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87
제787화. 비비의 흔적
…일단락되었나?
로만드로는 장관실로 이안을 들여보내고서 심장 부근을 매만졌다. 이안이 황제 집무실에 들어가 있던 동안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모른다. 안 그래도 황궁에 말이 시끄럽게 떠도는데, 하필이면 반란군 몰살 사태까지 터지다니.
“끄응. 진짜 큰일 나는 줄 알았네.”
솔직히 객관적으로 오해받아 마땅한 상황인 것도 맞긴 했다. 하지만! 이안이 어떤 사람인가? 제국을 위해서 밤낮없이 틀어박혀 일만 하는 애국자이시다. 아무리 마법부의 위상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일을 복잡하게 만들 위인이 아니지 않나.
“암! 설마 이안이었대도 더 깔끔하게 수를 냈을 거라고. 짜식들이 뭘 알지도 못하면서, 떼잉.”
“로만드로 님. 일찍 들어오셨네요?”
“뭐라고 합니까? 하완에서는 사람이 아예 안 온다 하던가요?”
“응. 반란군 수뇌부가 몰살했다나 봐. 상황이 복잡해졌어. 별다른 지시 사항은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일들 보아. 별일은 없었지?”
“차라리 다행입니다. 아니었으면 행정부, 외교부랑 또 한바탕 대거리하겠다고 애들 콧김 장난 아니었거든요. 아참, 로만드로 님 댁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연락?”
“여기 있습니다. 그럼.”
마법사가 서신을 건네주고서 제자리로 돌아갔다. 무슨 일이지? 어지간해서는 직장으로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는데.
로만드로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바로 서신을 확인했고, 이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바로 인기척을 내는 것과 동시에 문을 열어젖혔다.
똑똑!
“이안!”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있던 이안이 놀라서 멈추었고, 자연스레 그걸 숨기며 로만드로를 질책했다.
“그리하시면 인기척 내는 의미가 없습니다.”
“미, 미안하네. 근데 급해서 말이지. 이안, 이것 보아. 비비안나에게서 온 연락일세.”
“부인께서요? 제게 온 것입니까?”
이안은 의아해하며 종이를 받았다.
-여보, 저택에 손님이 왔어요. 황궁으로 연락할 수 없는지라 이쪽으로 왔다면서요. 옷차림은 남루하지만, 품위가 있어 보이는 여인입니다. 자신을 ‘심연에 다녀온 자’라고 소개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그럼 알 거라고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전달해요. 영애는 오늘 자정, 중앙 상업지구 23번길 좌측 건물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위험한 자처럼 보이지는 않았어요. 여보, 부디 별일 아니길 바라요.
사랑하는 비비안나가.
추신. 이안 님에게 안부 전해 줘요. 혹시 괜찮으면 음식을 보내 드려도 될지도 물어봐 주시고요.
황궁으로 연락할 수 없는 신분. 남루하지만 품위 있어 보이는 여인. 심연에 다녀온 자. 이안은 어렵지 않게 여인의 정체를 알아챘다.
“멜라니아군요.”
“그래! 멜라니아! 헙!”
로만드로는 혹여 바깥에서 들을까 봐 목소리를 낮췄다. 하이만가의 여식이 대체 여기서 뭘 하고 다닌단 말인가? 운 좋게 살아남았으면 있는 듯 없는 듯 존재를 지우며 숨어 있을 것이지.
이안은 괜찮다며 서신을 접어 돌려주었다.
“헤일과 아코렐라는 알고 있습니다.”
“뭐, 뭐를?”
“멜라니아 영애가 하완에 갔었다는 사실을요.”
“하완? 거긴 왜?”
“가문 재건을 위해서지요. 전쟁은 기회의 장이지 않습니까.”
“잠깐! 하완에 갔었다니? 근데 돌아왔고?”
뭔가 불길함을 느낀 로만드로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멜라니아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황궁과 이안에게 오점이다. 의도한 것이었지만, 어쨌거나 반역 가문을 멸문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한데 그런 그녀가, 하필이면 이 시기에 하완에 있다가 돌아왔다고? 반란군 수뇌부가 싹 죽어 버려서 난리 난 지금?
“아니지. 시기적으로 좀 안 맞나?”
로만드로는 외교부의 서신 날짜와 사건 발생일 그리고 멜라니아의 이동 시간 등을 계산하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안은 그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멜라니아가 돌아와서 나를 찾는다는 건 성과를 이루어 냈다는 뜻. 동방의 마법사를 끌어왔다는 게다.’
마법사들이라면 하완에서 바리엘까지 단숨에 이동하는 건 문제도 아니지. 즉, 반란군 수뇌부의 죽음이 멜라니아 혹은 동방인과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아니, 지금 정황으로 본다면 상당했다.
