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69
제769화. 어디로?
“크어어러럵어걱!”
“…아씨.”
저놈의 미친 코골이!
아코렐라는 짜증스럽게 일어나 소음 근원지를 찾았다. 놀랍게도 한 놈이 아니었다. 서너 명이 동시에 만들어 내는 화려한 앙상블.
아코렐라는 진심을 담아 가까운 마법사의 볼을 내려치고는 기지개를 켰다. 새벽 어스름이 느껴지는 시간이다.
짜악!
“억! 어억?”
“일어나, 이것들아.”
“왜, 왜 이리 일찍 일어나십니까. 역시 노인네-”
“닥쳐! 콧구멍 하나로 합쳐 줘?”
“내버려둬. 마력증폭제 부작용이다.”
“뭐가? 코골이가?”
“아니요. 대장 승질머리요.”
퍼억!
“아악!”
베개가 동시에 날아들더니 마법사들의 안면을 제대로 가격했다. 진짜 힘이 남아도나? 아침부터 쓸데없이 마법을 쓰고 있잖아? 믿을 수 없을 만큼 활기찬 기상이다.
마법사들은 코를 매만지며 침상에서 내려왔고, 아코렐라는 이안의 침실 쪽 천을 걷었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이안의 상태 확인이었으니까.
“흐아암. 바르사베 대원은 갔나 보네요.”
“네놈들 코 고는 소리에 도망간 거지. 안 그래도 예민한 애들인데.”
차악!
하지만 아코렐라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마법사들 역시 퉁퉁 부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멈칫했다.
“아…….”
침상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고, 이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웃옷 역시 걸려 있지 않았다.
이에 다들 당황스러운 신음만 흘리다가, 너 나 할 것 없이 동시에 밖으로 뛰쳐나갔다.
타앗!
“이, 이안 님! 이안 님!”
“이안 님! 어디 계세요!”
“아코렐라 대장, 황제 폐하께 보고합니까?”
“일차적으로 수색하고, 그다음에 말씀드릴 것이다.”
“전 위에서 살피겠습니다! 발견 즉시 신호합시다!”
“헤일! 너도 따라 올라가!”
“…젠장.”
갑작스러운 소란에 경비병들이 어리둥절한 낯으로 마법사들을 쳐다봤다.
“이보시게, 혹시 이안 장관님을 보았는가?”
“금발에 녹안. 미소년!”
“아, 아니요. 못 보았습니다만.”
타닥타닥!
소란은 순식간에 퍼졌다. 하나둘씩 병사들 또한 움직이며 주위를 둘러봤고, 여기저기서 이안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많아졌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이안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동틀 무렵. 헤일이 오른쪽 귀에 손을 올리며 전언했다.
-…이안 님 찾았다.
-어디?!
성 외곽을 따라 흐르는 작은 강. 물가에 앉은 소년은 무엇이 그리 궁금한지 연신 고개를 숙인 채 안쪽을 살피고 있었다. 영락없는 아이의 모습이다.
높은 하늘에서도 한눈에 들어오는지라 헤일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그의 전언을 들은 마법사들이 빛처럼 날아들었다.
촤아아악!
“이안 니이임!”
“아니, 여기서 뭐 하고 계십니까!”
이안이 고개를 돌려 하늘을 올려다봤다. 울먹거리며 다가오는 마법사들. 그 모습에 아이의 입가엔 미소가 피었다. 상대는 속 터지는 줄도 모르고!
이안은 손에 묻은 물기를 털며 되물었다.
“그러는 그대들은? 어찌 이리 소란인가?”
“그걸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가신 줄 알았잖아요!”
“내가? 어디로?”
담백한 물음에 마법사들의 머리가 댕- 하고 울렸다. 그러게? 그들은 왜 그리도 허둥지둥 놀랐던 것일까? 이안이 대체 어딜 간다고? 먼저 바리엘로 쏙 돌아가실 분은 아니지 않은가.
마법사들은 단체로 의아해하며 서로를 쳐다봤다. 이성이 돌아오니 호들갑도 이런 호들갑이 없다.
“가, 갑자기 사라지셔서 놀랐습니다.”
“며칠 내리 누워 있었더니 몸이 불편해서.”
“침상은 왜 그리 단정히 정리하신 것입니까!”
“…자고 일어나면 무릇 뒷정리는 기본이다.”
“아.”
“우, 웃옷도 없어지고!”
“새벽은 추워.”
이안이 대답할수록 마법사들은 바보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들은 연신 이마를 문질러 대며, 자신들의 호들갑스러운 작태에 대한 논리적인 이유를 찾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뭘까,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이안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걸까.
