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70
제770화. 괴소문의 시작
이안이 황제의 막사 안으로 들어선 것은 그로부터 10여 분이 흐른 뒤였다.
이안 히엘로 마법부 장관이 직접 보고하기 위해 왔다는 전언에, 진의 상체가 앞으로 기울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반가워하는 것이 눈에 확연히 보이는 몸짓이다.
“어서 들라 하여라.”
사락.
천이 걷히고, 이안이 모습을 보였다.
막사 안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바뀌었다. 이 자리의 모두가 이안의 결전을 두 눈으로 지켜본 자들이다. 무인(武人)으로서의 경외, 무탈한 것에 대한 안도, 한편으로는 미지의 존재를 보는 듯한 두려움 등이 섞여 있었다.
이안은 황제의 앞에 나서 공손하게 고개 숙였다.
“폐하. 이안 히엘로, 인사드립니다.”
“그래, 이안 경. 몸은 좀 괜찮으신가? 이리 움직여도 무리는 없으시고?”
“예, 폐하. 덕분에 쾌차하였습니다. 자리를 비워 송구스럽습니다.”
“그런 말 마시게. 그대의 안정은 모두에게 중요하다네.”
이안은 싱긋 웃으며 감사하다는 뜻을 보였다. 그러고 나서 시종을 통해 보고서를 넘겨주었다.
진은 놀랍다는 듯 두툼한 보고서와 이안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사이 언제 이렇게…….
‘못 말리겠군. 따라가려면 멀었다.’
순수한 감탄이었다.
진이 보고서를 넘기자, 이안이 설명했다.
“폐하, 우선 마법부의 현 상황을 말씀드립니다. 아코렐라 대장의 마력증폭제를 통하여 개인의 마력을 회복하고는 있으나, 체력 부담이 누적되어 이전과 같은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음. 그래. 다들 고생들 하였지.”
“하여, 물자를 소진할 때까지 수도에 머물러 회복에 집중하고, 이후에는 포탈을 열어 귀국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바리엘까지 검은 달을 연단 말이오?”
“네. 그렇습니다.”
“가능한가?”
버고스에서 여기까지 오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 들었는데, 더 먼 바리엘까지? 진이 놀라서 되물었다. 거리도 거리지만, 마법사들의 상태도 문제였으니.
하지만 이안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합니다.”
자신이 주도해서 열면 되니까.
그림자신을 처치하여 전쟁까지 끝내 버린 마당에, 굳이 힘을 아끼며 조절할 필요가 없었다. 버고스? 루스웨나? 그 누가 방자하게 다시 고개를 들겠는가? 승자는 정해졌는데.
“바리엘에 전서구를 먼저 보내심을 제안드립니다. 일정을 맞춰 포탈을 열면 바리엘 측에서는 이쪽에 필요한 물자를 보내고, 본대는 바리엘 쪽으로 넘어가면 될 것입니다.”
물자는 토올룬에 남아 뒷수습할 주둔군의 몫이었다. 어느 정도 정상화되어 자체 수급이 가능해질 때까지 사용할 보급품이 필요했다.
“말이 나와서 의논하고자 하네. 주둔군 지휘관 적임자로는 누가 좋겠는가? 그리고 토올룬의 임시 지도자로 세울 만한 인물도 필요한데.”
이안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맥심 트웰러 장관님을 추천합니다.”
“트웰러 장관을?”
장교들의 시선이 단번에 집중되었다. 주둔군 지휘관으로 제국방위부 장관이라니? 과한 면이 없잖아 있다. 이는 장교 선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 저항 세력이 없지 않은가?
“트웰러 장관께서는 이번 전쟁이 마지막 임무라 하셨습니다. 오랫동안 바리엘 제국을 위해 몸 바치신 분이니, 마지막 임무를 온전히 마무리하도록 안배하는 게 의미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너무도 주관적인 연유다. 그것도 트웰러 장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한 장교가 나서려 하자, 이안은 틈을 주지 않고 덧붙였다. 미안하지만 다물라는 시선은 덤이다.
트웰러 역시 가만히 있으라는 듯 장교에게 나무라는 눈빛을 보냈다. 상대는 마법부 장관, 이안이다. 분명히 의도가 있어 저리 이르는 것일 터.
“게다가, 바누사와의 문제도 있습니다.”