“다녀와야겠군요. 밤에.”
“응. 그래. 나도 집에 연락해 둠세.”
“같이 가시게요?”
“그럼? 당연한 것 아닌가?”
난 자네의 보좌관인데? 이안이 당황해하자 로만드로가 더 당황스럽다는 듯 대꾸했다. 이에 아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안 될 것 같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저 혼자 다녀 오겠습니다.”
“어째서? 위험하다고!”
“…저보다 로만드로 님이 더 위험할 것인데요.”
“아차. 그렇긴 한데, 그래도 혼자보다는 둘이 낫지 않겠어? 걱정되어서 그러네. 다른 무엇보다 멜라니아 영애는 반역 가문 출신이니 혹시나 문제 생길까 봐.”
둘이서 은밀히 만났다가 누군가 보기라도 하면? 이번에는 정말 감당할 수 없었다. 멜라니아가 살아 있는 건 황제의 허락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 이도 의미가 없어진다.
‘이안을 견제하려는 세력은 빌미를 붙잡을 것이고, 이는 치명상이라고!’
그러니까, 적어도 자신이 옆에서 상황을 봐주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함께하는 것이 맞지 않겠나? 두 주먹을 불끈 쥐는 로만드로를, 이안은 가만히 지켜보았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로만드로 님. 멜라니아 영애가 반란군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으리라 추측됩니다.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함께하시면 안 됩니다.”
“아니, 이보아.”
“지키실 게 많잖아요.”
풍파에 휘말리지 말고 황궁에서 오래오래 녹봉 먹으라는 뜻이다. 로만드로는 유능한 인재였고,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니까.
하지만 로만드로는 황당하다는 듯 다시금 대꾸했다.
“그래! 지켜야지. 마법부랑 자네를!”
아이, 말 많네. 로만드로는 더 말하지 않겠다는 듯 품에서 새 수첩을 꺼냈다. 이안이 홀라당 태워 먹은 다음 새로 장만한 것이라 완전히 새것이었다.
“혹 외부에서 말이 돌 수도 있으니, 오늘은 나랑 같이 우리 집으로 가는 것으로 둘러댈게. 매일 마법부에서 먹고 자고 하는 자가 갑자기 나가면 다들 궁금해해.”
“…….”
이안은 조금 놀란 듯 대답하지 않았다. 로만드로라면 자신과 함께했을 때의 위험을 모르지 않을 터. 그는 한참 생각하더니,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둘러댈 것 없습니다.”
“응?”
“진짜로 가면 되지요. 부인께 오늘 저녁 괜찮을지 물어봐 주시겠습니까?”
“헉!”
로만드로가 입을 쩌억 벌리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러고서 와락, 이안을 껴안고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잇, 되고말고! 물론이지! 비비안나가 아주 고마워할 것일세. 고마워, 이안.”
“초대받은 제가 고마워할 일이지요.”
“자네는 몰라. 정말로, 으응. 고마워.”
아내가 힘들어하는 걸 볼 때마다 로만드로도 마음이 찢어졌다. 한데, 이안이 저택을 찾아 준다면 비비안나도 이제는 덜 힘들어하지 않을까? 로만드로는 눈물 콧물을 훌쩍이며 다시금 이안을 세게 껴안았다.
꽈악.
이안은 조금 어색해하더니 희게 웃으며 그의 등을 토닥였다. 알 수 없는 감정. 미안할 일이 아닌데도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고마워할 일인 것 같은데 고맙다 말할 수 없었다.
이안은 무슨 말을 하면 될지 몰라, 그저 계속해서 로만드로의 흐느낌을 받아주었다.
* * *
8인용 식탁 한가득 음식이 차려졌다. 빈틈없이 구석구석 놓이는 것도 모자라, 그 위에 단을 쌓아 올릴 정도다.
이안은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서 비비안나를 돌아봤다.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부인은 은색 쟁반을 들고 있었다.
“부인?”
“네, 이안 님?”
“너무 많습니다.”
“괜찮습니다. 많이 드세요.”
비비안나는 이것이 마지막이라며 웃었다.
로만드로와 비비는 난생처음 보는 상차림에 입이 떠억 벌어져서는 그대로 굳어 버렸는데, 저리 보니 판박이라 부녀관계가 맞는 듯싶다. 이안은 살포시 웃으며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네. 다들 먹자고요.”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 여보.”
이안은 우아하게 닭고기를 잘라 한입에 집어넣었다. 그러곤 꽤 신중한 투로 맛을 보더니, 이내 만족스럽다는 듯 비비안나에게 칭찬했다.
“맛있습니다, 부인.”
