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75
제775화. 밝히지 않은 사안
참전 군인이 일상으로 돌아오며 가져온 것은 세 가지였다. 조국을 위해 싸웠다는 명예, 보상금, 그리고 생생한 경험담.
어느 술집을 가더라도 얼큰하게 취해 떠들어 대는 자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심지어는 몇 테이블 떨어진 곳에서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고 있어도, 사람들은 기꺼이 즐겁게 그들의 얘기를 경청했다.
“그때, 막 하늘이 우르르 쾅쾅! 찢어지더라니까!”
“에헤이, 사람아. 과장 그만하시게.”
“과장? 과자앙? 전쟁 나가 봤어? 안 나가 봤으면 말을 하지 말아. 진짜 절경이라니까. 눈 튀어나오고, 입 벌어지고, 심장은 쿵쿵 뛰고!”
“빛기둥이 콰아앙! 수천 개가 떨어지더니 마물 대가리를 한번에 으깨 버리는데, 와, 진짜 대단했어.”
“마물이 북쪽 대지를 가득 채웠을 때는 또 어땠고. 개미 새끼가 기어오르는 것처럼 바글바글했는데, 마법사들이 날아올라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니까 잿더미로 변했지.”
“마법사였나? 마검사 아니었나?”
“뭐가 중요해, 이 사람아!”
“이건 진짜 마법사들 얘기다. 마지막 날, 결전의 그날! 거대한 나무줄기가 피어오르고, 마탑보다도 큰 놈의 몸을 콱 잡아채더니-!”
“와장창! 와장창!”
“아잇! 거기, 조용히 좀 하소.”
“뭘, 그쪽이나 조용히 해.”
“어? 3사단?”
“에엥? 여기서 보네? 이 동네 사람이었구먼.”
“봐봐, 저 사람한테 물어봐. 하늘 찢어진 거, 진짜 말 그대로 찢어졌던 거 봤지? 응?”
“아, 그럼! 마법사들 참 대단했지.”
호오, 오호오!
사람들은 마치 전설의 목격담을 전해 듣는 것처럼 탄성을 흘리며 귀를 기울였다.
마법사들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만, 실제로 볼 일이 뭐 얼마나 있겠나? 일반인은 신년회 때 꽃비 내리는 것 말고는 접할 기회가 없었다.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이지.”
“나, 바리엘 사람이라서 너무 감사한 거 있지.”
“폐하는? 폐하도 실제로 보았소?”
“폐하?”
신나서 떠들어 대던 사내가 잠시 멈칫거렸다. 하늘 위를 나르는 마법사들은 고개만 들면 볼 수 있었지만, 황제는 진영 한가운데 있었던 터라 쉬이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저 저곳에 황제가 있구나, 인지하는 정도.
사내는 술로 입을 헹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세히 보지는 못했어.”
“그리 미남이라고 하시던데.”
“검술에도 능하시고.”
“음. 그랬나?”
전쟁 과정 중, 황제가 직접 나섰던 게 언제였지? 사내는 기억을 더듬으며 볼을 긁어 댔다.
“…마지막, 토올룬 수도에서 결전할 때 가까이 오신 것 같기도 했어.”
“왜?”
“거 토올룬 주민 놈들이 폭동을 일으켜서 정리한다고. 직접 선두로 나서 길을 트시더군.”
사내는 잠시 입을 닫았다. 그 침묵의 의미를 아는 자는 옆 테이블의 전우밖에 없다. 제 손에 의해 처참하게 죽어 나가던 어린것들의 울음이 생각난 것이겠지.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사람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술을 권했다.
“황제 폐하께서 그리 앞장서셨다니, 분명 대단한 과업이었을 것이오. 그 자리에 함께해 영광이었겠소.”
“…영광? 아아, 뭐. 그런가.”
“에이, 겸손은.”
“그래. 생각보다 전사자가 많은 것 같더라고. 그런 곳에서 살아왔으니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누군가 툭, 하고 질문을 던졌다.
“황궁친위대가 좀 많이 죽었지?”
“대장이 싹 갈렸대. 마법부 대장들은 전부 건사하고.”
“이런. 그럴 거면 마법사들을 친위대원으로 넣는 게 맞지 않나? 명색이 황제 오른팔들인데, 마법부보다 실력이 없으면…….”
