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01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01화(801/805)
제801화. 사랑의 도피
“이거 열어! 내보내 달라고!”
콰아앙! 쾅!
다비온 백작저.
잠긴 문 너머로 끊임없이 들려오는 괴성에, 하인들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종전 소식이 들려왔을 때만 해도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저택 사용인들 모두가 레글리드 백작의 오열을 목격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그래도 어찌 전쟁터엘 간다는 게냐! 내가 너를 어찌 키웠는데!”
그 말마따나 클로이는 과도 한번 제대로 잡아 보지 못한 막내딸이다. 애지중지 세상에서 제일 곱게 길러 냈건만, 황후가 되겠다는 포부 하나로 전쟁터에 나간다니.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심지어 그렇게 저택을 떠난 뒤 한동안 딸아이의 생사조차 알 길이 없었다. 그런 딸아이가 무사히 돌아왔으니, 백작저 전체가 축제일 수밖에.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다시금 급랭되었다.
“안 열어? 진짜 때려 부순다!”
콰아앙!
전쟁은 정말이지 무서운 것이다. 연약하여 제 머리칼 하나 빗는 것도 힘들어하시던 아가씨가 어찌 저리 포악해지셨을까? 사용인들은 못 들은 척 연신 빗자루질만 해 댔다.
“이것들이 진짜!”
콰아앙! 쾅!
그때, 클로이의 어머니인 백작 부인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그녀 역시 지금껏 고된 일 하나 한 적 없건만, 안면이 퀭했다. 부인은 마치 이곳에 사악한 괴물이 갇혀 있다는 듯 목소리를 낮추었다.
“클로이는?”
“그대로이십니다.”
“아아, 세상에.”
“마님! 에구구.”
백작 부인은 크게 휘청이며 벽을 짚었다. 그 인기척을 느낀 클로이가 더 크게 소리쳤다.
“엄마! 거기 있죠?”
“어머니라고 불러!”
“어머니! 이것 좀 열어 보세요. 아니, 전쟁터에서 개고생하고 온 딸아이를 이런 식으로 대접하는 집안이 어디 있답니까? 어디 콩가루 집안도 아니고, 명망 높은 다비온에서!”
“말버릇하고는! 너 대체 어디서 뭘 배워 온 거니?”
“폐하께서도 참전한 병사들에게 공을 치하하여 온갖 지원을 내어주시는 판에, 저를 이런 식으로 대접하면 아니 되지요! 우선 문 좀 열어 봐요, 엄마.”
“엄마가 아니라 어머니!”
“우리 사이에 그게 중요해요?!”
콰앙! 쾅!
아아. 장미처럼 고고하고 호랑가시나무처럼 도도하던 다비온의 자랑이 어찌 저리 변했단 말인가. 말투는 힘자랑 말고는 할 게 없는 시정잡배와 같이 걸걸하고, 하는 행동은 광산에서 돌덩이 나르는 사내처럼 투박하다.
백작 부인이 비틀거리자, 하인들이 우르르 다가와 그녀를 부축했다.
“엄마, 언제는 무사히 돌아오기만 하라면서요?”
“그래. 무사히 돌아오라고 했지, 이런 식으로 정신머리 회까닥 돌아서 오라고 했니? 너, 전쟁에 왜 나갔는데? 카일라 영애도 이제 없겠다, 황후 자리를 바로 코앞에 두고 왜! 대체 왜에!”
“아, 진짜! 황후 자리 내 거 아니라니까요! 폐하는 임자 따로 있어요. 그리고 우리 시아오시 님이 뭐 어때서!”
“우, 우리이이?”
부인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이 모든 게 문을 열게 하려는 딸아이의 도발임을 잘 알았다. 알고는 있는데, 이거 참을 수가 없네.
하인들이 두 팔을 꽉 붙들어 주지 않았더라면 진작 문을 박차고 들어가 멱살을 잡아 흔들었으리라.
“능력 있잖아요!”
“장관도 아니고 일개 장교다. 게다가 노예 출신!”
“지금 장관들 죄다 늙은이인데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나를 그런 늙다리한테 시집 보내려 했어요?”
“느, 늙…? 말조심 좀 하렴! 그리고, 이안 히엘로 경은 장관 아니고 뭐, 어디 저어기- 말단 문지기니?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차라리 그래, 이안 경이라면 내 이렇게까지는 안 하지.”
“연하 싫어!”
변경 서자 출신이라지만 어쨌거나 귀족의 피를 이었고, 마법사에다 현 장관이지 않은가? 하지만 클로이는 콧방귀를 껴 대며 반박했다.
“그리고 시아오시 님은요, 이안 히엘로 경만큼 폐하께 신임받고 있어요. 미래가 있는 분이라고요! 나중에 두고 보라지?”
“하! 영지 하나 없는 자작 주제에, 무슨?”
“잘생겼잖아!”
