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98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798화(798/805)
제798화. 근신
아코렐라는 회중시계를 확인하며 마법사에게 눈짓했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아직 황제께서는 장관실에서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게다. 눈짓을 받은 마법사 역시 어깨를 으쓱거렸다.
끼이익.
“폐하?”
결국 아코렐라는 문을 열고서 안쪽을 살폈다. 이안의 곁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던 황제가 천천히 돌아봤다. 낯빛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괜찮으십니까?”
“…무슨 일인가?”
“아. 그, 벌써 오후라서요.”
업무 보러 가셔야지요? 온종일 여기 계실 수는 없잖습니까? 아코렐라가 눈을 깜빡거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온갖 정무 다 때려치우고 여기 있겠다 해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으니.
“벌써 시간이 그리되었나.”
진은 작게 한숨 쉬며 이안의 담요를 정리하고는 일어났다. 그럼에도 이안에게서 쉬이 시선을 떼지 못하더니, 끝내 아코렐라에게 지시했다.
“아코렐라. 이안 경의 상태 말인데. 마력의 문제라고는 해도 결국에 마력을 담고 있는 것은 인간의 몸 아니겠나. 내 황궁 의원을 보내 주겠다. 그자들에게 진귀한 약재를 아낌없이 내어줄 것이니 도움받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폐하.”
“그리고 그대들도-”
“예?”
진은 웃옷을 걸치며 덧붙였다.
“그대들도 함께하도록 해. 안 그래도 기력이 쇠하여 힘들 것인데 동방의 마법사들 때문에 고초를 치르지 않았나.”
그러고는 톡톡, 진이 인상을 작게 찡그리며 아코렐라의 볼을 두드렸다. 볼에 생채기가 나 있었던 것이다.
고초라 하면 되레 동방의 마법사 놈들이 제대로 치른 셈이지만, 아코렐라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애들이 좋아하겠네요.”
“…조금만 더 힘내어 주게. 고생이 많다는 걸 안다.”
마음고생, 몸 고생 모두.
전쟁 후 황궁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마땅히 치하해야 할 부분이 미뤄지고 있었다. 이제 하완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으니, 이안 경만 일어난다면 모든 게 문제없이 돌아가리라.
“예, 뭐. 저희는 괜찮은데 이안 님이 좀 그래서.”
“그래. 안다.”
진이 아코렐라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고, 그대로 집무실을 떠났다. 아코렐라 역시 허리를 숙여 이안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는 방을 나섰다.
끼이익.
주위가 조용해지자, 이안의 숨소리 역시 잦아들었다.
그리고 이내 살짝 떠지는 눈꺼풀.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안은 그저 주위를 둘러보는 것 외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
온몸의 근육이 모두 난도질당한 느낌. 호흡에 집중하지 않으면 숨 쉬는 것조차 불가할 것 같았다. 결국 아이는 본능적으로 다시 눈을 감았고,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수상. 어찌 먼저 가셨어?”
집무실로 돌아온 진이 책상 앞에 앉으며 물었다. 일이 있어 간 줄 알았는데, 막상 돌아와 보니 여기서 내내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것 아닌가.
진의 물음에 수상은 어렵사리 고개를 숙였다.
“수상?”
“송구합니다, 폐하.”
“무엇이? 먼저 간 것이?”
갑자기 왜 이러나? 진이 웃으며 소매를 걷었다. 마법부 소란 탓에 오전 업무가 모두 밀려 있었다. 그래도 동방의 마법사들을 사로잡았으니, 이제는 마음 편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으리라. 진이 펜촉에 잉크를 먹이려 할 때였다.
“동방의 마법사가 저를 찾아왔었습니다.”
수상의 고백에 진이 멈칫거리며 고개 들었다. 투욱, 펜촉에서 잉크 한 방울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게 무슨 말인가?”
“대면한 것은 아니고, 서신을 보냈더군요.”
“서신?”
“예. 이것입니다.”
수상은 품고 있던 서신과 백호의 털 한 가닥을 내밀었다.
진은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그것을 받아 읽었다. 약간의 거짓이 섞여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멜라니아가 보고했던 내용과 일치했다. 이안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 진이 볼 것도 없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걸 믿으시오?”
이미 동방의 마법사들이 자백했다. 외교부 장관을 공격했던 것은 이안 경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수상에게 보낸 이것도 분명히 같은 맥락일 것이다.
