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79
제779화. 견제 대비책
똑똑.
“이안 님. 부르셨습니까.”
“저희 왔습니당. 몸은 좀 어떠세요?”
헤일과 아코렐라였다. 둘은 장관실로 들어서며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다. 사흘간의 휴가 덕분에 안색이 좋아 보였다. 그래 봤자 며칠이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겠지만.
서류 작업하던 이안은 고갯짓으로 소파를 가리켰다.
“편히 앉게.”
“무슨 일이십니까?”
“다른 건 아니고, 두 사람이 알아 둬야 할 게 있어서.”
“저희 둘이요?”
헤일과 아코렐라가 눈빛을 주고받았다. 서로 뭐 아는 게 있는지 확인하는 신호였으나, 별반 소득은 없었다. 이안은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계속 문서 작성에 몰두하며 덧붙였다.
“두 사람은 마법부 대장 중에서도 내 특히 신뢰하는 자들이라 일러 두는 것이니, 지금부터 명심하여 처신하는 게 좋다.”
“이안 님. 신뢰한다고 하시니 굉장히 기쁩니다만, 뒷말이 상당히 거시기 불안하네요. 안 그래, 헤일?”
“예. 불안합니다.”
두 사람의 대답에 이안이 입매를 가늘게 말아 올렸다. 평소였다면 걱정할 것 없다는 언질을 덧붙였겠으나, 그러지 않는다.
이에 두 사람의 얼굴이 굳어질 차-
“행정부와 외교부, 정확히는 수상을 중심으로 한 파벌이 마법부를 견제할 것 같다.”
이안의 뜻밖의 말에 둘은 깜짝 놀랐다.
“마법부를요? 어째서 말입니까?”
“전쟁 똥 빠지게 하고 왔더니, 그건 또 무슨 개짓거리일까요. 이안 님, 회의장에서 무슨 일 있으셨어요?”
“확언할 순 없으나 의중이 그래 보였다. 황궁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일이지.”
게다가 더하여, 이안부터가 스스로 별채 건을 언급하며 날을 세우지 않았던가. 수상이 이를 가볍게 넘길 리 없다.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이해 못 하겠습니다.”
헤일이 마른 궐련을 만지작거리며 이안을 쳐다보자, 이안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불을 붙이고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고, 아코렐라 역시 짜증스럽게 이죽거렸다.
“원래 예쁘고 잘난 사람에게는 시기와 질투가 따라붙는 법이기는 하죠. 우리가 좀 잘났습니까? 뭐, 알고는 있는데 그것도 상황 봐 가면서 해야지. 눈칫밥으로 굴러먹던 작자들이 그런 걸 못 하면 어떡해?”
이안은 문장의 마침표를 깔끔하게 찍고 나서 펜을 내려놓았다.
“마법부를 견제할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가 제일 우려하는 것은 하완으로 수입된 화총이다. 다들 그 위력을 눈으로 보았으니 알겠지.”
“아.”
인간이 마법에 대적할 유일의 무기. 아직 발명 초기여서 그나마 받아치는 게 가능했지, 성능이 강화되면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언젠가는 분명히 바리엘도 화총을 들여올 터다. 하지만 그것은 국방을 위한 선택이어야 하지, 마법부 견제를 위한 수단이어서는 아니 된다. 내 말뜻을 이해하였는가?”
“예. 이해했습니다.”
“한데 동방의 무기 수입은 저희가 어쩔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 않습니까?”
“옳다. 그래서 내 그대들을 부른 것이다. 지금 하완국에 멜라니아 영애가 가 있다. 동방의 마법사와 바리엘을 연결해 보겠다는 포부를 갖고서.”
툭, 헤일의 궐련 재가 아래로 떨어졌다. 아코렐라 역시 주황빛 눈동자가 커진 채로 굳어 버렸다.
누가, 어디에?
“메, 멜라니아 영애는-”
“그래도 되는 겁니까?”
황제와 마법부 장관이 반역자의 가문을 멸문하지 않았다는 증거. 하이만가의 유일한 생존자. 더하여 심연의 비밀을 알고 있으며, 러더포드와 관계가 얽혀 있는 여인.
결코 중앙 밖으로 보내서는 안 될 자였다. 존재 자체가 폭탄과 같았으니까. 그런데 그자가 바리엘도 아니고, 하완에? 내란으로 엉망진창인 그곳에 가 있다니?
두 마법사가 당황스러워하는 것과 달리, 이안은 화사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안 되지.”
“아니, 그래. 어쩐지 모습이 안 보인다고 했어. 언제 간 것이랍니까?”
