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73
제773화. 개선식
중앙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전날 밤, 황궁에서 메일리데일리를 통해 공식적으로 종전을 선언한 이후, 열두 시간 넘게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퍼어엉! 퍼엉!
사람들은 에헤라 좋다며 춤을 췄고, 술집은 끝도 없이 맥주를 퍼 날랐다.
꽃집도 호황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꽃을 한 움큼씩 사서는 거리에 흩뿌려 대고 있었으니. 말 그대로 축제 중의 축제다.
“흐음.”
“왜 그래?”
“거짓말 같아서.”
“취했네. 황궁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했구먼, 거짓말은 무슨 거짓말. 술맛 떨어지게 할 거면 먼저 들어가소!”
“아니, 어제만 하더라도 소식 하나 못 듣고 있었잖아. 갑자기 하루 만에 날아온다고 하니까 안 믿기는 걸 어쩌나.”
“마법! 그것이 마법이다, 이거거든.”
“그치? 정오 되면 갑자기 번쩍번쩍하겠지?”
“으하, 궁금하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마법사들이 일격에 불바다를 만들었나? 모르긴 몰라도 정말 볼만 했을 거라고. 으하하!”
타국을 무대로 일어난 전쟁이다. 중앙 사람들은 전쟁 과정을 직접 보지 못한 터라 바리엘의 승리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셀 수 없는 죽음, 무너진 잔해, 일그러진 운명 따위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엄마! 아빠 드디어 볼 수 있어요?”
“그럼, 오늘 오신다니까 나가서 기다리자.”
“와아아아!”
정오가 다가올수록 거리는 인파로 가득 찼다. 중앙 길을 제외하고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황제의 승리를 축하하는 개선식의 열기는 뜨거워져만 갔다.
바리엘을 연호하는 함성이 점점 커지자, 로만드로는 초조한 낯으로 자신의 볼을 문질러 댔다. 그가 있는 곳은 황궁 출입문 위. 중앙 성문이 직선으로 내려다보이는 위치였다.
“웃으십시오, 로만드로 님. 좋은 날인데요.”
“물 좀 가져다드릴까요?”
“으응, 고맙지만 괜찮아. 나도 웃고 싶은데, 마음이 편치 않아서. 이런 식으로 폐하를 맞이하는 게 맞나 싶고.”
황궁에서는 종전을 선언하고, 폭죽 터트리는 것 외에 어떠한 것도 준비하지 못했다. 현재 수도에 남아 있는 마법사는 두 명. 게다가 당장 전날 연락을 받았던 터라 환영 준비를 하기에는 물리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알고 있지만! 그렇지만! 로만드로는 안타까운 마음에 흐물흐물 녹아내려 입을 비죽였다.
“방도가 없습니다. 인력도, 시간도 없는데 뭘 어찌하겠습니까. 서신에서도 중앙 길을 열어 두라는 것 외에 별다른 지시가 없었고요.”
“네, 맞습니다. 보급품 맞추는 것만 해도 잘했다 칭찬하실 것입니다.”
“폐하께서 이루신 첫 전쟁의 승리이건만, 흐잉.”
“있는 폭죽 없는 폭죽 죄다 그러모아 터트리는 게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웃으십시오! 오랜만에 뵙는 것이잖아요.”
“곧 있으면 정오입니다!”
“이런, 벌써? 혹, 시계에 초침 있으신 분?”
“나! 나 있어.”
로만드로는 후다닥 회중시계를 꺼내 들었다. 째깍째깍, 초침이 움직일 때마다 그의 콧구멍이 기대감으로 벌렁거렸다.
“10.”
온다, 드디어.
황궁의 주인이 돌아온다!
“9.”
“북을 울려라! 폭죽을 더 많이 터트려!”
“황제 폐하께서 돌아오신다!”
“모두 함성을 내질러라!”
신호를 받은 황궁 악단이 있는 힘껏 북을 두드려 댔다. 심장을 강하게 울리는 진동이 사람들의 함성과 어우러져 주위를 흔들었다. 8… 7… 로만도르가 계속해서 숫자를 세었지만, 바로 옆사람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다.
두우우웅! 둥! 두둥!
째깍! 초침이 12시를 넘어가자, 로만드로는 번뜩 고개를 들어 정면을 쳐다봤다. 군중 역시 그곳에 시선을 고정했다. 성문에 그려진 거대한 바리엘 문양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윽고, 검은 달이 열렸다.
사아아악!
제일 먼저 모습을 보인 건 바리엘 국기를 든 기수. 고단했던 전쟁 탓에 남루한 차림새였지만, 눈빛에는 자부심이 그득했다. 조국에 승리를 안겨 주었다는 긍지였다.
“오, 오셨다.”
“와아아아아!”
“바리엘! 바리엘!”
