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66
제766화. 괴소문
“바르사베! 살아 있었구나!”
“으앗!”
와락!
붕대를 감던 바르사베의 상체가 앞으로 쏠렸다. 뒤에서 누군가 갑작스레 껴안은 탓이다.
군의관이 기절할 듯 희게 질려 바르사베의 몸을 받쳤고, 그녀는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반가운 친위대원들의 낯이 보였다. 다들 이리저리 찢기고 벌어진 상처를 하나씩 지닌 채였다.
“당연하지. 나 쉽게 안 죽는다.”
“어이구, 왼팔 난리 났네. 감각은?”
“…조금.”
바르사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어렵사리 미소 지었다. 웃을 상황이 아니었지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침묵에 빠졌고, 이내 대원들은 그녀에게 이마를 맞댔다. 바르사베가 울먹이며 사과했다.
“…미안하다. 도움 못 돼서.”
“됐다. 미안할 일도 많다.”
“너희들 싸우는 동안 뭐라도 해 보려 했는데-”
“모두 최선을 다했다. 네가 우릴 아는 만큼, 우리도 널 알아. 그런 말 하지 마라. 제이럿 대장님도 원치 않으실 거다.”
제이럿 대장을 언급하자 바르사베가 두 눈을 꽉 감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친우였던 제이럿은 그녀를 더욱 살뜰히 보살폈다. 가르침을 아끼지 않았고, 그녀가 나아갈 길을 앞장서 누구보다 당당히 걸어가는 선배였다.
아버지이자 스승인, 동경 그 자체인 사람. 제이럿 대장의 부재는 일생을 도려내는 아픔과 같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런 날이 진짜 오긴 왔다.”
“그러게. 전쟁이 끝나다니.”
“아니, 그거 말고!”
“그럼?”
“저저, 봐라!”
처억!
대원은 저 멀리 있는 베릭을 가리켰다. 그러더니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댔다.
“베릭 저놈이 대장이라니.”
“짜증 나는 게 뭔지 알아? 그럭저럭 잘 해내고 있다는 거다. 미친놈이 뭘 잘못 처먹었나.”
“또 은근히 잘 어울려서 열받음.”
“아씨. 나도 황궁 들어가면 대장직 지원한다. 저놈 밑에서 일할 거 생각하면 자존심 상해서 안 되겠다.”
“그 전에 나부터 꺾어라.”
친위대원들은 장난스러운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풀었다. 바르사베가 눈물을 닦아 내며 웃자, 대원들은 저 멀리 누군가와 떠들고 있는 세드릭을 불렀다.
“세드릭!”
“네, 갑니다.”
아이는 대화하던 상대에게 뭔가를 이르더니, 후다닥 대원들에게 달려왔다.
“직속 선배가 대장이 된 기분, 어때?”
“별 감흥 없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나도 하겠다 정도.”
이이, 건방진 짜슥! 누가 베릭 후배 아니랄까 봐! 대원들이 세드릭의 볼을 쭈욱 늘어트리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빨빨대지 말고 바르사베 옆에 딱 붙어 있어.”
“…느에. 아게슴니다.”
“붕대 다 감으면 마법부 아코렐라 대장한테 데려가고. 아까 응급 부상자 있어서 바빠 보이던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군. 바르사베, 일단 있어라. 나중에 보자.”
세드릭도 마검사였지만, 아직 수련이 부족해서 현장 수습에는 나설 수 없었다. 마력을 다루는 방식도 서툴고, 아이의 몸인지라 근․체력도 부족했다.
세드릭은 대원들이 사라진 쪽을 빤히 쳐다보더니, 바르사베가 보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혀를 베에- 내밀었다.
“너도 참 너다.”
“군의관님. 붕대만 감으면 됩니까?”
“아. 예예. 그렇습니다.”
“그럼 제가 하겠습니다. 일 보십시오.”
군의관 수는 한정되어 있었고, 부상자는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는 흔쾌히 붕대 처치를 세드릭에게 맡기고서 서둘러 왕궁 쪽으로 들어갔다. 계속해서 들것에 실린 자들이 나오고 있었으니.
“제가 대신 꼼꼼하게 보겠습니다, 선배님.”
“그래. 잘 좀 해 봐라.”
“근데 마검사가 되면 신체도 강화됩니까? 팔이 이 정도로 아작 나면 보통은 불구 되거나 죽는데 말입니다.”
“수련한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
세드릭은 서툰 손짓으로 붕대를 꼼꼼히 감았다.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는 것처럼.
