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97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797화(797/805)
제797화. 처분
로만드로는 식은땀을 훔치며 진의 안색을 살폈다.
이게 다 방금 전 한스 때문이다. 로비에서 마법부 애들 진통제 발라 주고 있는데 갑작스레 들이닥쳐서는 멱살을 붙잡고 어찌나 흔들어 대던지!
“어딜 갔었어?”
“나? 나 계속 장관실에 있었지.”
“근데 왜 문을 안 열어 줘? 진짜!”
한스는 이제라도 만나서 다행이라며 자신에게 쪽지 한 묶음을 전달했다. 작고 곧은 글자가 빽빽하게 적힌 세 장의 종이였다. 로만드로는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지하실로 내려와 진에게 건네준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로만드로.”
“예, 폐하.”
진은 드디어 종이를 내려놓으며 그를 돌아봤다. 이번 사건의 전말이 가감 없이 적혀 있었다. 사건의 시작인 하완에서부터 에이린의 술집 인근에서 벌어졌던 폭발까지.
진은 도무지 모르겠다는 듯이 손끝으로 종이를 툭툭 두드렸다.
“대체 이안 경은 무슨 생각일까?”
“그, 송구합니다.”
“아니, 그런 말을 듣고자 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궁금해서 그래. 로만드로 자네라면 뭔가를 좀 알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끄응. 로만드로는 어색하게 웃으며 코를 훌쩍였다. 자신도 진짜 알고 싶다. 이안이 숨기고 있는 의중을.
“나는 저 은랑이란 자가 완전히 헛된 소리를 지껄이는 줄 알았다. 이안 경이 마물이니 뭐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주장이지 않은가.”
“물론입니다, 폐하. 다른 것도 아니고 마물이라니요. 필시 바리엘을 잘 몰라서 그리 떠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안 경은 어찌 부정하지 않았지?”
은랑과 호흔이 그의 정체를 의심하고, 본질이 다르다 주장할 때 말이다. 멜라니아의 보고서에 따르면, 부정하고 반박하기는커녕 일부분 수긍하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 않나.
물론 글자 그대로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동방의 마법사와 일관된 주장을 하고 있다 보니 의구심이 드는 건 사실이다. 이에 로만드로는 난감하다는 듯 목덜미를 문질러 댔다.
“그리고 하나 더-”
진이 의심스러운 부분은 또 있었다.
“화총 말일세.”
“예, 폐하.”
“멜라니아의 주장에 따르면 동방의 마법사들은 화총을 수거하지 않았다고 하였어. 왜 그랬을까? 아무리 그들에게는 희귀한 무기가 아니라고는 하나, 멜라니아가 화총의 가치를 일러 주었고 이는 그들의 거래에서 유리하게 작용될 여지가 충분했다.”
멜라니아가 일부러 언질까지 주었건만, 그들은 괜찮다며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무언가 숨겨진 비밀이 있는 것 같다는 멜라니아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었다.
‘게다가 아까 지하 감옥에서는 화총을 헌납하겠노라 맹세했지. 단순히 위기를 모면하려는 계책일까? 그런 것치고는 너무 허술하지 않나? 금방 드러날 진실인데.’
화총을 헌납하기 위해서는 동방 쪽과 연락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대마법사에게서 도망치고 있다는 이들의 처지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진이 복잡하다는 듯 이마를 가볍게 문질렀다.
“로만드로. 우선은 내용에 대해 함구하라.”
“예, 알겠습니다.”
“이안 경이 일어나면 내 조언을 구하여 다시금 판단할 것이다.”
로만드로가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진은 서신을 품에 챙겨 넣고서 로비 밖으로 나왔다. 멀찌감치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수상과 신하들이 고개 돌려 쳐다봤다.
“폐하. 무슨 일이십니까?”
“아닐세.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수상과 신하들은 궁금했지만, 황제께서 저리 딱 잘라 관심을 거두라 명하는데 더 덧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동방 마법사들의 처분에 대해 논의했다.
“폐하. 하면 동방 마법사들은 어찌하면 좋겠나이까?”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바리엘 장관들을 노린 것은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레이번 장관님의 저택 피해만 하더라도… 예, 목숨으로 값을 치르는 게 맞습니다.”
