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77
제777화. 사라진 기록
“그-”
진이 자신도 모르게 무어라 이르려는 순간이었다. 가만히 보고 있던 수상이 점잖게 끼어들어 이의를 제기했다.
“그것은 아니 될 말씀이시지요, 장관.”
드디어 나왔구나, 반대.
관료들은 숨통이 트였는지 이때다 싶어 조심스레 말을 얹었다. 우스운 것은, 그러는 와중에도 이안의 눈을 똑바로 보고 이르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예, 조금 무리가 있습니다. 버고스에서 들여온 마력석은 분류 기준으로 상급에 속하는 것 아닙니까? 희귀하여 연구하기에도 모자라거늘, 그것을 어찌 별채 건설에 사용한단 말입니까.”
“맞습니다. 당장 별채 건설이 급한 게 아니니 더욱 아깝게 느껴집니다. 마력석 관리는 마법부의 담당이나, 이를 얻어 낸 것은 전쟁에 나가 싸운 모두의 희생과 노력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아이고, 자네. 말 잘하시는구려!”
“크흠! 자중하십시오.”
“소, 송구합니다. 아무튼, 저도 별채 건설은 반대입니다. 아, 그러니까 지금 시점에서는 반대한다는 것이지요. 마법부가 이번 전쟁에서 공을 세운 건 맞지만, 제국방위부와 황궁친위대의 활약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공을 기리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무언갈 이루려 한다면, 상대적으로 다른 부서가 좀…….”
“음음. 맞아요. 저도 그게 걱정되는군요.”
“너무 성급하게 결정하지 마시고, 시간을 두고 판단하심이 어떨는지 제안합니다. 마법부에서도 맡아 처리할 일이 산더미일 것인데, 괜히 일을 늘리시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고. 흠흠.”
이안은 관료들의 어쭙잖은 반대를 묵묵히 들었다. 이전 같았으면 이쯤에서 부드럽게 넘어갔을 것이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저들이 마법부를 대하는 게 달라진 것처럼 자신 역시 많은 게 달라졌다. 단적으로, 시간이 없지 않나.
“말씀들은 감사하지만-”
단호하고 맑은 음성. 수긍하듯 작게 끄덕이는 고개와 다르게, 이안은 모든 이들의 걱정을 한번에 쳐 냈다.
“별채를 짓고 말고는 마법부가 결정할 사안입니다.”
자금은 마법부 예산 혹은 자신의 사유재산에서 나올 것이다. 부지는 마법부 건물 옆에 지어질 것이다. 공사 일정을 조율하는 등의 작업 역시 마법부가 진행할 것이다. 완공되면 마법사가 그곳을 이용할 것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일련의 과정에서 외부인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
조잘조잘 떠들어 대던 관료들이 꿀이라도 먹은 것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이전 같았으면 주눅 들지 않고 다시 무슨 말이건 던졌을 것인데, 쉽지 않았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 입을 열고 닫아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 나서고 사려야 할지. 그걸 잘 해 왔기에 지금 여기 앉아 있는 것이고.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안은 착 가라앉은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덧붙였다.
“황궁에 누가 되는 일은 없도록 할 것입니다.”
“이, 이안 장관께서 뭐 그러실 분도 아니고.”
“예에. 당연히 그러시겠지요. 우리, 이것도 나중에 다시 의논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이고, 좋습니다. 지금은 처리할 게 산더미라.”
“다음! 다음 안건은 누구입니까?”
마법부의 의중을 확인했으니, 회의가 끝나고 이에 대해 따로 논하면 되지 않겠나? 결국 그들은 물러서는 척 외면하기를 택했다.
“…….”
수상은 가만히 이안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황제의 안색을 살폈다.
황제께서는 조금 충격받은 듯 보였다. 이안의 태도도 태도지만, 신하들이 이안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는 걸 깨달은 탓이다.
“다음은 문화부 안건입니다.”
회의는 계속 이어졌다. 안 그래도 힘든 자리, 무거운 기류까지 더하니 심적 부담이 상당했다. 몇몇은 벌써 지쳐 어깨나 팔 따위를 주물러 댔고, 대부분 몸의 중심이 옆으로 기울어져 있다.
‘돌아 버리겠군. 아까 대체 뭐랍니까? 이안 장관.’
‘물러섬이 없었지요. 이전이었다면 다른 식으로 대화를 풀었을 것인데.’
‘회의 끝나면 모두 모입시다. 광장으로 오세요.’
‘당연합니다! 대책을 세우는 게 좋겠습니다.’
