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71
제771화. 새 기둥
…어찌 생각하냐니.
에이린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질문의 저의가 무언지 상당히 고민되는 부분이다.
주군과 신하의 관계를 묻는 것인가? 뉘앙스는 연정을 말하는 것 같은데? 하지만 일개 병사가 어찌 황제 폐하를 그런 마음으로 볼 수 있단 말인가. 이리 묻는다고 대답할 수나 있는 것인가?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이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못 들으셨습니까?”
“그, 제가 배움이 모자라 장관님의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부디 다시 질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문장 그대로니까요. 에이린은 황제 폐하를 연모하는지 물었습니다.”
뜨악. 에이린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멀리서 지켜보던 마법사들이 의아하게 쳐다볼 정도로. 이안은 직접 닫아 줄까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그-”
“폐하께서는 에이린을 마음에 두고 계십니다. 하여 에이린도 그러하였으면 좋겠다는 뜻이에요.”
“노,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장관님.”
“농담이라니요. 어째서?”
“저는 일개 병사입니다.”
에이린의 낯이 붉게 변했다. 마치 탐해서는 안 될 것을 탐한 자처럼 말이다.
실은 처음부터 그랬다. 이안이 ‘연정’이라는 감정을 슬며시 건들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황제를 의식해 버린 게다. 모두 이안이 일부러 의도한 것이건만, 이리 심하게 당황하는 모습은 조금 가엾게 느껴질 정도였다.
“에이린. 그대가 이번 전쟁에서 보여준 기개는 실로 대단하였습니다.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에이린은 문득 이안이 자신에게 과한 존대를 쓰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마치 귀한 사람을 대하는 것 같이. 그녀는 뭔가 의아하여 이안을 살폈다.
“장관님, 어째서 그러십니까?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자못 기민한 눈치에 이안이 웃었다. 화사하고 그 무엇보다 눈부신 미소. 하나, 에이린은 어쩐지 서글픈 감정을 전달받았다.
“곧 있으면 바리엘로 돌아갈 것인데, 그때 에이린이 폐하의 곁을 꼭 지켜 주었으면 싶어서 그렇습니다. 그대는 누구보다 믿음직하고 분명히 폐하께 힘이 될 인물이라서요.”
“폐하의 곁에는 이미 믿음직하고 힘이 되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안 장관님을 포함해서요.”
“다를 것입니다.”
저와 에이린은.
이안은 말을 잇는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그러고는 한참이나 허공을 응시하더니,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엇에 대한 부정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아무튼, 끊임없이 의식하십시오. 도울 일이 있다면 기꺼이 도울 것이니 걱정할 것 하나 없습니다. 그것만 명심해 주면 고맙겠습니다.”
바리엘로 돌아가기까지 보름. 이안은 가능하면 그사이 진과 에이린의 관계가 돈독해지길 바라고 있었다.
‘기둥 하나가 무너질 것이니까.’
그 전에 새로운 버팀목을 세워 두면 진이 조금이나마 편해질 터.
이안은 볼일 다 봤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고, 에이린은 전투화를 든 채 어정쩡 그를 배웅했다. 갑작스레 와서는 폭탄 같은 말만 투척하고 가 버리니,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눈빛이다. 돕다니? 뭘?
“저기, 이안 장관님.”
에이린은 반사적으로 그를 붙잡았다. 그러곤 평소 담고 있던 진심을 이야기했다.
“고맙습니다.”
“…무엇이?”
“여러모로 신세를 많이 지지 않았습니까. 말씀하시는 것이 꼭 떠날 사람처럼 느껴져서, 지금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솔직하게 이르는 모습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무엇에 대한 긍정인지 모르겠다. 신세를 많이 졌다는 것? 아니면 꼭 떠날 사람 같다는 것?
이안은 말을 고르더니, 나지막이 일렀다.
“자의로 떠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 그렇지요. 하긴, 장관님께서 어딜 가신다고. 송구합니다. 제가 허튼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 이만.”
이안이 가볍게 묵례하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내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마법사들과 함께 천막 사이로 사라졌다.
에이린은 전투화만 만지작거리며 그가 남긴 말들을 곱씹었다.
푸드드득!
그때, 어디선가 날아오르는 비둘기들. 모두 다리에 비단 천이 묶여 있었다. 제국방위부에서 황궁과 버고스 그리고 클리포포드 등, 종전을 알리기 위해 날린 전서구였다.
놈들은 백색의 날개를 크게 뻗어 토올룬의 하늘을 가로질렀다.
‘정말로 전쟁이 끝나긴 했구나.’
에이린은 전투화 끈을 다시 묶으며 자리에 앉았고,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트웰러는 고개를 돌렸다.
전쟁은 끝났으나, 황궁의 역사는 계속 흐르고 있었다.
