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799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799화(799/805)
제799화. 예상과 다른
“외국 사절단 도착 일정이 어떻게 된다고 했지?”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이달 말쯤입니다.”
“아이고, 얼마 안 남았네.”
“그래서 사절단 오면 러더포드 처형식을 같이 할까 하는데요. 행사 진행하기에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요.”
“그거 좋은 생각이군! 당장 사법부에 건의하자고.”
로만드로가 볼을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멀끔했던 셔츠는 꾸깃꾸깃, 눈 밑은 퀭하여 몰골이 말이 아니었으나 그 누구도 뭐라 하지 못했다. 다들 행색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동방 마법사를 잡았으니 이제 좀 쉬어도 되나 싶었는데, 오산이었다.
“로만드로 님. 다몬 왕은 어찌합니까?”
“버고스 왕에게 산 채로 넘긴다던데?”
“아니요. 신탁 말입니다.”
“아! 맞다! 그러게, 왜 이리 늦어? 원래라면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확인해 볼까요?”
“그래. 무슨 일 있는 거 아닌가 몰라.”
괜한 알력 다툼으로 미루어져 있었던 업무 폭탄이 떨어진 것으로도 모자라-
“동방으로 보낼 서신 경로 확인 부탁드립니다.”
“이건 이안 님의 도움이 필요한데요. 대사막 지나 블라스터해를 건너는 게 먼저인 건 알겠는데… 그다음부턴 정보가 거의 없습니다.”
“마법사를 한 팀 보내자고 하던데.”
“또 그 지랄들입니까? 아우, 지겨워.”
“아니, 근데 이건 일리가 있어. 워낙 여정이 멀고 험한 데다 동방의 대마법사에게 상황 설명을 하려면 우리 쪽도 마법사가 가는 게 맞지. 간 김에 동방 마법도 탐방하고, 배울 게 있으면 배워 오고.”
동방 건으로 인해 새로운 업무들이 우수수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부서와 거들 수 없는, 마법부만의 독자적인 임무였으니-
“동방이라…….”
마법사들은 일하던 것을 멈추고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좀 끌리기도 하고?”
“사실 나도.”
“동방 애들 마법 쓰는 거 봤지?”
“봤지. 작살 나던데.”
“막 허공에 두루마리가 촤르륵! 어우, 반할 뻔.”
토올룬처럼 교역이 없던 수준이 아니라, 완전한 미지의 세계였다. 그곳의 마법은 어떨지 마법사로서 순수한 호기심이 들끓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고개를 휙휙 내저으며 다시금 업무에 몰두했다. 한번 가면 적어도 몇 년은 걸릴 장기 임무다. 단순한 흥미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었다.
“근데 그거 들었지?”
“뭐?”
“수상.”
크흐흐. 마법사 한 명이 낮게 웃음을 흘리자 다른 마법사들도 따라 웃기 시작했다. 특별한 설명이 덧붙여진 것도 아닌데, 그들은 속이 시원하다는 듯 연신 음흉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놈들아, 제국의 마법사라는 자들이 웃음소리가 왜 그래?”
“로만드로 님도 이렇게 웃어 보세요. 이거 은근히 기분 좋답니다?”
“아오. 수상, 그 할배. 잘난 척 혼자 다 하더니 말년에 근신이나 받고. 처음이라며?”
“진짜? 여든이 넘도록?”
꼴깍! 그들은 잡담을 떠들어 대며 녹색 빛의 음료를 삼켜 댔다. 황제가 직접 하사한 약재를 달여 만든 자양강장제였다.
로만드로도 내심 뒷담화가 재미있는지 몸을 슬쩍 기울이며 덧붙였다.
“수상님의 부인이 이전 수상님 막내딸이시거든.”
“에엥? 이거 완전 지들끼리 다 해 먹었네!”
“수상이 근신 처분받은 게 그리 흔한 일은 아니어서. 아마 만나면 부인께서 한 말씀 하실걸? ‘집안의 명예가 있지요!’ 하면서. 크흐흐.”
“어? 이상하게 웃었다.”
“크흠! 크흐음!”
“부인과는 별거 중이신가 보네요?”
“진작 은퇴하시고 본가로 내려가셨지. 지방 영지로.”
“이참에 따라가면 참 좋겠다아.”
마법사들이 조잘조잘 떠들어 댈 때였다.
콰앙!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린 탓에 다들 화들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수상을 열심히 씹어 댄 탓에 나온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문 앞에 서 있는 베릭을 보고는 짜증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아, 깜짝이야. 똥개였네.”
“어허, 이제 대장님이라고.”
“베릭, 뭔 일이래?”
베릭은 한-없이 짜증 난 표정이었다. 눈이 반쯤 뒤집히고, 얼굴의 근육이 모두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는 장관실 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장관실 문 좀 쳐 열어라, 새끼들아!”
“아, 이안 님 보려고?”
“하도 안 보여서 죽은 줄?”
