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82
제782화. 멜라니아와 동방의 마법사
한편 그 시각. 하완 수도 북쪽.
혁명군이 점거한 구역은 모든 것이 무너져 그늘을 찾아볼 수 없었다. 부상자들은 들것에 실려 구석으로 이동하고, 사망자들은 그 자리가 제 무덤인 것처럼 몇 날 며칠이고 늘어져 있다.
혁명군 지도자인 카에타노는 부하들과 함께 검을 빼 들고서 진영을 살폈고, 언제 적들이 습격할지 몰라 항시 긴장을 풀지 않았다. 손잡이를 쥔 손 틈으로 핏물이 딱딱하게 굳어 틀을 만들 정도였으니까.
“피해는?”
“이번에는 좀 심각합니다. 하필이면 최근 계속 비가 내린지라 화총 사용이 불가했기에.”
“젠장할 괴뢰군 놈들, 비 내리니까 이때다 하고 덤비기는. 부상자 중에서도 검을 휘두를 수 있다면 전투조에 포함시켜라.”
“예, 알겠습니다.”
“바리엘에서는 아직 연락이 없나?”
“없습니다.”
쯧! 카에타노는 혀를 세게 차며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뜨렸다. 지금까지 괴뢰군과 맞서 버틴 것도 솔직히 기적이었다. 그들에게 화총이 없었더라면 진작 패배하여 목이 떨어져 나갔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슬슬 한계에 봉착했다. 민심도 백성이 있어야 민심 아니겠나? 계속되는 전투에 너무 많은 자들이 죽었고, 서서히 내란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 퍼지는 중이다.
“바리엘이 우리를 인정만 해 준다면, 지방 세력까지 결집해서 끌어올 수 있을 건데요.”
“분명히 받아들일 것이다. 그쪽 입장에서는 전혀 손해 볼 것이 없으니까. 동방 마법사들에게 언질이 오는지 잘 살펴라. 그들을 잡고 있으면 더 쉽게 바리엘을 설득할 수 있어.”
“예,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외부 힘으로 승리를 얻고자 할 생각은 없다. 우리들의 역사는 우리들의 의지로 써 나가는 게 맞지 않나. 조금 힘들겠지만, 카에타노는 뜻을 굽히지 않을 것이다.
막 그가 뒤돌아 나가려고 할 때였다. 부상자들 사이를 급히 오가는 여자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누구지?”
수많은 사람이 쓰러져 울부짖고, 살려 달라 빌고, 조금만 참으라 절규하며, 차라리 죽여 달라 애원하고 있는 와중-
그럼에도 여자는 눈에 확 띄었다. 로브와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추장스러운 옷차림으로 나름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아, 루스웨나에서 넘어온 한 상인의 여식이랍니다. 몰락 가문 출신이라는데 어디서 좀 배웠는지 외국어를 읽고 쓸 줄 알기에 진영으로 들였습니다. 치료제 구분하는 놈이 없어서요.”
그들이 버티며 사용하는 물자 대부분은 외국 상단이 급히 도망치며 내버린 것들이었다. 치료제 같은 건 외국어로 적혀 있는 터라 이를 읽고 사용할 줄 아는 지식인이 필요했다.
“괴뢰 놈들이 보낸 건 아니겠지.”
“아닐 겁니다. 가문의 브로치라며 늘 지니고 다니던걸, 다 필요 없다며 넘겨줬습니다.”
괴뢰군이라면 적이 자금으로 사용할 만한 보석 따위 주지 않았을 터. 물론 이 또한 함정일 수도 있겠으나, 카에타노는 이미 오랫동안 여인을 감시했다. 여인은 얼굴을 가린 것 외, 어떠한 의심스러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반복적으로 부상자를 돕고, 진영 운영에 도움을 주고 있을 뿐.
카에타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수롭지 않게 그녀를 지나쳤다.
스윽.
그런 카에타노를, 여인은 베일 아래 날카로운 시선으로 쫓았다. 순간순간을 도장으로 찍어 내듯 그 주위의 모든 것을 뇌에 각인시켰다. 함께 다니는 자들, 걸음걸이, 일과, 무엇을 눈에 담고 무엇을 입에 올리는지까지.
카에타노가 시야에서 온전히 사라지자, 그녀는 다시 정면의 부상자에게 집중했다. 중상을 입어 죽음을 앞둔 자였다. 그런 그의 고개가 반쯤 돌아가 있었다. 그 역시 카에타노의 흔적을 눈으로 살폈나 보다. 죽어 가는 와중에도, 대장의 마지막 위로를 받고 싶다는 듯.
“많이 바쁘신 것 같습니다. 바로 가셨습니다.”
“커헉, 어어억.”
부상자가 피 끓는 쇳소리를 내며 중얼거렸다.
“아직 연락이, 없나 보군요.”