“정말요?”
“그럼요. 황궁 요리사들이 보고 배웠으면 싶을 정도로요. 대단하시네요.”
그리고 다시 한입.
이안이 부지런히 포크질하는 것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비비안나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웃으면서 연신 눈물을 닦아 냈는데, 이안에게 미안하다며 손짓했다.
“미안해요. 식사하는데.”
“…괜찮습니다.”
미안하고 고마워서. 그리고 자꾸만 제 실수로 떠나보낸 친우 필리아가 생각나서.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세상이 너무 가혹한 것 같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안이 있어서 다행이고…. 너무도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로만드로가 자리에서 일어나 비비안나의 곁에 서서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식사 자리에서 이러면 어째, 여보.”
“그러게요. 나 잠시 자리 좀.”
“부인.”
이안은 나이프를 내려놓으며 비비안나를 불렀다.
“마음에서 짐을 거두십시오. 부인의 잘못이 아닙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어머니도 그리 생각하실 것이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음식이 참 맛있습니다. 식기 전에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비비안나는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이더니 식당을 나갔다. 눈물을 마음껏, 그리고 마지막으로 훔쳐 내기 위해서다. 로만드로가 그녀를 뒤따라갔고, 식당에는 이안과 비비만이 남았다.
“잘 지냈니, 비비.”
“네. 저는 뭐. 매일 학교 가고 그러느라 똑같았죠. 로엘은 잘 지내고 있을까요?”
비비가 안경을 바로 세우며 물었다. 히엘로 쪽으로 편지를 보내고 있긴 한데, 사실 답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로엘은 대사막 깊은 곳으로 들어갔으니까.
“아마도.”
로엘의 눈이 멀어 버렸다는 건 비비도 모르는 사실. 이안은 쓰게 웃으며 물로 목을 축였다.
비비는 뭔가 할 말이 있는지 계속 손끝을 꼼지락거리며 이안의 눈치를 살폈다.
“무슨 일 있니?”
“저기, 있잖아요.”
그때였다. 비비안나를 달래러 나갔던 로만드로가 웃으며 들어왔다. 비비 입장에서는 난입에 가까웠던 지라, 결국 아이는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아하- 이안! 먹고 있지 그랬어.”
“부인은요?”
“세수 좀 하고 온다 했어. 괜찮아졌으니까 걱정 마. 비비, 너도 안 먹고 있었어?”
“엄마가 그렇게 우는데 어떻게 먹어요.”
“하긴, 그래. 하하하. 자아, 식겠다. 어서 들자.”
이안이 의아한 눈으로 비비를 힐끗거렸으나, 아이는 마음을 돌렸는지 이전과 같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무엇일까. 무슨 고민을 말하려는 것 같았는데.
“비비, 괜찮니?”
“네? 아, 그럼요!”
넌지시 물어보았으나, 비비는 별거 아니라며 손까지 내저었다. 결국 이안도 관심을 거두고 식사에 집중했다.
곧 비비안나가 좋은 술을 내왔다. 오랜만의 반주였다. 어른들의 술잔이 꺾일수록 비비의 고개도 뒤로 꺾여 갔다.
어느덧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 로만드로가 슬슬 일어나자며 이안에게 신호했다.
“여보, 그럼 우리는 그만 가 볼게.”
“두 분 다 몸조심하시고요.”
“고맙습니다, 부인. 오늘 식사, 정말 좋았습니다.”
“또 오세요. 언제든지 환영이랍니다. 정말로요.”
비비도 졸린 눈을 비비며 이안에게 인사했다.
“또 봐요. 로엘에게 연락 온 거 있으시면 알려 주시고요. 하아암.”
“그래, 비비도 잘 지내고. 언제든지 마법부에 놀러 와도 된다.”
혹, 이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부담 없이 말해도 된다는 뜻이었다. 비비는 코를 훌쩍이며 작게 주억거렸다.
‘아니. 안 되겠어. 역시 비밀로 하는 게 나아.’
“그럼, 가 보겠습니다.”
“여보, 얼른 자. 고생했어. 사랑해.”
“아빠! 나는!”
“에구, 우리 딸랑방구 당연히 사랑하지.”
쪽!
비비는 당최 모를 일이었다. 자신이 쓴 자전적 소설 앞부분에 어찌하여 ‘이안 히엘로는 미래에서 온 황제였다’ 따위의 헛소리가 쓰여 있는지 말이다. 자신은 정말이지 그런 건 상상한 적도 없고, 쓴 적도 없는데!
‘들키면 경을 치게 되겠지?’
아이는 그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비밀로 남겨 두는 게 낫겠노라 결심했다.
“바이바이.”
이안과 로만드로가 손을 흔들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