‘참 나. 공을 세웠어도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닙니까.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다고.’
‘저기, 말은 바로 합시다. 대단하긴 했어요.’
‘혹 폐하께서도 지금 이안 장관 눈치 보시는 것 아니겠지요?’
‘아닙니다. 그저, 좀…….’
집중이 흐트러진 자들끼리 시선을 주고받으며 속닥거렸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회의장에는 시계가 없었고, 황제의 낯은 굳어 있었으므로.
‘끄응.’
겉으로 보기에는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신하들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폐하의 심기가 어지럽다는 것을. 이럴 때 괜히 회중시계 따위를 꺼냈다가 눈총이라도 받으면 실로 곤혹이다.
모두가 힘겨워 죽어 가는 동안, 정작 회의장을 휘저은 당사자들은 업무 처리를 착착 이어갔다.
“확인을 따로 해 보심이 좋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번 사안은 제가 다음 주 내로 다시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그러시오. 급하지 않은 사안이니 기한을 넉넉히 잡아도 될 것이오.”
“의견 받들겠습니다.”
투욱.
진이 그만하자는 듯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그 역시도 회의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이안이 아무렇지 않아 하여 자신도 그러려 했으나, 무리다.
“일단 회의는 여기까지.”
황제의 말에 신하들이 회중시계를 딸깍 열었다. 벌써 오후 두 시였다. 아침 일찍 모여 점심도 못 먹고 이러고 있었다니.
진은 먼저 일어나며 덧붙였다.
“아직 논의할 것이 많지만 더 했다가는 오후 업무를 그르치겠어. 밤에 다시 모이도록.”
“…예, 폐하.”
“수고들 했네.”
관료들은 눈물을 머금으며 고개 숙였다. 회의가 끝났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억장이 두 배로 무너지는 기분.
끼이익!
황제와 수상이 퇴장하고, 관료들 또한 이안을 등지며 후다닥 사라졌다.
한순간에 홀로 남은 이안. 오직 로만드로만이 걱정스레 그를 불렀다.
“저기, 이안.”
회의에서 대놓고 날을 보인 건 이안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분명히 다른 생각이 있었겠지. 그는 언제나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글쎄, 가만히 앉아있는 이안의 뒷모습이 뭔가 외로워 보여 필시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만드로가 옆자리에 앉아 아이를 달랬다.
“이안. 마법부 별채 건설에 대한 의지는 나도 잘 알아. 예전부터 자네가 원했던 것이니까. 하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말게. 이제 우리 서두를 것 하나 없어.”
이안은 어리니 앞으로 많은 시간을 황궁에서 보낼 것이다. 자신도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그 옆을 지키고 싶은 욕심이 있다. 마법부와 똥강아지? 말해 뭐 하겠나? 그들 역시 시간이 가르지 않는 이상, 이안의 곁에 있을 건데. 오랫동안, 하하호호 웃으며 황궁 생활하는 일만 남은 게다.
로만드로는 그간의 경험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앞으로 그들에게 남은 건 오로지 평화, 그것뿐이라고.
“이안?”
“…로만드로 님.”
“으응. 말하시게.”
“행정부와 외교부 쪽에 들어가 있는 하완 측 정보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완 측 정보?”
로만드로는 잠시 턱을 긁적거렸다. 회의에서 밝히지 않는 내용은 부서 기밀로 간주하여 수집하기 쉽지 않을 터.
하나 이안은 부탁한다는 듯 덧붙였다.
“특히 동방의 화총 관련 정보라면 출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합니다.”
“화총? 알겠네. 내 한번 알아보지.”
“그리고 마법부로 들어가시면, 헤일과 아코렐라에게 장관실로 오라 전해 주십시오.”
“바로 연락하지. 근데 이안.”
“예?”
이안이 넋을 반쯤 놓은 채 돌아봤다. 그런 그의 이마를, 로만드로는 마치 아픈 제 자식을 돌보듯 조심히 짚었다.
열은 없는데, 왜 이러지?
“…저, 괜찮습니다.”
“흐음. 그럼 다행인데.”
“그리고 하나 더.”
이안은 로만드로의 손을 내리며 속삭였다. 아주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수첩 좀 주시겠습니까?”
“수첩? 내 거?”
로만드로는 의아해하면서도 별다른 말 없이 품에서 수첩을 꺼냈다. 그렇게 한참이나 종이를 삭삭 넘겨 대던 이안은, 어느 지점에서 한 낙서를 발견하고는 멈추었다.