“연락이라니요?”
“우리가 승리할 길, 크윽, 그들 말입니다.”
여인은 무미건조하게 그가 쏟아 내는 피를 손으로 받았다. 말하지 말라 이를 수 없었다. 이곳에서 떠도는 모든 정보가 곧 그녀의 살길이었으니까.
대신 부드러운 손길로 그의 등을 토닥였다. 사내가 눈물 흘리며 감사 인사했다. 꺼져 가는 그의 눈동자에 인생이 고였다.
“고맙소, 이름 모를, 크윽, 마지막을 이리…….”
숨이 꺽꺽 넘어가기 시작했다. 진실로 마지막이 다가온 것이다. 여인은 얼굴 가린 천을 한 손으로 고정하며 허리 숙였다. 그리고 이내, 아주 작게 속삭였다.
“고생하셨습니다. 평안히 가십시오. 내 이름은 멜라니아입니다.”
“멜라, 아…….”
툭. 숨이 끊어졌다.
멜라니아는 천천히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산 자보다 죽은 자가 많으니, 이자를 굳이 수습할 필요는 없다. 그녀는 조심스레 카에타노가 사라진 쪽으로 이동했다.
‘동방 마법사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나?’
그렇다면 다행이다. 화총을 매개로 하여 반란군이 동방 마법사와 연결되어 있을 거란 판단은 옳았고, 시기는 적절했다. 버고스에서 출발해 바리엘을 지나 하완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걱정이 컸던가? 혹여나 기회가 떠나갔을까 봐.
‘기다리자.’
은밀히 수행하려 해도, 이곳은 어수선한 전쟁터. 잿빛 잔해 위에서는 발자국을 숨길 수 없었고, 벽이 모두 무너진 곳에선 말소리를 감출 수 없었다. 하나 계속해서 주시하다 보면, 필시 동방의 마법사를 만날 기회가 있으리라.
멜라니아는 저 멀리서 날아드는 새 한 마리를 올려다봤다.
푸드드득!
다리에 무언가 묶인 전서구. 그녀는 카에타노 수하 중 한 명이 손을 뻗어 비둘기를 받아 내고, 이내 대장에게 달려가는 걸 확인했다.
멜라니아는 산처럼 쌓인 시체 더미에 몸을 기댄 채 작게 한숨 쉬었다. 몸은 고되고 그럴수록 머릿속은 또렷해졌다. 동방의 마법사를 만나게 되면, 무조건…….
‘무조건 바리엘로 인도한다. 내가 직접.’
동방은 미지의 나라다. 수교가 이루어지면 어떤 이득이 생길지 전혀 알 수 없는 별천지. 그리고 이는 바리엘뿐 아니라, 멜라니아에게도 적용되는 기회였다. 완전히 몰락해 버린 자신의 부와 명예, 혹은 그 이상의 것을 되찾아 올 기회.
멜라니아는 시체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보며 이를 꽉 깨물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절대 빈손으로 돌아가지는 않으리라.
* * *
며칠 후, 혁명군 지도자인 카에타노는 부하들과 함께 수도 외곽지로 이동했다.
거점 밖으로 나서는 것인지라 움직임이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어둠을 틈타 수십 명의 부하들이 대열을 이루며 숨죽였다.
스윽.
시체가 돌멩이처럼 배경을 이루고, 죽음만이 내려앉은 길목. 그들은 묵묵히 잔해를 헤치며 걸었다. 이윽고 어느 지점에 도착하자, 은밀히 주위를 살폈다.
“여기인 것 같습니다. 카에타노 님.”
“예, 저기 깃발이 보이는군요.”
제일 높은 곳에서 흔들리는 깃발을 찾아라, 그들과 만나기로 한 자들이 이른 단서였다.
카에타노는 긴장한 낯으로 검을 쥔 채 상대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구름에 가려졌던 달이 고개를 내밀면서 사방이 환해졌다.
“시간은?”
“새벽 두 시입니다. 아직 좀 남았습니다.”
언제 적들의 습격이 이어질지 모른다. 그들은 한껏 긴장한 채로 몸을 움츠렸고, 이내 뒤쪽으로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를 알아챘다.
“뒤쪽입니다!”
부하의 외침에 그가 고개를 재빠르게 돌렸다. 방금까지 아무도 없었거늘, 어느새 두 사람이 모습을 보여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사락거리는 동방의 옷,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칼. 한 명은 여인이 분명한데, 다른 한 명은 사내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참으로 오묘한 차림새로군. 카에타노는 잠시 숨을 고르고서 예의 바르게 고개 숙였다.
“반갑습니다, 동방의 마법사들이시여.”
여인은 하늘거리는 소매를 흔들며 천천히 아래로 걸어 내려왔다. 그 움직임이 마치 물 위를 걷는 것 같다. 흔들림이 없고, 이상하게 거리 감각이 희미했다.