“바누사와의 문제라니?”
“마산타르 신전에서부터 제국군을 도운 자입니다. 가문의 위상, 술사 능력, 바리엘과의 관계 등을 따졌을 때 차기 토올룬 지도자로 세우기 적합하지요. 한데…….”
“무슨 일이 있는가?”
“결전 당시, 신도들을 정리한 걸 알아 버렸습니다.”
“아.”
진이 작게 탄식했다. 바누사가 바리엘에 협조적이었던 것은 왕궁을 전복시키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곧, 토올룬을 지키고자 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하나 어린것들까지 자비 없이 베어 버렸음을 알았으니, 바누사 입장에서는 분개할 만한 사안이다.
“다행히 그녀는 그것이 필수 불가결한 과정이었음을 이해했습니다. 대신 조건을 걸었지요.”
그것은 바로-
“임무의 책임자였던 트웰러 장관이 남아서 토올룬 재건을 맡아 줄 것. 그것으로 죽은 자의 넋을 기리고 토올룬을 존중하고 있노라 보여 주는 것.”
혹, 거절한다면?
“바누사는 수도 외 지역을 돌며 잔존 세력을 규합, 항전할 것입니다. 물론 그 싸움의 승패를 점치는 건 너무도 하찮은 일이라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만-”
이미 바리엘의 전력 손실이 심했다. 마법사, 마검사의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살아남은 자들도 온전치 못했다.
그뿐인가? 병사들은 승리에 도취하여 조국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다시금 전쟁을 준비하라고 하면 사기가 어찌 될지 빤했다. 게다가 보급품은? 보름치만 남아 있다고 하지 않았나?
“적당히 회유하여 여기서 마무리하심이 좋을 것이라 판단됩니다.”
토올룬 백성을 학살했노라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어느 정도 책임과 권한이 있는 자가 남아서 수습을 맡아 달라는 것. 괜히 반발심을 일으켜 상황을 어지럽히기보다 적당히 들어주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다.
진은 턱을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트웰러 장관. 그대의 뜻은?”
“…이안 장관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 하나로 상황을 정리할 수 있다면 기꺼이 남겠습니다.”
트웰러는 고개를 숙이며 받들겠노라 일렀다. 굳이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합리적이었고, 일리 있는 주장이었으니까.
무언가 꺼림칙했지만, 트웰러는 애써 생각을 지워 버렸다. 이안과 관련된 헛소문 탓에 신경이 예민해진 탓이리라. 이안은 한껏 부드러운 음성으로 덧붙였다.
“재건 기간을 길게 잡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명분과 구색이니,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전서구를 보내 주십시오. 마법부에서 다시 포탈을 열 것입니다. 그 길로 편히 귀국하시면 됩니다.”
“편의를 봐주어 고맙소이다, 이안 장관.”
“별말씀을요. 고생하시는데 그 정도는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이안의 미소가 은근했다. 합의가 잘 이루어져 다행이라는 듯이.
트웰러는 앞으로 바누사와 함께할 업무를 고민하다가, 문득 떠올렸다.
‘잠깐.’
괴소문의 시작. 바로, ‘물에서 얼굴을 비친 여인’이 아니었던가? 잠결에 헛것을 본 게 아니라면, 여인은 기이한 능력자임이 틀림없다. 바누사처럼 물을 다루는.
트웰러의 시선이 자연스레 이안에게 가 닿았다.
“왜 그러십니까?”
그리 묻는 아이의 녹안을 보니, 트웰러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소문의 시작이 진정 바누사일까? 이안은 바누사와 이미 접선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진위를 알고 있을까?
묻고 싶은 게 꼬리를 물고 이어졌으나, 장소가 적절치 않았다. 모두를 앞에 두고 할 말이 아니었다.
“아닙니다.”
“의견 있으시면 편히 전달해 주십시오. 바누사는 이틀 후 모습을 보인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제국이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숨어서 안위를 위하려는 의도 같습니다.”
“…바누사를 언제 만나 보셨습니까?”
트웰러가 조심스레 물었다. 소문이 퍼진 시점과 대조해 볼 생각이었다.
숨은 의도를 눈치챘는지, 이안은 가만히 미소 짓다가 모호히 대답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자다 깨기를 계속 반복해서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달 내용은 분명합니다.”