“백호의 털에 대한 정보가 중앙자료실에 있었습니다. 단편적이지만 분명히 존재했지요. 호흔이라는 자의 나라에서는 1,000년을 산 백색 호랑이를 가주로 모신다고 하였는데, 영물(靈物)인지라 신이한 힘을 갖고 있다 합니다.”
“그래서, 마법부에 먼저 가 있었던 거요?”
진은 자신보다 앞서 마법부에 도착해 있던 수상을 떠올리고서 몸을 일으켰다. 앉아서 들을 만한 내용이 아니라 판단한 것이다.
“송구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사용해 보았나? 마법부에 이르지도 않고?
수상은 침묵하더니 허리를 더욱 낮게 숙였다.
“폐하. 저 역시 이안 장관이 마물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사용하였군. 경솔하게도.”
“하지만 그에게 비밀이 있음은 확실합니다.”
“수상. 실수하였어.”
“이전부터 그랬습니다. 이안 장관에게 제기되었던 무수한 의혹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이안 장관에 대해 조사해 보심이 옳습니다.”
진은 딱딱하게 굳은 낯으로 백호의 털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촛불에 태워 버렸다. 동방의 마법사들이 보내왔다는 서신까지.
화르륵!
한순간에 불타 사라졌다. 진은 다시 의자에 앉으며 수상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마법부에 알리지 않은 이유를 내 짐작은 하네만, 그 결정은 분명히 옳지 못했다. 수상, 그대는 실수를 하였어.”
“폐하.”
“근신하라. 명이 있을 때까지 자택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올 수 없음이라.”
진의 서늘한 눈빛이 수상을 다그쳤다. 수상은 바짝 마른 손을 모으고는 조심히 덧붙였다.
“폐하. 신은 말입니다. 열아홉 살에 입궁하여 지금까지 세 분의 황제를 모셨습니다.”
알고 있다. 그는 바리엘의 역사와 함께한 자였으니까. 진이 한숨을 쉬며 팔짱을 끼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들어나 보겠다는 듯.
“그리고 잘 아시다시피, 앞서 떠나보낸 두 선황 모두 믿었던 자에 의하여 승하하셨습니다.”
진의 아버지인 선황은 다른 누구도 아닌 아들의 계책에 빠졌고, 황궁친위대 대장에게 공격받아 치명상을 입었다. 동결 마법으로 목숨을 오랫동안 부지하긴 했지만, 어찌 됐든 그의 죽음은 제일 가깝고 믿음직했던 자들로 인해 이루어진 것이다.
“선황들이라고 폐하와 무엇 달랐겠습니까.”
다르지 않다. 마음의 깊이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근본은 같았다. 아버지는 마리브와 게일을 아꼈다. 그리고 진이 그러하듯, 황궁친위대를 신뢰하여 등을 내주었다.
“그 이전에는 또 어떠하였고요.”
사랑하던 여인에 의하여 독살되었다. 후계 구도에서 밀려나자 목숨의 위협을 느낀 후궁과 황자가 일으킨 사달이었다. 이에, 적통 황자였던 진의 아버지는 이때다 하고 반대 세력에 있던 자들을 몰살했다.
바리엘의 황궁 역사에서 피가 흐르지 않은 적이 없다. 황제의 죽음은 어디 먼 타국과의 전쟁이 아닌, 언제나 가장 가까운 자와의 대립으로 일어났다.
“아무도 없습니다. 폐하.”
이제는 정말 아무도 없단 말입니다.
진은 황실의 유일한 생존자였다. 그 외에 다음 역사를 이을 자가 없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가? 반란을 품은 자들에게 이만한 기회가 없다는 게다. 진만 사라지면 되니까.
“수상.”
“송구합니다. 사건의 전말을 보았지만, 그럼에도 저는 폐하께서 이것을 기회로 삼으셨으면 합니다.”
상대가 잘못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상황을 이용하고, 자르고, 붙이며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 줄 아는 힘이 필요했다.
마침 동방의 마법사들이 끼어들어 작은 소란을 일으켜 주었으니, 이것을 기회로 삼아 큰 물보라를 만드는 것도 고려해 보라는 뜻이었다.
“…하나만 묻지.”
“예. 폐하.”
“내 아버지께서도 그리하셨나?”