이어서 모습을 내보이는 황제. 금빛 갑옷이 찬란하게 빛나 위엄 그 자체다. 그는 가벼운 미소를 머금으며 자신을 마중 나온 백성들을 다정히 둘러봤다.
‘돌아왔다는 게 이런 거군.’
아직 황궁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는 여전히 무거운 갑옷을 입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천천히 말을 몰며 행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익숙한 풍경을 보자마자 마음 구석에 숨어 있던 긴장감이 탁, 하고 풀리는 기분. 종전 선언 직후 모든 긴장이 해소됐다 생각했는데, 역시 나고 자란 곳은 다르다, 이건가.
진이 시아오시에게 속삭였다.
“트웰러 장관도 함께했으면 좋았겠어.”
“그러게 말입니다.”
진에게는 첫 전쟁이나, 트웰러에게는 마지막 전쟁이지 않나. 제국민의 환호성 속에서 끝맺을 수 있었더라면 완벽했을 것인데.
진은 사방에서 날아드는 꽃잎 사이로 손을 흔들었다.
“폐하,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대가 고생 많았지. 그간 정말 애쓰셨소.”
“내세울 것이라고는 경험밖에 없던 저를 믿고 맡겨 주셨으니, 이는 제 인생 늘그막에 깃든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런 말 마시게. 나 또한 그대를 만나 행운이었다.”
진은 전날 저녁, 트웰러와의 식사 자리를 떠올렸다. 그는 진에게 술을 따라주고서 조심스레 일렀다.
“…폐하, 한 명의 무장이자 노인으로서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외다. 그대의 말엔 지혜가 가득하니.”
“폐하, 자그마한 의심도 무시하지 마십시오. 제가 전장에서 수십 년 살아남았던 까닭은, 오로지 그것 하나였습니다.”
“또 이안 경을 이르려는 것이지.”
“폐하가 떠나시면, 저는 바누사를 조사할 것입니다.”
“바누사를?”
“예, 아무래도 최근 떠도는 괴이한 소문이 그녀와 관련 있는 듯 보입니다. 바누사와 이안 장관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는지를 중점으로 확인하여 보고서 올리겠나이다.”
“무언가 나오면 이르시오. 자꾸만 내게 의심을 심으려 하지 마시고.”
진이 술잔을 내려놓았지만, 트웰러는 물러서지 않았다.
“제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장관.”
혹여 바누사와 이안이 거래를 한 것이라면? 그래서 트웰러 자신을 여기 남겨 두고 황제를 모셔 가는 거라면? 황궁에서 마법부를 견제할 세력이 남아 있던가? 제이럿도 죽고 없는 마당에.
진은 단호하게 트웰러의 가정을 부정했다.
“그럴 리 없소. 내가 보았을 때, 그대는 나보다 오래 살 것이외다.”
“농이 지나치십니다.”
“그대는 걱정이 지나치고.”
“노인네의 걱정에서만 그칠 수 있다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습니다.”
“되었어. 한 잔 더 하시게. 내 오늘은 그대가 아무 말도 못하게끔 계속 권해야겠다.”
“어이고, 이런.”
진의 뒤를 따라 황궁친위대가 나타났다.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다 보니 자세히는 모르지만, 어쩐지 머릿수가 확 줄어든 것 같다.
특히, 삼대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붉은 머리칼을 대충 묶은 남자 한 명만이 서 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의 환호성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아…….”
압도적인 승리였으리라 생각했는데, 제국에서 제일간다는 마검사들이 저리도 많이 죽었나? 낯빛이 굳어 버렸다.
그들은 재빨리 병사들을 살폈다. 가족, 연인, 친구를 찾아 부르짖는 목소리가 점차 커졌다.
“아빠! 아빠! 어디 있어요?”
“젠! 세상에! 오, 세상에, 살아 돌아왔구나!”
“보고 싶었다. 정말로 보고 싶었다.”
“아저씨, 우리 아버지는요? 같이 가셨잖아요.”
“여보! 여기, 나 여기 있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안 보여, 우리 아이가 안 보여.”
“침착하세요, 아직 다 나오지 않았어요.”
서로를 알아본 자들에게 천국이 펼쳐졌다. 그들은 얼싸안고 이마를 맞댄 채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리고 혹여나 영원히 전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말들을 다정히 속삭였다. 무사히 돌아와 고맙다고, 보고 싶었다고, 사랑한다고, 당신은 너무도 소중한 사람이라고.
“그때 고마웠어. 덕분에 살았다.”
“어어, 여기 나랑 막사를 같이 썼던 친구!”
“반가워요, 부인이시구나.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또 보자!”
“그래, 술 한잔하자고!”
전우애를 쌓았던 병사들이 포옹을 나누고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투구와 갑옷을 벗고서 군중과 섞여들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행진이 계속될수록 불안한 마음에 두 손을 꼭 쥐었다. 갈피 없이 시선이 흔들리고, 몇몇은 아예 병사들 틈으로 파고들어 소중한 이를 찾았다.
