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76
제776화. 죽음 결정법
“반란군 측이면, 샤티마 수상의 세력인가요?”
“그렇소이다.”
“아아, 그래도 명맥이 계속 이어지긴 했나 봅니다.”
“그러게요. 지도자가 죽어서 와해될 줄 알았는데.”
관료들은 실로 놀라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반란군 측은 이미 두 번이나 지도자를 잃었지 않나. 샤티마와 그 후임인 에리카까지.
그런데도 계속 살아남아 정부군과 막상막하를 이룬다는 것은 그들의 저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게 하는 부분이었다. 나아가, 하완의 민심까지.
“하지만 내란을 끝내도록 도와달라니요. 바리엘은 막 전쟁을 마쳤습니다. 하완국 때문에 다시 군대를 편성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마법사나 마검사들의 기력 소모도 심하고, 무엇보다 그렇게까지 해서 하완을 도울 명분이 없습니다. 이안 장관께서 이르신 대로, 그들은 바리엘을 공격했던 자들이니까요.”
“맞습니다. 모종의 사건이 엮여 있지만, 그것만은 변치 않는 사실입니다.”
수상은 모두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요구는 직접적인 병력 지원이 아닙니다. 적어도 하완 국민들만큼은 외세 개입 없이 승리한 것으로 알길 원하더군요.”
“그러면, 어떤 방식을 말하더이까?”
“우선은 바리엘이 그들을 정식으로 인정해 주는 것.”
바리엘과 같은 대제국이 반란군을 정부로 인정한다면, 대내적으로 확실한 명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 짧은 성명문 하나가 어쩌면 내란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중요할지도 모른다.
관료들은 뜻밖의 내용에 멈칫거렸다. 물질적인 지원을 요청할 줄 알았는데.
“대가는요?”
“몇 가지 제안이 들어온 게 있습니다만, 이는 말씀드렸다시피 검토가 필요합니다. 정리하여 폐하께 먼저 올리겠습니다.”
“흐음. 알겠습니다.”
관료들이 수긍하자, 수상은 바로 몸을 틀어 황제를 바라보았다.
그를 따라 행정부와 외교부 관계자들이 함께 고개를 틀었다. 의견을 같이하고 있음을 은근히 내보이는 몸짓.
“그래서 말입니다, 폐하.”
“이르라.”
“배상금 논의를 겸하여, 각국의 지도자들을 모아 평화협정을 체결하심이 어떠십니까?”
평화협정이라. 시의적절했고, 전쟁의 승리자인 대제국만이 행할 수 있는 권능이었다. 대외적으로는 그러하였으나, 진과 이안은 수상의 의도를 바로 알아챘다.
“협정식에 초청하여 정식 정부임을 간접적으로 인정하자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번거롭게 그들을 따로 신경 쓸 것 없다. 타국과의 행사를 겸하여 그저 초청장을 보내는 것만으로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을 터.
관료들은 괜찮은 생각이라며 적극 동의했다.
“음. 적절합니다. 가이아의 평화를 이루는 자리에 하완처럼 큰 나라를 제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하지만 순서는 바로잡는 것이 좋겠지요. 그쪽에서 먼저 사과를 담은 성명문을 보낸다면, 그때 초청장을 보내는 게 맞겠습니다. 그리고 전쟁배상금에 대한 논의 또한 따로 하심이 어떠신지요.”
과정에 차이가 있겠지만, 협정식에 하완국을 부르자는 것은 대부분 동의하는 듯 보였다.
그때, 관료들은 문득 이안이 어떠한 발언도 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수상이 넌지시 그에게 질문했다.
“마법부 장관께서는 어찌 생각하시오?”
톡톡. 보고서 끄트머리를 두드리던 이안의 손길이 멈췄다. 아이는 잠시 말을 고르듯 침묵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일단은’ 반대할 명분이 없었으니까.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면 클리포포드가 난색을 보일 수 있지만, 그리 문제 될 부분은 아니라고 봅니다.”
“클리포포드가 어째서 난색을 보인답니까?”
누군가의 물음에 이안의 눈빛이 조금 식었다. 당연한 걸 묻지 말라며.
“평화협정 대상에 루스웨나가 포함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리엘을 대신하여 그쪽 주도권을 잡아 가고 있는데, 협정을 진행하면 들고 있던 것을 모두 내려놓아야 하니 당연히 난색을 보이겠지요.”
하지만 그뿐이다. 클리포포드는 바리엘을 거스를 수 없다. 되레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루스웨나에 대한 권리를 얻어 가는 쪽으로 전략을 세울 터.
