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72
제772화. 보름간의 일지
“마법사님들 아니신가? 왜 여기 계시지?”
“몰라. 찾는 시체가 있다고 하던데.”
“시체? 무슨 시체? 어떻게?”
“마법사라고 해서 뭔 수가 있나 싶었는데, 노가다밖에 방법이 없나 봐.”
“어이구, 귀하신 분들이 어쩌다가.”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시네. 저기, 곡괭이 들고 다니는 마법사들보다는 낫다고.”
토올룬의 해는 꾸준히 떠오르고 지기를 반복했다. 임무가 할당된 마법사들은 성실하게 밖으로 나돌며 시체들을 손수 뒤집었고, 곡괭이와 삽을 들고 다니며 온갖 곳을 쑤셔 댔다.
까앙! 깡!
“거기 소리 좋다! 계속 파!”
“대장, 이거 일반 암석 같습니다만.”
“새끼가 귀먹었나. 소리가 다르잖아, 소리가!”
“엥? 대장, 이거 세를로드론디 아닙니까?”
“우와아, 시발! 그게 왜 여기서 나와?”
어쩌다 마음에 드는 광물을 발견하면 아코렐라는 두 손으로 들어 올린 채 막사 곳곳을 뛰어다녔는데, 그때마다 병사들은 익숙하다는 듯 환호하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사아아악.
“이리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로군요, 바누사.”
“그러합니다, 트웰러 장관님.”
“그대 조국의 비극은 마음 깊이 애도하오.”
“…부디, 진심이시길.”
“맹세컨대, 나는 무기를 쉬이 휘두르지 않소.”
바누사와 트웰러 역시 손을 맞잡았다.
바누사는 모습을 감추었던 이틀 동안, 수도 인근에 흩어졌던 정령술사들을 찾아 모았는지 혼자가 아니었다. 각기 가문은 다르지만, 토올룬을 다시 일으키고자 하는 자들이 결연한 낯으로 트웰러를 응시했다.
“토올룬에 대해서는 나보다 그대가 잘 알겠지.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일러 주시오. 내 최선을 다하여 그대들 도울 것이니.”
바누사는 트웰러 뒤에 서 있는 이안을 흘겨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맞물리는 걸 트웰러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바누사의 시선이 다시 트웰러를 향했다.
“황제 폐하께 인사드리며 나누겠습니다. 현재 수도는 회복 불능 상태. 인근 도시를 임시 수도로 세우는 방안을 고려 중입니다. 반발이 꽤 있겠지만, 나라가 더 혼란스러워지기 전 서둘러 결집하는 게 좋겠습니다.”
트웰러는 따라오라는 듯 앞장서서 걸었고, 바누사는 이안을 스쳐 지나갔다. 아마 이안이 떠나고 나면, 트웰러 장관은 바누사에게 ‘소문’의 근원을 따져 묻겠지.
이안은 그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란에 고개 돌렸다.
“아악! 또! 또 없어졌어!”
“클로이 영애, 왜 그러십니까?”
“제가 가문에서 몰래 받아 꿍쳐 둔 영약 말입니다!”
“그, 그걸 그렇게 크게 말씀하시면…….”
“아니, 어느 미친놈이 꼭꼭 숨겨 놔도 기가 막히게 찾아서 훔쳐 갑니다. 대체 어떤 놈이…. 이거 안 되겠어요! 오늘부터 제가 직접 경계 서겠습니다!”
“아, 그거-”
“아십니까? 범인이 누군지?”
“그, 개새끼라고만 알아 두시면 됩니다. 허허.”
“개새끼요? 아니, 그야 당연하지요! 내 영약들을 죄다 훔쳐 갔으니까! 개 같은 새끼!”
“허허, 그 뜻이 아니긴 한데…….”
이안은 못 들은 척 몸을 돌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가져오는 영약 출처가 바로 저기였구나.
그때, 소란을 들은 시아오시가 나타났다. 그러자 길길이 날뛰던 클로이는 수줍게 몸을 꼬며 언성을 낮추었다. 그 급격한 태세 전환이 우스웠다.
‘관계가 순조로우니, 보기 좋군.’
그렇다면, 에이린은?
“흐아아압!”
“어이고. 힘이 장사네!”
“봐주지 마십시오!”
이안이 넌지시 찔러봤음에도 진과 에이린은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쯧쯧. 폐하께선 대체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시간 외의 별다른 방도가 필요할 듯싶었다. 물론, 이안의 몫은 아니고.
이안은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병사들과 수련 중인 에이린을 스쳐 지나갔다. 노을이 유난히 붉은 날이다.
한편-
히히힝! 타닥타닥!
토미는 상체를 바짝 낮춘 채 정면만 보며 말을 달리는 중이었다. 서둘러야 했다. 해가 지면 이동에 제약이 생기니까.