“흐윽-”
“아이고, 또 우시네. 이보십시오들. 모두 진정하시고 차분히 생각해 보십시오. 죽이면 끝이라는 걸 모르십니까? 일단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장소를 옮깁시다.”
“동의합니다. 마법부원들 앞이라 그런지 화총 논의하기가 참 불편합니다그려.”
“저저, 아코렐라 대장 이쪽 쳐다봅니다.”
“크흠! 폐하, 그러지 마시고 본궁으로 이동을…….”
진이 그만하라는 듯 손을 들어 올리자, 시끌벅적했던 주위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멀리서 투덜거리던 마법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어서 나온 진의 결정.
“동방의 마법사는 처형하지 않을 것이다.”
희비는 분명하게 엇갈렸다. 화총 수입을 지지하던 자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주먹을 불끈 쥐었고, 마법사들은 반발하듯 벌떡 일어났다. 로만드로 역시 진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낯빛이었다. 하지만-
“저자들은 동방의 사자(使者)가 아니라, 부역자이기 때문이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믿을 만한 정보가 있다. 저들은 동방의 대마법사에게서 물건을 훔쳐 가이아까지 흘러 들어온 자들이니, 화총 헌납이란 약속을 이행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화총이 아무리 마법과 연관된 물건이라 하더라도, 일반적인 무기 제작의 과정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터. 혹 다른 방식으로 제작이 가능하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판단할 수 없었다.
“그럼, 더더욱 처형하시어 본보기를 보이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화총 헌납이 불확실하다면 굳이 살려 둘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진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중요한 건 화총이 아니라, 대마법사 그 자체.
“저자들의 신병은 대마법사에게 넘길 것이다.”
“아!”
“그는 동방 전체를 아우르는 절대자. 우리에게는 마법부가 있지만-”
진이 마법사들을 쳐다보자, 그들은 허리를 바짝 세우고서 뿌듯하다는 듯 눈을 깜빡거렸다. 다들 하나같이 그을림에 검댕 범벅으로 거지 꼴이었으나, 조금도 우습지 않았다.
“다들 전쟁으로 인해 피로가 누적되어 있는 데다, 무엇보다 상대의 경지를 모르니 우선은 중립적인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은랑과 호흔을 화친의 증표로 넘겨주어 이득을 취할 것이니, 그리 알라.”
이득.
이에 듣는 자마다 다른 것을 떠올렸다. 누군가는 화총을, 누군가는 신세계와의 교역을, 또 누군가는 평화를, 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마법의 무궁무진한 발전을 꿈꿨으니.
“부역자라면-”
제일 먼저 찬성의 뜻을 보인 건 수상이었다.
“저들에게도 그것만 한 처벌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
그토록 도망치고 싶어 하던 동방의 대마법사에게 자신들의 목숨줄이 넘어가는 것만큼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이 있겠는가?
동방에는 동방의 법이 있고, 가이아인이 이해하지 못할 절망 또한 있을 것이다. 죽음은 때때로 극형이 아니라 구원이 될 수 있음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다몬과 러더포드를 겪어 보았기에.
“우선 자리를 옮기지. 그 전에-”
진이 아코렐라를 돌아봤다. 그녀 역시 동방의 대마법사를 떠올리느라 무언가 고민에 잠겨 있었다.
“아코렐라 대장?”
“예?”
“이안 경을 잠시 보아도 되겠나?”
진의 물음은 간청에 가까웠다. 의식이 없다는 소식이 계속 마음 어딘가를 태워 먹고 있었으니.
아코렐라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장 장관실로 들어갔다.
끼이익.
“하, 하면 저희는 먼저 본궁으로 가 있겠습니다.”
“그럽시다. 괜히 여러 명 우르르 들어가면 정신만 없습니다.”
“폐하, 이안 장관께 안부 전해 주십시오.”
“이보십시오. 의식이 없다 하잖아요.”
“아차. 그러니까 제 말은, 마음이 통할 것이란 뜻입니다. 허허.”
“그나저나 진짜 이안 장관이 동방 마법사 둘을 못 이겨 저리되신 것 맞소?”
“동방 마법사들은 영문을 모르는 눈치던데.”
“에이, 다른 자도 아니고 이안 장관입니다. 그저 전쟁의 피로 탓이겠지요.”
설마 졌겠어? 아무리 상대가 동방의 마법사라지만 이안의 부하들한테도 이리 꼼짝없이 잡혀 올 정도인데. 이안이 지면, 장관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오로지 강함으로 수장을 정하는 마법부에서.
