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83
제783화. 새로운 변수
“맞아. 동방의 귀물, 그걸 찾고 있다.”
동방의 절대자이자 모든 마법사의 스승인 대마법사의 귀물을 훔친 놈이, 블라스터해를 넘어 서역으로 숨어들었다.
그놈의 이름은 연목. 이곳에서는 어떤 이름을 사용하고 있을지, 외형은 또 어찌 변했을지, 어디서 뒈져 버리지는 않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우리가 하완에 온 것도 그 때문이지. 루스웨나엔 다른 애들이 갔고.”
“그렇다면 더더욱 바리엘로 가심이 맞습니다.”
“어째서?”
“그곳은 가이아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전역의 마법사가 모두 모여 있지요. 필시 귀물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으실 겁니다. 아니, 단언하겠습니다. 찾을 수 있습니다. 저희와 함께 가신다면.”
“아하하하!”
피식 웃음을 흘리던 은랑이 참지 못하고 깔깔 뒤집혔다. 저 맹랑한 것들 좀 보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카에타노는 당황하여 얼굴을 붉혔지만, 계속 당당하게 그들을 지켜봤다. 여기서 위축되어 물러서면 끝이다. 바리엘의 도움을 끌어내려면 저자들을 꾀어 황궁으로 데려가야 한다.
“호흔, 들었어? 이것들 하는 말이 들으면 들을수록 가관이다.”
비웃음 가득한 은랑과 달리, 호흔은 반응이 없다. 그는 은랑의 웃음이 사그라질 때까지 기다린 다음 대답했다.
“거절한다.”
“어, 어찌하여?”
“우리가 서역으로 넘어와 물건을 찾고 있다는 건 비밀. 은밀히 조사, 회수하여 돌아가는 게 목적이다. 한데 황궁 정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소문이 퍼질 것 아닌가.”
현재 스승께서는 면벽수련(面壁修練) 중이시다. 그러니 동방으로 돌아가 귀물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은 뒤,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일상을 찾는 게 제일이다. 만약 스승께서 이 난리를 알게 되면…….
“감당 못 하지.”
은랑은 생각만 해도 골치라는 듯, 머리를 꾹꾹 눌러 댔다. 이러니 아무리 자신들을 꾀어도 동하지가 않는 것이다. 흔적을 남기면 필시 언젠가 스승께서 알아채지 않겠나.
“우리 사정이 이러하니, 거절하는 바다.”
“하면-!”
카에타노가 말을 더듬다가 다급하게 외쳤다.
“화총을 더 내어주실 수는 없습니까?”
“화총을?”
“예. 지금은 혼란하지만 본래 하완은 제국으로 신문물을 들여보내는 입구와 같았습니다. 세상의 온갖 소식과 물건들이 드나드는 장소지요. 동방의 마법사님들이 조금만 더 도와주신다면, 저희가 귀물을 꼭 찾아드리겠습니다. 이미 저희는 마법사님들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흐음.”
은랑이 콧소리를 내며 호흔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이전의 거래 대금도 다 못 내었으면서 다시금 화총을 내어달라고 하니, 이걸 어찌 해석하면 좋을까? 우리를 아주 낮잡아 보는구나.”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두 사람은 이내 무언가를 속삭이며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그 모습이 흡사 달빛 아래의 흑여우 두 마리를 보는 것 같다. 카에타노는 넋 놓고 있다가, 이내 번뜩이는 은랑의 눈동자를 보고서 흠칫거렸다.
“호흔. 죽여 버릴까?”
“굳이?”
“건방지잖아. 아까부터.”
“음.”
두 사람이 무엇을 속닥거리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어도, 좋은 내용이 아님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카에타노가 뒷걸음질 치며 부하들에게 눈짓하려는 순간이었다.
“일단은 두고 보지.”
“왜?”
“누군가 또 왔어.”
호흔이 은랑에게 고갯짓했다.
타닥타닥!
기척을 감춘 채 멀리서 열심히 달려오던 인영이 가까워진 게다. 은랑도 그제야 뒤쪽을 바라보며 눈썹을 까딱거렸다.
“……!”
채앵! 챙!
카에타노와 그 부하들도 마찬가지, 적군의 습격인 줄 알고 반사적으로 무기를 빼 들었다.
하지만 습격이라기에는 발걸음 숫자가 너무 적었다. 그들은 홰에 불을 붙여 상대가 누군지를 살폈다. 로브가 낯익었다.
“카에타노 님, 저 여자…….”
“상인의 여식이라던 그자입니다.”