* * *
“마산타르 신전은 이드갈로 봉인해 두었으나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이드갈은 결국 깨지기 마련이니까. 트웰러 장관께 제안할 관리 방안을 보고서로 올리도록. 당시 신전에서 있었던 일은 이미 공유되었던가?”
“…….”
“그리고 말인데. 러더포드와 다몬 왕의 회귀에 대하여 알아볼 필요가 있다. 두 사람의 회귀를 주도했던 라주 대신관이 죽으면서 그 굴레가 끊어진 것 같긴 한데, 영 미심쩍은지라. 의견 있나?”
“…….”
“아, 트웰러 장관께 다몬 왕의 혈통에 대한 조사도 함께 부탁하면 되겠군. 노예 시장은 사라졌어도 그 자료는 어딘가에 있을 거니까. 바누사가 알고 있을지도 몰라. 안 그런가?”
“…….”
이안이 서류를 작성하며 질문을 던졌지만, 어찌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한참 후, 뭔가 이상함을 느낀 이안이 드디어 펜을 멈추고는 고개 들었다. 마법사들이 일렬로 주르륵 선 채 이안을 노려보고 있었다. 심통이 잔뜩 나고, 무언가 탐탁지 않다는 듯이.
“이안 님.”
“…실수했군.”
“예, 바로 그겁니다!”
“바누사는 소방 담당이라 소관이 다르지.”
“말고요! 돌아 버리겠네, 진짜! 지금 뭐 하십니까?”
“뭐 하긴?”
일하는데?
이안과 마법사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쳐다봤다. 차분한 아이와 달리, 어른들은 속이 뒤집혀 연신 몸을 비틀어 댔지만.
“그러니까, 지금 그걸 왜 하고 계시냐고요!”
“내가 안 하면 누가 하나? 결재자가 나인데.”
“이안 님은 저기! 저기가 제자립니다!”
처억!
마법사들이 가리킨 것은 침상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일어나자마자 보고서 작성에 황제 폐하 알현까지는 그렇다 치자. 근데 왜 다시 책상에 앉는 건데?
마법사들이 머리를 쥐어 뜯어 가며 지랄 발광을 떨어 댔지만, 이안은 무시하고 계속 보고서를 적어 냈다.
“쉴 사람은 쉬어도 된다.”
“그게 바로 이안 님이라니까요?!”
“저기, 이안 님. 하나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무엇이지?”
“서류 찢으면, 저도 찢으실 겁니까?”
상당히 공손한 말투. 하지만 그렇지 못한 내용. 째앵! 이안이 눈빛을 번뜩이자, 마법사가 그럴 줄 알았다며 히죽 웃었다. 뜯어말리고 싶은데 목숨 걸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네.
이안은 결국 펜을 내려놓고서 이마를 꾹꾹 눌렀다.
“호들갑 그만. 모두 정신 바로 차려라. 아코렐라의 현혹에 넘어가지 말고.”
“옴마나, 세상에? 현혹이라니요! 이안 님, 저는 지극히 상식적인 선에서 주장하는 겁니다. 추쇄 마법을 그만큼씩 쓰고서 멀쩡하다는 게 어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까? 말이나 되냐고요?”
“옳소! 이번만은 아코렐라 대장의 말이 옳습니다!”
“누가 가서 베릭 놈 좀 데리고 와라. 개를 풀어놔야 정신 사나워서 일 안 하시지.”
“말도 마. 걔 바빠서 얼굴 보기 힘들더라.”
“엥? 베릭이? 진짜?”
“이젠 개가 아니라 소야. 소.”
잠깐 풀어졌더니 다시금 시끌벅적해졌다.
아무래도 이것 또한 ‘이안 베로시온’이 지워진 여파겠지. 신의 육신이라는 인지가 있으면 어느 정도 납득을 하고 넘어갔을 것 같은데, 그게 없으니 저들 상식선에서는 당최 받아들일 수 없는 게다.
이안은 결국 타악, 펜을 내려놓았다.
“오, 이안 님. 드디어 저희 의견을 들어주시는 겁니까?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편히 모시겠습니다. 오늘 햇살이 좋아서 침구도 뽀송뽀송 잘 말려 놨답니다.”
“말고.”
이안은 손을 단호히 저으며 거절했다. 은근히 감도는 미소와 함께.
싱글벙글 웃던 마법사들이 단번에 굳어 버렸다. 저 미소, 뭔가 불길하다.
“다들 기운이 넘치는 것 같으니 임무를 하달하겠다.”
“아, 저기-”
“알아서 분배하여 이행하도록. 첫 번째. 토올룬 왕의 이복동생인 아리스의 시신을 찾는다.”
바리엘의 뜻대로 바누사를 지도자에 올리기 위해서는 남은 세력을 완전히 정리하는 게 중요했다.
