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02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02화(802/805)
제802화. 시아오시의 저택
“호오, 시아 이 자식, 나름 돈 좀 모았나 본데?”
베릭은 저택을 올려다보며 휘파람을 불어 댔다. 2층짜리 작은 저택이었지만, 아직도 황궁친위대 기숙사에서 숙식하는 베릭이 보기에는 으리으리한 수준이다.
로만드로는 그런 베릭에게 핀잔을 주며 문손잡이를 쿵쿵 두드렸다.
“모두가 너처럼 봉급 받으면 술 고기로 탕진하는 줄 아느냐? 짬을 10년이나 먹어 놓고 아직도 기숙사에서 살면 어쩌자는 건지.”
“이거 왜 이래? 공짜로 재워 주고 밥 주겠다는데, 내가 거길 왜 나와요?”
“같이 생활하는 아랫사람 생각도 좀 할 것이지.”
“나 혼자 써서 괜춘.”
“혼자?”
“애들이 나랑 같이 못 살겠대. 세드릭도 며칠 버티더니 다른 방으로 가 버리더라고요.”
“이런, 쯧쯧.”
“아니 근데 얘는 왜 이리 안 나와? 시아오시!”
콰앙! 쾅!
베릭은 코를 후비적거리며 다시 한번 크게 손잡이를 두드렸다. 거의 때려 부술 지경인데도 안쪽에서는 인기척이 없다.
베릭이 연신 문을 흔들어 젖히는 동안, 이안은 몸을 돌려 창문 안쪽을 살폈다. 커튼 틈으로 보이는 탁자 위에 찻잔이 놓여 있었다. 아주 고급스러운, 여인들이 주로 사용할 법한 디자인. 게다가 희미하지만 김도 나는 듯하고.
“안에 없는 거 아녀?”
“아니, 있다. 더 크게 불러 봐.”
“흐읍-”
이안의 지시에 베릭이 폐에 숨을 가득 채워 넣더니 쩌렁쩌렁 소리를 내질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슨 일 났나 하고 쳐다볼 정도로.
“이안이가아아-! 몸도 아파 뒤지겠는데 너희 도와주겠다고 왔다-! 재깍재깍 문 열어라! 그리고 너 인마, 휴가계를 그딴 식으로 쓰면 나보고 어쩌라고?! 폐하 수발 혼자 들고 있잖아!”
“베릭, 그런 식으로 부르면 나오다가도 말겠다. 큼, 큼큼! 시아! 나 로만드로일세. 꽃 선물도 갖고 왔다네! 문 좀 열어 주시겠는가?”
“신문 구멍 막아 놨나?”
“봐 봐. 안쪽은 보일지도.”
베릭과 로만드로가 구멍으로 안을 살피기 위해 납작 엎드리자, 문이 열렸다. 시아오시는 황당한 시선으로 두 사람을 내려다봤다.
“…뭐 하십니까?”
“아! 아이고, 이거, 그, 꽃다발!”
“있으면서 왜 이리 굼떠? 물 한 잔 주라.”
베릭이 먼저 쌩하니 안으로 들어갔고, 로만드로도 어색하게 웃으며 그 뒤를 따랐다. 시아오시는 가만히 서 있는 이안에게 꾸벅 인사하며 몸을 비켜줬다. 그러자 이안 역시 기다렸다는 듯 그를 지나치며 실례한다 중얼거렸다.
끼이익.
시아오시는 문밖을 잠깐 살피더니, 이내 잠금장치를 단단히 걸어 잠갔다. 다비온가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 눈치였다.
“읏차!”
베릭이 소파에 몸을 내던져 벌러덩 누웠다. 그러자 2층 계단 위에서 빼꼼 쳐다보던 클로이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씨오.”
“…….”
“왜 야리세요?”
“저한테 할 말 없어요?”
“음. 죄송합니다?”
“사과가 너무 늦었잖아요! 그쪽이 털어 간 영약이 얼마어치인 줄은 알아요? 그거 다 시아오시 님 드릴 거였는데!”
“아. 그거 때문이었어요? 난 또. 둘만의 시간 방해했다고 그러는 줄?”
아르르. 베릭을 노려보던 클로이의 눈매가 시아오시와 마주치자 동그래졌다. 너무도 확연하고 즉각적인 반응.
로만드로는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훔쳐 냈다. 시아오시, 잘 되었다고 덕담해야 할지, 아니면 앞으로 고생깨나 하겠다고 걱정해야 할지…….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이안 님은 몸도 안 좋으신데.”
시아오시가 새 찻잔을 가져오며 물었다. 휴가를 내긴 했지만, 이안이 쓰러지면서 마법부가 발칵 뒤집혔다는 얘긴 들었다.