바르사베는 턱을 괸 채 느긋이 기다렸고, 세드릭은 그런 그녀를 연신 힐끔거렸다.
“뭐.”
무슨 볼일이라도? 시선을 느낀 바르사베가 정면에 턱을 고정한 채 물었다. 그럼에도 세드릭은 한참이나 붕대 쥔 손을 꼼지락거리며 주저했다.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바르사베가 미간을 찌푸렸다.
“세드릭?”
“저기, 바르사베 선배님. 선배님은 베릭 선배랑 친하시지 않습니까.”
“뭐. ‘친하다’의 정의가 뭔지에 따라 달라지겠지.”
“제가 이상한 소문을 들었는데, 이걸 보고하는 게 맞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소문? 어떤?”
세드릭이 무덤덤한 낯빛으로 갑자기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으히히- 무섭지!’ 같은 눈빛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물속에서 한 여인이 모습을 보이더랍니다.”
“물? 어디서?”
“식수 공급하는 우물에서요.”
“…희한하네.”
전장에서 이런 괴소문은 흔한 일이었다. 아군과 적군 혹은 무관한 그 누구의 죽음까지 쉽게 접하는 환경이었기에.
버고스 성에서도 그러지 않았던가. 경비병들이 동시에 환청을 듣고, 혼령을 보았다는 등의 소문이 파다하여 꽤 오래갔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이 끝났는데.’
그것도 승리로.
그 어느 때보다 해방과 성취감이 고조되었을 때다. 그림자신은 연민을 갖기에 너무 사특한 존재였고, 솔직히 마법사와 마검사의 희생 외 일반 병사의 피해는 그리 극심하지 않았다. 바르사베의 경험상, 이런 고무적인 상황에서 괴담이 퍼지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그걸 왜 베릭에게 전달할지 말지 고민하는 거지?”
“마법부의 이안 장관님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두 분께서는 절친한 친우잖아요.”
“이안 장관님?”
“네.”
세드릭이 코를 훌쩍거리더니 붕대를 마저 감았다. 아이답지 않게 상당히 세심한 손길이었다. 그는 잠시 주위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이어서 조심스레 바르사베에게 속삭였다.
“이안 장관님이 황실의 핏줄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뭐?”
바르사베는 지금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인상을 찌푸렸다. 얘가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람?
그녀의 격한 반응에 세드릭은 두 손을 다시금 들어 보이며 결백을 증명했다. 자신은 그저 들은 걸 그대로 전한 것뿐이라고.
“괴상망측한 소문인 건 아는데, 그래서 더더욱 빠르게 퍼진 듯합니다. 제이럿 대장님이 계셨다면 그분께 일렀을 것인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금은 베릭 선배가 책임자셔서요.”
이걸 알려, 말아? 어차피 시간 지나면 알게 될 거, 괜히 귀찮은 일에 휘말리려나 싶기도 했다.
바르사베의 낯에서 황당해하는 기색이 역력해지자, 세드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어느 미치광이 새끼가 그딴 말을 퍼트린 것인지, 원.”
“아니, 잠깐만.”
바르사베는 손을 탁탁 튕기며 세드릭의 주의를 끌었다. 아이의 반응이 영 이상하지 않나? 이안 히엘로가 미래에서 온 황제라는 걸 모른다는 듯하니. 바르사베는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이거다.’
아까 베릭이랑 대화할 때 느꼈던 기이한 어긋남.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알겠다.
바르사베는 잠시 고민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어 어깨에 걸친 친위대 제복을 벗어두고서 막사 쪽으로 달려갔다. 다리가 온전치 못하여 절뚝댔지만, 갈수록 걸음이 빨라졌다.
타닥타닥!
“토올룬의 마지막 발악 같은 게 아닐까?”
“에이, 설마.”
“그럼 아직 그놈이 살아 있다는 거잖아.”
“말고. 다른 세력이겠지.”
병사들이 떠드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리며 바르사베의 귓가에 흘러들어 왔다.
“난 그럴 만하다고 생각해. 바리엘에서도 예전부터 가끔 도는 말이었지 않은가. 마법부에서는 적극적으로 부인했다고 해도, 사실상 증명된 건 없대.”
“미쳤다고 그 문제를 언급하겠어? 진짜여도 문제고, 아니어도 문제인데.”
“쉬쉬. 다들 입 다물라고. 전쟁에서 겨우 살아남았구먼, 애먼 짓 하다가 죽을 수 있다네.”
“그래! 다들 닥치고 있어. 어쨌거나 마법사들 덕분에 이렇게 승리한 거니까. 황실 핏줄이면 또 어때? 축복 아닌가! 황가에서 마법사가 난 건 처음이니까.”
