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84
제784화. 예상 밖
“요즘 뭔가 이상해.”
“너도 그렇게 느껴?”
황궁 직원들은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한가로운 점심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들은 벤치에 일렬로 조르륵 앉아서는 차를 홀짝였다.
“그날 이후부터지?”
“응. 그날 이후부터.”
대회의가 아침과 밤 연달아 두 번 열린 날. 그들은 황제가 마법부 장관과 대놓고 대립했다는, 말도 안 되는 후기를 전해 들었다. 시선도 섞지 않으시고 심지어는 말도 섞지 않으셨단다. 회의인데.
“마법부 장관으로서는 좀 그렇지. 히엘로령이 개박살 났는데, 그 당사자들을 황궁에 불러서 이런저런 협정을 맺는다는 게. 차라리 루스웨나처럼 뒤집어엎었으면 분이라도 풀렸겠다. 나 같아도 좀 그랬어.”
“그래도 공무 중에 사적인 감정 섞으면 쓰나. 화총 독점 권리만 가져오면 앞으로 다른 나라 걱정할 거 하나 없는데.”
“이안 장관이 공무에 감정 섞는 사람이니? 다 뜻이 있어서 그렇단다, 이 우매한 것들아.”
“뭐? 그러는 너는 뭐 얼마나 잘나셔서.”
“소문으로는 이드갈을 내주라는 조건이 걸려 있었대. 마법부가 미쳤다고 그걸 해 줘? 안 그래도 화총 들어오면 입지가 위태로워지는데. 폐하와 관계가 아무리 각별해도 아닌 건 아닌 거다, 이거지.”
쓰으읍. 그들은 동시에 차를 홀짝거렸다. 이거, 이해가 되면서도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복잡한 사안이다.
“그래도 결국에는 하완에 초청장 보냈다며? 좀 있으면 오겠네? 화총 갖고서.”
“이안 경이 아무리 그래도 황제 폐하를 어찌 이겨.”
“이길 마음도 없으실걸?”
“정말? 그렇게 생각해?”
“왜? 뭐 알아?”
“아니, 그렇잖아. 마법부 별채 건부터 시작해서 전쟁 끝나고 나선 하나도 내어주려 하질 않으신대. 예전이랑 달라졌다는 생각 안 들어?”
“음. 그렇긴 해. 예전이었으면 반대 의견을 내더라도 말미엔 무조건 폐하 뜻을 따랐을 건데.”
“그러니까 폐하도 화가 나셔서 저러시지. 지금 며칠째지? 아직도 마법부 쪽으로는 냉랭하시다며.”
“이러다 마법부 장관님이 엄한 마음 먹는 거 아닌가 몰-”
퍼억!
“푸확!”
누군가 뒤통수를 갑자기 후려치자, 직원은 머금던 차를 뿜어 버렸다. 옷이고 뭐고 전부 엉망이 됐다. 그는 화를 내며 뒤를 돌아봤다가, 이내 입을 합 다물었다.
“지금 뭐랬냐?”
“아, 그, 안녕하십니까. 아코렐라 대장.”
“이것들이 미쳤나, 어디서 대낮부터 남의 상관을 씹어 대고 지랄들이신지.”
“버, 벌써 점심시간 끝났네.”
“어어어! 그렇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아코렐라 대장, 일 보십시오. 크흠!”
“새끼들아! 일로 안 와!”
아코렐라가 보고서를 흔들며 쫓아가자 직원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쳤다. 짐짓 몇 걸음 쫓던 아코렐라는 이내 걸음을 뚝 멈추고서 인상을 찌푸렸다.
“개새끼들.”
실험실에 콕 박혀 있는데도 귀에 자꾸만 이상한 말들이 들려왔다. 시작은 소소하게 전쟁터에서 돌았던 황실 핏줄 논란. 그다음은 마법부가 세력을 확장하고 견고히하기 위해 움직인다는 소문이다.
아코렐라는 놈들이 놓고 간 잔을 발로 까 버렸다.
쨍그랑!
로만드로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유리잔 깨지는 소리에 흠칫 뒤를 돌아봤다. 이상하다, 헛걸 들었나? 다시 가던 길을 가려는데, 복도 끄트머리에 마법사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씩씩대는 게 보였다.
“이보게들. 뭐 하나?”
“진짜, 마법 썼으면 내가 이겼다.”
“아니 미친놈아. 그래도 치고받으면 어떡해?”
“등신. 한번 붙었으면 이기고 올 것이지.”
“아니, 따지고 보면 비긴 거 아냐?”
“넌 쌍코피, 그 새끼는 그냥 코피.”
“으허어억!”
로만드로는 기겁하며 달려와 마법사의 얼굴을 뜯어봤다. 여기저기 긁히고 콧구멍에는 솜뭉치가 끼워져 있다.
