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65
제765화. 지하에 있던 자들
-토올룬의 왕이 죽었다.
갑자기 들려온 마법부 장관의 음성.
검을 크게 휘두르려던 바르사베와 그런 그녀를 두려운 기색으로 올려다보는 사내가 동시에 멈칫거렸다.
“아, 으으…. 살려, 살려 주시오.”
“네게도 들렸나?”
“왕이 죽었다 하지 않았소. 항복하리다. 무조건 항복하리다. 목숨만 살려 주면 내 모든 걸 내놓아도…….”
바르사베는 잠시 고민했다. 토올룬 왕의 죽음이 전쟁의 끝을 의미하는가?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은 왕궁 지하와 이어진 북산 대피소. 바깥 상황을 알 수 없는지라, 이자를 죽이는 게 무자비한 살육인지, 전쟁의 과정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다음, 계속 이어지는 이안의 전언.
-네놈들이 믿는 신이 직접 지상에 현현하였건만, 저 작은 인간 아이 하나를 지키지 못했다. 이것을 어찌 신이라 이르겠는가?
아직 안 끝났나 보네. 바르사베는 살짝 내렸던 검을 다시 치켜들었고, 죽음을 직감한 사내가 바르사베의 뒤쪽을 보며 애원했다.
“바누사! 제발!”
촤아악!
마지막 말이었다. 그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고꾸라졌다.
검을 거둔 바르사베는 주변을 살폈다. 100여 구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전부 바르사베 혼자 처리한 터라 자상의 위치와 깊이가 자로 잰 듯 똑같았다.
피와 먼지로 엉망이 된 시체들은 하나같이 고가의 옷을 걸친 채였다. 모두 왕궁의 선택을 받아 지하에 숨어든 토올룬의 귀족들이다.
바르사베는 검을 닦아 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바누사.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도 되었는데요. 괜히 기분만 상했겠습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이자들은 토올룬에 도움이 하등 안 되는 작자들입니다. 의무 없이 권리만 누리는 자들이라서요.”
“토올룬 왕이 죽었다는데, 들으셨지요?”
“예. 희소식입니다.”
지하에서 왕의 무기를 파괴하던 바누사. 그리고 지진과 함께 무너지는 왕궁 잔해를 피해 아래로 피신한 바르사베. 두 사람의 만남은 우연 같은 필연이었다.
“그 희소식 때문에라도 서둘러 나가고 싶은데요.”
바르사베는 대피소의 벽과 천장 쪽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보아도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바누사는 제 몸을 액체로 만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습니다. 이번에도 길이 있는지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왕궁이 무너졌을 때, 바르사베는 지하와 이어지는 작은 공간에 꼼짝없이 갇혀 있었다. 잔해가 너무 무거운지라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낑낑거리다가, 위험을 감수하고 마력을 터트리려는 순간-
스으윽.
“그러지 말고, 여기 아래로 몸을 숙여 보십시오.”
“꺄아아아악!”
바누사와 만났다. 액체로 변하여 잔해 틈을 움직이다가, 바리엘 문양이 그려진 제복 차림의 바르사베를 발견한 것이었다.
그 덕에 바르사베는 왕궁 비밀 통로까지 닿을 수 있었고, 이리 피신해 있던 자들까지 정리한 게다.
“하아.”
바누사가 사라지자, 바르사베는 스스륵 주저앉아 버렸다. 밖에서는 동료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중일 건데, 자신은 여기 있다니.
북산 대피소를 발견한 것까지는 좋았다만, 큰 의미는 없어 보였다. 그녀는 손수건으로 말라 버린 피를 대충 문질러 댔다.
스으윽.
그때, 밖을 보고 온다던 바누사가 모습을 보였다. 실로 난감하다는 낯빛이었다.
“바누사? 바로 돌아오셨습니까?”
“예, 나갈 수가 없네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액체로 변하면 종이 한 장의 틈만 있어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바누사였다. 대피소 곳곳에는 한눈에 봐도 벌어진 틈이 많았다.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비… 말씀입니까?”
“네. 근데 일반적인 비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질적인 무언가가 섞여 있어요. 불순물이라 하기에는 낯설고… 액체로 변하니 스며들려고 해서 서둘러 돌아 나왔습니다.”
바누사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통은 액체로 변한 상태여도 원치 않는 흡수나 결합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데 바깥에서 내리는 저 무언가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엇인지 모르니 섣불리 접촉할 수 없습니다.”
“하면, 대지가 마른 다음엔 올라갈 수 있습니까?”
“네. 아직 내리는 중이라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아니면 다시 왕궁 쪽으로 돌아가는 법도 있습니다. 여기는 온통 흙이라 사방이 젖어 있지만 그쪽은 괜찮으니까요. 제가 틈 밖으로 나가 상황을 살피고, 마법사나 다른 자들에게 도움을 청하도록 하지요.”