-베로, ?? ??
“뭔데 그래?”
이안이 베로시온이라는 소식을 전해 들으며 끼적인 흔적 같다. 그가 고개를 쭉 빼내 확인하려 하자, 이안은 손끝에서 작은 불꽃을 피워 냈다.
화르륵!
순식간의 일이다. 로만드로는 잿더미로 변한 제 수첩을 보며 눈을 크게 끔뻑거렸다.
“아, 아니-!”
“미안합니다. 하나 새로 사 드리겠습니다.”
“마법부 비품이라서 그런 건 상관없어! 아니! 근데!”
“가 보실까요?”
“이안! 이거 횡포일세! 아니지. 황궁 내 괴롭힘-!”
“저는 잠깐 중앙자료실에 들렀다 가겠습니다.”
로만드로가 이안을 쫓아오며 울부짖자, 아이는 그저 웃으며 뒤돌았다.
‘기록이 남아 있구나.’
그림자신의 빗물이 기억은 지워 버렸을지언정 기록까지는 어찌하지 못한 걸 확인했다. 필시 바리엘 본대가 버고스에서 바리엘로 보낸 서신에도 ‘이안 베로시온’이라 적혀 있으리라.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는가다.’
이안이 작성한 게 아니라 정확한 문장을 알지 못했다.
아이는 로만드로에게 잠시 기다리라 지시하고는 홀로 중앙자료실로 걸어갔다.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으나, 눈에도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드르륵!
“안녕하십니까, 이안 장관님.”
“전쟁 당시, 바리엘 본대가 보낸 서신을 보관하고 있나?”
“물론입니다. 기록실에 있습니다.”
“잠시 보고 싶은데.”
“다 내오면 될까요?”
“부탁하지.”
직원이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책 한 권을 꺼내왔다. 일종의 서신 보관함이다.
이안은 책을 펼쳤고, 한 면마다 고정되어 있는 서신들을 하나씩 살폈다. 시간순인지라 읽는 것만으로도 지난날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럼, 천천히 보십시오.”
점점 서신 내용이 버고스와 아기아르에 가까워졌다. 집시의 죽음과 혼돈…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되찾아 왔던 그날이.
사락.
손바닥만 한 크기의 종이에 적힌 글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안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이안 히엘로는 이안 베로시온이다. 그는 황실의 피를 이었으며, 바리엘을 구하기 위해 ____신께서 보내신 선물이다. 우리는 그를 따라 나아갈 것이다.
가림막 뒤로 가 있던 직원이 이안의 웃음에 눈을 또르륵 굴렸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으실까. 지난 추억이라도 떠올리셨나? 그 청명하고 깨끗한 미소에, 직원은 저도 모르게 따라서 피식 웃고 말았다.
“아하-”
한편 이안은 눈가를 가볍게 훔쳤다.
지하신의 마지막 저주일까, 아니면 신의 잔인한 갈무리일까. ‘이안 베로시온’이라는 이름은 남아 있었지만, ‘100년 후’라는 글자가 증발해 있었다.
‘말도 안 되어 우습습니다.’
이것이 발견되면 또다시 기이한 소문이 돌 것이다. 그들의 기억에는 없으니 마법사가 술수를 부렸다 할지도 모르겠다.
도화선이 되든 명분이 되든, 어쨌든 이 또한 이안이 세상에서 지워지는 과정 속 일부분이 되리라.
이안은 책을 덮고서 직원을 불렀다.
“이보시게.”
“네! 끝나셨습니까?”
“혹 황궁이 서신 내용을 바깥으로 내보낸 적 있는가?”
“승전보 말고는 공식적으로 없습니다.”
이안 베로시온의 소식은 충격적인 만큼 상당히 조심스러운 것이었다. 하여 황궁 내부에서만 이를 알고 있었고, 아마 알음알음 소문으로 주위에 전달되었으리라.
“서신 정리 주기가 반년이라 알고 있네만.”
“맞습니다. 기록부에서 한 해에 두 번씩 서신을 정리하여 편찬합니다. 올해는 네 달 정도 남았군요.”
중간에 저처럼 펼쳐 보는 이가 없다면 4개월 뒤에나 기록부 직원들이 확인한다는 뜻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이안은 알겠다 답하고는 자료실을 떠났다. 직원은 그 뒷모습을 빤히 지켜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분명 행복 가득한 웃음이었는데, 낯빛은 영…. 에라, 모르겠다. 직원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서신 보관함을 제자리에 꽂아 넣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