그 뜻을 알아챈 나키나가 벌컥 화를 내며 소리쳤다.
“이보십시오!”
“…나키나, 자중하라.”
“헤일 대장, 하지만!”
“개소리에 응하면 우리만 손해다.”
헤일이 궐련을 입에 물며 대답했다. 의연한 듯 보이지만, 그의 턱 역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때, 장관실 문이 다시 열리며 아코렐라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들어오셔도 될 것 같습니다. 다행히 호흡은 진정되었다고 하니.”
“나 역시 들어가도 되겠는가?”
“수상님이요?”
황제의 뒤에 서 있던 수상이 덧붙여 묻자, 아코렐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미덥잖긴 한데 그렇다고 하여 거절할 명분도 딱히 없었다.
“예, 들어오십시오.”
아코렐라는 결국 문을 열어 주며 그들은 안으로 안내했다.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바깥의 소음이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공간 분리 마법 탓이었다. 진은 소파에 누워 있는 이안을 보고서 작게 한숨 쉬었다.
“…세상에.”
창백한 피부와 땀에 젖은 머리칼. 그 옆에서 간호하는 마법사들 역시 안색이 말이 아니었다. 아무리 마력을 흘려 넣어도 간에 기별조차 안 가는지라 눈에 띄는 변화가 없다.
그렇다고 하여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니.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이안 경.”
이안을 부르는 진의 음성이 작게 떨려 왔다. 쌕쌕거리며 조금 거친 숨을 쉬는 것 외에, 이안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일어날 수는 있는 것인가?”
황제의 물음에 아코렐라는 잠깐 말을 고르느라 멈칫거렸다. 중앙자료실에도 추쇄 마법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었다. 그 부작용이 어느 정도일지는 오로지 이안만이 알고 있는 듯싶으니, 섣불리 회복을 입에 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물론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이안 님의 회복을 돕고 있습니다. 금방 쾌차할 것입니다.”
아코렐라는 수상과 시선을 나누며 선언하듯 중얼거렸다. 이안 님이나 마법부나, 이때다 싶어 건들 생각하지 말라며.
“이안 경.”
이안의 베개와 담요에 핏자국이 선명했다. 처음 실려 온 그 상태 그대로다. 마법사들이 은랑과 호흔을 찾아 나선다고 정신없었던 것도 있었지만, 정돈을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던 것도 컸다.
‘젠장.’
진은 이안의 곁에 앉아 후회하듯 머리를 감쌌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폭발이 일었을 때 황궁으로 돌아올 게 아니라 이안 경을 찾아 나설걸 그랬다. 베릭과 함께 갔었더라면 뭐가 좀 달라졌을까.
“동방의 마법사들은 공격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이리된 원인이 무엇이오?”
수상 역시 모르겠다는 시선으로 이안을 살폈다. 이리 보니 정말 그 나이 대의 어린아이 같아 안쓰럽다.
“전쟁 당시 마법을 과하게 사용한 여파입니다.”
아코렐라는 대충 모호하게 대답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안의 몸 상태를 낱낱이 일러 줄 생각도 없다.
“송구하지만, 전쟁의 여파로 힘이 들어서인지 이드갈 생성 자체만도 이젠 힘에 부칩니다.”
진은 문득 지난날 희게 웃으며 이르던 이안을 떠올렸다. 그저 마법부 견제를 쳐 내기 위한 거짓말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던 게다.
이드갈이 마력과 무관한 것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몸이 망가졌다면 분명한 부담이 있었으리라.
“하아.”
진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 숙였다. 한편 아코렐라는 자신을 부르는 마법사들의 손짓에 인사를 남기곤 장관실을 나섰다.
“…….”
침묵이 내려앉은 방 안. 수상은 뒤쪽에 서서 가만히 이안을 지켜봤다.
스윽.
그러고는 품에서 백색의 털을 꺼냈다. 은밀히 그것을 눈 가까이 대고 황제를 바라보았으나, 특별한 것은 없었다.
이어서, 이안 차례.
“……!”
수상의 눈이 커졌다. 동방의 마법사들이 전언한 대로였다. 이안의 모습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끔 일그러진 무언가였다.
수상은 이안의 손을 맞잡은 황제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다가 조심히 장관실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