠 곳곳에 금이 갔고, 순간 이안의 눈앞이 번쩍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무(無)의 순간, 이안의 금안은 눈이 멀어 버린 것처럼 희게 변했다.
“다시 심연으로 돌아가라.”
-이안! 이대로 내가 물러설 것 같은가!
“그곳이 너의 세상이다. 다시금 모습을 보이고 싶다면 억겁의 시간이 지난 후에나 고개를 들어라. 그때의 바리엘이 다시금 너를 상대해 줄 것이다. 신의 가호를 등에 업고서.”
대지가 흔들렸다. 세상이 반으로 갈리는 듯한 충격이다. 빛에 잠식당하는 어둠은 살아남기 위해 갈래갈래 찢어져 도망쳤지만, 오래지 않아 사그라들었다.
쿠구구구궁!
구구구구!
거대한 빛과 어둠이 폭풍을 만들어 냈다. 병사들은 넙죽 엎드렸고, 진은 반사적으로 에이린의 머리를 감싸 보호했다. 마법사들은 서로를 붙들며 휘말리지 않게 힘주었으며, 마검사들은 검을 내리꽂고서 버텨 섰다.
이윽고 신장이 산산이 조각나며 터지자-
째애앵!
세상이 백색으로 물들었다. 한 치 눈앞조차 볼 수 없을 않을 만큼 환한 세상. 모두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고서 숨을 멈췄다.
* * *
이안은 얼굴 위로 내리쬐는 따스한 햇살을 느꼈다. 뒤통수로 누군가의 무릎이 느껴졌다. 무릎을 베고 누워 있는 게다. 이어 싱긋한 풀 내음이 진동했고, 적당한 미풍이 그의 머리칼을 간질였다.
누군가 그의 볼을 가볍게 매만졌다. 기분 좋은 손길. 이안은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이안아.”
너무도 그리운 음성. 아아, 필리아다.
눈을 뜨려 했지만, 눈이 부셔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애쓸 것 없다는 듯, 눈두덩이에 손을 올리며 속삭였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들리지 않지만 위로의 말임은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 이리 눈물이 차오르지는 않을 터이니.
“…어머니.”
아이는 손을 들어 필리아의 손등을 붙잡고 볼을 지그시 비볐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며, 필리아가 웃었다.
“너는 누가 뭐래도 내 아들, 이안이란다.”
저도 그렇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설령 제가 시간선을 넘어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제 어머니는 당신입니다. 이안의 눈가로 눈물이 흘렀다.
“사랑하는 이안아.”
필리아의 음성이 아주 가깝게 들렸다.
“모두가 너를 사랑해.”
그것을 명심하면 앞으로의 일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필리아는 덧붙였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이안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필리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점차 햇살의 따스한 감각이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필리아의 희미한 웃음소리 역시.
스윽.
이안이 눈을 떴다. 먹구름으로 가득했던 하늘은 어느덧 맑게 개 푸른색으로 변해 있었다.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하여 모든 게 환상처럼 느껴졌다.
이안은 축축한 제 손을 들어 올렸다. 엉망이 된 소매와 검게 그을린 손등. 상처가 분명히 자리한 것으로 보아, 환상은 아닌가 보다.
‘그림자는?’
이안은 고개를 살짝 돌려 주위를 살폈다. 폭삭 무너진 왕궁의 잔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리고 지반이 무너지며 생겨난 거대한 구덩이. 수십 미터 지름에 수십 미터 깊이였다. 지하신이 현현했다가 봉인된 흔적이었다.
‘아…….’
이안이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두개골이 깨질 것처럼 욱신거리고, 무엇보다 숨 쉬는 게 쉽지 않았다. 심장을 비롯한 주요 장기들이 모두 내상을 입은 것 같다.
‘쉽지 않은데.’
엄살이 아니라, 한 발짝 떼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이안은 다시 주저앉았고, 산더미처럼 쌓인 잔해를 올려다보며 한숨 쉬었다. 이걸 어쩌나. 기어 올라갈 힘이 없는 건 물론, 마력도 완전히 동났다.
하지만 그때였다.
“이안아아아!”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베릭이었다. 정신 차리자마자 제일 먼저 이안의 이름을 부르짖는 것이었다.
“이안 님! 어디 계십니까!”
“이안 님! 대답해 주십시오!”
“살아, 시발, 살아 계셔 달란 말입니다!”
이어서 마법부의 애탄 목소리도. 잔해 너머, 터덜거리는 인기척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안 님!”
“이안아아아!”
하늘엔 무지개가 떴다. 비가 그친 후 해가 떠오르며, 세상 끝에서 끝까지 다리가 놓였다. 이안은 그걸 가만히 올려다보며 일렀다.
“…여기다.”
“어? 방금 들었어?”
“이안 님? 이안 님이십니까?”
“여기라고? 맞아?”
“베릭 네가 알겠지. 사람 찾는 건 전문이라며.”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인마.”
잔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따뜻한 그림자였다. 이어서 이안의 부름을 듣고 찾아온 베릭과 마법사들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들은 이안이 무사히 살아 있음을 확인하곤, 동시에 눈물을 글썽이며 환하게 웃었다.
“이안 님!”
“이안아아아!”
그들은 달렸다. 잔해에 걸려 넘어지거나 크게 휘청이는 것으로 보아 저들의 몸 상태도 온전치 않아 보이건만.
“그림자신은?”
“사라졌습니다. 눈떠 보니 세상이 맑아요!”
“이안 님,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안 좋습니다.”
“마력을 좀 나눠 드리고 싶은데, 부끄럽게도 완전히 동났습니다. 하핫, 하…….”
그림자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 놈은 다시 심연으로 잠수하여 언제고 탐욕스러운 고개를 들이밀 것이리라.
하지만 지금은 그것까지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때는 그때의 바리엘이 다시금 의지를 이을 터이니.
이안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되었다. 그러면 되었어.”
그림자신을 물리고, 토올룬 왕을 죽였으며, 검은 씨앗의 근원지를 무너뜨렸다. 100년이라는 세월을 거슬러 온 목적을 이룬 것이다. 이안은 그 만족감을 깊이 만끽하기로 하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 경!”
그리고 이어서 자신을 부르는 음성에 고개를 들었다. 진이었다. 진은 이안이 무사하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자마자 안도하듯 입술을 깨물었다.
“폐하.”
“고생했네. 고생했어.”
“모두 함께 이룬 일입니다. 폐하, 대단하십니다.”
“그리 말하지 말라. 나는 한없이 고맙고 부끄럽다.”
진이 일어나라는 듯 손을 내밀었고, 이안이 조심스레 맞잡았다. 검게 변한 살갗이 흉측했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진은 이안을 부축하며 잔해 위로 올라섰고, 뒤늦게 고개를 든 이안의 눈동자가 커졌다.
“와아아아아!”
“이겼다! 이겼다고! 우리는 살았다!”
“바리엘! 바리엘!”
승리한 제국군 병사들이 서로를 얼싸안으며 기쁨을 가감 없이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이안이 무사한 것을 보자 다시금 환호하며 달려왔다. 수천 명의 병사들이 주먹을 신나게 휘두르며 찬가했다.
바-리엘!
신께서 품고 있는 광영의 시작이라-
비 내리면 금빛으로 물드는 가이아의 심장이라-
높게 높게 고갤 들라, 그리하면 보이리니-
저기 높은 곳의 빛이, 바리엘의 등불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