후궁의 독살 사건에 대해서는 들어서 알고 있다.
하지만 의문이 많았다. 당시 그녀의 권세와 이득을 따져 보았을 때 황제를 독살하는 건 너무도 큰 위험이 따랐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결국 그로 인해 몰락하였으니, 이는 어찌 보면 판단 실책으로 볼 수 있을 터. 하지만-
‘아버지 역시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면?’
수상은 질문의 의도를 알아채고는 고개 숙였다. 이미 지나간 역사에 대해서는 그가 덧붙일 말이 없음이라. 그는 다시 한번 깊게 고개 숙이며 사죄했다.
“근신 처분은 달게 받겠습니다. 폐하, 송구합니다.”
수상은 조심스레 몸을 돌려 집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터진 진의 한숨. 그는 눈두덩이를 꾹꾹 누르며 복잡한 마음을 다독였다. 사람인지라 누군가를 믿을 수밖에 없지만, 그리하면 결국 그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는 자리. 황제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제기랄!”
타악. 진은 서류철을 거칠게 내려놓으며 욕설했다. 처음이었다. 이리 날것의 언어를 내뱉은 것은. 문득 본 창밖으로, 수상이 탄 마차가 황궁을 떠나고 있었다.
히이잉!
한편, 수상 그리몰드는 저택으로 돌아가는 마차 밖 풍경을 눈으로 꼭꼭 담았다. 시작은 근신이다만, 그 사이 마법부 장관이 눈을 뜨면 앞으로 어찌 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시는 못 돌아올 수도 있겠지.
“수상님. 도착했습니다만…….”
“무슨 일인가?”
“저택 앞에 마차 한 대가 와 있습니다.”
“마차?”
누구지? 딸아이인가? 그리몰드가 마차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서려고 하자, 낯선 마차에서 누군가 허겁지겁 내려 그에게 달려왔다.
“존경하는 수상님!”
“이놈! 무슨 무례인가?”
“아이고, 잠깐만요. 수상님 아니십니까? 맞지요?”
시종들이 몸으로 막아서며 그의 멱살을 잡아 흔들었다. 가끔 있는 일이었다.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모를 자들이 먼 친척이네, 이번 정책으로 인해 피해를 봤네, 떠드는 일 말이다.
그리몰드가 저택 안으로 몸을 돌리자, 사내가 필사적으로 다가가며 외쳐 댔다.
“동방의 마법사!”
“……!”
“제가 그들을 만났었거든요! 아잇, 이것 좀 놓아 보십시오! 저기, 정보소 운영하는 마르코입니다! 들어 보시면 진짜 후회 안 하실 건데? 아이, 진짜! 놓으라니까!”
“잠깐.”
수상은 가볍게 손짓하며 시종들을 말렸다. 마르코는 거칠게 손을 뿌리치더니, 보란 듯이 웃옷을 정리하며 턱을 치켜들었다.
“동방의 마법사를 만났다고?”
“예. 얼마 전에 우리 정보소로 정보를 사러 왔었습니다. 근데 아주 재밌는 얘기를 들어서 말입니다.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고,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크흠. 차도 한잔하면서.”
마르코가 거들먹거리자 시종들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딱 보아도 슬럼가에서 굴러먹는 놈. 질이 안 좋아 보였으므로.
시종들 전부 얼른 돌려보내자며 그리몰드를 돌아봤지만, 그는 가볍게 고갯짓하며 안으로 들이라 지시했다.
“응접실로.”
“주인님!”
“하이, 역시 똑똑하신 분은 대화가 빠르네. 안내해, 이것들아.”
콱 씨! 마르코는 시종들의 어깨를 쳐 대며 신나게 저택 안으로 달려갔다. 집사가 난감해하며 마르코를 안내했고, 수상은 소파에 앉아 그에게 부탁했다.
“차를 내와라. 페닐코튼으로.”
“아.”
푸른빛이 도는 꽃잎 물이다. 수상은 알레르기 반응이 있어서 찾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저택 안에서는 일종의 은어로 통용되었는데…….
‘사람을 준비시켜라.’
조용히 처리할 수 있는.
“알겠습니다, 주인님.”
여차하면 저택 안에서 처리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수상은 여기저기 신기해하며 둘러보는 마르코를 쳐다보다가 나지막이 물었다.
“그래서, 무슨 재밌는 얘기를 들으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