그는 말 옆구리를 차며 품에 넣어 둔 서신을 가만히 매만졌다.
‘이상한 내용이다.’
서신은 봉투로 봉해진 것이 아니라, 그저 여러 번 접혀 있었다. 이는 토미가 봐도 상관없다는 뜻. 그는 무료한 여정을 달래기 위해 첫날 바로 내용을 확인했다. 혹시 중간에 분실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내용 숙지는 사절의 의무라 변명하며.
-아스타나의 하샤랑 토쿤다이 왕에게.
그대의 친구, 이안 히엘로가 전합니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북쪽 지대를 아우르는 마물의 범람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세상은 바리엘을 중심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함께 기뻐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음 깊이 그러하다면, 제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아스타나에 있는 수많은 주술사 중 운명을 점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부디 그자를 보게 해 주십시오. 굳이 바리엘까지 올 것은 없고, 편한 방식을 정해 연락을 주면 될 것입니다. 이 서신을 전달한 마법사와 의논하십시오.
운명을 점치는 자? 왜 그런 자를 찾으시는 거지? 그것도 신탁이라는 가까운 수단을 두고, 굳이 먼 아스타나에서.
당최 알 수 없었으나, 토미는 금세 납득했다. 이안 님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한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그는 그저 이동하는 동안 제발 쓸데없는 강도 따위 만나지 않길 기도했다.
푸드드득! 푸득!
토미의 말이 내달리는 것처럼 시간 역시 멈추지 않고 내달렸다. 비단 천을 묶은 전서구들이 각자 목에 걸린 마력석 기운을 따라 날갯짓했다.
그중 한 마리가 제일 먼저 버고스의 수도, 칼라마트에 당도했다.
“끝났군.”
“종전입니까?”
“그래. 바리엘의 승리다. 클리포포드 전서구는 여기서 잠시 쉬게 했다가 남단으로 보내라는구나.”
다니트 홀린 부인은 서신을 카일라에게 보여 주었다. 딸아이의 다리는 오래 걷지 않은 탓에 앙상히 말라 있었으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났다.
“제국군이 돌아오면, 버고스의 새 왕조도 공식적으로 인정받겠군요.”
더하여, 전 런크비스 왕조의 마지막 왕, 다몬의 삶에도 마침표가 찍힌다. 버고스는 진정으로 새로이 출발하는 것이다.
“그래. 황궁에서 연락이 오면 다녀오마.”
“아니요.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가서 가문 일도 마무리할 게 있고, 무엇보다 제 즉위 아닙니까.”
말씀은 고맙지만, 제 일이니 제가 할게요. 이제 다리 불편한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요. 똑 부러지게 거절하는 딸아이를 보며, 다니트 부인은 중얼거렸다.
“누굴 닮았는지, 원.”
“어머니, 그나저나 버고스가 제일 먼저 연락받은 것 같습니다. 바리엘에는 언제쯤 갈까요?”
“글쎄다. 엿새 정도 더 걸릴 것 같구나.”
다니트 부인의 예측은 정확했다. 칼라마트에 도착한 전서구들이 깨끗한 물과 모이를 먹는 동안, 황궁행 비둘기는 엿새를 더 날아갔으니.
그리하여 승전보를 품은 전서구가 바리엘 중앙의 황궁 창문을 두드린 것은, 느지막한 오후 네 시쯤이었다.
“으하아아암.”
로만드로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앉아 늘어지게 하품해 댔다. 황궁은 조용했다. 황제 폐하도 없고, 제국방위부와 마법부도 없고, 베릭 그 똥강아지 놈도 없었기에.
타닥타닥!
“로, 로만드로 님! 로만드로 님!”
하여, 그를 다급하게 부르며 달려오는 발소리가 심장을 뛰게 했다. 분명 좋은 소식이거나 나쁜 소식, 둘 중 하나일 것이므로.
로만드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인데!?”
“종전입니다! 바리엘의 승리입니다!”
“…….”
로만드로 곁에서 긴장하던 마법사 둘이 눈을 번쩍 뜨더니 그대로 굳어 버렸다. 몇 초간의 정적. 그들은 동시에 서류를 던지며 환호했다.
촤아아악!
“와아아아! 그래, 역시 바리엘이지!”
“바-리엘! 바-리엘!”
“그럼 다들 언제 돌아오신답니까?”
“긴급회의가 소집됐습니다. 자세한 건 가서 들으시면 되는데, 대충 전해 듣기로는 바리엘력 기준, 열다섯 번째 날 정오에 포탈을 연다고 합니다.”
“포탈? 거기서?”
“네. 그 길로 귀국할 것 같아요.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전쟁 후에도 그런 힘이 남으셨다니.”
“허어, 그러게. 토올룬이면 거리가 상당한데.”
“포탈이 열리면 여기서는 주둔군이 쓸 재건 물품이랑 보급품만 넘겨주면 된답니다.”