마법사들이 끙끙대며 알 수 없는 신음을 흘리자, 이안이 일어났다.
“되었다. 다들 아침잠은 제대로 깼겠어.”
“말도 마십시오. 심장 내려앉는 기분이었습니다.”
“이안 님. 다음부터는 저희 깨우십시오. 거동도 편치 않으실 건데, 혼자 움직이시다 큰일 납니다.”
“나 괜찮은데?”
“엥?”
이안은 자신을 좀 보라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며칠을 내리 자고 일어났음에도 보송보송한 피부, 화사한 생기, 그리고 총명한 눈빛까지. 거뭇한 그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남들이 보았을 때 병자는 되레 마법사들일 터.
“그, 그래도요.”
“알겠다. 다음부터는 놀라게 하지 않겠다.”
“예,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럼 돌아가서 확인해 볼까?”
“예? 무엇을요?”
이안은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그들을 쳐다봤다.
“보고서.”
“아.”
“수습 작업 진행 척도와 귀국 방법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내가 누워 있었을 때 황제 폐하께 올린 보고서도 함께 내오거라. 그리고 오후 중으로 새로운 보고서를 올릴 것이니, 그전까지 작업을 마친다.”
‘등신들. 이안 님이 가긴 어딜 간다고.’
‘지랄하네. 제일 먼저 튀어나간 게 누군데.’
‘닥쳐라, 다들. 쪽팔리니까.’
‘하여간, 일을 찾아서 만들지.’
마법사들은 본인이 호들갑 떨었던 걸 까마득하게 잊고서 옆 사람만 흘겨보았다. 그러다 이안이 조금 멀어지자, 다시금 호다닥 달려가 그 뒤를 따랐다.
“이안 님! 같이 가요!”
“아잇, 정말! 먼저 가시지 말라니까!”
그렇게 마법사들의 뒷모습이 멀어져 가는 차.
“…….”
강물 위로 사람의 머리가 솟아 나왔다.
바누사였다. 그녀는 눈만 빼꼼 내밀어 이안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자다. 그리고 분하게도-
‘원하는 바라고?’
한 수 위인 자이기도 했다. 복수를 위해 황궁을 흔들고자 했는데, 오히려 그걸 원한다고 하지 않았나.
상대가 원하는 걸 해 주는 게 복수라고 할 수 있나? 바누사가 한숨을 내쉬자, 보글보글 공기 방울이 피어났다.
“바누사. 선택에 대해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할 수 없다. 전쟁에서 폐하가 행하신 모든 일은 바리엘의 승리를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선택을 후회하면, 승리를 후회하는 것과 같다.”
그녀는 천천히 물속으로 사라지며 이안의 말을 되새겼다.
“하지만 책임은 질 수 있지. 폐하를 대신하여 내가 그 죄를 짊어질 것이니, 그대는 너무 노여워 말고 기다려 달라. 지하신이 사라진 지금, 나 역시 토올룬이 무너지는 걸 굳이 바라지는 않아.”
오래 보지는 않았지만, 이안은 허튼 말을 남발하는 자가 아니었다. 기다릴 가치는 분명히 있으리라. 수도는 초토화되었고, 지금의 그녀로서는 마땅히 방법이 없으니까.
게다가 무엇보다-
‘…힘겨워 보이는군.’
기억이 지워진 자들 사이에서 웃는 이안이 조금 안쓰러웠다. 영문 모르고 죽어 나간 제 백성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그랬다.
바누사는 인상을 찌푸린 채 다시금 물속으로 스며들었고, 이내 모습을 감췄다.
* * *
엄숙하고 진중한 분위기의 천막 안.
“크흡. 크흐읍!”
차마 듣고 있기 민망할 정도의 이상한 훌쩍임이 끝도 없이 흘렀다.
장교들은 눈과 귀를 막고서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고, 진 역시 보고서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서러워지는 흐느낌. 참다못한 진이 보고서를 내리며 질책했다.
“클로이 영애.”
“흐읍. 네, 네에?”
눈물 콧물 질질 짜는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붉다. 클로이는 손등으로 볼을 비벼 댔지만, 수도꼭지처럼 흐르는 것들을 어찌 막을 수 있겠나. 진은 그 모습을 질린다는 낯으로 바라보다 부탁했다.
“자중했으면 좋겠는데.”
“송구, 흐윽, 송구합니다. 마음처럼 되질 않아서-”
클로이의 시선이 황제 옆자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다름 아닌, 그녀의 연인 시아오시에게.
진은 피곤하다는 듯 눈두덩이를 꾹꾹 눌러 댔다.