“이보게, 힘의 근원이 다르다네. 마법부 그쪽네들은 그쪽네들끼리 통하는 뭔가가 있다 했어.”
“그래. 그리고 이제 적도 없잖아.”
“맞아. 마법부 아니고서는 뭐, 엄한 생각 품지도 못 해. 소문으로는 현 황궁친위대 대장이 마법부 장관 쪽 사람이라던데.”
마지막으로 이른 자는 반사적으로 제 안쪽 볼을 깨물었다. 아슬아슬, 선을 넘을 듯 말 듯한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들 술에 취해 있었고, 사실상 영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웃어넘겼다. 그저 조심하라는 조언과 함께.
* * *
스윽.
수상은 안경을 바로 쓰며 신문 글귀를 읽어 내렸다.
메일리데일리를 선두로 하여 바리엘 중앙 신문사들이 하나같이 종전 소식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었다. 버고스, 루스웨나, 토올룬까지 인근 3국을 제패하고 성공적으로 승전을 이끌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개중 몇몇 기사 제목이 수상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승리의 주역, 대제국의 영웅 마법사들!>
-[신께서 함께하신 바리엘의 영광, 그것은 마법>
-[토올룬에 퍼진 괴소문의 정체는? 패잔병들의 마지막 발악인가?>
똑똑.
“수상님. 곧 회의가 시작됩니다.”
“음, 그래.”
보좌관은 기민하게 수상을 살폈다. 무언가 평소와 달랐다. 그는 언제나 대답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이번에는 소파에서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황제가 참석하는 회의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수상은 그 이후로도 신문을 끝까지 읽은 다음,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아, 가지.”
“문제가 있으십니까?”
“그저, 다들 즐거움에 너무 취한 것 같아서.”
수상은 신경 쓸 것 없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마차에 올라탔다.
회의장으로 가는 복도 곳곳이 소란스러웠다. 며칠 간의 축제가 끝나고 모든 게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황제가 전쟁에 나가기 전, 그날로.
“황궁이 이리도 활기차니 보기 좋습니다.”
“그래.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는 것 같구나.”
“이번 회의에서 ‘그 사안’을 밝히실 생각이십니까?”
“글쎄. 상황을 보고.”
“알겠습니다. 그럼 제출용은 따로 빼 두겠습니다.”
“도착하였군. 나감세.”
수상은 노쇠했다. 지팡이나 부축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거동이 힘들 정도다.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다. 하여 황궁에서의 하루하루가 실로 소중하고, 그가 떠난 후의 황제가 실로 애틋했다.
끼이익.
회의장 문이 좌우로 젖혀지자, 미리 도착해 있던 직원들이 가볍게 고갯짓으로 인사했다.
개중에는 마법부 장관, 이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이는 단정한 자세로 연신 바쁘게 보고서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좋은 아침이오, 장관.”
“안녕하십니까, 수상님.”
“그간 마법부에 계속 있었다고 들었는데, 여독은 푸셨는가?”
겉으로 보기에는 다정한 인사말이었지만, 이안은 무언가를 알아채고서 멈칫했다. 그러고는 대답 대신 미소만 방긋 지었다. 분명히 혼자서 조용히 지냈는데, 어디서 들었습니까? 묻는 듯이.
“황제 폐하 드십니다!”
“정숙해 주십시오.”
그때, 바깥에서 황제의 도착을 알리는 기별이 들려왔다. 수상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고, 이안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를 맞이했다.
진을 따라 들어오는 행정부 직원들이 꽤 많았다. 그리고 그들이 들고 있는 문서 또한 전에 없이 많다. 그만큼 처리할 일들이 많다는 뜻.
이안은 진 뒤에 선 인물 중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퀸타나.’
행정부 장관이자 제국의 재정을 담당하는 자였다. 퀸타나 역시 이안을 알아보고는 반갑게 눈짓했다.
“자, 다들 앉으시오.”
진의 발언에 수십 명의 관료가 착석하여 그를 바라봤다. 황제 역시 꽉 들어찬 회의장을 새삼스러운 눈길로 둘러봤다.
“평안한 아침이오. 전장이 아닌 곳에서 이리 그대들을 마주하니 정말 반갑군. 내 이 회의 시간만 기다린 적이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아.”