“……!”
순간, 백작 부인은 반박할 거리를 떠올리지 못하고 할 말을 잃었다. 외모가 수려하다는 소문이 사교계에 파다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이런 젠장! 시아오시 엔로우, 그 잘난 얼굴로 우리 딸아이를 홀렸구나! 부인이 입을 뻐끔거리자, 하인들이 작게 다그쳤다.
“폐, 폐하도 잘생기셨다면서요.”
“맞아요. 출신 좋고 잘생긴 남자는 널려… 아니지. 널린 건 아니지. 그래도 종종 있긴 합니다.”
“맞습니다. 얼굴 뜯어먹고 살 것도 아닌데.”
“그, 그, 그래, 맞아. 폐하께서도 외모가 출중하시다. 어디서 굴러먹다 들어왔는지도 모를 노예 핏줄을 다비온가에 들이자고? 절대 안 될 일!”
“엄마아아! 황후 자리는 포기하라니까요? 폐하는 마음에 둔 사람 따로 있다고요. 엄마는 엄마 딸이 사랑도 못 받고 쓸쓸히 늙어 죽는 꼴 보고 싶어요?”
“클로이. 황후 자리는 그런 것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란다. 그리고 설령 황후 자리를 놓친다 한들 시아오시 엔로우는 안 돼. 차라리 다른 혼처를 알아보마. 세상에 남자는 많아.”
“싫어요! 저 시아오시 님 아니면 죽어요!”
“어디서 그런 못된 말을!”
부인은 다시 한번 문 열고 싶은 충동을 이겨 내며 몸을 돌렸다. 안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저것도 잠시일 것이다.
여하간 철이 없어도 어찌 저리 없을 수가! 결혼이라는 건 사랑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특히 다비온처럼 명예로운 가문에서는 더더욱.
“저기, 마님.”
계단을 내려온 백작 부인이 집사의 난처한 부름을 들었다. 듣지 않아도 무얼 이르려는지 알겠다. 시아오시 엔로우가 또 찾아온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저택에 들이고 싶지도 않지만, 체면이 있는 터라 어쩔 수 없었다. 그자가 폐하의 신임을 받는 자라는 건 사실이기도 했고.
“오늘도 몸이 안 좋아 만날 수 없다 전언해라.”
“예, 알겠습니다.”
하여, 그에게 허락된 곳은 딱 응접실까지였다. 그것도 클로이가 있는 방과는 거리가 제일 떨어진.
백작 부인은 땅이 꺼질 듯 한숨 쉬며 침실로 돌아갔다. 사실, 몸이 안 좋다는 것도 마냥 변명은 아니다. 진짜 머리가 깨져서 돌아 버릴 지경이니까.
그렇게 며칠.
“뭐? 클로이가 반응이 없어?”
백작 내외는 아침 식사를 하다가 멈칫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리 오래갈 줄도 몰랐다. 클로이는 드높은 위상의 바리엘 명가, 다비온의 막내딸이었으니까. 전장처럼 극한의 환경에서는 별것도 아닌 일이 운명처럼 느껴지고, 내 옆의 개똥 구더기도 믿음직해 보이는 법. 영리한 우리 딸이라면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 환상이었음을 금방 깨우치리라 여겼는데-
“예, 며칠째 조용하십니다. 식사도 안 하시고요.”
다 착각이었나 보다.
백작 부인은 사색이 되어 포크를 쨍그랑, 떨어트리고 말았다. 문득 클로이와의 마지막 대화가 생각난 것이다.
“여보!”
“크, 클로이이!”
죽어 버리겠다며 울부짖던 그 목소리가 선명했다.
벌떡 일어난 부인은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방문 앞엔 클로이를 걱정하는 하인들이 모여 틈새로 뭔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클로이!”
“마, 마님.”
“문을 열어라. 어서! 집사는 박사를 데려와!”
그 가녀린 아이가 며칠 동안 밥도 안 먹고 광분을 쏟아 냈으니, 몸이 버티겠는가? 백작 부인의 성화에 하인들이 열쇠를 가져왔다.
끼이익.
드디어 열린 자물쇠. 동시에 문이 활짝 열렸다.
틈으로 보이는 건 오로지 어둠이었다. 혹시 몰라 창문까지 밖에서 막아 두었기 때문이다. 하인들이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번뜩!
‘번뜩?’
클로이의 안광이 기회를 포착했다는 듯 빛났다. 그녀는 이때다 싶어서 하인들을 밀치고는 복도를 내달렸다. 오래 굶었으면서 어찌 저런 힘이 나나 싶을 정도로 힘차게.
부인이 계단 난간 아래로 고개를 내밀며 소리쳤다.
“크, 클로이! 너, 엄마를 속여?”
“전쟁터가 차라리 낫네! 어떻게 딸을 이런 식으로 가둬요? 이럴 거면 그냥 입대해 버릴게요!”