멜라니아는 동방의 마법사를 인지하자마자 벅차올랐다. 멀리서 봤을 때 혹시나 했는데, 정말이었구나! 그녀는 거추장스러운 로브 따위 이제 필요 없다는 듯 벗어던지고는 넙죽 엎드려 인사했다.
“저는 멜라니아입니다!”
명징하고 단단한 외침이었다.
“미친년이, 여기가 어디라고 따라와?”
“카, 카에타노 님.”
“소란이 너무 큽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스릉.
카에타노의 부하들이 검을 들고서 멜라니아에게 다가왔다. 쿵쿵, 심장이 뛰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동방의 마법사들은 잠깐 흥미로워했으나, 딱 거기까지. 금세 죽이든 말든 상관없다는 낯빛이 되었다. 어찌하여 여기까지 달려왔는지 궁금해하는 기색이나, 그뿐이다.
이에 멜라니아는 되레 침착해졌다.
‘원하는 걸 내어주는 자가 결국엔 원하는 걸 얻는다. 가타부타 덧붙일 것 없어.’
멜라니아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내질렀다.
“동방의 귀물을 찾고 계신다 알고 있습니다.”
“닥쳐라!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혹, 그것이 세모난 상자입니까? 흰색의 종이와 함께 세 개의 구슬이 담긴!”
“잘못 찾아왔다!”
촤아악!
카에타노 부하가 검을 휘두르려는 찰나, 은랑과 호흔의 눈동자가 커졌다.
동시에 멜라니아는 제 앞에서 번쩍이는 무언가를 보고 굳어 버렸다. 검날인가? 달빛에 비친?
지이잉!
퍼엉!
“히익!”
“이, 이보십시오! 이런!”
순식간에 터진 사내의 머리. 몸뚱이만 남은 시체가 균형을 잃고 옆으로 쓰러졌다. 후두둑, 사체 조각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은랑은 멜라니아에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어서 더 말해 보라는 듯이.
“무, 무슨 짓입니까?!”
“시끄러워. 눈치껏 굴어.”
카에타노가 항의했으나, 은랑은 단 한 번의 일갈로 입다물게 했다.
멜라니아는 제 볼과 손등 위로 떨어진 살덩이를 가볍게 털어내며 정신을 다잡았다.
‘잔인한 자들이다. 내가 보았던 바리엘 마법사들과 달라.’
그러니, 기꺼이 머리를 숙이고 낮게 접근할 것.
“뭐 하니? 내가 실수로 네 혀라도 잘랐다니?”
‘성미도 급하고-’
“아니면 뭐. 너도 화총이 필요해?”
‘이해관계 따지는 걸 우선시한다.’
은랑은 얼어붙은 멜라니아에게 가까이 다가와 허리 굽혔다. 그녀의 몸짓을 따라 검고 긴 머리칼이 스르륵 흘러내렸다. 내전 한복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럽고 달착지근한 향기가 풍겼다.
멜라니아는 그녀의 미소를 마주하고서 더욱 바짝 정신 차렸다. 세상에는 웃을수록 위험한 자가 있는데, 바로 이 여인이 그런 인간이다.
“자세히 보니 피부가 곱구나. 손도 가늘고.”
‘겉으로는 흙먼지를 뒤집어썼어도 태생적으로 귀하게 자랐구나’란 말을 돌려 이른 것이다. 멜라니아는 더듬더듬 최대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일렀다.
“바리엘과 루스웨나의 피가 섞여 있습니다. 자세한 것을 이르지 못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래.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별 같잖은 말로 꾀려는 저것들보단 분명히 흥미롭구나. 너, 그걸 보았니?”
“보지는 못했고, 전해 들었습니다.”
“누구한테서?”
“이안 히엘로.”
이안 히엘로?
어라, 어디서 들었더라? 은랑이 살짝 놀랐다는 듯, 카에타노를 돌아봤다. 바리엘의 마법부 장관, 이드갈을 생성해 낸다는 마법사가 바로 그자 아니던가?
“이안 장관과 부하들이 루스웨나에서 결전을 치를 때 그걸 보았노라고 전해 들은 적 있습니다. 타국에서 넘어온 한 마법사가 갖고 있던 것인데, 마법사의 숲에 숨겨 둔 것을 찾았다고요.”
연목이로군. 은랑은 멜라니아에게 더욱더 가까이 다가와 고개 숙였다.
“그놈, 죽었어?”
제일 궁금한 것이었다. 감히 자신들을 배신한 버러지 같은 놈. 길가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그리되면 함(函)을 찾을 수 없으니 안 되지 싶었다.