“어, 어쩌다 이랬어?”
“저기, 행정부 직원이랑 한판 했대요.”
“뭐, 뭔, 여기가 학교도 아니고.”
마법사들은 씩씩거리며 로만드로에게 억울함을 풀었다. 수다 떠는 주둥이 셋만 모였다 하면 마법부 장관을 입에 올리기 바쁘다는 게 요지였다. 다들 하나같이 ‘이안이 변한 것 같다’ 따위의 헛소리를 지껄이는데, 그럼 가만히 있나? 전쟁터에서 미친 듯이 구르고 온 그들에게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취급은 모욕이다.
“로만드로 님. 로만드로 님이 이안 님께 말씀 좀 드려 보십시오. 아니, 안 그러시던 분이 갑자기 저러시니까 좀 그렇습니다.”
“예, 생각이 다 있으시겠지만 황궁 분위기 진짜 이상하다고요. 폐하께서도 좀 화나신 것 같고.”
“처음으로 서로 대립하신 거라.”
“아니 근데, 화총 들여오기로 했으면 이미 끝난 거 아닌가? 왜 자꾸 우리 머리채를 잡아?”
“우리가 만만하지이이!”
콰아앙! 쾅!
마법사들이 급발진하자 로만드로가 쩔쩔매며 그들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그도 공감하는 바였다. 이안이 너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바가 없잖아 있다.
“그, 잠깐만. 알았으니까 진정들 하고. 내가 이안에게 한번 말해 볼게.”
“흐윽, 정말요?”
“그래. 그러니까 울지 말고! 뚝!”
“아으, 사실 너무 아파요. 그 개자식은 퇴근하고 운동만 하나 봐. 치사하긴… 나는 퇴근 못 하는데! 마법사라서!”
“이그, 쯧쯧. 나이 먹고 그게 뭐야.”
로만드로는 마법사들을 달랜 다음 다시 장관실로 향했다. 전달 사항이 하나 더 늘어났다. 문 앞에서,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화총 건이 폐하의 주도권 아래로 넘어갔다는 사실. 만약 우리가 그것까지 끌고 왔으면 진짜 시끄러워졌겠지. 이번 건은 폐하께서 잘하셨어.’
바리엘의 역사에서 균형은 늘 중요했다. 그리고 그 균형은 반드시 황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하나 최근 이안의 행보는 이와 정반대였으니, 모두가 이상하다 느끼는 게 당연했다.
그렇다고 이안이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른 이들은 헤아리지 못하는, 그러나 속 시원히 말하지 못하는 어떠한 이유가 있겠지. 로만드로는 그리 확신했다.
똑똑.
“이안, 나일세.”
“들어오십시오.”
바깥은 저리도 난리가 났는데, 이안은 그림을 찍어 낸 것처럼 평소와 같은 모습이다. 단정한 옷차림과 반듯한 자세, 그리고 언제나처럼 펜을 쥐고 있는 것까지. 로만드로는 그의 앞에 보고서를 내려놓고서 넌지시 흘렸다.
“그, 이안. 요즘 들어 황궁이 시끄러워.”
“예, 그런 것 같더군요. 바깥에서 우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습니다.”
“들렸어?!”
이안은 시선만 힐끗 돌려 로만드로를 보더니 다시 일에 몰두했다. 원래도 일중독 성향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좀 심한 것 같다. 마치 시간이 없는 사람처럼 하루를 잘게 쪼개 쓰고 있었으니.
“시공사는 정해졌습니까?”
“저번에 낙찰받았던 데서 하면 될 것이네. 티모시도 다시 중앙으로 올라온다 하였고.”
“아. 티모시.”
그랬지. 나움의 선조이자, 마법부 별채 건설의 핵심 인물. 이안은 깜빡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과 돈만 있으면 건설 자체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필요한 마력석도 모두 준비되었으니.
“속히 서둘러 주십시오.”
“뭐가 그리 급해. 이안, 그렇게 하다가는 그 예쁜 얼굴 폭삭 늙어 버릴걸세. 내가 이래 뵈어도 어릴 때는 정말 한 인물 했었거든. 어어? 뭔가, 그 표정은?”
“…….”
“아무튼, 행정부 들어가면서부터 내가 이리되었네. 봐봐! 무섭지?”
어흥! 로만드로가 장난스럽게 농담을 던졌지만, 이안은 희미한 미소만 지을 뿐 반응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기에, 이안은 모든 걸 서둘러 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별채 건설.
‘최대한 완공까지 보고 갔으면 좋겠는데.’
될까? 이안은 다시금 자신의 계획을 머릿속에서 굴리며 시일을 계산했다. 로만드로는 그런 이안을 걱정스레 보다가 흐트러진 서류를 정리했다. 그때였다.
타닥타닥!
“저저, 복도에서 뛰지 말라고 그리 일렀거늘.”
