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81
제781화. 아무것도
“폐하가 늦어지시는군요.”
“마법부 장관과 독대 중이시라 합니다.”
“어허, 거참. 회의장에서 하시면 될 것을.”
“두 분이 따로 의논할 게 있으신가 봅니다. 무서워요, 어흐.”
“그러게 말입니다. 또 무슨 기절초풍할 만한 안건을 내실지 짐작도 안 됩니다.”
회의장에 모인 관료들이 피곤하다는 듯 눈두덩이를 꾹꾹 누르며 쫑알댔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과중한 업무 탓에 온몸이 피로로 가득했다.
그런데 황제와 마법부 장관이 독대 중이라니? 경험상 두 사람이 뭉치면 언제나 죽어 나가는 것은 관료 자신들이었다. 어떤 정책을 내오든, 그들은 눈 감고 입 틀어막은 채 고혈을 짜내 헌납해야 할 입장이었으니까.
끼이익.
그때, 회의장 문이 열렸다. 황제와 장관이 함께 들어올 것이라 여겼는데, 막상 모습을 보인 것은 이안 혼자다. 다들 어리둥절해하며 그 뒤를 살폈다.
“장관, 폐하께서는요?”
“조금 더 걸리실 것 같습니다. 기다리시지요.”
“아, 예예.”
관료들은 입술을 꾹 다물며 이안을 힐끔거렸다. 궁금했다. 미친 듯이 궁금했다. 대체 황제와 단둘이 무슨 대화를 나눈 것일까? 그것도 회의 시간을 침범하면서까지.
“대화가 길어졌군요, 장관.”
넌지시 말을 붙여 온 건 수상이었다. 이안은 그저 미소로만 대응하며 보고서를 정리하다가 흘리듯 중얼거렸다.
“워낙에 중대 사안이어서요.”
“그렇군. 조율은 잘 하시었고?”
이안은 그제야 수상을 돌아봤다. 미소는 여전했으나 어딘가 냉랭한 분위기. 뒤에 서서 지켜보고 있던 로만드로가 흠칫 놀라 아랫입술을 물었다.
“폐하께 직접 물어보십시오.”
기류가 갑작스러웠다. 인근에 있던 관료들이 몸을 움찔거렸다. 시끌벅적하던 주위가 단숨에 적막으로 감돌고, 이내 위태로이 변했다.
수상은 손깍지를 끼며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둘 중 한 명이라도 무언가를 이르는 순간 사달이 날 것 같은 느낌. 관료들 역시 로만드로처럼 당황하여 서로 눈치만 살폈다.
그때였다.
“황제 폐하 드십니다.”
적절한 때에 황제가 등장했다.
관료들은 마침 잘 되었다며 속으로 환호성을 내지르려고 했다. 딱딱하게 굳은 황제의 표정을 보기 전까지는.
“늦어서 미안하오. 바로 시작하지.”
찬 바람이 쌩쌩 불어 심장이 얼어붙을 정도다. 마법부 장관과의 독대 중 분명히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 그렇지 않고서는 저럴 수가 없다.
관료들은 황제와 수상 그리고 마법부 장관을 연달아 살피며 조심스레 보고서를 넘겨 댔다. 혹여 종이 넘기는 소리가 저들의 심기를 거스를까 신중을 다하여서.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되겠소?”
진은 이마를 짚으며 그리 물었다. 하지만 동시에 머릿속에서는 방금 이안과 나눈 대화가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드갈은 이미 가이아 전역에 유통되고 있는 것일세. 그것을 조금 더 내어주고 화총 독점 권한을 가져오는 것이 이득이지 않나?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다만, 이것은 분명한 기회일세.”
“기회도 맞고, 이득도 일부분 맞습니다만, 마법부 장관으로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드갈의 존재는 결국 마법사와 마검사의 전력을 해하게 될 것이니까요. 관리와 통제 문제를 떠나, 만에 하나 작은 변수라도 생기면 그것은 곧 바리엘의 위기입니다.”
“알고는 있네만, 사들여 폐기할 생각까지 있다 하지 않았나. 일단 먼저 내어주고, 나중에 그리하여도 될 일. 이안 경. 생각을 잘 해 보시게. 이것이 황궁에 어떤 의미를 가진 사안인지. 쉬이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어찌 그러시는가.”
조금만 물러서면 모두가 편해질 수 있다. 이안도, 황제인 자신도.
이안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지만, 내어줄 것을 내어주면 신하들도 경계를 풀어 결국에는 마법부에게도 이득일 터다. 이드갈에 대한 위험과 화총의 위험 여부를 신하들이 색안경 끼지 않고 보게 될 것이니까.