“안 그래도 마법부 때문에 시끄러운 황궁이 누구들 덕분에 더 정신없어졌잖아.”
“그래. 폐하께서도 걱정이 많으시고, 여러모로 서둘러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리 왔다네. 저기, 클로이 영애? 괜찮으시면 이쪽으로 와서 함께 들으시지요.”
로만드로의 부름에 클로이가 쭈뼛쭈뼛 다가와 소파 끄트머리에 앉았다. 그녀는 조심스레 시아오시 쪽으로 몸을 틀며 손님들을 한껏 경계했다.
“무슨 일이신데요?”
“다비온가의 막내 따님이 황궁에서 마지막으로 모습을 감춘 터라 온갖 소문이 파다합니다. 이런 식으로 가문의 뜻에 반하시면 모두에게 도움 되지 않아요. 백작저에 연락하시어 원활한 합의를 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게 가능하면 진작 그랬죠.”
클로이는 시아오시를 힐끔 쳐다봤다. 가문이 시아오시를 반대한다는 얘기를 직접 듣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이안은 찻잔을 홀짝거리며 덧붙였다.
“클로이 영애께선 합의를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도망치셨다면서요.”
“아니, 그건-”
“다비온가가 명문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클로이 영애의 혼인이 가문에 어떤 의미인지는,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어릴 적부터 단단히 교육받으셨을 테니까요.”
클로이가 입을 꾹 다물었다.
가문 간의 혼인은 철저히 서로의 이득을 계산하여 이루어지는 일종의 ‘계약’이었다. 손익을 따져 서로에게 충분히 득 되는 상황이라 여겨질 때 성사되는 냉정한 약속인 셈.
이를 모를 그녀가 아니었다. 하지만-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클로이는 시치미를 뗐다.
이에 이안이 일침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는 상대가 원하는 걸 내주는 것이 가장 빠르고 쉬운 길임을요.”
“네?”
“다비온가에서 시아오시를 반대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더군요. 그럼에도 불구, 시아오시와의 혼인이 다비온가에 어떤 이득이 될지를 제시하셔야지요. 혹은-”
“혹은?”
“반대하는 이유를 직접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첫 번째로, 직위.
“트웰러 장관이 토올룬에 남아 전후 처리 중인 건 아시겠지요. 그것이 마지막 임무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임무를 마치고 중앙으로 돌아오면 트웰러 장관은 퇴임할 것이고, 제국방위부 장관 자리는 공석이 됩니다.”
“그래서요?”
“폐하께서는, 시아오시에게 다음 장관직을 위임하실 겁니다.”
“……!”
시아오시와 클로이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클로이는 언젠가 시아오시가 장관이 될 것이라 굳게 믿었으나 이리 이를 줄은 생각지 못했기에, 시아오시는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자리라 여겼기에 놀란 게다. 장관이라니…. 노예 출신인 데다 이제 겨우 10년 차에 들어선 자신이?
“이안 님. 송구한 말씀이지만, 그것은-”
“폐하의 뜻이다.”
제국방위부 장관 같은 요직은 시대를 불문하고 황제의 측근이 맡는 게 당연했다. 특히나 시아오시는 진이 어릴 때부터 옆을 지켰던 사람이지 않나. 앞으로도 신임은 계속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직위가 필수적이다.
“다만, 그렇게 되면 작위의 승급은 불가하다.”
“…그것만으로도 과분합니다.”
“그리고 다음, 영지 관련한 내용인데.”
이안은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차가 생각보다 입에 잘 맞는다는 듯.
“나는 히엘로령을 반납하려고 해.”
“예?”
“엥?”
이번 건은 베릭도 처음 듣는 것인지라 덩달아 의아한 소리를 내었다. 클로이만 눈을 데구루루 굴리며 상황 파악에 열심이었다.
“어째서 말입니까?”
“왜? 이안아, 너 뭐, 돈 급하게 필요해? 도박했어?”
“…중앙에 있다 보니 영지 관리가 소홀하여 여러 문제가 있지 않았나. 그럴 바에는 새 영주를 부임하는 것이 히엘로령을 위한 일이지.”
듣고 보니 그렇긴 한데, 괜히 아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안과 필리아 그리고 다른 소중한 사람들의 추억이 깃든 곳이니까. 언젠가 늙어서 퇴직하면, 다 함께 히엘로로 돌아가 유유자적 살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그럼, 시아오시 님께 넘겨주신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영애. 정확히는 빌려주는 것이지요. 시아오시 역시 저처럼 중앙을 떠나지 못하는 몸이니, 다비온가의 혼인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영주직에 이름을 올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상황이 정리되면 더 적합한 자를 물색하여 위임하면 됩니다.”