“어어, 잠깐!”
로만드로는 뭔가 깨달았다는 듯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낯빛이 심상치 않았다. 기쁨에 취해 있던 마법사들이 덩달아 멈칫거렸다.
“왜, 왜 그리십니까?”
“…열다섯 번째 날 정오라고?”
“예, 분명히 그리, 헉!”
“…허어억!”
모두가 깨달았다. 그리고 너 나 할 것 없이 동시에 밖으로 달려 나갔다. 로만드로는 회의장으로, 마법사들은 각자의 담당 부서로.
…열다섯 번째 날이라니! 이럴 수는 없다!
우당탕탕!
콰앙!
“내일이잖아!”
* * *
“어느새 내일이군.”
“자정이 넘었으니, 이제 오늘입니다.”
진은 ‘그런가’, 중얼거리며 웃었다.
밤공기가 꽤 서늘했으나 열감이 오르는지 그의 볼이 붉었다. 바리엘로 돌아가기 전, 트웰러 장관과의 마지막 저녁 식사 자리에 좋은 술이 올라왔던 모양이다.
“시간이 너무도 빠르게 흘러. 보름이 언제 가는가 싶었는데, 이리 눈앞으로 다가왔군.”
이안은 진을 가만히 쳐다봤다. 보름달 아래라 그런지 푸르스름한 빛이 온몸에 만연했다.
“…….”
예전에는 잘 몰랐는데, 보면 볼수록 자신과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아, 그러니까- 히엘로 말고, 베로시온인 자신과 비교하여서.
그 시선을 느꼈는지, 진이 물었다.
“왜 그러는가?”
“…기쁘십니까?”
너무도 당연한 물음이었다.
진은 웃으며 그를 돌아봤다. 이안의 어깨 너머로, 마법사들이 대지 위에 거대한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우주와 같이 드높은 밤하늘 아래, 금빛 은하수가 조금씩 새겨지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병사들조차 잠자는 것을 마다하고 몰려들어 이를 구경하고 있었으니. 어디선가 듣기 좋은 노랫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오는 것은 덤이다. 참으로, 참으로 좋지 아니 한가?
“기쁘고말고. 행복하고말고. 내 천하를 다 가진 것 같다.”
진이 활짝 웃었다. 그의 얼굴을 가로지르는 상처가 오늘따라 옅어 보였다.
이안은 진을 따라 웃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앞으로 그에게 얼마나 큰 시련이 닥칠지 알고 있기에.
“폐하, 송구한 말씀입니다만-”
진은 술을 한 모금 머금으며 마법사들을 구경했다. 뭔가 잘못되었는지, 퍼엉- 하는 소리와 함께 불빛이 반짝거렸다.
“폐하의 결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제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지요.”
그림자신은 자신의 적이었다. 이것은 진이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진실이다.
진은 이안의 말을 되새기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시작이라. 그래, 그대의 말이 옳다. 나의 역사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지.”
시작은 끝이요, 끝은 시작이지 않나. 전쟁이 끝났으니 그와 관련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끝도 없이 들이닥칠 터. 진은 이안의 걱정을 그리 해석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안이 옆에 있다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거늘.
‘폐하, 저는 폐하가 오롯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분명히 잘 해내실 것이라 믿습니다.
이안은 속마음을 혼자 묻어 두고서 진의 시선을 따라 고개 돌렸다. 마법사들이 연신 끙끙대더니, 도저히 안 되겠다며 이안을 불렀다.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듯 지친 낯빛이다.
“이안 니이이임! 도와주십시오!”
“맨땅에 맞추는 건 너무 어렵습니다.”
“원래 하던 대로 해. 허공에 띄우면 되잖아.”
“베릭, 모르면 빠져. 병사들을 어떻게 올릴 건데?”
“아. 그렇네. 네놈들 지금 빈껍데기라 힘없지.”
“이안 님! 오신 김에 베릭도 죽여 주십시오!”
이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장 난 듯 반짝이는 마법진 쪽으로 걸어갔다. 병사들의 고개가 그의 움직임을 따라 천천히 돌아갔다.
이윽고 대지 가운데 선 이안. 아이는 부드럽게 손을 휘저었고, 그 궤를 따라 금빛이 일어났다.
지이잉! 지잉!
아름다운 금빛 줄기가 이안의 주위에 깃들었다. 전쟁의 고단함을 단번에 지워 내는 온기. 천상의 선율이 현현한 듯했다.
그 자리의 모두가 넋을 놓고 이안의 독주를 지켜봤다. 실로 눈을 뗄 수 없는 몸짓이 이어졌다.
“와…….”
그 자리의 모두는 이날 밤을 영원히 잊을 수 없으리란 걸 직감했다. 진 역시 마찬가지다. 훗날, 여러 의미로 그는 이날 밤을 잊을 수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