이에 멜라니아는 고민했다.
‘어찌하지? 사실을 고할까?’
가시처럼 날카롭고 예민한 자다. 주고받은 대화 하나하나가 운명을 가르는 선택지처럼 느껴졌다. 영원 같은 찰나의 고민 끝에, 멜라니아는 긍정의 뜻으로 주억거렸다.
“아하하하하!”
다행히 은랑은 기뻐했다. 제 손으로 찢어발기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이미 죽었다는 사실에 만족을 숨기지 못했다.
“이안 히엘로 경과 그 부하들이 처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투가 격렬하여 피해가 컸다고 하더군요.”
“그래. 그놈 참 궁금한 자로다. 바리엘로 가면 볼 수 있다고?”
“네. 찾으시는 물건에 대해서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사실 멜라니아는 이미 그 물건을 사용해 버렸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으나, 굳이 덧붙이지는 않았다. 애써 목숨 걸 필요는 없지 않나? 그런 건 이안 경에게 직접 들으면 될 말이니.
은랑이 호흔에게 눈짓했다.
“쉽게 풀리네.”
“다행히도.”
“좋다. 너를 따라가면 이안 히엘로를 만날 수 있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멜라니아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감돌았다. 이로써 자신은 바리엘에 동방의 마법사를 처음으로 인도한 자가 될 것이다. 기회를 잡은 지금부터 시작. 멜라니아가 원하는 미래가 조금 더 선명해졌다.
“잠깐!”
그때, 카에타노가 두 팔을 휘저으며 끼어들었다. 갑자기 난입한 여자 하나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저, 저 여자를 따라간다니요. 신분도 뭣도 모르는데, 어찌 그런 선택을 하십니까?”
“신분도 뭣도 없지만, 정보가 있잖아? 우리는 바리엘과 수교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물건의 행방을 찾고 싶거든.”
“아니, 생각해 보십시오! 이안 히엘로는 마법부의 장관입니다. 저희와 함께 가셔도 그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목적지가 같은데 어찌하여 모르는 길을 택하십니까?”
은랑이 잠시 고민하듯 팔짱 낀 손끝을 탁탁 튕겨 댔다. 그러자 멜라니아가 재빠르게 반박했다. 카에타노만큼이나 그녀도 절박했기에, 진실에 거짓을 조금 섞어서.
“정식 수교라 하면, 저들의 뒤에는 바리엘의 행정부나 외교부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들은 모두 황제의 측근이지요. 하지만 마법부는 다릅니다. 마법부는 독자적인 장관 선출 방식을 갖고 있고, 바리엘의 중대사를 헤쳐 나가는 부서인지라 황제가 견제하는 세력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저자들은 마법부와 반대 선상에 있는 자들이다?”
“예. 마법부와 만나시려면, 정확히는 이안 히엘로 마법부 장관을 만나시려면 저와 함께하셔야 합니다. 이는 진실입니다.”
“하긴. 동서고금 불문 권력자들의 행태는 똑같겠지. 호흔, 어찌 생각해?”
호흔은 귀찮다는 듯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멜라니아 쪽을 쳐다볼 뿐.
그 침묵의 의미를 알아차린 카에타노가 결단을 내렸다.
촤아악!
저들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면, 선택지를 없애는 수밖에. 카에타노의 검은 신속하고 단호한 궤를 그려 냈다. 벼락같은 움직임이다. 그간 혁명군을 이끌며 지독한 내란 속에서도 살아남은 자다운.
하지만-
지이잉!
무언가 찢기는 소리가 들렸다.
멜라니아는 질끈 감았던 눈을 슬며시 떴고, 이내 우뚝 서 있는 카에타노를 올려다봤다. 상황을 인지할 수 없었다.
스르륵!
깔끔하게 떨어지는 목. 잘린 단면을 따라, 푸른빛 실이 잔흔처럼 일렁였다. 그것은 호흔의 손끝과 이어져 있었다. 마력이었다.
그는 이어서 카에타노의 부하들을 하나씩 처리하기 시작했다.
사사삭!
마력은 채찍처럼 길게 늘어났고, 이내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어 순식간에 목덜미를 감아 쳤다. 숭덩숭덩, 하나같이 무른 과일처럼 목이 잘려 나갔다.
“자아. 그러지 말고-”
은랑은 멜라니아에게 일어나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바닥부터 팔 안쪽까지, 처음 보는 낯선 문자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일어나 보렴. 저것들은 신경 쓰지 말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