“칼라마트 성에서 바리엘로 마력석을 운반할 때, 같이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도 칼라마트를 떠나왔기에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고. 이후로 들리는 소식도 없는지라.”
헤일은 아예 궐련을 비벼 끄고서 생각을 정리했다. 몇 번이나 입술을 벙긋거리던 그가 조심히 물었다.
“믿어도 되는 것입니까?”
누구의 도움 없이 홀로 하완에 가서 동방의 연을 끌어오겠다는 게 너무도 허무맹랑하게 느껴졌다. 대체로 불가능한 일이지 않나.
하지만 이안은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믿고 있다.”
그녀는 가문의 부활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고, 그것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였다. 미래에 하이만가가 존속하고 있었던 이유도 분명 이 때문일 터.
“그리고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수상에게 변수가 될 것이다. 그쪽은 멜라니아의 행방을 모르기에.”
이안이 단언하자, 헤일과 아코렐라 역시 바로 수긍했다.
“이안 님이 그리 믿으신다면, 저도 믿겠습니다.”
“네. 그게 맞겠죠. 근데 이런 사안을 갑자기 왜 알려 주시는 겁니까?”
화총. 하완. 멜라니아. 모두 당장 뭘 어찌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정세를 살피며 기다리는 수밖에.
그러자 이안은 별 뜻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멜라니아의 존재를 아는 자가 마법부에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이안은 자신의 마지막이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어떠한 언질 없이 사라지게 되면, 마법부가 화총 견제의 위협을 헤쳐 나갈 때 곤란할 수 있으므로.
멜라니아라는 숨은 카드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엔, 분명 큰 차이가 있지 않겠는가.
“이안 님이 계시잖아요.”
“혹시 몰라서. 수상의 견제가 심해지고 혹 내가 대응하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우리 모두, 그간 전쟁으로 황궁을 오래 비우지 않았나.”
“그럴 일은 없습니다. 어디 한번 이안 님 건드려 보라지요. 파업 때리고 별장 가서 쉬면 됩니다.”
이것들이 진짜, 다시 붉은 머리띠 매 줘?
이안은 아코렐라의 으름장에 미소만 지었다.
그녀는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 마법사들이 황궁을 오래 비웠다는 것. 이는 마법사 없이도 황궁의 정사가 무리 없이 이루어졌음을 뜻한다는 것을.
이전에는 꼭 필요한 존재처럼 여겨지겠지만, 지금부터는 조금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전쟁이라는 큰 과제가 끝난 지금이라면, 더더욱.
‘실제로 회의장 분위기도 전쟁 전과 좀 달라졌다. 수상이 외교부까지 아주 꽉 잡고 있어.’
“아무튼, 이르고자 한 것은 이게 다다.”
“예, 알아 두고 있겠습니다.”
“그만 나가 보도록. 대회의가 밤에 다시 열릴 것이라, 처리할 것들이 많아.”
“저희가요, 아니면 이안 님이요?”
“둘 다.”
“이런.”
아코렐라가 제발 좀 살려 달라는 듯 몸을 떨다가, 번뜩 눈을 빛내며 이안을 돌아봤다. 펜촉을 갈던 이안이 의아한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지?”
“그런데 이안 님, 왜 대답 안 해 줍니까?”
“무엇을?”
“몸 괜찮으신 거 맞냐고요.”
“아아.”
난 또 뭐라고.
아코렐라는 눈썹을 까딱거리더니, 성큼성큼 이안에게 다가왔다. 헤일은 말릴까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말린다고 말려질 위인이 아님을 깨닫고는 그만두었다.
“또 대답 안 해 주시네요.”
“괜찮다. 당연한 걸 물으니 대답하기도 귀찮아서.”
콰앙!
아코렐라는 이안의 책상에 손을 짚더니 고개를 끼기긱 돌려 대며 상관의 안색을 살폈다. 이안의 말에 거짓이 있다면 바로 잡아내겠다는 듯이. 헤일은 미친 자를 보듯 이마를 짚었다.
“아코. 이안 님보다 네가 더 아파 보여.”
“흐음. 촉이 오는데.”
“이만 나가주겠나?”
“하나 더요!”
아코렐라가 손가락 하나를 펼치며 진지하게 이르자, 이안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별거 아닐 것이라 예상한 것과 달리, 아코렐라의 발언은 이안의 심장을 일순 멎게 했다.
“이안 님, 마산타르 신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십니까?”
멈칫. 이안이 고개를 들자, 아코렐라는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며 중얼거렸다.
“애들끼리 기억을 맞춰 봤는데 도통 떠오르지가 않아요. 뭔가 이상하게 도려져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잊은 게 뭔지조차 모른다는 거고요. 혹 이안 님도 그러신지 궁금합니다.”