“크흑! 크허어엉!”
“거참. 누가 죽었는가?”
“주, 주, 죽다 살아오시지 않으셨습니까아아…….”
“그러니까. 살아 돌아왔는데 뭐 그리 울어.”
진이 황당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황제 앞에서, 참으로 성심 깊도다.
클로이가 어깨까지 들썩이며 눈물을 쏟아 내자, 시아오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되었다고, 괜찮으니까 진정하라고.
그 모습에 클로이가 다시금 뿌애앵 목청을 높였다.
“흐아아앙!”
“아, 진짜.”
타악.
진은 결국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시아오시를 돌아봤다. 이것 봐라. 이놈은 왜 눈시울이 붉단 말인가? 아주 둘이 난리가 났구나.
이 와중에도 클로이는 최선을 다해 입을 틀어막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시아오시.”
“예, 폐하.”
“영애를 밖으로 모시어라. 내 정신이 사나워 집중할 수가 없다. 저러다 쓰러지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전쟁이 끝난 터라 유공자 취급도 어렵다.”
시아오시는 기다렸다는 듯 클로이를 부축해 밖으로 나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계속 들려오는 훌쩍훌쩍 소리.
장교들은 조심히 황제의 눈치를 살폈다. 짜증스러운 말투와 달리 낯빛은 온화했다. 전쟁이 승리로 끝났으니, 재회의 기쁨을 너그러이 이해하는 태도였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 엄격한 얼굴이었지만.
“그래서, 보급품은 얼마나 남았는가?”
“보름치 정도 남았습니다. 수도 자체가 황폐해진 터라 인근에서 조달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트웰러가 진의 질문에 대답했다.
“무너진 왕궁 쪽 상황은? 제국군은 다 구조하였고?”
“예. 일단은 사상자 대부분은 수습했습니다.”
냉정한 말이었으나 왕궁 및 수도의 재건은 토올룬의 몫이었다. 그것이 패배한 자가 짊어질 짐이었으니까.
물론 지도부가 없는 터라 당장은 진행 자체가 어려울 터. 제국군 일부는 토올룬에 남아 지도자를 선출하고, 수습을 주도 하는 게 옳다.
‘바누사라 하였나. 그자가 적합하긴 한데.’
능력도 있고, 신망도 두터우며, 바리엘에 우호적인 인물. 하지만 이상하게 그녀에 대한 소식이 뚝 끊어졌다. 어찌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차, 누군가 조심스레 진을 불렀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발언하라.”
“가능한 서둘러 바리엘로 돌아가심이 좋겠습니다.”
진이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까딱거렸다. 물자 부족 문제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장교들의 분위기로 보아, 저들끼리는 뭔가 아는 눈치. 트웰러 역시 반박하지 않고 시선을 돌렸다.
진이 보고서를 덮었다.
“바리엘로 돌아가는 것은 나 또한 원하는 바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순서가 있는 법. 그리 이른 연유를 함께 이르도록 하라.”
“민망스럽게도 병사들 사이에서 헛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큰 승리를 거두었으니, 그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 같습니다만…….”
“헛된 소문?”
장교가 이르길 꺼리자, 진은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마법부 장관인 이안 히엘로 경이 황실의 핏줄이라는 소문입니다. 소문을 전하는 자는 엄벌할 것이라 엄포를 놓았음에도 쉬이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무어라?”
진이 놀라서 되묻자, 장교들의 고개가 더욱 깊이 떨어졌다.
이안이 자신과 같은 황실의 핏줄? 진은 자신도 모르게 턱을 괴고서 곰곰이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좋다.’
이안을 믿고 따르기에, 마음 깊이 기뻤다.
하지만 황제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 전무후무한 마법사이며, 전쟁에서 혁혁한 공까지 세운 이안이 진실로 황실의 핏줄이라면, 황제의 자리까지 노릴 수 있는 입지다. 이안이라면 절대로 그럴 리 없겠지만.
“…불경하군.”
이러한 속마음을 내보일 수는 없었다. 그는 황제이기에. 진은 마지못해 지시했다.
“이안 경이 황실의 핏줄이라. 우습지도 않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헛소문을 나르는 자, 법으로 다스려 지엄함을 보여라.”
“예, 폐하.”
모두가 황제의 명을 받든 그때, 이안은 천막 밖에서 보고서를 든 채 기다리고 있었다. 시종이 난감해하며 그를 힐끗거리자, 이안은 괜찮다는 듯 눈짓했다.
“…조금만 더 있다가 기척을 내어라.”
지금 들어가면 황제께서 불편하실 터이니.
보고서를 쥔 이안의 손끝에 힘이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