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7
제77화. 아닌 밤중의 절규
“이자들인가?”
“네. 백작님.”
신께서 조금만 입김을 불어 넣으면 눈이 쏟아질 것 같은 날씨다. 메렐로프 백작은 저택 앞에 서 있는 자들을 눈으로 훑었다. 차출한 사병 외, 함께 셰이론으로 향하겠다 자원한 영지민들이 엉거주춤 모여 있었다.
집사는 명단을 덮으며 간단히 설명했다.
“평소 행실이 바르고, 가족이 많은 자로 구성했습니다.”
셰이론을 오가는 길은 고립되어 있다. 망망대해 위의 바다와 같이, 문제가 생긴다면 필시 곤란해질 터. 생존과 직결한 것이기에, 구성원의 도덕성과 책임감을 기준으로 선별했다.
또한 고난의 대가로, 그들은 소정의 수고비와 개별적인 식량 매매를 허락받을 예정이다. 메렐로프 백작이 전체적으로 점검을 이어갈 때였다.
“백작님! 백작님!”
촤악!
정문 쪽에서 누군가 경비를 따돌리며 달려오는 게 보였다. 사내는 냅다 메렐로프 백작 앞에 엎드려서는 싹싹 빌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백작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뭐지? 언제부터 저택의 문이 저리도 가벼웠나?”
“하이펜타운 아래에 사는 코, 콜린입니다! 임시 교역단에 저도 꼭 끼워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바닥에 머리까지 찧어가며 부탁하는 모습에 메렐로프 백작은 집사를 쳐다봤다. 이게 대체 뭔가 싶은 거다.
“죄, 죄송합니다. 백작님. 경비! 어서 끌어내!”
“백작님, 저 진짜 쓸 만합니다. 보셨지 않습니까. 달리기도 자신 있고, 히, 힘도 보기보다 괜찮습니다. 젊은 놈 하나라도 더 얹으면 가져올 수 있는 밀 포대가 대여섯 개는 더 될 겁니다. 아니, 일곱 개는 더 되겠지요. 제발, 제발…….”
메렐로프 백작은 팔짱을 끼며 납작 엎드린 콜린의 뒤통수를 내려다봤다. 열의도 있고, 말마따나 젊은데 어째서 제외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집사는 명단을 뒤적이며 다급히 덧붙였다.
“가족은 많으나 사설 도박장을 전전하는 등 신용이 없습니다. 전과도 있는 잡범이고요.”
“그건 철없었을 적 일입니다. 위아래로 형제가 넷이며 부모님은 매일 나무를 해다 파십니다. 솔직히, 집에서 제 노릇 못하고 있는 게 저뿐이라, 기회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메렐로프 백작은 가만히 고민하다가 물었다.
“날 때부터 메렐로프 영지민인가?”
“그렇습니다.”
“그래. 포함 시켜라.”
“백작님! 그건 좀…….”
“저리 벌벌 떨면서 일 좀 시켜달라 하는데, 어찌 문제 일으키겠는가? 사병들이 포함되어 갈 것이니 걱정할 것 없다. 대신, 네놈의 수고비는 절반으로 깎을 것이다. 이의 없겠지?”
“어, 없습니다. 네, 없어요. 감사합니다!”
사람 하나하나가 모자란 시점이었다. 말마따나 저놈 하나 더 넣으면 가져올 수 있는 포대가 늘어나는데, 거절할 이유가 하등 없다. 게다가 수고비는 절반. 이득 중의 이득 아닌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됐다. 집사, 이제 정리하고 들어가지.”
“네. 알겠습니다.”
콜린은 살았다는 듯 다시금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메렐로프 백작은 그의 행동이 그저 굶주림에서 오는 절박함이라 오인했다.
‘살았다. 흐윽, 씨발, 살았어. 여기서 못 들어갔으면 그 새끼들한테…….’
그래서 두 손 모아 감동하는 모습을 보고 퍽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집안 꼴이 대체 어떠하기에 일거리 하나 받았다고 저리 좋아하는 건가, 싶어서.
“꼴을 보아하니 일 하나는 잘하겠군. 안 그런가?”
“…교육 잘하겠습니다.”
백작의 말에 집사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아무리 주인이라고 하지만, 일 처리가 어찌 저런지 모르겠다. 욕심이 부른 어리석음이겠지.
저자를 넣어서 얻을 이득과 넣지 않았을 때의 안정성. 둘 중 무엇이 더 귀한지 계산 못 하는 게 답답했다.
“자네. 콜린이라고 했나?”
“네. 그렇습니다.”