빠드득. 베릭이 이를 드러내며 다가오자 마법사들이 홀라당 일어나 장관실 쪽으로 총총 걸어갔다.
그간 베릭이 마법부 쪽으로 못 왔던 이유를 마법사들은 잘 알았다. 첫째는 황궁친위대 대장이 그뿐이니 자리를 비울 틈이 없었음이고, 둘째는 마법부에 대한 소문이 뒤숭숭한 요즘 친위대 대장으로서 괜한 말이 나돌지 않도록 행동을 조심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 마법부의 오명은 벗겨졌다만, 그럼에도 혹시 모르니.
사정 다 알면서도, 마법사들은 연신 베릭에 대고 이죽거렸다.
“뭔 일이 그렇게 바쁘셔서 코빼기도 안 보이세요?”
“어이없네. 니들 단체로 튀어서 업무 죄다 밀렸던 거 모르지?”
“튄 게 아니고 동방 새끼들 잡으러 간 거거든?”
“됐고. 문이나 빨랑 열어.”
“하여간, 승질머리는.”
끼이익.
마법사가 손잡이를 툭 하고 치자, 단단히 잠겨 있던 문이 너무도 쉽게 열렸다.
베릭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고, 마법사는 문 겉면에 흠집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저 망아지 놈이 그사이를 못 참고 발길질 한 번 했나 보다. 망나니 같으니라고.
“왔어?”
“이안이는?”
“하아암. 뭐, 똑같으시지.”
이안의 옆에서 마력을 불어넣고 있던 마법사가 하품을 쩌억 해 대며 대답했다.
벌써 닷새째였다. 정신 한 번 못 차리고 계속 쓰러져 있는 것이. 전쟁터에서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이안아.”
“흔들지 말고 눈으로만 봐.”
“알았어. 젠장.”
“그리고 밥 좀 가져다주라. 나 배고프다.”
베릭은 이안을 빤히 내려다봤다. 잠들어 있는 건가 싶은데 기척이 너무 없다. 그는 손가락을 코밑에 대 보았고, 이내 느껴지는 희미한 숨결에 안도했다.
그사이 바짝 말라 버린 안색. 베릭이 한숨을 쉬며 주저앉았다.
“얼씨구.”
“하아, 진짜. 그때 내가 갈걸.”
“뭐, 로만드로 님 만났을 때?”
“들었냐?”
“들었지. 근데 네가 간다고 뭐 달라졌겠어?”
냉정한 위로였다.
사실이었다. 베릭이 마력을 나눠 주어 이안을 지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동방의 마법사 둘을 상대할 수도 없었을 터. 마법부 전체가 달려들어도 힘든 걸 베릭이 어찌하겠는가?
그 말에 베릭이 눈을 쭉 째며 노려봤다.
“싸가지 하고는.”
“진실은 언제나 가슴 아픈 법이란다.”
“웩. 잘난 척 지랄. 너나 처아프세요.”
“나도 그러고 싶다, 인마. 근데 너, 여기 와도 돼?”
달그락. 마법사가 찻물을 숟가락으로 저어 대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베릭은 소파 바로 옆에 벌러덩 앉아 이안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오늘 휴가야.”
“오호, 황궁친위대 널널하네. 대장이 하나밖에 없는데 휴가를 다 내고.”
“이씨, 아까부터 자꾸 시비 걸고 지랄. 뒤질라고. 나 대장이거든? 너 뭐야? 뭐 돼?”
“뭐긴 뭐야. 마법사지. 너, 이 붉은 천이 보이지 않더냐?”
“뭐래. 흰 천이잖아. 아하? 내가 적셔 주면 되겠다. 네 피로.”
“헉. 그거 내 대사인데.”
베릭과 마법사가 티격태격하자 지나가던 로만드로가 혀를 차며 들어왔다. 은근슬쩍 쉬려는 속셈이다.
“거참, 시끄럽네들.”
“아니, 로만드로 님. 이 새끼가 이제 대장직 달았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나 봅니다.”
“당연하지. 직급도 없는 마법사랑 내가 겸상할 처지냐?”
“와나, 진짜. 식당에서 고기 훔쳐 먹다 주방장한테 털리던 놈이? 인생 모르겠습니다, 정말.”
“됐고. 베릭, 너 황궁친위대 대장 언제 선발해? 제국방위부랑 얘기 좀 잘 해 봐. 대장직도 너 하나인데 트웰러 장관까지 없으니까 다른 부서에서 더 난리들이잖아.”
베릭은 탁자 위에 놓여 있던 과자를 와그작거리며 로만드로를 쳐다봤다.
그 역시도 잘 알고 있었다. 황궁이 마법부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이유가 바로 ‘인재 부족’ 때문임을. 대장직을 셋으로 늘리고 트웰러 장관도 돌아오면 견제가 좀 덜해질 것이다. 분명히.