위험하지만, 바르사베가 직접 마력을 터트리는 방법도 있다. 한 번의 시도로 빠져나올 수 없다면, 잔해의 충격을 온전히 되받아야 하니까.
바르사베는 검을 챙겨 들고 일어났다.
“그럼 일단 돌아가시죠.”
바르사베가 검을 챙겨 들고 한 걸음 떼려는 순간이었다.
쿠구구구궁!
구르릉!
대지가 크게 흔들리며,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충격이 끝도 없이 밀려오는 것 아닌가.
천장에서 모래가 후드득 떨어졌고, 널브러진 시체들의 몸뚱이가 속절없이 떨려 왔다.
“……!”
“뜁시다!”
타앗!
무너지면 지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다. 적어도 왕궁 쪽으로 가는 것이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바르사베가 빠른 속도로 내달리자, 바누사 역시 몸을 가볍게 만들어 그 뒤를 따랐다.
쿠구우웅!
멈추지 않는 진동. 왕궁에 가까워질수록 그들은 깨달았다. 진원지가 바로 그곳이라는 걸.
‘하 씨, 젠장.’
바르사베는 그들이 들어섰던 입구 문을 열어 젖히고서 틀을 단단히 붙잡았다. 혹시 지반이 무너지거나, 문틀이 뒤틀려 출구가 봉쇄되면 곤란했으니까.
쿠구웅!
한참 동안 이어지는 폭음. 바르사베의 심장이 쿵쿵 울렸다.
보이지 않지만, 저 건너편에서 폭발적인 마력이 느껴졌다. 마법사의 것과 친위대의 것들이 한데 섞여 필사적으로 울림을 만들고 있었으니. 그녀는 전장에 합류하지 못하는 현 상황이 너무도 한탄스러웠다.
“바누사. 여기도 못 나가겠습니까?”
“네. 비가 계속 오고 있습니다. 흐르지 않고 고이기 시작했어요.”
콰아아앙!
구르릉! 촤아아악!
굉음이 터질수록 무엇 때문인지 모를 위압감이 바르사베의 몸을 짓눌렀다. 지상에서 일어나는 격전의 여파다.
바누사 또한 느꼈는지, 몸을 덜덜 떨며 비틀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벽을 짚고서 정신을 바로잡으려 하였으나, 이내 조금씩 눈앞이 캄캄해졌다.
“정신, 정신 바로 차리십시오. 바누사.”
“마음대로 안 되는데. 으윽, 이게 대체 무슨…….”
쿠우웅! 쿵!
세상이 흔들린다는 말로는 부족할 것이다. 아주 희미한 틈을 통해 백색과 흑색의 기운이 맞물려 흘렀다.
바르사베는 결국 검으로 바닥을 짚은 채 무릎 꿇었고, 바누사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고오오오.
바르사베는 검날로 손바닥을 그으며 정신을 잃지 않으려 했지만, 점점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이내, 그녀 역시도 인지하지 못한 채 기절하고 말았다.
* * *
투욱. 툭.
후두둑.
“여기 좀 도와줘!”
“하나, 둘, 셋!”
“좋아. 천천히! 다시 천천히!”
“시신 발견! 제국군입니다!”
“여기도 발견했습니다. 바르사베 친위대원님과 함께 진입했던 수색조인 것 같습니다.”
바르사베는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리는 외침에 눈을 살짝 떴다. 어두웠으나, 곳곳에서 빛이 새어 들고 있다.
몇 번 시선을 이리저리 돌린 바르사베가 기침을 토해 냈다. 폭발 여파로 잔해가 더 밀고 들어왔었나 보다.
“응? 방금 무슨 소리 안 들렸어?”
“잠시만. 쉿!”
“아…….”
여기라고, 바르사베가 신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웅웅, 시끄러운 말소리가 길게 늘어졌다.
그녀는 머리를 털며 빛 쪽으로 손을 뻗었다. 아주 희미하게 마력이 흘렀다.
“어이. 거기.”
“네?”
“뭐 있는데?”
“앗, 네넵! 안 그래도 방금 희미한 기척이 들려서요.”
“그치? 비켜 봐.”
베릭이다.
바르사베는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거대한 잔해에 깔린 왼팔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바누사.’
바누사는 어찌 되었지? 바르사베가 걱정스레 고개를 돌리려 하자, 머리 위 돌무더기가 하나씩 치워졌다.
이내, 천천히 들이밀어지는 익숙한 얼굴.
“…….”
“…….”
베릭은 바르사베를 빤히 내려다봤고, 바르사베 역시 인상을 구긴 채 올려다봤다.
“역시. 살아 있네, 어금니.”