“에이그,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다.”
“갈 때는 마법사님들이 포탈 열어 주지 않으려나?”
“안 될걸. 마법부 장관님 지금 상태 안 좋아서.”
타닥타닥!
이안 장관이 황실의 핏줄인 것은 모두가 함께 목도하지 않았나. 어찌 다들 처음 듣는 것처럼 저런단 말인가? 당최 누가 저런 말을 보란 듯이 혼란 속에 풀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물속에서 모습을 보인 여인이라.’
…설마, 바누사가?
바르사베는 어지러운 생각을 뒤로하고, 마법부 막사 쪽으로 달려갔다.
* * *
깊은 밤-
바누사는 눈을 떴다. 언제 어떻게 기절했는지도 모르겠고, 얼마나 이리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몸을 비틀어 보았으나, 잔해에 깔린 다리 탓에 꼼짝하지 못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바르사베로 추정되는 남색 머리칼이 보였으나, 확실치 않았다. 손이 닿는 거리가 아니었다.
사사삭.
바누사는 제 몸을 액체로 바꾸어 무너진 왕궁을 빠져나왔다. 어떻게 된 것일까? 바리엘의 승리로 끝난 걸까? 비가 그쳤다는 사실 외에 바누사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이는 잔해 밖으로 나온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하나같이 모두가 잠에 빠진 듯 쓰러져 있었다.
‘이게 대체…….’
황제도, 마법사도, 마검사도. 지하에서 정신을 잃은 것처럼, 그들도 정신을 잃은 채 질퍽한 대지 위에 널브러져 있다.
“이보십시오. 저기…….”
밀려오는 어지러움을 꾹 참으며 그들을 흔들어 보았으나, 반응이 없다. 바누사는 어쩔 수 없이 비척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어둠 속에서도 반파된 수도의 모습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왕궁은 완전히 무너졌고, 화재로 그을리거나 타 버린 민가가 한가득이었다.
‘격렬한 전투였나 보군.’
바누사는 착잡한 얼굴로 이마를 짚었다.
자신은 왕궁을 무너트리고 싶었던 것이지, 토올룬을 무너트리고 싶었던 게 아니다. 사랑해 마지않았던 수도가 황폐해진 것을 보니, 바누사의 코끝이 시려 왔다.
그녀는 혹여 정신 차린 자가 있는지 찾기 위해 계속해서 움직였다. 한데…….
‘이상해.’
비로도 지워지지 않은 시뻘건 손자국들. 혈흔이 즐비했다. 그림자신으로 인한 것이 아닌, 인간들의 것이었다.
바누사는 냇물처럼 흐르는 핏물을 따라 모퉁이를 돌았다. 순간, 훅- 하고 끼쳐 오는 피비린내. 바누사의 몸이 굳어 버렸다.
“아…….”
토올룬 주민들의 시체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들이 대체 무엇을 잘못하였다고? 하나같이 목이 베여 눈 뜬 채 죽어 있는 모습이 너무도 처참했다. 온몸에 난 자상에는 명백한 의도가 묻어 있었다.
‘…학살.’
말도 안 된다. 바리엘이 어째서? 이안 히엘로는 분명히 자신에게 동맹을 이야기했거늘. 토올룬을 지켜 주겠노라고.
“이-!”
바누사는 치솟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검을 빼 들었다. 모두 정신을 잃고 누워 있으니, 손쉽게 베어 내리라. 제일 먼저, 가까이 있는 자부터…….
…이자는 얼굴이 낯익다. 트웰러 장관이라 했던가?
“으윽…….”
하지만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신음. 바누사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인기척을 쫓았다.
골목 쓰레기통 안에 숨어 있던 아이가 꺽꺽대며 죽어 가고 있었다. 바누사는 재빨리 아이를 꺼내어 입에 물을 흘려주었다.
“으으으…….”
“안심해도 좋다. 나는 바누사다.”
“바, 바누사 님?”
“그래. 숨을 천천히 내쉬어라.”
아이는 눈을 뜨지 못했다. 대신, 최대한 바누사의 품에 안겨 마지막 힘으로 전언했다. 아주 가늘고, 힘겨운 목소리였다.
“바, 바리엘군이 모두를 학살했습니다. 가리지 않고 베어 냈어요. 저와 부모님은 무기를 들고 있지도 않았는데요. 모두 죽였습니다. 구석에 몰아넣고서…….”
바누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혼내 주세요. 바누사 님. 바리엘 놈들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