“나도 얘기는 하는데, 밀린 일들이 많다고 제국방위부에서는 손 놓고 있어요. 지들 일 아니라 이거지. 아니,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가게 문 내리고 튀래?”
“튄 게 아니라 외근!”
“로만드로 님도 똑같아. 응, 이제는 저저, 고집불통 마법사 놈들이랑 다를 게 하나 없어.”
“고집불통은 너만 하겠니.”
“됐고! 시아나 후딱 결혼시켜 버리든가.”
“누구? 시아오시?”
느닷없는 발언에 로만드로와 마법사들이 눈을 크게 떴다. 시아오시라고 하면, 클로이 영애랑?
“맞네. 그런 방법도 있네.”
생각해 보니 황궁 내에는 다비온가 출신의 고위직이 많았다.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저들의 신경을 마법부에서 돌리기 위해서는 그만한 묘수가 따로 없는 것이다.
일단 성사되기만 하면 시아오시의 권위 또한 올라갈 것이니, 트웰러 다음으로 가는 영향력을 얻게 될 터!
로만드로와 마법사가 손뼉을 착-! 쳤지만, 베릭은 귀만 후비적거리며 중얼거렸다.
“눈꼴시려워서 못 봐주겠다니까. 진짜.”
“베릭, 너 인마! 좀 똑똑해졌다?”
“뭐? 난 원래 똑똑했어.”
“푸하하하! 이거 완전 미친놈 아녀?”
“아우, 시끄러워. 조용히 좀 해, 다들.”
“마법만 아니면 대가리 텅텅인 놈이!”
“시끄럽다니까!”
그때였다.
“…시끄러워.”
“……!”
“……?!”
로만드로까지 합세해서 섞여 들었던 소란이 뚝 하고 멈췄다.
서로 죽일 듯 째리던 시선들이 또르륵 움직여 뒤를 쳐다봤다. 언제 정신 차렸는지 모를 이안이 인상을 찌푸리며 세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이, 이, 이-”
“이안아!”
“이안 님 눈떴따아아!”
…시끄럽다니까.
이안은 못 말린다는 듯 다시 눈을 감았고, 외침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마법사들로 인해 내부는 금세 시장 통이 되었다.
그들은 눈 감은 이안을 보고서 베릭의 목에 팔을 둘러 댔다.
타닥타닥!
“이게 어디서 구라를!”
“악! 내가 부른 거 아니라고!”
“아니, 이안 님. 방금 눈뜨셨는데.”
“어어, 이안. 내 말 들려?”
로만드로까지 조심히 말을 건네자 다시 주위가 조용해졌다.
잠깐의 침묵 후, 이안이 힘겹게 대답했다.
“…들립니다.”
“헉!”
진짜다! 이안님이 일어났다! 마법사들은 서로의 입을 틀어막으며 환호성을 내질렀고, 소파 주위를 방방 뛰어다니며 기뻐했다.
하지만 이안은 계속해서 눈을 감은 채 인상을 찌푸렸다. 몸 상태가 아직 회복되지는 않은 듯싶다.
“이안 님,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의원, 의원이랑 대장들 불러와!”
“배 안 고프세요? 이안 님, 저희 알아보시겠지요?”
“저희가 동방 마법사 그놈들 확 잡아다 조져 놨습니다. 이안 님 쾌차만 하시면 됩니다.”
“예, 그리고요. 수상님도 근신 처분받고 쫓겨났고요.”
“언젠간 돌아오겠지.”
“그, 하완 사건도 어찌저찌 다 해결됐습니다. 폐하께서 멜라니아가 올린 보고서를 받으셨답니다. 대외비라 아직 우리 마법부밖에 모르지만요.”
마법사들은 이안의 옆에 딱 붙어서 그간 있었던 일을 줄줄이 보고했다.
차분히 듣고 있던 이안이 시선을 들었다. 지금 그러니까, 모든 게 다 해결되었다고 말하는 건가? 자신이 이리 누워 있는 동안에?
‘…어째서?’
예상 밖이었다. 분명 자신의 부재로 생길 문제가 있을 거라 여겼는데. 그런데 아니라고?
이안은 생각을 정리하며 말을 아꼈다. 마법사들은 ‘잘 되었군’이란 이안의 반응을 기다렸지만-
“이안 님?”
이안은 아무런 말 없이 다시 잠에 빠졌다. 어쩐지 묘한 표정이었다. 안심하는 것 같기도 하고, 불편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스스로도 알 수 없다는 듯 의문에 빠진 표정.
하지만 뭐 어떤가?
“이안 니이이임!”
“아코 대장! 쉿!”
일단 정신은 차렸으니, 완쾌는 정말 시간문제일 터다. 신난 마법사들은 머리가 산발인 채로 달려온 아코렐라 대장을 도로 끌고 나갔다.
고요해진 방 안. 로만드로와 베릭은 서로를 힐끔 보더니, 가볍게 미소를 머금고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