밖에서 힘차게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 이어서 노크와 동시에 문이 열렸다. 마법사 한 명이 당황스러운 낯으로 소리쳤다.
“이안 님, 큰일 났습니다!”
“하이고, 왜! 또 누구 코피 터져서 왔나?”
“아니, 그게 아니라요. 하완에 보냈던 초청장이 반송되었다 합니다.”
“뭐?”
로만드로는 ‘으잉?’ 하는 표정으로 멈칫거렸다. 이안도 갑작스러운 소식에 조금 놀란 눈치다. 하지만 이내, 초청장이 되돌아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유추했다.
“…죽었나?”
“누, 누가 죽어?”
“모르겠습니다. 폐하께서 긴급회의를 소집한다 하십니다.”
톡. 이안은 펜을 내려놓았다. 그러고서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초청장이 반송되었으니 화총 수입은 무기한 연기나 마찬가지. 당장 화총의 소재 파악부터 난항일 게 분명했다. 마법부로서는 분명한 호재.
“로만드로 님, 준비하십시오.”
“아! 그래그래. 이거 참, 갑자기 무슨 일인지, 원.”
문틈으로, 콧구멍에 솜을 틀어박은 마법사들이 슬쩍 고개를 내밀어 댔다. 하나같이 피로에 찌든 얼굴이다.
이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웃옷을 챙겨 들었다.
“다들 조금만 고생하게.”
“아, 무, 무슨! 아닙니다!”
“예,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그럼요. 얼마나 괜찮은데요.”
다른 부서 새끼들이 씹어 대는 거, 하나도 신경 안 쓰입니다. 그저 속상한 거니까요. 마법사들이 헤실헤실 웃으며 이안에게 인사했다.
방을 나서는 이안. 그 뒤를 로만드로가 바짝 따라붙었다.
“근데 초청장이 아예 되돌아온 거면, 반란군 조직이 와해됐단 뜻인가?”
“그에 준할 만큼 비상 상황이란 뜻이겠지요.”
“어허…. 내란이 심각하긴 한가 봐. 그래도 반군 수장 정도면 어느 정도 안전이 보장되어 있을 건데.”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죠.”
“보통은?”
“네. 하지만 모르는 일 아닙니까.”
“뭐, 뭐가?”
“누군가에 의해 죽었을지요.”
로만드로는 눈을 끔뻑거리더니, 이내 입을 쩌억 벌렸다. 그는 길길이 날뛰며 말도 안 된다 소리쳤다.
“우리가 한 거 아니잖아!”
* * *
“정보원은? 연락이 안 되는가?”
수상의 물음에 외교부 장관이 난색을 보였다. 자신 역시도 막 보고를 올려 받은 터라 파악이 쉽지 않다는 듯.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더듬거렸다.
“예, 마지막 전언 이후로는 들려온 것이 없답니다. 확실한 것은, 반란군 지도부가 모두 죽었다는 사실뿐입니다.”
“확실한가?”
“반군 지도자 카에타노와 핵심 간부들의 시신이 하완 수도 외곽에서 발견됐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판이 완전히 뒤집힌 게다.
수상은 이마를 짚으며 가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지간해서는 이리 대놓고 감정을 보이지 않는 자였으나, 작금의 사태에 대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화총은?”
“소재 파악 불가입니다.”
화총이 어디로 갔는지가 중요했다. 그나마 하완 안에서 돌면 다행인데, 전혀 예상 밖의 세력에게 넘어가거나 사라지게 된다면? 정세의 흐름을 가늠할 수 없게 된다.
이러나저러나 달갑잖은 상황이었다. 변수가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바리엘은 고려할 것이 너무도 많아지니.
“대체 어쩌다가, 하아.”
“한데…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외교부 장관은 조심스럽게 보고했다.
“시신 모두 목이 잘렸는데, 절단면이 기묘할 정도로 깔끔했다고 하더군요. 사건 당시 의문의 빛무리를 보았다는 증언도 있습니다만, 이건 확실치 않습니다.”
수상이 멈칫거리더니, 황제 쪽으로 고개 돌렸다. 황제는 창밖으로 시선을 둔 채 반응하지 않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수상은 짐작할 수 없었다.
“검 같은 날붙이를 쓴 게 아님은 확실합니다. 마법이나 주술의 흔적으로 보이는데, 저희 쪽에서 파악한 바로 내전에 동원된 마법사나 술사는 없습니다. 동방의 마법사와 연락하는 것 같긴 했지만, 아무래도 그들에겐 그럴 동기가 전혀 없는지라…….”
“아니-”
말을 끊은 것은 한참이나 침묵하던 진이었다. 형형한 두 눈. 그의 시선이 수상을 똑바로 향했다.
“동기야 얼마든지 생길 수 있지.”
누군가가 새로이 끼어들었다면 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