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93
제793화. 정보소
‘돈이면 뭐든지 합니다’를 인생 좌우명으로 삼는 자들이 모인 구역이 있다. 바로 러거스펠. 상단들이 임시로 머무르는 곳이었던 만큼,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돈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지역이다.
중앙의 슬럼가, 부랑자들의 침실, 노예들의 무덤- 모두 이곳을 가리키는 단어다.
띠링.
땅굴에 가까운 건물 지하. 복도 곳곳에 놓인 등불로 인해 사람들의 그림자가 짙고 길게 늘어져 오갔다.
그들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뒤로 돌렸다. 로브를 쓴 두 사람이 들어서 있었다.
“아. 오시기로 한?”
“그렇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은랑은 불쾌한 냄새에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호흔의 팔을 붙잡았다. 하나같이 구질구질한 시정잡배와 남루한 물건들. 과연 이곳에서 제대로 된 일 처리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은랑이 호흔의 뒤에 바짝 붙자, 그가 괜찮다는 듯 여인의 어깨를 감았다.
“호흔. 여기 정말 괜찮아?”
호흔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해 본 결과 은밀히 수행하면서 뒤탈 없기로는 이곳이 적합했다. 무엇보다, 동방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유일하게 그릇되지도 않았고. 그만큼 정보의 질이 괜찮다는 뜻이겠지.
“어허, 어서 오십시오!”
정보소의 대장인 마르코가 벌떡 일어나며 그들에게 인사했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잡동사니를 대충 손으로 밀어내며 공간을 만들었고, 은랑은 짜증스럽게 눈을 뒤집었다. 끔찍해서 죽을 맛이다.
“식사는 하셨고?”
“본론만.”
“아이고, 혀가 길었네. 죄송합니다.”
마르코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들에게 내어줄 보고서를 찾았다. 비열하게 쭉 찢어진 눈이 은근슬쩍 은랑과 호흔을 살펴 댔다. 이곳을 찾는 손님 중 정체를 밝히는 자는 거의 없지만, 이처럼 특이한 의뢰한 자들은 또 처음이다.
‘제국의 장관직 이상 인물의 간단한 신상 정보, 황궁 내의 정세…. 특히 마법부에 대한 모든 정보에다가 멜라니아라는 여자의 수소문까지.’
뭐 저런 것들이 다 있을까? 돈만 제대로 주면 상관없지만, 호기심이 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마르코는 보고서를 가져오며 넌지시 되물었다.
“상단이라고 하셨죠?”
“그래.”
“어떤 걸 취급하십니까? 이리 만난 것도 인연인데, 필요하면 거래를 틀 수도 있잖습니까.”
은랑과 호흔은 외국에서 넘어온 상단주로 신분을 가장했다. 바리엘에 물건을 유통하기 위해서는 당국의 정세를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하다는 설정까지 더하여서 말이다. 호흔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대들이 쓸 만한 물건이 아니다.”
“아, 예에. 크흠.”
마법과 관련된 것이겠군. 마법부를 특히 알아보라고 했으니까. 마르코는 멋쩍은 듯 수염을 비비 꼬며 보고서를 들이밀었다. 등불 탓에 유독 종이가 누리끼리했다.
“말씀하셨던 장관급 이상의 신상 정보입니다. 이름 등의 인적 사항 및 항간에 떠도는 소문 위주로 그러모았으니 확인해 보십시오.”
사실 워낙에 유명 인사들이다 보니 정보를 얻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돈을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
툭.
호흔은 찬찬히 문장을 읽어 내리다가, 어느 지점을 손으로 가리켰다. 은랑이 더듬더듬 중얼거렸다.
“이안 히엘로, 10년 전 실종되었다가 최근에 다시 나타났다고? 어쩌다?”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마법부 장관의 본적은 변방에 있고, 가족은 이번 전쟁 통에 다 죽었다 하더군요. 여동생이 있다 했나? 아무튼, 재밌는 건 따로 있습니다.”
마르코가 킬킬거리며 덧붙였다.
“글쎄, 10년 전이랑 지금이랑 변한 게 없다네요.”
“뭐?”
“실종되었을 때 고만고만한 어린아이였는데, 지금도 직접 본 사람들에 따르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마법사라서 나이를 안 먹는 건지, 아니면 타고난 동안인지. 이전의 웨슬리 장관도 비슷하게 나이를 안 먹었다고 하던데, 참 신기한 노릇입니다.”