“근데 그거 사기 결혼 아님?”
베릭이 코를 훌쩍이며 묻자, 이안이 웃었다.
“세세하게 따지자면 그렇긴 한데, 다비온 측과 영지 수익분배 계약만 맺지 않으면 상관없는 일이다. 뒤탈도 없을 거고.”
그러면서 일행을 둘러보는 이안. 어디 가서 이 계략을 떠벌리진 않을 것 아니냐 묻는 얼굴이다.
이에 로만드로와 베릭이 고갤 끄덕였다. 뭐, 실제로도 문제 될 것 없지 않나? 그저 시아오시의 체면을 살려 주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것이니까.
클로이도 곰곰이 생각하다가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혹시 문제 생기면 제가 책임질게요.”
“영애. 용감하십니다만,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에 클로이는 두 주먹을 꽉 쥐고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니 기뻐서 감정을 다스릴 수 없을 정도였으니.
담담히 그녀를 지켜보던 시아오시가 나지막이 물었다.
“이안 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이안 님이 바라시는 바는 무엇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시아오시는 알고 있다. 이안이 자신을 도와주는 것에는 단순한 호의를 넘어 분명한 이해관계가 존재한다는 걸. 그것이 황궁의 안정화든, 아니면 그가 짐작하지 못하는 그 무엇이든.
이안은 마침 잘 일렀다며 싱긋 웃었다.
“시아오시. 그 전에 하나 더 당부할 것이 있네만.”
“말씀하십시오.”
“그대는 폐하의 심복이고 다비온가는 황궁의 주축을 이루는 자들이다. 두 사람의 결합은 사랑으로 시작되었어도 분명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오겠지. 내가 바라는 것은 딱 두 가지다.”
첫 번째.
“시아오시, 자네의 모든 행보는 다비온이 아닌 황제 폐하의 뜻으로만 이루어질 것.”
그러면서 이안은 클로이를 돌아봤다. 이것은 그녀에게도 통용되는 당부임을 말하는 게다. 시아오시와 연을 맺었다고 하여, 그를 다비온 사람이라 여기지 말라는 뜻.
“물론입니다. 오로지 화합. 저는 그것 외에는 어떠한 일에도 관여하지 않을 생각이었어요.”
“현명하십니다. 부디 균형을 잘 이루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제가 클로이 영애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하고 싶은 것인데요.”
“무엇이지요?”
“거절하셔도 됩니다만, 가능하면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셨으면 하는군요. 안건 하나를 올리고자 하는데, 다비온가의 도움이 좀 필요합니다.”
“어떤……?”
클로이가 조심스레 되물었지만 이안은 웃기만 했다. 그러자 그녀는 베릭과 로만드로가 귀를 쫑긋거리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무심한 척, 고개를 대놓고 돌려 놓고서.
“상황이 마무리되면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클로이는 고갤 끄덕이며 시아오시의 팔을 꼭 붙들었다. 조금 걱정되지만 설마 이안 경이 문제 될 일을 하겠는가? 시아오시도 걱정하지 말라는 듯 그녀의 손등을 토닥였다.
“저기, 이안 님. 한 가지 더 문제 되는 게 있습니다.”
“무엇인가?”
시아오시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어렵사리 중얼거렸다.
“제가 노예 출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에이, 과거는 과거지!”
베릭이 말도 안 된다며 손을 내저었지만, 이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이안은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트웰러 장관께서 조언해 주신 부분이 있는데, 이걸 이용해도 될지 조심스럽습니다. 확인해 주실 수 있을까요?”
“무엇인가? 혹, 그대의 오드아이와 관련된 것인가?”
“……!”
시아오시는 놀라서 입을 살짝 벌리고 말았다. 영문 모르는 클로이와 베릭 그리고 로만드로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궁금해했다.
“마, 맞습니다.”
“트웰러 장관께도 의외로 재밌는 구석이 있으시단 말이지. 다비온 측이 강경하다면 이용해도 좋다. 다만, 그대가 직접 이르는 것보다는 내가-”
쿵! 쿵쿵!
그때였다. 밖에서 거친 인기척이 들려왔다. 클로이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고, 시아오시도 잔뜩 경계하며 뒤돌았다.
“안에 있는 것 다 압니다, 시아오시 경!”
“이런 식으로 남의 집안 딸아이를 데리고 있는 것은 경우가 아니지요. 문이라도 열어 보십시오.”
“클로이! 너 정말 다비온가의 명예를 욕보일 셈이니? 이제 그만 하고 모습을 보여라.”
클로이를 찾으러 온 다비온가의 일원들이었다.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백작이 직접 행차하였나 보다.
굳어 버린 두 사람 대신, 이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잘 되었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