“뭐, 뭐? 무슨 헛소리를! 네가 어떻게 입대를 해?”
“전쟁 통에서도 굴렀는데, 뭔들 못 할까요?”
“이봐, 어서, 어서 클로이 잡아!”
우당탕탕! 콰앙!
밑에 있던 하인들이 클로이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클로이는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졌고, 이어서 빗자루를 무기처럼 휘둘러 하인들을 물리쳤다.
간절해서일까, 어설펐지만 생각보다 타격이 잘 들어갔다. 부인은 이마를 짚으며 경악했다.
“클로이! 채신머리없이!”
“그딴 거 모르겠고, 시아오시 님이랑 나 사이 방해하지 마요. 진짜 가만 안 있을 거니까!”
“가문을 욕보일 셈이냐!”
“욕보일 것 같으면 호적에서 까세요!”
“어, 어어어-”
“마님! 마님!”
부인이 기어코 뒤로 넘어갔다. 그 탓에 하인들은 클로이 쫓는 것을 멈추고 일제히 부인에게 달려갔다.
그 틈에 클로이는 저택 밖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고, 이내 대기하고 있던 마부를 닦달했다.
히이잉!
“아, 아가씨, 이러시면 저 죽습니다.”
“내 손에 죽는 것보단 나을걸요?! 어디 두고 봐! 지금 안 도와주면 내가 나중에 어떻게 나올지!”
“아니, 그래서 어디로 가라는 말씀이신지…….”
“시아오시 님 댁으로!”
“예? 어디요?”
“시아오시 님 댁!”
그러니까, 그게 어딘데? 장관급이나 중앙에서 소문난 대저택이면 또 몰라, 장교 개개인의 주소까지 어찌 안단 말인가?
마부의 질문에 클로이가 멈칫 굳어 버렸다. 하지만 이내 저택에서 쫓아 나오는 소리가 들리자, 일단 출발하라며 대신 채찍을 집어 들었다.
“가! 어서!”
“아가씨!”
“황궁! 황궁으로 가자!”
거기 가면 계시겠지! 다비온 가문 사람들도 있겠지만, 체면상 억지로 끌고 가진 못할 거다. 클로이는 결심한 듯 손가락으로 정면을 가리켰다.
“출바아알!”
“아가씨!”
“클로이!”
마부는 어쩔 수 없이 마차를 움직여 저택을 벗어났다. 그 꽁무니를 따라 하인들이 우르르 쫓았으나 헛수고, 금세 떨어져 나갔다.
쏴아아, 오랜만에 느끼는 시원한 바람. 클로이는 엉망진창인 제 머리칼을 뒤로 대충 쓸어 넘기며 깊게 숨 쉬었다.
기다리세요, 시아오시 님. 클로이가 갑니다아!
* * *
“난리가 났지요.”
“말 그대로 세기의 사랑.”
“어우, 클로이 영애가 보기보다 강단 있습니다.”
“백작님이 직접 데리러 왔는데 보란 듯이 버티더라고요. 진짜 남의 자식 일이라 재밌는 듯.”
클로이가 황궁에 들이닥치자마자 말 그대로 발칵 뒤집혔다. 다비온 사람들은 제발 저택으로 돌아가라 읍소했지만, 그녀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려 댔다.
마법사들의 재잘거림을 듣던 이안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진 역시 재밌다는 낯빛이다.
“그래서, 지금은 둘 다 어디에 있다 합니까?”
“황궁에서 하룻날 새고 나니 사라졌다고 하더군.”
“사라져요?”
“다비온가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시아오시의 집무실 앞을 지켰다고 하는데, 다음 날 휴가계 내고 사라졌어. 아무래도 시아의 저택으로 들어간 듯싶다.”
시아에게 집도 있었나? 이안은 조금 의외라는 듯 눈썹을 까딱거렸다. 사실 장교로 일한 지 어언 10년째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만 그간 전혀 인지 못 한지라 놀란 것이다.
‘그래서 베릭이 그렇게 난리 쳤던 거군.’
로만드로는 이제야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황궁친위대 손 부족해서 죽을 참인데 시아오시까지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눈이 뒤집힌 것이다. 서둘러 시아오시 결혼시켜 버리자고 주장할 만했다.
“폐하.”
“응?”
“시아오시가 다비온가의 일원이 되면 폐하께도 분명 힘이 될 것이라 여겨집니다만.”
“나도 그리 생각하네. 아무래도 클로이는 다비온 적통의 막내딸이니 신하들과 관계도 유해질 것이고.”
“하면 이참에 시아오시에게 새 작위를 하사하심이 어떻겠습니까?”
“음…….”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다. 하지만 승전의 주역인 이안도 작위를 거절했고, 무엇보다 객관적으로 따졌을 때 과한 치하였다.
하나 이안은 걱정 말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에게 생각이 있는데, 들어 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