대회의는 황제의 가벼운 농담으로 시작되었다. 화기애애한 웃음이 지워지지 않았고, 곳곳에서는 황제의 무사 귀환을 반기는 인사가 들려왔다. 전후(戰後), 산재한 업무가 산더미였지만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간단히 근황을 나눈 후, 퀸타나가 발언했다.
“행정부 장관 퀸타나입니다. 오늘 대회의에서 제일 큰 안건은 참전 군인들에게 지급할 보상금 관련 사안입니다.”
“출정 전에 고지한 것으로 압니다만.”
“예. 복무 기간 한 달 기준으로 은화 70닢이었지요.”
“맞습니다. 하지만 현 국고 사정상 모든 군인에게 일시 지급은 불가합니다. 하여 순차적 지급이 필요한데, 그 기준을 의논하고자 합니다.”
“으음. 아무래도 복무 기간순이 나을 것 같습니다만.”
“직급순이 좋지 않겠습니까?”
관료들이 저마다 의견을 내며 논쟁했다. 진은 흘려듣는 것 없이 경청하였고, 수상은 연신 이안 쪽을 흘깃거렸다.
마침, 무언가 고심하던 이안이 손을 들어 제안했다.
“다른 나라로부터 충당할 이득이 무엇일지, 또 얼마나 걸릴지를 따져야 비로소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전쟁배상금입니다. 버고스가 제일 가깝고 나라 사정이 괜찮으니, 가장 먼저 요구해 볼 수 있겠지요.”
이에 관료들이 앞다투어 발언했다.
“일리 있습니다. 그럼, 다른 나라는 사정이 어떻지요?”
“루스웨나는 현재 클리포포드에서 수습 중인데, 엘바사의 몰락은 그들에게도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인 터라 지방 곳곳에서 반항이 있다 합니다. 하완과 얽혀 있는 문제도 있고요.”
“버고스 쪽에서 제안한 전쟁배상금은 금화 1만 닢입니다. 그리고 마력석 수출 건과 바리엘과 접경한 버고스 동부 지역 헌납 등이 있습니다.”
관료들의 손이 분주해졌다. 펜을 끄적이고, 보고서를 넘겨 대며 그 주장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토올룬에 있을 때 버고스로 전서구를 미리 보냈으니, 카일라 영애는 이미 준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금화 1만 닢이라…….”
“토올룬에서는요?”
“토올룬은 정해진 바가 없습니다. 트웰러 장관이 수습 후 올리는 보고서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럼 토올룬과 루스웨나에서는 얼마가 들어올지 아직 모른다는 거군. 퀸타나가 빠르게 계산하던 차였다. 이안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까딱거렸다.
“한데-”
진을 비롯한 관료들이 이안 쪽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어째서 하완에 대해선 언급이 없으십니까? 상황이 어찌 되었든, 그쪽도 루스웨나와 함께 바리엘을 공격했습니다만.”
그의 지적에 회의장이 술렁거렸다. 잊었던 것을 일깨웠다기보다,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 술렁임은 주로 행정부와 외교부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안 그래도 그에 대해 말씀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개선식에 맞물려 들어온 정보인지라, 며칠간 진위 등을 따지느라 아직 황제 폐하께 보고하지 못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수상은 그리 이르며 진을 돌아봤다. 황제께 이르지 못한 내용이니 여기서 밝힐 수 없다는 뜻이었다.
진은 턱을 문지르며 잠시 고민했다. 하완과 관련된 사안 중 검열할 정보가 있던가? 여기 모인 자들은 모두 장관급 인사들이거늘.
“일단은 알겠네. 진위가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 이르시게.”
“예, 폐하.”
수상의 눈짓에 그의 보좌관이 보고서를 새로이 배포했다. 찬찬히 내용을 살피던 이안이 멈칫거렸다.
“현재 하완의 수도에서는 왕국군과 반란군의 격렬한 내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리엘 측의 정보원이 접근 불가할 정도라고 하더군요. 그러던 중, 반란군 측이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요점은 하나였다. 내전을 끝낼 수 있게 도와달라는 것. 별것 아닌 내용에 몇몇 관료들이 대수롭지 않아 했다.
하지만 이안은 달랐다.
‘이거 잘못하면-’
보고서를 선별한 수상. 하완. 그리고 반란군의 거래 제안이라. 이안은 이마를 문지르며 수상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문제 생기겠는데.’
그저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려 했거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들이닥쳤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