그러나 그것은 겉치레일 뿐, 국제 관계의 양상이 달리 흘러갈 가능성도 존재했다.
“루스웨나에서는 그들만의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클리포포드 측은 지금도 암암리에 저들에게 우호적인 루스웨나 내부 세력과 결탁하여 바리엘의 지배력을 감소시키려 하고 있겠지요. 루스웨나 측 또한 바리엘보다 클리포포드가 상대하기 편하다는 계산 아래 움직일지도 모릅니다.”
둘이 결탁하여, 결국 바리엘에게 불리한 정세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게다.
물론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소한 일이긴 했다. 클리포포드와 루스웨나가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바리엘이라는 큰 틀 안에 갇혀 있는 건 변함없을 테니.
“아무튼, 평화협정 자체는 찬성하는 바입니다만-”
다만? 관료들은 무슨 말이 이어질까 긴장했다.
“하완 측 초청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특히나 저는 히엘로령의 영주이기에.”
이안은 자신이 히엘로령의 주인임을 상기시켰다. 루스웨나, 하완, 동방의 마법사가 모여 만들어 낸 비극이 바로 히엘로에서 일어나지 않았던가? 이안은 자신의 개인적 신분을 앞세워 하완 초청 건에서는 부정적인 견해임을 못 박았다.
여기엔 그만의 계산이 있었다.
‘뭔가 있다.’
수상이 앞서 선별한 정보. 그 안에 단서가 있다. 이안은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아내기 전에는 찬성할 수 없었다. 지금 제일 유력하게 예상되는 것은-
‘아마도 화총.’
인간이 마법사에게 대적할 수 있다는 유일의 무기.
지도자가 두 번이나 바뀌었음에도 반란군이 저물지 않은 이유? 딱 하나밖에 없다. 바로 동방에서 들여온 화총. 이만큼 강력한, 전세(戰勢)를 뒤집을 수 있는 비장의 무기는 없다.
‘내란이 끝나면 화총을 넘겨주겠다 제안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라도, 반란군을 정부로 인정하는 것만으로 얻는 이득이 상당했다. 마법부를 견제하는 수단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고, 인근국의 군사력마저 저해할 수 있으니. 어느 것 하나 모자람 없는 거래이지 않나?
‘하지만 안 돼.’
지금은 안 된다.
가이아에 화총이 들어오기 시작한 건 먼 훗날, 이안의 시대다. 굴라처럼 역사를 바꾸지 않으면 큰 피해가 예상되는 것도 아니고, 바리엘은 이미 가이아의 중심에서 견고했다. 굳이 큰 줄기를 바꿀 필요도 없거니와-
‘목적이 불순해.’
지금 화총을 들인다면, 국방 강화가 아닌 마법부 견제 수단으로 사용될 것이다. 그것만은 용납할 수 없었다.
견제당하고 지탄받는 것은 자신만으로 충분했다. 흔적을 지우고 진에게 디딤돌을 내어 줄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기껍다.
‘하나 마법부만은 안 된다.’
자신의 계획대로라면 마법부가 연관될 일은 없을 것인데, 갑작스러운 화총 수입 건으로 일이 복잡해졌다.
이안은 연신 손끝을 툭툭 튕기며 생각을 정리했다.
“자자, 우선은 알겠네.”
진이 가볍게 책상을 두드리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하완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그들이 건넬 대가를 보고 다시 의논하면 될 일. 이번 건은 여기서 마무리하는 게 좋을 터다.
“현 사안에 대해서는 잠시 미루어 두도록 하지. 대신 버고스, 토올룬, 루스웨나, 클리포포드에 대해서는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으로 하겠소. 수상께서 맡아 준비하시오.”
“예, 폐하.”
“다음.”
사사삭.
보고서가 빠르게 넘어갔고, 누군가 새 안건을 던졌다. 조금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폐하, 다음은 다몬 왕과 러더포드 처형 집행에 관한 것입니다.”
다몬 왕은 벌써 10년 넘게 마탑에 갇혀 산송장처럼 살아온 자다. 혀가 잘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것이 수십 번. 하지만 그간 버고스의 분열을 위해 계속 살려 두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러더포드 또한 마찬가지. 전쟁이 막을 내렸으니 본보기를 보여 저잣거리에 시체를 걸어 둘 만하다.
“음.”
진이 잠시 고민하다가 이안에게 시선을 던졌다. 회의장 모두가 이안을 주목하고 있었다. 중요한 안건이라 분명 황제에게 질문한 것이었으나, 그들은 자연스럽게 결정권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심지어는 황제인 진 자신마저도.