막상 그리되면, 마법부는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고 원하는 바를 얻을 수도 있다.
“아무리 말씀하셔도 제 의견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폐하, 그리고 송구하지만, 전쟁의 여파로 힘이 들어서인지 이드갈 생성 자체만도 이젠 힘에 부칩니다.”
거짓말.
진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이드갈 생성에는 마력이 전혀 들지 않아 무한으로 생성할 수 있다 하지 않았나? 토올룬에서 바리엘까지 포탈을 열었을 정도면, 이드갈 또한 문제없이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데. 이안 경은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했다.
“이안 경. 나는-”
“폐하, 그렇다면 저도 하나 제안드립니다. 이드갈을 내어 주어서 화총 독점 권한을 가져오게 된다면, 그 관리를 마법부에 맡기실 수 있겠습니까?”
“마법부에?”
“이드갈을 내드리는 것도 마법부고, 화총 역시 마법의 힘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 관리 역시 마법부가 담당하는 게 합리인 듯합니다. 그것이 가능하다 하시면, 저 또한 이드갈 생성을 재고해 보겠습니다.”
그것은 안 되겠지요? 이안의 눈빛은 그리 이르고 있었다. 진의 속내를 모두 꿰는 것처럼. 지금 나누는 대화 기저에 깔린 의도가 너무나 명백하다 지적하는 것이다.
화아악!
진은 다시 얼굴을 붉히며 고개 숙였다. 보고서를 뒤적거리던 관료들이 황제의 행동에 의아해하며 힐끔거렸지만, 눈치껏 시선을 거두었다. 이안 역시 담담하게 정면만을 주시했다.
“폐하. 아직 이릅니다.”
무엇이 이르다는 것인지는 듣지 못했다. 화총이 바리엘에 이르다는 것인지, 아니면 황제인 자신이 이안에게 이르다는 것인지.
진은 어금니를 세게 깨물었다. 신의를 시험했다는 걸 들킨 데다, 이안은 보란 듯이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진정으로 그는 처음부터 물러설 생각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그저 자신을 시험했다는 것에 대한 저항인 걸까.
“그리고 동방의 마법사를 소개받는다 한들 화총 수입 건은 별개의 사안입니다. 그자들에게 그럴 권한이 있는지, 그리고 나아가 그럴 마음은 있는지 모를 일이지요.”
“…좋아. 이안 경, 그대의 뜻은 내 알겠다. 그렇다면 하나만 내어주시게.”
“무엇 말씀입니까.”
“마법부 별채 건설. 그것은 아니 되어. 내 별채를 건설하지 말라는 말이 아닐세. 다만, 적절한 시기가 될 때까지만 기다려 주시게. 그대도 다른 이들의 심상치 않은 시선을 느끼지 않아?”
안 그래도 황실의 핏줄이니 뭐니 떠들어 대는 탓에 수상이 열을 내고 있지 않나. 괜히 마법부 별채로 기름 부을 필요는 없었다. 언젠가, 적어도 전쟁 수습이 마무리되고 황궁이 안정화되면 마법부가 원치 않아도 별채 건설을 지시하겠노라고, 진은 그리 제안했다.
하지만 이안은 이것마저도 거절했다.
“송구합니다, 폐하. 명을 받들 수 없습니다.”
“하! 이안 경. 왜 이러시는가? 우리에겐 시간이 많아.”
“…모를 일입니다. 폐하. 제가 전쟁에 나섰던 것은 바리엘을 위해서기도 하지만, 마법부 별채 건설을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대체 그 별채의 의미가 무엇인데.”
“제가 황궁에 온 목적이라 할 수 있지요.”
“미치겠군, 정말.”
서운했다. 전쟁에 모든 걸 걸었던 까닭이, 바리엘을 위함과 동시에 마법부 별채 때문이었다고? 황궁에 온 목적이 고작 그런 것이었다니.
그럼 자신은? 자신의 바리엘을 함께 이루자며 무수히도 나누었던 그 대화들은, 대체 무엇이 되는가?
고오오.
진의 주위로 알 수 없는 분노가 휘몰아쳤다. 관료들은 아예 고개를 푹 숙이고서 그쪽으로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논의 사안에 대해 의견이 오갔으나, 그 누구도 집중하는 자가 없다.
“이안 경이 이럴수록 내가 곤란해져. 이안 경도 알지 않는가.”