“…도려져 있는 것 같다니?”
“그걸 당최 모르겠어요. 먼저 투입됐던 헤일, 토미, 나키나의 공백이랑 신전 밖에서 대기했던 마법사들의 공백이 미묘하게 어긋납니다.”
아코렐라는 코를 긁적거리며 답답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헤일은 이미 반쯤 포기한 게 분명했다. 생각이 안 나는 걸 어찌 떠올리겠는가?
“그림자신의 여파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안 님도 그러신가 싶어서요. 별거 아니라면 상관없겠지만… 아니면 곤란하잖아요.”
“…글쎄.”
이안은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를 으쓱거렸다.
“별것 아니지 않을까. 그림자신은 봉인되었고 우린 승리했으니.”
“그건 그렇습니다만.”
“묻어 두어라. 괜히 미심쩍은 불안을 만들 필요는 없다. 꼭 필요한 기억이었다면 언젠가 다시 떠오를 터이니.”
아코렐라는 무언가 생각하듯 눈알을 또르르 굴려 댔다. 이안의 말이 맞았다. 계속 긁어 댈 필요가 없긴 하지. 특히 기억을 되살리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
“응?”
아니지! 만들면 되잖아?
게다가 어느 정도 발판도 마련되어 있다. 예전에 드래곤 각린 전염병으로 인해 망각 작용에 대해 연구한 기록이 있으니까! 이거 이거, 참으로 흥미진진한 상황 아닌가? 잔뜩 흥분한 아코렐라가 길길이 날뛰며 밖으로 달려나갔다.
“이안 님! 먼저 가겠습니다아아!”
“아코! 미친! 저도 가 보겠습니다, 이안 님.”
“나중에 보고서 올릴게요오옹! 끼야호옷!”
“아코렐라!”
콰아앙!
“…….”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 같다.
이안은 닫힌 문 쪽을 바라보다가 다시 서류 작성에 몰두했다.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기억을 잃은 자들이, 그걸 되찾기 위해 움직인다는 것이 말이다.
바뀌는 것은 없대도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위안이 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그들과 함께했던 추억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라는 안도감 같은 거다.
‘되었다.’
…또 생각하면 머리만 복잡해지지.
이안은 의자를 돌려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날이 좋았다. 햇살도, 바람도, 모두. 반쯤 걸쳐 보이는 공터에는 마법부 별채 터만 닦여 있다.
지이잉. 지잉.
이안은 조심스레 마력을 흘리며 그 깊이를 가늠했다. 아직 운용할 수는 있는데 이전처럼 안정적이지는 않았다. 아마 토올룬에서 바리엘까지 이어지는 포탈을 연 탓이리라.
‘회복이 되긴 될까.’
회의적이었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만, 돌아오더라도 이전과 같은 위력을 내지는 못할 것이다.
앞으로 큰 힘을 쓸 일이 없는 것이라 해석하는 게 맞겠지?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조금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
이어서 이드갈을 만들어 내려던 이안은 낯선 감각에 인상을 찌푸렸다. 손끝이 바들바들 떨리고, 내면의 무언가가 결집되지 않는 느낌. 아무리 형상화하려 해도 호박색 빛은 단숨에 아스러져 사라졌다.
“아.”
그리고 이어서 느껴지는, 심장 아래 고통.
토올룬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드갈을 사용하려고 하니 몸이 거부 반응을 극렬하게 보이고 있었다. 이안의 턱을 타고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똑똑.
“이안. 나일세, 로만드로.”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으응? 이안. 목소리가 왜 그래?”
이안은 앞으로 고꾸라지며 숨을 작게 헐떡였다. 문밖에서 걱정하는 로만드로의 음성이 윙윙 울렸다. 그는 연신 문을 두드려 댔고, 이안은 그럴수록 침착하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안, 괜찮아? 문 열겠네!”
벌컥!
로만드로가 화들짝 놀라며 이안에게 달려왔다.
“아니, 왜, 왜 그래?”
“…좀, 어지러워서요.”
“미치겠군. 그러니까 일 좀 쉬엄쉬엄하자고, 응?”
“저 좀 일으켜 주시겠습니까?”
“아이고, 돌겠네. 밖에-!”
“쉿. 괜찮습니다.”
다들 걱정하니 그만하라고, 이안이 작게 중얼거렸다.
“…….”
로만드로의 도움으로 겨우 소파에 앉은 이안은 한참이나 넋을 놓고 있었다. 그간 우려하였던 일이 진실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으니-
‘이드갈 생성이 불가하다.’
이곳에서, 자신의 역할은 끝이 났음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