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85
제785화. 무어라 하시던가?
멜라니아는 자신을 잡아끄는 은랑의 손길을 따라 비척비척 걸어갔다. 기분 탓일까. 목이 잘린 반란군 시체의 시선이 자신을 따라오는 것 같았다.
저들은 자신이 죽은지도 모른 채 죽어 가고 있다. 그만큼 호흔의 공격은 순식간이었고, 놀라울 정도로 예리했으니.
문득, 멜라니아가 걸음을 멈췄다.
“저기-”
“응?”
“송구합니다만, 화, 화총을 수거하심이 좋겠습니다.”
은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가 멜라니아의 의도를 살피고자 차갑게 번뜩였다.
“반란군이 바리엘에 공식적인 제안을 할 수 있었던 건 화총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동방의 화총은 가이아에서 처음 보는 것인지라, 전세에 큰 영향을 줍니다. 그걸 가지고 가시면 동방의 마법사 두 분께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쨌거나 마법부 장관 역시 바리엘의 정치인이니까요.”
“아아. 그 뜻이로구나? 그런 것이라면 괜찮다.”
“예?”
은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화총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듯이.
“궁금하니?”
멜라니아는 호기심이 치솟았지만, 어금니를 깨물며 참아 냈다.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단의 영역에 발을 들이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그곳을 들추려면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계속해서 이안 히엘로가 생각나는 건, 그 때문이겠지? 멜라니아는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닙니다.”
황궁의 마법사와 이들은 다르다. 힘의 근원은 같을지 몰라도 갈래는 분명히 상극을 달리고 있었다. 어째서 마법사와 마물의 힘을 마력(魔力)이라 묶어서 부르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너, 참 마음에 드는구나.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멜라니아입니다.”
“그래, 멜라니아. 바리엘로 가면 이안 히엘로를 바로 만날 수 있나?”
“그렇습니다. 황궁에 있을 것인데, 그것이 부담되신다면 따로 전언하여 만남을 주선하겠습니다.”
“좋아. 그렇게 하지. 멜라니아. 나를 꽉 붙들어라.”
「사류(射流)」.
멜라니아의 눈이 커졌다. 주문을 외는 모습은 바리엘의 마법사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마법진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은랑의 주위로 길게 뻗어 나는 백색의 두루마리에는 금빛 문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건 은랑의 몸에 새겨진 것과 같은 것이었다.
지이잉! 지잉!
주위에 스며들었던 달빛이 조금씩 밝아지더니, 이내 그들의 몸을 감쌌다. 은랑은 즐겁다는 듯 몸을 돌렸고, 그에 따라 기다란 옷자락이 아름답게 흔들렸다.
“가자, 달빛을 타고.”
* * *
“우리가 한 거 아니잖아, 응?”
본궁으로 가는 마차 안-
로만드로가 이안에게 매달리다시피 붙어서는 연신 쫑알거렸다. 화총 수입이 미뤄지면 제일 이득 얻는 쪽이 어디겠는가? 바로 마법부다. 그리고 그들은 반란군 수장 정도는 가볍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도 있다.
로만드로가 기절하듯 날뛰자, 이안이 진정하라며 웃었다.
“왜, 왜 그렇게 웃어? 우리 아니지? 응?”
“그걸 누가 믿어 줄지 궁금해서요.”
“아니, 믿고 말고 할 게 어디 있어! 아닌데!”
글쎄다. 이안은 대답을 미루며 창밖을 쳐다봤다. 거리낄 것 없이 흘러가는 사태를 보고 있자니 잘 됐다 싶으면서도 막상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이안은 서둘러 마법부 별채 건설을 끝내는 데 집중하겠노라 결심했다.
‘말 그대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자신이 황궁에서 도려질수록, 마법부에도 적잖은 부담이 갈 것이란 걸 알고 있다. 그러니 기반만 마련되면 스스로…….
끼이익!
“이안 님, 도착했습니다.”
마차가 본궁 앞에서 멈췄다. 이미 소식을 들었는지 관련 부서 수장들과 직원들이 한데 모여 수군대고 있었다. 그들은 이안이 들어서자 소란을 뚝 끊어 내고는 짤막하게 인사했다.
로만드로는 불만스럽다는 듯 입술을 오므리며 ‘흥!’ 콧방귀를 끼었다. 그리 의심스러우면 대놓고 들어오시든가. 로만드로는 전투력을 머리끝까지 올린 채 이안의 뒤를 따랐다.
“마법부의 이안 히엘로 장관 도착했습니다.”
“들라 하게.”