지금, 살아남은 왕의 핏줄이라고 하면 아리스밖에 없지 않은가? 결전 당시 수도 내 주민을 모조리 죽였다지만, 아이가 살아서 도망쳤을 가능성도 희박하게나마 존재했다.
마법사들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어, 어, 어떻게요?”
“알아서. 그것까지 내가 일러 주는 게 맞나?”
“아닙니다아!”
“두 번째. 마력증폭제 재료를 모아올 것.”
그 말에 아코렐라의 귀가 쫑긋거렸다. 안 그래도 재료 부족으로 고민이 많았는데, 잘 됐다 싶은 게다.
하지만 문제는.
“어디서요?”
“그 또한 알아서.”
헉 씨. 이안 님, 제대로 화났나? 좀 덜 까불걸. 마법사들이 눈알만 데굴데굴 굴려 대며 눈치를 살폈다. 이렇게 된 이상, 임무 중 그나마 쉬워 보이는 것을 선점하는 게 살길이다.
“세 번째-”
“세번째에에에!”
“제가 세 번째 임무를 맡겠습니다아!”
“짜식들이 위아래가 없어! 짬순으로 가자. 제가 적임자입니다!”
모두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세 번째가 뭔지는 모르겠으나, 사막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는 아리스 시신 찾기, 아코렐라와 함께 떠나는 곡괭이질 노가다 여행보다는 낫지 않을까?
이안은 미리 적어 두었던 서신 한 장을 품에서 꺼내 들었다.
“세 번째. 이걸 아스타나에 있는 하샤랑 토쿤다이 왕에게 직접 전해 줄 것.”
“그, 그 먼 곳까지 직접 말씀입니까?”
“마력이 없으면요?”
“마력이 없지, 다리가 없는 건 아니지 않나. 방위부에 튼튼한 말을 내어 달라 요청하도록.”
싸아아악- 마법사들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눈치 빠른 자들은 벌써 후다닥 밖으로 뛰어가며 시체나 재료를 찾아오겠다 외쳤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솔직히 대충 시간 보내다 보면 어찌어찌 마무리될 임무였지만, 세 번째는 고생길이 명확했기에.
“어, 어어?!”
얼떨결에 서신을 받게 된 토미가 울상이 된 채로 앞뒤를 번갈아 봤다. 이안은 고생 좀 하라는 뜻으로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잘 다녀오게. 보름 안으로 못 돌아오겠다 싶으면 알아서 바리엘로 오고.”
“아니, 잠깐! 이, 이안 님! 잘못했습니다!”
“그럼, 수고.”
이안은 다른 마법사에 의해 질질 끌려 나가는 토미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가 사라지자, 드디어 주위가 조용해졌다. 이안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꾹꾹 눌렀다. 스트레스성이 아니다. 이것은…….
‘그만 신호 주셔도 됩니다.’
그러자 울컥 치솟는 구역감과 함께 피비린내가 감돌았다.
이안은 아무렇지 않게 입가를 닦아 내며 옷매무시를 정돈했다. 그러곤 바깥의 소란에 주의했다.
한편, 마법부 천막 밖.
오랜만에 나타난 베릭이 뭔가를 옆구리에 끼고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여.”
“옴마나, 베릭 대장 아니세여?!”
“닥쳐. 다들 어디 가?”
“가는 게 아니라 쫓겨나는 거다. 그러는 넌? 들고 있는 건 뭐고?”
“클로이네 마차에서 가져옴. 이게 몸에 그렇게 좋다 하더라고.”
“엥?”
“이안이는? 안에?”
클로이가 시아오시를 위해 온갖 영약을 꿍쳐 놓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리고 그걸 가만히 두고 볼 베릭이 아니었다. 나눠 먹으면 좀 좋아? 안 그래도 요즘 이안이가 퍽 비실비실한데.
“계시지. 들어가 봐라.”
“어여. 그려. 토미 저놈은 왜 죽상이래?”
“심부름 멀리 가게 생겨서.”
“지랄.”
“지랄이라니! 지랄이라니! 네가 뭘 알아?”
“어어, 진정해, 토미. 갈 길이 먼데 힘 빼지 말고.”
“아아아악!”
베릭은 코를 훌쩍이며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사각사각, 익숙한 펜 소음이 듣기 좋게 들려왔다.
곧 인기척을 느낀 이안이 시선을 슬쩍 들어 베릭을 맞이했다.
“왔느냐.”
“어. 몸은?”
“괜찮아. 다들 그것만 계속 물으니 지겹다.”
“그래?”
베릭은 영약을 책상 위에 툭 올려놨다. 괜찮다니까 다행이었다. 이안이가 괜찮다면 정말로 괜찮은 거니까. 늘 그랬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이상했다.
‘…왜 피 냄새가 나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