“…지는. 똥강아지.”
“못 나오겠어?”
“왼쪽 팔 때문에.”
“어어. 기달.”
베릭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더니, 손수 제일 큰 돌덩이부터 옮기기 시작했다. 베릭이 일단 치워 놓으면 네댓 명의 장정이 그걸 굴려 옆으로 밀고, 다시 네댓 명이 잔해를 치우는 식이었다.
그걸 보며 바르사베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베릭만큼만 힘이 있었다면 스스로 치우고 나왔을 건데.
“베릭 대장님. 저쪽에도 생존자가 있는데요.”
“어, 근데 여기가 먼저라서. 금방 간다고 해.”
“네. 알겠습니다.”
흘려듣던 바르사베의 눈이 커졌다. 지금 내가 잘못 들었나? 베릭… 뭐?
투욱.
바르사베의 팔을 뭉개고 있던 돌이 치워지자마자, 베릭이 그녀의 몸을 일으켰다. 후드득, 먼지와 작은 돌들이 굴러떨어졌다. 바르사베는 베릭의 팔을 붙잡으며 조심히 물었다.
“네, 네가 왜-?”
왜 대장인데? 어째서?
베릭은 대답 대신, 그녀의 팔을 어깨에 둘렀다.
“치료부터 받아. 전쟁은 끝났다. 바리엘의 승리로.”
“베릭.”
“…마음 단단히 먹고.”
제이럿뿐만이 아니다. 황궁친위대에서 너무도 많은 사상자가 나왔으니.
베릭의 낯선 모습에 바르사베는 눈물을 터트렸고, 이어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베릭은 묵묵히 그녀를 부축해 계속 걷게 했다. 멈춰서는 안 된다. 언제까지 이 잔해 속에 머무를 것인가.
“너 혼자였나.”
“바, 바누사가 같이 있었다. 왕궁 비밀 통로를 안내해 줬는데, 정신이 잃을 때까지 나랑 함께였어. 그런데 보이지가 않아.”
베릭이 뒤를 힐끔거렸다. 병사들이 잔해 속을 더 깊이 뒤지며 사람이 없는지 살피고 있었다. 바르사베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물었다.
“…다들 어찌 되었나.”
“뭐. 살아남은 자는 살아남았고.”
“지하에서도 버티지 못할 만큼 강한 힘이었어.”
“어. 이안이가 고생 좀 했지.”
“이, 이안 장관님은?”
지하신은 이안 장관이 과거로 온 목적이지 않나. 그것을 격퇴하였다면, 그다음은?
‘혹시 돌아간 것은 아니겠지?’
하나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진 못했다. 베릭에게 이안이란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기에.
바르사베는 조심스레 베릭의 눈치를 살폈다.
“이안이?”
베릭은 저 멀리서 다가오는 친위대원들을 보며 대답했다.
“며칠 동안 잠만 잔다. 고생했으니까 당연한 건데, 마법부 놈들 이안이 죽은 거 같다고 호들갑이란 호들갑은 다 떨어 대서 시끄러워 죽겠다.”
“아. 그래. 다행이구나.”
“근데 네가 언제부터 이안이를 챙겼다고? 너나 챙기세요. 왼팔 박살 났네. 지 어금니처럼.”
“뭐? 근데 이 똥개 새… 아, 아앗!”
그제야 왼팔의 고통이 아릿하게 올라왔다. 바르사베는 팔꿈치 뼈가 훤히 드러난 자신의 왼팔을 살짝 구부리며, 감각을 확인했다. 다행히 멀쩡하다. 그러다가, 무심코 내뱉은 말.
“난 또 이안 님 어디 가셨나 해서- 아악!”
“뭐?”
“뭐 하는 거야! 왜 비틀고- 악!”
“이안이가 어딜 가는데?”
“어?”
베릭이 바르사베를 쳐다봤다.
바르사베 역시 살짝 어긋난 것 같은 대화를 이상하게 생각하며 그를 돌아봤다.
허공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빛이 맞물렸다. 무어라 말하면 좋을까, 바르사베가 잠시 말을 고르는 사이, 뒤에서 한 병사가 달려왔다.
“베릭 대장님! 위급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어. 간다. 이봐, 얘 부축 좀.”
“넵. 알겠습니다.”
“치료받고 있어라. 나중에 보자.”
베릭은 바르사베를 다른 병사에게 맡기곤 급히 몸을 돌렸다. 바르사베는 입만 뻐끔거리다가 한발 늦게 고개를 까딱였다. 뭐지……?
‘뭔가 이상한데.’
하지만 그뿐.
바르사베는 재차 왼팔을 붙잡으며 신음했다. 이런 잡념 따위에 신경을 쏟기엔 고통이 너무도 극심했다.
….(연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