은랑이 하! 하고 비웃음을 터트렸다. 바보들 같으니라고. 그걸 정말 모른단 말인가? 인간이 아니니까 그런 것이지.
‘마물 맞네. 망할 것. 그런 주제에 감히 우리를 멸시해?’
동방에도 심연에 대한 인지는 존재했지만, 다르게 흐르는 시간선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동방에서는 그곳에서 살아 돌아온 자가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은랑은 애먼 마르코만 노려보며 이를 까드득거렸다. 적나라한 적의에, 마르코가 헛기침해 대며 새로운 보고서를 내밀었다.
“크흠. 천천히 보십시오. 그, 멜라니아라는 여자에 대해서는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호흔이 보고서를 가져가려 하자 마르코가 슬쩍 자신 쪽으로 끌어왔다. 그의 손짓에 호흔이 멈칫거리더니, 이내 알겠다는 듯 품에서 은자를 꺼냈다.
“이름과 인상착의로 수소문해 본 결과 일치하는 자가 있긴 한데 말입니다. 귀족 출신으로 추정되는 것 맞습니까?”
“확실하다.”
“더더욱 이상하군요. 멜라니아 하이만. 10년 전 멸문당한 중앙 귀족의 여식이 딱 들어맞기는 하는데, 방금 말씀드린 대로 살아 있을 수가 없거든요.”
반역죄로 멸문당한 가문의 여식. 은랑과 호흔의 시선이 맞물렸다. 놀라우면서도 참으로 재밌다는 눈빛이다.
‘이안 히엘로가 반역 가문의 자식을 숨겨서 데리고 있단 말이군.’
‘연인 사이?’
‘그렇게는 안 보였어.’
‘재밌네. 황궁은 알까?’
‘모를 일이지. 하지만 상관없어. 적어도 백성들은 모르는 것 같으니까.’
이것들이 무슨 신호를 주고받는 거람? 마르코의 시선이 두 사람을 번갈아 살폈다. 호흔은 다시금 품에 손을 넣고서 작은 반지 하나를 건넸다. 잔금이었다.
“만족스럽군.”
“아이고, 감사합니다!”
“답례로 우리도 정보를 하나 줄까 해.”
“예?”
정보를 사고파는 마르코였기에 당연지사 귀가 쫑긋거렸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가볍게 흘렸다.
“멜라니아는 살아 있다. 그것도 중앙에.”
“그게 무슨 말입니까?”
웬 개소리? 마르코가 의아히 여기며 코를 훌쩍이자, 두 사람이 소매를 들어 올렸다. 사락-거리는 낯선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눈동자가 금빛으로 물들었다.
‘…마법사?’
“이안 히엘로와 함께.”
두 사람은 그 말만 남기곤 한순간에 모습을 감췄다.
마르코는 믿을 수 없어 넋을 놓고 있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안 히엘로가 멜라니아를 살려 줬다고? 이걸…….
“어디 가져가면 돈이 되려나?”
* * *
“오셨습니까, 주인님.”
“음. 그래.”
“오늘은 일찍 퇴근하셨군요.”
제국의 수상, 그리몰드는 마차에서 힘겹게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허리를 반듯하게 세우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고,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앞서 걸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황궁에서는 계단을 오르내려도 힘들지 않은데, 궁만 나섰다 하면 온몸의 관절이 뒤틀려 고통스러우니. 아마 긴장이 풀려서 그런 것이리라.
저택의 집사는 그리몰드를 뒤따르며 은 쟁반을 내밀었다. 고작 하루 만에 열댓 통이 넘는 서신이 도착해 있었다.
“다들 늙은이에게 볼일도 많으시군.”
“그런 말씀 마십시오, 주인님. 제국의 수상이시니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모두 주인님의 답신 한 줄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되었다. 보기 힘드니 나중에 서재로 올려라.”
집사는 쓴웃음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저택 입구부터 집무실까지 올라가는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으시는 주인님이다. 한데 이제는 그조차도 힘들다 하시니. 밀어 두었던 세월의 무게가 문득 느껴지는 듯했다.
그리몰드는 저 멀리 응접실 쪽에서 달려오는 아이를 보고서 멈칫거렸다.