“송구합니다, 폐하. 알고 있지만, 그런데도 물러설 수 없습니다. 가능한 제 선에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물러설 수 없다, 가능한 제 선에서 정리해 보겠다는 것이 무슨 뜻이겠는가. 황제가 막아선다 한들 막을 수 없다는 의미다.
진은 혼란스러웠다. 토올룬에 있었을 때와 무언가 달라진 느낌.
“폐하.”
“…….”
“폐하?”
수상이 두어 번 그를 불렀다. 그러자 진은 고개를 번쩍 들며 정신 차렸다. 진은 아무렇지 않게 수상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냐는 듯.
“아까 낮에 논의했던, ‘하완 초청’ 건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고자 합니다. 어찌 생각하십니까?”
“…의견이 바뀐 자가 있는가?”
반대했던 자들은 여전히 반대였고, 찬성했던 자들은 여전히 찬성이었다. 그 말인즉, 마법부의 이안 장관 역시 초청을 반대한다는 입장.
관료들은 속으로 황제의 결정을 짐작했다. 마법부 장관이 반대하는데, 황제께서 굳이 맞설 이유가…….
“보내도록 하라.”
“예?”
“하완에도 공식 초청장을 보내.”
관료들은 뜻밖의 결정에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이어 자연스레 이안 쪽을 흘겨봤다. 이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되레 담담해 보였다.
“가이아의 평화를 논하는 자리에 하완이 빠져서 되겠는가. 공식으로 사절단을 맞이하여 정세를 직접 살피고 대응하도록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바리엘을 공격했던 것에 대한 대가도 치르게 하면 될 터. 이에 관해서는 더 논의하지 않겠다.”
“바, 받들겠나이다, 페하.”
진은 저질러 놓고서 이안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별다른 반응이 없어 보였다. 속내는 어떠할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별수 있나. 마법부 별채도, 화총도, 이드갈도 어느 것 하나 내어줄 수 없다 하니, 개중 하나는 이리해서라도 가져오는 수밖에.
그리하지 않으면 수상을 비롯한 관료들 사이에서 또 무슨 말이 새어 나올지 모를 일이다. 이것은 황제인 자신을 지키고, 나아가 이안 경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다.
‘이번 건은 내가 가져가겠소, 이안 경.’
진은 무언으로 그리 일렀으나, 이안은 여전히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관료들은 어수선한 분위기를 갈무리하며 연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송구합니다, 폐하.’
이안은 손끝으로 보고서 끄트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균형을 이루려는 폐하의 의지는 잘 알겠습니다만, 지금은 그걸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황제로서, 어쩔 도리 없는 힘든 결정들을 내리셔야 함을 잘 압니다. 하나…….
‘뜻대로 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아직 진은 이안을 신뢰하고 있지만, 이렇게 조금씩 뜻이 어긋나다 보면 언젠가는 이 영원할 것 같던 관계에도 끝이 오리라.
그리고 그 끝에서 자신을 딛고 올라서면, 황제는 비로소 그 누구도 닿을 수 없는 곳에 다다라 바리엘을 내려다볼 수 있게 되겠지.
“예, 다음 안건은-”
사락.
보고서가 넘어가자, 로만드로 역시 그에 맞춰 종이를 넘기면서도 불안하게 이안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이안은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황궁에 무슨 여파를 가져올지 누구보다 잘 아는 자다. 한데 어찌하여 아까 낮부터 계속 부스럼을 만들어 내는가? 아파서 그런가?
‘미치겠네, 정말.’
로만드로는 눈알만 굴려 황제 쪽을 쳐다봤다. 몇 시간이나 이어지는 회의. 어두웠던 하늘이 어스름하니 밝아올 때까지,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말과 시선을 섞지 않았다. 아무리 눈치 없는 자라도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 이상이 생겼다는 건 바로 알아챌 정도다.
“예, 그러면 이 건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이안 경.”
“제가 아니라 폐하의 의중이 중요합니다.”
“아, 예. 그렇지요. 폐하, 마법부 장관이 폐하의 의중을 먼저 이르니…….”
“글쎄. 이에 대한 건은 내가 자세히 알지 못하니 추가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 참조할 수 있는 자료를 금주 내로 올리라 전하라.”
“아, 예에. 마법부 장관, 금주 내로 가능하십니까?”
“폐하의 명이면 따라야지요. 문제없습니다.”
“그럼, 그리하시고, 크흠.”
멀리서 서신 주고받는 것도 아니고, 서로 저리 가까이 붙어 앉아 있으면서…. 관료들은 어정쩡하게 가운데 끼어 말이나 전하는 현 상황을 한탄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비하면 이는 아무것도 아님을, 상상도 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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