“이쪽으로 서게.”
“네!”
집사는 한숨을 푹 내쉬며 환호하는 콜린을 안내했다. 콜린은 이안의 명령을 이행할 수 있음과 제 목숨이 연장되었음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뒤따랐다.
“호명할 터이니 한 명씩 나와 계약서를 쓰게나. 수고비 중 일부를 먼저 지급하겠네.”
집사는 다시금 명단을 펼치며 임시 교역단에게 눈짓했다. 계약서를 꼼꼼하게 쓴 콜린은 어색하게 웃으며 수고비를 받아냈고, 이내 저택을 후다닥 나섰다.
뒷모습만 봤는데도 그 꼴이 참으로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집사가 한탄하며 그의 손바닥이 찍힌 계약서를 챙겨 넣었다.
와다다다!
콜린은 길가에서 줄담배 피우던 남자 둘을 지나쳐 갔다. 남자 둘은 무언의 시선을 나누었고 이내 피식 웃으며 연기를 뿜어냈다.
“명줄 연장했군.”
“그런 것 같네.”
얼굴에 안도감이 짙은 것으로 보아, 임시 교역단에 들어간 모양이다. 만약 그것부터 실패했더라면 오늘 밤이 콜린의 마지막 날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저번에 왔었을 때랑 분위기가 많이 다르지?”
남자들은 담배를 비벼끄며 중얼거렸다. 그들은 로만드로의 부하들로 콜린의 감시역을 맡은 자들이었다. 고작 두세 달 만에, 활기찼던 영지의 기운이 축 처져있었다.
“상단이 못 올 거라는 소문이 돌아서 그렇지.”
“소문이 아니잖아?”
“아아. 그렇군.”
기대에 차올랐던 만큼 실망과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부하들은 콜린의 뒤를 따라 뒷골목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이내 두 남자를 지켜보던 사내 역시 등을 돌렸다. 메렐로프 저택에서 일하는 하인, 클라크였다.
똑똑.
저택으로 돌아온 클라크는 메렐로프 부인의 서재 문을 두드렸다. 안쪽에서는 대답이 없다. 그는 복도를 좌우로 살핀 다음, 재빠르게 안쪽으로 들어섰다.
“부인, 교역단에 의심스러운 자가 섞였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메렐로프 부인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언제나처럼 맑은 목소리로 대답만 해올 뿐.
“클라크, 너도 잘 다녀오렴.”
“…네.”
“잘 해내리라 믿는다.”
“걱정 마십시오.”
클라크는 마지막으로 여인의 모습을 보고자 했으나, 그녀는 끝내 밖으로 나서지 않았다.
* * *
찢어진 천을 여러 번 덧대어 밑창 아래 나무 조각을 박아 넣었다. 메렐로프를 떠나온 지 벌써 나흘. 살을 찢을 듯한 바람 앞에서, 교역단은 빈 수레를 끌며 코만 훌쩍거릴 뿐이었다.
“얼마나 더 가야 합니까?”
“글쎄. 거리는 하완 왕국과 비슷한데, 길이 워낙에 험해서. 날씨로 보아 곧 있으면 눈도 내릴 것 같다만.”
“그래도 땀이 나서 그런지, 몸 안쪽은 안 춥습니다.”
“쓰읍. 아우, 콧물이 왜 자꾸 나와. 코 떨어지겠네.”
그래도 나름 분위기는 괜찮았다.
사병이라 한들, 어쨌거나 그들도 메렐로프의 영지민이었고 이웃이었다. 앞집, 뒷집 가릴 것 없이 아는 사이들 아닌가. 간혹가다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콜린, 자네는 근데 어디 갔었던 건가?”
“…그냥 이리저리 일이 있었습니다.”
“그거랑 관련 있는 거 아니지?”
“어떤 거요?”
“왜에, 그 녹색 지붕 도박장 덩치들이 브라츠에서 사람 죽이려고 했다며. 그게 이안이라는 소문이 있어.”
“전 브라츠 백작의 서자?”
남자들의 말에 콜린이 움찔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지금도 이안이 자신의 눈과 귀로 상황을 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뱃속에 녹아든 알 수 없는 힘으로 말이다.
“아, 아니에요. 저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그렇지? 하긴. 그러면 죽고 여기 못 왔지.”
“맞아. 이제 새로운 가주 아닌가. 참, 팔자 대단해. 사창가에서 나고 자라서는 떡하니 작위까지 받네.”
“사창가요?”
“왜, 그 어미가 코르티잔이지 않나. 이래서 사람은 일단 능력이 있어야 해.”