“오, 애니.”
“할아버지!”
“그래, 어쩐 일이니?”
그의 손녀 애니가 있는 힘껏 달려와 그리몰드의 품에 안기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애니의 목덜미를 가볍게 끌어내는 여인.
“애니. 복도에서 뛰면 안 된다고 했지?”
수상의 딸, 젤란이다.
그리몰드는 버둥거리는 애니를 꼭 끌어안으며 따스한 웃음을 지었다.
“난 괜찮대도.”
“괜찮긴 뭐가요?”
애니가 자신에게 뛰어들 때 버틸 힘 정도는 아직 있다. 그리몰드는 한참이나 아이와 인사말을 속삭이더니, 딸아이를 쳐다봤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니?”
“별일 아니에요. 너무 오래 못 뵌 것 같아서.”
젤란이 눈을 가늘게 떴다. 밖에서는 제국의 수상이었지만, 집에서는 딸아이의 눈초리에 잔뜩 움츠러드는 아비에 불과했다.
“아버지, 언제 퇴직하세요?”
“…….”
“저번에 그러셨잖아요. 전쟁 마무리되면 퇴직하실 거라고요. 박사가 그러던데요. 건강이 더 안 좋아지셨다고.”
“그자는 의사다. 의사 눈에 멀쩡한 인간이 어디 있겠니?”
“아버지!”
그리몰드가 슬그머니 손녀딸을 떼어 놓았다. 그러자 젤란이 바짝 붙어서는 연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연세를 생각하세요. 어머니는 진작 지방에 내려가서 영지 가꾸며 아버지 기다리고 계시잖아요. 이젠 그만 편히 지내시면 좋잖아요.”
“그래. 좋지.”
“말로만 그러지 마시고요!”
그의 나이가 벌써 여든 후반을 달려가고 있다. 아무리 제국을 위해 헌신한 삶이었다 한들, 황혼기까지 이럴 필요는 없다. 그리몰드은 인자하게 웃으며 딸아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러면 그렇게 하세요!”
“하지만 지금 황궁 상황이 여의치 않구나.”
“언제는 괜찮은 적 있었답니까?”
허구한 날 알력 다툼에 시답잖은 안건으로 싸워 대고,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며 밤새는 인간들이 모여 있는 곳 아닌가?
수상은 조금 피곤하다는 듯 집사를 쳐다봤다.
“저기, 아가씨.”
집사가 딸아이를 전담하는 동안, 수상은 슬쩍 빠져나와 서재로 도망쳤다. 문이 닫히자 피로가 확 몰려왔다.
‘그래. 내려놓을 때가 오고 있긴 하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제이럿도, 트웰러도 없는 지금 그까지 그만두면 황궁은 정말 균형을 잃고 무너지리라.
게다가 마법부, 그자들이 오늘 파업 아닌 파업까지 해 댄 거로 봐서 앞으로의 상황은 더더욱 짐작하기 어려웠다.
“음?”
그때, 수상의 눈에 들어온 봉투 한 장.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는데, 참으로 의아했다. 밖에서 들어오는 서신은 모두 집사가 관리하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문 쪽을 쳐다봤다가, 다가가서 봉투를 살펴봤다. 발신인과 수신인,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애니의 장난인가?
찌익.
봉투 입구를 뜯자, 반지 하나와 서신 한 장 그리고 백색의 털 하나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동방의 마법사다.
“……!”
수상은 놀라서 주위를 휙 둘러봤다. 하지만 집무실 그 어디에도 특별한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증거로 동방에서 가져온 반지를 내어주겠다. 처음 보는 보석일 것이라 생각해. 우리가 이드갈을 처음 보았던 것처럼.
이드갈? 수상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미간을 찌푸렸다.
-동봉한 백색의 털은 상대의 본질을 꿰어 보게 도와준다. 우리와 다른 세계에 사는 것들은 모습이 다르게 보이지. 그대들도 ‘그것들의 세계’에 대해서는 대충 아는 것 같으니 길게 덧붙이지 않겠어. 우리는 그걸로 이안 히엘로를 보았다. 아주 재밌더군…….
사아악.
거세게 휘몰아치는 바람. 저택 안뜰의 느티나무 위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은랑이 눈을 번뜩이며 중얼거렸다.
“오, 읽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