“그래, 반갑구나. 서역의 인간들이여.”
머리에 꽂은 금빛 장신구들처럼 이목구비 또한 고고했다. 입술만큼이나 짙은 보랏빛 눈동자. 볼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카에타노입니다.”
“나는 은랑(銀浪)이다. 말한 것은 갖고 왔니?”
“여기 있습니다.”
카에타노는 부하들에게 고갯짓하여 작은 주머니들을 꺼냈다. 은랑은 망설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입구를 풀어헤쳤다. 다양한 크기의 호박색 보석이 들어 있었다.
“이드갈이라고 했던가?”
“예. 그렇습니다.”
은랑은 그것을 들어 올려 달빛에 비추더니, 참으로 신기하다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들여다보던 은랑의 입매가 시원하게 찢어졌다. 그녀는 뒤돌아 제 동료에게 서둘러 와 보라며 손짓했다.
“놀랍구나. 정말 샤티마에게 들은 그대로야. 호흔(號昕)! 이것 봐. 정말로 마력을 지우는 기질이 있다.”
여인의 부름에, 호흔이라 불린 자가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여인이 아니라 사내다. 짙은 흑색의 머리칼과 달리 눈동자는 백색에 가까운 푸른빛이다.
“그렇군.”
“그치? 근데 수가 좀 적은걸?”
은랑은 눈으로 수를 가늠하더니, 천천히 카에타노를 쳐다봤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
그저 시선이 마주친 것에 불과하건만, 카에타노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낯선 외모도 외모지만, 아마 전신으로 뿜어내는 신묘한 기(氣) 때문이리라.
“송구합니다. 내란 중이라 이드갈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많이 모자란다. 샤티마는 이드갈 세 궤를 주기로 약조하였다. 그녀가 죽었다고 해서 거래를 이런 식으로 마무리하면 안 되지.”
샤티마가 어떤 방식으로 동방의 마법사들과 거래를 트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미 죽어 버렸으니까. 그나마 그 옆에서 가까이 보좌하던 에리카 역시 루스웨나 어딘가에서 실종됐다.
이제 저들과 연을 이어 가게 될지 척을 지게 될지는, 현 혁명군 지도자인 카에타노의 손에 달렸다.
“이런 말씀 드려 송구하지만, 하완에서는 더 이상 이드갈을 구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하여,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제안이라니. 우스워라. 여기서 우리가 또 뭘.”
“손해 보실 것이 아니니 분노를 거두십시오.”
카에타노는 분명히 보았다. 으르렁거리는 은랑의 송곳니가 상당히 뾰족하다는 것을. 동방의 마법사라는 자들은 모두 저런가?
“이드갈은 바리엘 제국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그곳의 마법부 장관이 이걸 만드는 능력을 지녔다고 들었지요.”
“마법사가 마석을 생산한다고?”
“예, 소문으로는요. 기정사실로 여긴답니다.”
동방의 마법사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서역에서는 마법사가 마석을 만드는 게 일반적인가? 그럴 리 없는데. 그것도 마력과 상충하는 마석을? 동방에서는 전혀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
“마법사가 맞긴 한가? 마물이 아니고?”
“아, 마물은 절대 아닐 겁니다.”
카에타노는 강하게 부정했다. 제국의 마법부 장관이 마물이라니. 그런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동방의 마법사들은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세상에서는 마물 놈이 사람 행세를 하며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이 너무도 많았다.
“아무튼, 그래서?”
“바리엘 황궁으로 가시면 이드갈을 원하시는 만큼 잔뜩 얻을 수 있습니다. 이미 전언해 놓은지라, 두 분만 괜찮으시면 그쪽으로 모시고 싶습니다만.”
“모시긴 뭘 모셔. 그대들 꼴이나 보아.”
은랑은 피식 웃으며 성가시다는 듯 대꾸했다. 그러나 카에타노는 굴하지 않고 자신 있게 덧붙였다.
“바리엘의 황제가 우리를 공식적으로 초청할 것입니다. 믿으셔도 됩니다. 가이아와 동방은 서로에게 미지의 세상이지 않습니까. 저희와 함께 가신다면, 원하시는 바를 분명히 얻으실 겁니다.”
“원하는 것? 우리가 뭘 원하는데?”
“샤티마 수상에게 들었습니다. 동방의 귀물을 찾으신다고.”
“아아.”
은랑이 순순히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었다. 호흔이 무언가 기척을 감지하고서 뒤를 돌아봤다.
저 먼 곳에서 힘겹게 달려오는 인영. 바람에 로브가 휘날리며, 언뜻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
호흔은 이를 저지하거나, 알리지 않았다. 굉장히 절박해 보이는 낯빛이 어둠 속에서도 선명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