“없어, 없다고…….”
“제이드! 제이드! 제발!”
“우리 아들 본 사람 있어요? 우리 아들…….”
그때였다.
사락.
어디선가 반짝임이 일었다. 그것은 한낮의 반딧불이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이내 하나씩 모여 사람의 형상을 이루었다.
“아…….”
가족을 찾지 못한 자들은 홀린 듯 다가가 그것을 어루만졌다. 이목구비 없는, 그저 빛무리에 불과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애타게 그리던 소중한 이였다.
여기저기서 낮은 울음이 터져 나오자, 모두가 손을 모으며 숭고한 희생을 위해 기도했다.
사아아악.
껴안았던 빛무리가 천천히 하늘로 올라갔다. 마치 세상을 떠나려는 것 같다. 형상이 흩어지며, 불빛은 바람을 따라 사라졌다. 다들 아쉬워하며 그것을 눈으로 끝까지 쫓았다.
“폐하, 여기서 잠시 멈추어서 뒤돌아 주십시오.”
어느덧 가까이 다가온 이안이 진에게 속삭였다.
그는 이안의 말대로 몸을 돌렸고, 이내 불빛에서 자신에게 집중된 군중의 시선과 마주했다. 황제는 결연하고 엄숙한 눈빛으로 주먹을 들어 올렸다. 전사자들의 희생은 숭고한 것이었노라고 위로하듯.
끼이익.
굳게 닫혀 있던 황궁 출입문이 좌우로 젖혀졌다. 모두가 주인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동시에 몸을 낮췄고, 이안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황궁의 주인이라.’
“이안 님.”
그때, 헤일이 다가와 신호했다. 보급품을 토올룬으로 보낼 차례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신을 다잡았다.
* * *
“폐하! 무탈하십니까? 실로 걱정했습니다.”
“수상. 오랜만에 보는군. 잘 계셨소?”
“많이 여위셨어요. 세상에, 무사히 돌아오심에 감사합니다.”
수상을 비롯한 황실 관료들이 기뻐하며 황제에게 다가왔다. 진은 그들을 가볍게 껴안았고, 그간 못 보았던 관료들끼리도 안부를 나눴다.
수상이 이안을 향해 미소 지으며 치하했다.
“이안 장관. 실로 일이 많았소.”
“아닙니다, 수상님.”
“폐하,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피곤하시겠습니다.”
진이 본궁으로 오르자, 이안은 마법사들을 돌아봤다. 토올룬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황궁으로 들어오니 거지 무리가 따로 없다.
“전원 사흘 동안 휴가다. 하나도 빠짐없이 귀가하여 쉬어라. 마법부는 내가 맡고 있겠다. 이른 시일 내에 폐하께서 종전 연설을 진행할 것이니, 그때까지 최대한 힘을 회복하도록.”
“말도 안 됩니다!”
“이안 님, 그러지 마시고, 같이 쉬셔야-”
평소 같았으면 파격적인 유급휴가에 신바람 났을 그들이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마법사들이 걱정스레 휴식을 제안하는 순간이었다.
“이안! 세상에, 이보게들!”
로만드로가 멀리서 우다다다 달려왔다. 그는 단번에 이안과 마법사들을 끌어안았고, 눈물을 터트렸다.
“아이고, 고생들 했어. 다들 너무 잘해 주었네. 크흑. 나, 너무 보고 싶었다고.”
“로만드로 님! 살이 더 찌셨네요.”
“저도 보고 싶었습니다.”
“다들 괜찮지? 다친 곳 없지?”
로만드로는 보이지 않는 얼굴들이 꽤 있음을 알아챘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살아 돌아온 자들에게 감사할 시간이었으니까.
이안은 웃으며 그의 등을 토닥였다.
“로만드로 님도 애쓰셨습니다.”
“나는 뭐, 크흑, 흐엉, 아무것도 안 했써! 큰일은 자네들이 했짜나!”
이안은 마법사들에게 물러가라 손짓한 다음, 그와 함께 마법부 쪽으로 걸어갔다. 끊임없이 무어라 떠들어 대는 로만드로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이안이 넌지시 물었다.
“한데 말입니다, 로만드로 님.”
“으응?”
“혹 20일 전쯤, 바리엘에 비가 내렸습니까?”
“…20일 전?”
로만드로는 기억을 더듬는 대신 수첩을 꺼내 확인했다. 그날의 간단한 일지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어어, 있군. 비가 갑자기 내려서 마법부 외관 청소를 미룬다고 적혀 있네. 근데 왜?”
그랬구나. 이안은 알겠다는 듯 미소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그저, 궁금해서요.”
로만드로는 앞서 걷는 이안의 뒷모습을 알쏭달쏭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저저, 일벌레. 돌아오자마자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려는 것인지 걱정하면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