회의실이 아닌 황제의 집무실이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황제, 수상, 행정부 장관, 외교부 장관이 동시에 이안을 돌아봤다. 그가 오기 한참 전부터 모여 있었는지, 피우다 만 궐련이나 반쯤 남은 찻잔이 테이블 위 올려져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앉으십시오, 이안 장관.”
그에게 자리를 안내한 건 수상이었다. 황제는 여전히 반대쪽을 응시한 채 반응이 없었다. 수상은 이안이 앉기가 무섭게 보고서를 내어주며 설명했다.
“오면서 간단히 들었을 것이지만, 다시 전합니다. 이는 외교부에서 확인된 정보를 추린 것입니다.”
“예, 수상님.”
“반란군 수장과 그 무리가 의문의 공격을 받아 몰살했고, 이를 기폭제 삼아 치열한 전투가 다시금 터졌소. 화총의 소재는 파악 불가라 하더군.”
수상은 그리 이르며 이안의 안색을 살폈다. 워낙 감정 조절에 능숙한 지라 쉬이 판별할 수는 없겠다만, 수상은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시선을 날카롭게 세웠다.
그 의도를 알아챈 이안이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의심하는 기세가 너무 맹렬한 것 아닌가?
“갑작스러운 일이군요.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이안은 그리 이르고서 입을 다물었다.
집무실에 침묵이 감돌았다. 황제를 제외한 모두가 무어라 말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어쩔 수 없이 의문을 제기한 것은 외교부 장관이다.
“크흠. 이안 장관. 혹 짐작 가는 것이 있으십니까?”
“짐작이라 하시면?”
“보고서에 따르면, 반란군 시체가 일반적이지 않다고 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할 정도로 절단면이 깔끔하다더군요.”
“그래서요?”
“그러니까, 그, 혹시 아시는 게 있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이안은 소파에 등을 기대며 다리를 꼬았다. 그가 여유를 부릴수록 외교부 장관은 긴장에 사로잡혔다. 그저 묻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안 장관이 그 의도를 모를 리 없지 않은가.
“저는 바리엘의 마법부 장관이지, 하완의 장관이 아닙니다만.”
“예, 물론 압니다. 한데-”
“타국에 마법사가 있는지 없는지는 외교부에서 파악할 사안 아닙니까? 현황 파악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말씀을, 어찌 황제 폐하 앞에서 이르십니까?”
마법사는 국가의 주요 인적 자원이다. 경제, 문화, 군사 등 모든 영역에 걸쳐 큰 존재감을 행사하니, 자연스레 외교에 있어서도 필수 고려 대상이었다. 그런데 어찌 하완의 마법사 보유 현황을 마법부 장관에게 묻는 것인가? 이는 분명 외교부의 소임이건만.
외교부 장관은 난색을 보이며 덧붙였다.
“하완에는 마법사가 없습니다. 이는 분명합니다. 내란 전에도 그러했고, 발발 후에도 그러합니다.”
아.
이안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잘 걸렸다는 듯.
“그러니까 외교부 장관께서는, 하완에 마법사가 없음을 확신하면서, 마법부에 이 사달이 난 까닭을 묻는 게로군요. 이를 제가 어찌 해석하면 좋겠습니까?”
명백한 혐의 제기였다. 자신 있나? 마법부가 현 사안과 연관되어 있지 않을 경우, 책임은 질 수 있고? 이안은 그리 묻고 있었다.
외교부 장관이 벙긋거리며 대답을 놓치자, 이안은 보란 듯이 수상을 돌아봤다.
“시체를 가져와 묻는 것도 아니고, 그 의문의 빛에 대한 증언이 상세한 것도 아니고. 당최 무엇을 묻고자 하는 것인지 짐작할 수 없군요.”
어디 한번 들어와 보십시오, 수상.
이안이 싱긋 웃자, 퀸타나가 분위기를 중재했다.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그저 기이한 죽음이니 마법과 관련된 듯하여 의견을 여쭈는 것이니까요.”
“아아. 모르겠습니다. 마법일 수도 있고, 마검일 수도 있고, 나아가 술사일 수도 있지요.”
“이안 장관.”
수상이 나지막이 그를 불렀다.
“짐작되는 바가 전혀 없다면 부탁이 있소이다. 마법사로 조사단을 꾸려 하완으로 파견해 주시오.”
“우리 애들을요.”
“내란이 심하니 안전상 일반 조사단은 적절치 않고, 무엇보다 외교부에서는 마법의 흔적임을 확신하고 있으니-”
가만히 듣고 있던 외교부 장관이 흠칫거리며 수상을 돌아봤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곤란하다는 듯이. 하지만 수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 제안했다.