“예. 설마 제가 그런 것을 걱정하겠습니까. 이안 장관이신데.”
“그럼,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훅 들어온 이안의 질문이 어쩐지 날카로웠다.
트웰러는 잠시 입을 다물고서 침묵했고, 장교들은 갑작스러운 분위기에 눈치만 살폈다. 진 역시 흐름을 읽고 가볍게 보고서를 넘겼다.
사락.
“이안 경, 더 보고할 것은?”
“없습니다. 당장 말씀드릴 사안은 이것이 다입니다.”
“그래, 알겠네. 하면 돌아가서 쉬도록 하시게. 아코렐라 대장의 보고서에 따르면 그대의 몸에 인지하지 못한 부작용이 있을 거라 하더이다.”
“아코렐라가 그리 올렸습니까?”
영리한 것. 자신이 살핀 보고서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는데, 일부러 누락했나 보다. 이안은 단호하게 부정했다.
“제 안위가 갖는 의미와 무게를 잘 압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무탈합니다. 아코렐라의 걱정이 지나친 것이니, 폐하께서는 심려치 마십시오.”
“그러하다면 다행이지만.”
“그럼,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이안은 자리한 사람들에게 눈인사를 남기고서 천막을 떠났다.
그가 사라지자, 진이 트웰러를 흘겨보았다.
“트웰러. 과하다.”
“…송구합니다.”
이전부터 그는 꾸준히 이안의 존재를 걱정해 왔다.
하지만 진은 알고 있지 않나. 이안은 위험하지 않은…….
‘음?’
…왜? 왜 지금껏 ‘위험하지 않은 자’라 여겼더라? 어릴 적, 제 손을 잡아 준 자라서? 위험이 있을 때마다 목숨을 걸고 지켜 주어서?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이안은 여전히 완전한 믿음의 대상이었으나, 이를 뒷받침해 줄 절대적 무언가가 부재한 기분이다.
‘무얼까.’
진은 혼란스러움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이안 경은 자신을 희생하여 바리엘을 지켰다.”
그 누구보다 바리엘을 사랑하고-
“지하신에 맞서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어.”
신의 그림자와 대적할 정도로 강인한 자.
그렇기에… 신의가 없다면 그 누구보다 위험한 자.
쿠웅.
진은 자신도 모르게 탁자를 내려쳤다. 머릿속에 떠오른 불순한 생각을 깨기 위해서였다.
진은 한참이 지난 후에야 겨우 말을 이음으로써 문장을 완성했다.
“…그러니까, 믿음으로 대하라. 알겠는가?”
“예, 폐하. 명심하겠습니다.”
“모두 물러가게.”
트웰러를 선두로, 장교들이 천막을 떠났다. 홀로 남은 진은 무언가 복잡하다는 듯 이마를 감싼 채 굳어 버렸다.
…도저히 모르겠다.
자신의 믿음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 * *
막사를 나선 이안은 담담한 표정으로 앞서 걸었다. 안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모르는 터라, 마법사들은 괜히 궁금해서 눈만 깜빡거렸다.
멈칫.
이안의 걸음이 드디어 멈췄다. 이쪽을 돌아봐 주시려나?! 마법사들이 초롱초롱하게 눈빛을 쏘아 댔으나, 이안은 돌아보지 않았다.
“잠시 여기서 대기하라.”
“네? 어디 가십니까?”
이안의 시선을 끈 것은 에이린. 그녀는 간이 의자에 앉아 전투화를 닦고 있었는데, 집중하는 옆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안은 마법사들을 뒤로하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바쁘십니까.”
“아!”
에이린은 화들짝 놀랐는지, 어깨를 크게 움찔거렸다. 하지만 이내 이안인 것을 확인하고는 빠릿빠릿하게 일어나 경례했다.
“아닙니다. 이안 장관님.”
“앉으세요. 편하게.”
“가, 감사합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왜요? 에이린은 그리 묻고 싶은 눈치였다.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손을 공손히 무릎에 올렸다.
이안은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속삭였다.
“궁금한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이라.”
“물론입니다.”
뭐, 뭐지. 점점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안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지자, 에이린은 긴장했다.
하지만 이내 들려오는 뜻밖의 질문에 눈이 커지고 말았으니.
“황제 폐하, 어찌 생각합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