“코르티잔이래? 아닐걸? 내가 듣기로는 그냥 빚 때문에 그쪽에서 살았더구먼.”
“됐어. 뭔 짓을 했든 알게 뭐란 말인가. 능력이고 자시고 운이지, 운. 대사막 건너갔더니 백작 머리 잘린 것부터가 시작이야. 살아 돌아왔으니, 이제 그 운 다 썼네!”
“자네 희망 사항 같은디. 낄낄.”
조잘조잘 떠드는 말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았다. 콜린은 처음 안 사실들이었다. 앞뒤 잴 것 없이 그냥 돈 준다고 해서 동참한 것이었기에…….
“오늘은 이쯤에서 쉬지. 동굴이 적당해.”
“그래. 더 갔다간 해가 지겠어.”
“쯧. 겨울이라 낮이 짧아. 움직일 수가 없구먼.”
작은 동굴에 침낭을 펴고 입구에는 수레를 세웠다. 입구가 막혀서 불편하지만, 그런대로 칼바람은 막을 수 있었다. 가운데 장작이 쌓이고 불이 붙자, 다들 노곤해져서는 그대로 널브러졌다.
“밤사이 눈이 오면 어떡하지?”
“뭘 어떡해…. 조지는 거지…….”
“아우. 옆으로 좀만 가 보게나.”
“나 자리 없는데? 모닥불에 타 죽으라고?”
“제가 조금 뒤로 나갈게요.”
다닥다닥, 콜린은 밀집도 높은 곳에서 벗어나 입구로 피했다. 바람이 차긴 하지만 거사를 치르기 위해서는 이곳이 제일 알맞았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커어억…….”
“으으음, 크헉…….”
사람들의 코 고는 소리가 귀때기를 때릴 때쯤.
콜린은 슬쩍 일어나 횃불 하나를 집어 들고 밖으로 나섰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은 그야말로 칠흑 같았다.
‘미안합니다, 다들. 근데 이렇게 안 하면 내가 죽어요.’
그는 안주머니에서 기름 주머니를 꺼내 빈 수레 위로 던졌다. 그리고 머뭇머뭇, 기름 위로 불씨를 던질까 말까 고민하던 찰나.
“거기, 뭐 해?”
“흐익!”
순간, 갑자기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콜린은 놀라긴 했지만, 횃불을 떨어트리진 않았다. 한 남자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다가오더니, 수레와 불씨 그리고 콜린을 번갈아 쳐다봤다.
“아,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안 하긴. 콜린, 자네! 금화를 노리고 불을 낸 건가? 이런 쳐 죽일! 세상에나!”
“…어?”
마치 연극을 하는 것 같다. 혼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만, 콜린에게서 횃불을 낚아채 망설임 없이 던져버렸다. 당황한 콜린을 둘러싸고 불길이 일었다.
“무, 무, 무슨…….”
촤아악!
순식간에 목을 긁고 지나가는 칼날. 콜린의 시야가 천천히 올라가더니, 이내 거무룩한 밤하늘만 보였다. 소란에 한 명, 두 명씩 일어나 동굴 밖으로 뛰쳐나왔다.
“…무슨 일이야, 클라크? 흐익! 불! 불이다!”
“물 없어? 젠장! 흙이라도 끼얹어!”
“불이야! 불! 다들 어서 일어나!”
“으아악! 미친!”
“저자가 불을 냈다!”
소란 속에서도 콜린은 눈만 끔뻑거렸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늘에는 흰색 점이 찍힌 것처럼, 별과 함께 눈송이가 내리고 있었다.
‘누구지? 모르는 사람인데, 내 이름을 알고 있네.’
콜린의 목에서 솟은 피가 흙을 적셨다. 꺼떡거리는 그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의문의 사내. 콜린은 그대로 눈 뜬 채 죽음을 맞이했다.
한편, 로만드로의 부하는 인근의 수풀에 몸을 숨기고 그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씨발.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래? 저 새끼는 대체 뭐 하는 새끼야?’
추워서 헛것을 본 건 아니겠지? 갑자기 나타나 콜린을 죽이고, 수레를 불태워 버린 의문의 사내. 더 볼 것도 없었다. 로만드로의 부하는 조심스럽게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클라크는 바스락거리는 수풀을 힐끔거린 다음, 덤덤하게 흙을 퍼 날랐다.
“수레 살려!”
“젠장, 이 미친놈이!”
“아이고, 다 탄다! 타!”
아닌 밤중에, 사람들의 절규가 바람보다 거세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