“이를 정확히 조사하려면 마법사가 가는 게 옳다고 여겨지네. 가서 상황을 직접 살피고 화총까지 찾아와 주었으면 하는데. 어찌 생각하시는지?”
이안은 잠시 고민하는 척 차를 입에 머금었다. 조사단 명분으로 황궁 내 마법사 수를 줄일 속셈이다. 마법사들을 하완으로 보내 놓고, 이쪽에서는 이쪽대로 또 저쪽에서는 저쪽대로 조사를 진행하겠지.
게다가 ‘화총 수거’까지 담당하게 되면, 임무 완수까지 시일이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이안의 서두를 들은 수상이 미간을 찌푸렸다. 거절을 위한 서두임이 명백하기에.
“아시다시피, 전쟁의 여파가 아직 심한 터라 마법사 대부분이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력이 온전치 않은 상태의 마법사는 일반인에 불과하니, 일반 조사단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다들 입술을 짓누르며 낯빛을 굳혔다. 마법부 장관의 태도가 무언가 미심쩍지 않나? 의심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 확신으로 변해 갔다. 반란군 몰살 사태에 마법부, 아니 이안이 연관되어 있노라고.
“게다가 곧 있으면 각국에서 사절단이 도착할 것입니다. 손님맞이와 함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마법사들이 황궁에 남아 있는 게 맞습니다. 우선은 외교부에서 조사단을 파견하시지요. 적당한 때가 되면, 저희 쪽에서 인력을 지원하겠습니다.”
“적당한 때라니. 그게 언제랍니까.”
“모를 일이지요. 장관께서도 이런 사태가 닥칠지 모르셨던 것처럼요.”
어허, 이것 보아? 외교부 장관의 눈알이 황당하다는 듯 돌아갔다. 마법사를 보내지 않겠다는 말과 무엇 다르단 말인가? 발칙한 태도로 보니, 이자가 사태의 범인이 틀림없다! 외교부 장관이 벌떡 일어나 큰 소리를 내었다.
“지금 장난합니까? 화총이 누구의 손에 들어갈지도 모르는 상황에, 마법부 수장 된 자로서 어찌 이리 안일하게 대처하시는 겁니까?”
“제 제안 중 어느 부분이 안일합니까? 전쟁터에서 죽을 고비 넘기고 돌아와 아직도 온전치 않은 자들에게 회복할 시간을 주겠다는 것이 안일하다는 말씀입니까?”
“이안 장관! 솔직히 일러 보십시오. 정녕 이번 사태와 마법부는 관련이 없습니까? 그렇지 않고서는 이럴 수 없지요.”
이안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없습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수상과 퀸타나의 시선을 하나하나 맞추며 선언하듯 대답했다.
“하완의 사태는 마법부와 관련 없습니다.”
“이런, 뻔뻔한-!”
“그만.”
그때였다. 가만히 듣고 있던 진이 손짓으로 외교부 장관을 제지했다. 낮고 단조로운 위엄이 그대로 느껴지는 말투다. 계속 다른 쪽을 보고 있던 진의 눈이 이안을 직시했다.
“이안 경. 그대의 말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폐하.”
“…그러면 되었다. 이안 경이 아니라고 하니, 더는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
“하지만 폐하!”
“그만하라 하였어.”
외교부 장관이 억울하다며 꿍얼거렸지만, 진은 단호하게 일갈했다.
진의 눈빛에는 신뢰가 담겨 있었다. 요 며칠 동안의 이안 경은 좀 이상했지만, 그렇게까지 일을 벌여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 자는 아니다. 일을 벌인다 한들, 흔적을 남길 만한 자는 더더욱 아니고.
자신이 아는 이안은 그랬다. 그래서, 믿는다.
“이안 경은 그만 돌아가 보시오. 사태는 행정부와 외교부가 수습하겠소.”
“…예, 폐하.”
이안은 예를 갖추어 고개를 숙이고서 조용히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저 멀리, 이안을 기다리고 있던 로만드로가 그를 발견하고는 쪼르르 달려왔다.
“이안, 뭐라고들 하시는-”
이안은 넋이 살짝 나간 듯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분명 무어라 고함이 오간 것 같았는데, 어찌…….
‘뭐가 잘 풀렸나 본데?’
이안은 무표정이었지만, 로만드로는 분위기를 분명히 읽을 수 있었다. 이안은 아무렇지 않게 로만드로를 지나치며 지시했다.
“마법부에서도 따로 조사를 하긴 해야겠습니다.”
“응? 어어, 그럼. 당연하지. 폐하께서는 무어라 하시던가?”
“폐하께서는-”
이안은 나지막이 덧붙였다. 참으로 별거 아니라는 듯.
“믿는다 하시더군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