“의견을 말해 주시게, 이안 경.”
지하신과 연관된 것은 마법부의 소관. 이안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나지막이 대답했다.
“다몬 왕과 러더포드의 다음 생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추측이라 확실치는 않지요. 섣부르게 죽였다가 혹 문제가 생기면 낭패이니, 신탁을 올려 답 받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신탁이라.”
“신탁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길라잡이 삼기엔 충분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카르보 신전에 연락해 두는 게 좋겠군.”
“폐하의 외가이고, 바리엘 역사와 함께한 곳이니 적격이지요.”
그리고 이미 아르센 사태 때 도움받은 적도 있다.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곳이다.
진은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카르보 신전에 신탁을 의뢰하겠다.”
“예, 폐하.”
“그리고 죽음이 허락된다면, 다몬 왕의 시체는 홀린 가문이 맡는다. 버고스에서 새 왕조를 세울 때 도움 될 것이다.”
카일라가 다몬 왕의 시체를 수습해서 가져간다면 버고스 내 왕당파와 반왕당파의 화합을 이룰 수 있다.
그로써 그녀의 왕권이 견고해진다면 이는 곧 바리엘의 이득. 일부러 정세를 어지럽혔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버고스의 안정을 도모할 시기였으니.
“옳은 판단이십니다, 폐하.”
“아. 말씀 중에 송구합니다.”
그때였다. 뭔가를 확인하던 퀸타나가 잠시 손을 들어 양해를 구했다. 재정 보고서에 무엇인가가 누락된 것이다.
“이안 장관님. 혹시 버고스에서 바리엘로 보낸 마력석, 마법부에서 매입하실 것인가요?”
칼라마트 인근에서 아코렐라와 클로이가 채광한 마력석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이미 한참 전에 황궁에 도착하여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그럼 그 대금까지 잡아 두도록 하겠습니다.”
“저기, 이안 장관?”
옆에서 듣고 있던 한 관료가 당황해하며 그를 불렀다. 마력석은 원래 마법부 담당이다. 한데 대금을 치러 매입한다는 게 무슨 말인가? 황궁 업무가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는 뜻처럼 들렸다.
의중을 파악한 이안이 깔끔하게 대답했다.
“마법부 별채 건설 시 사용할 것입니다.”
그러자 회의장이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장장 10년 넘게 마법부와 그 외의 세력이 알게 모르게 다투어 왔던 사안이다. 이안이 심연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진이 나서서 진행했지만, 그마저도 마력석 수급이 부족하여 일시 중단된 사업.
그런데 그것이, 이안의 입을 통해 다시 나왔다. 그래. 다 좋다, 이거다. 단 한 가지만 이유만 빼면.
“그, 시의가 적절치 않습니다.”
“시의라 하시면, 어떤?”
“전쟁이 막 끝났지 않습니까. 마법부 별채 건설 외에도 처리할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마법부의 일입니다.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문자 그대로 담백한 사실이었다. 이에 이안은 조금 도발적으로 웃으며 이어 물었다.
“누가 반대하실 겁니까?”
관료들이 화들짝 놀라 멈칫했다. 이안의 음성은 언제나처럼 단조로웠으나, 어쩐지 위험한 느낌이 깃들어 있었다.
“이는 제가 없을 때 폐하께서 주도하셨던 사업입니다만.”
황제가 주도하였던 것인데 그 누가 반대하느냐는 뜻이었다.
진은 잠시 머뭇거리며 웃었다.
‘그랬지. 분명히 그랬지.’
심연으로 사라진 이안이 혹여나 돌아올까 싶어서. 관료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강행하여 마법부 별채 터를 닦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안은 돌아왔고, 굳이 지금 그것을 진행할 필요는 없다. 안 그래도 이안에 대한 괴소문이 돌고 있는 마당에.
진이 이안을 말리기 위해 부르려는 순간이었다. 그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다.
“…….”
회의장이 조용했다. 말도 안 된다고, 지금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것을 우선으로 둘 수는 없다고, 나아가 마법부에 별채가 필요한지부터가 역시나 의문이라고, 격렬히 반발해야 할 관료의 외침이 들려오지 않는 게다.
‘…마법부의 위상이-’
진이 주위를 둘러봤다. 관료들은 괜히 헛기침해 대며 시선을 나누고 있었다. 이전에도 독보적인 마법부였지만, 지금은 비교 자체가 불가했다. 반대를 위한 반대. 견제를 위해 견제. 그 어떠한 것도 허락되지 않는 것처럼.
‘달라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