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03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03화(803/805)
제803화. 오해는 오예
“이거 여십시오!”
“경고했습니다, 시아오시 경!”
콰앙! 쾅!
다비온가의 사내가 거칠게 문을 두드려 댔다. 안에 있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이리 무응답으로 일관하다니, 이는 다비온가를 무시하는 처사나 마찬가지다.
문짝을 두드리는 손길이 점점 거칠어졌고, 이내 온 힘을 다해 주먹을 내지르려는 순간이었다.
휘이익!
문이 갑자기 열리며 누군가 모습을 보였다. 사내의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볼 근처에서 멈췄다. 시아오시가 나올 것이라 예상했는데 낯선 자다. 하인은 아닌 것 같고?
사내가 의아해하며 주먹을 들고 있자, 이안이 슬쩍 시선으로 그의 손을 쳐다봤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건지 묻는 것처럼.
“누, 누구?”
“그건 이쪽이 할 말인 것 같은데.”
“배, 백작님. 저기-”
사내가 뒤돌아보며 도움을 청했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고급스러운 복장의 사내가 이안을 알아보고서 허둥지둥 달려왔다.
“이안 장관님?”
“아, 다비온 백작님이시군요. 함께 오신 줄 몰랐습니다.”
설마 백작이나 되는 사람이 남의 집 대문을 이리 경우 없이 두드릴 줄은 몰랐다는 뜻이었다. 백작은 헛기침을 큼큼 해 대며 사내들을 뒤로 물렸다.
“이안 장관님께서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다비온 백작님이 시아오시 경의 저택을 찾은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안으로 드시겠습니까?”
“저기, 제 딸아이 클로이는…….”
“이쪽으로.”
이안은 친히 그를 안으로 안내했다. 한 손으로는 방향을 가리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문손잡이를 잡았다. 백작을 제외한 사람들은 출입을 불허하겠다는 몸짓이었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행동에 사내들은 입 한번 벙긋하지 못하고 닫힌 문만 바라봤다.
“클로이!”
응접실로 들어선 백작이 제 딸아이를 불렀다. 하지만 클로이는 시아오시의 곁에 딱 붙어서는 눈매만 세워 댔다. 이래서 자식 키워 봤자 소용없다는 걸까?
백작은 탁자 위에 놓인 찻잔 세트를 보고서는 뒷목이 뻐근해지는 걸 느꼈다. 한눈에 보아도 클로이의 취향인 찻잔이 왜 여기 있는 걸까. 딸아이는 분명 맨몸으로 나갔는데.
“앉으십시오.”
“저기, 말씀은 감사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이리 앉아서 사이좋게 차나 나눌 상황은 아니라서요. 클로이, 인제 그만 소란 피우고 아비를 따라오너라. 대체 이게 무슨 추태란 말이니.”
아주 낯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바리엘에서는 이미 혼처가 끊겼다고 보는 게 맞다. 이제 다비온에게 남은 선택지는 타국의 왕족이나 귀족인데…….
‘바리엘 인근국은 모두 초토화.’
클리포포드를 제외한 모든 왕정이 무너졌다. 클로이가 이런 것까지 염두에 두고 행동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이 아주 답답하게 꼬인 것이다.
“백작님.”
이안이 먼저 앉아 다리를 꼬았다. 앉으라고 권했는데 계속 그리 서 계실 것입니까? 그가 두 번 말하지 않겠다는 듯 찻잔을 들어 홀짝이자, 로만드로도 거들었다.
“예예, 백작님. 여기 앉으시지요.”
“크흠. 로만드로까지 와 있고.”
“오, 로만드로 님 은근히 유명한가벼.”
“쉿. 너도 이리 나와.”
로만드로가 베릭의 옷깃을 끌며 뒤로 물러났다.
이안은 찻잔을 내리더니, 싱긋 웃으며 백작을 위로했다.
“애지중지 기른 다비온가의 막내 따님을 보내려 하니 아쉬우시지요.”
“예. 아쉽다마다요. 세상에서 제일 곱게 기른 아이입니다. 그런데 전쟁터에서 무슨 헛바람이 들었는지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 대며 제 고집을 피우니. 이거, 원.”
클로이가 시아오시의 팔을 더욱 세게 쥐었다. 그러자 시아오시가 자세를 단정히 하여 다비온 백작에게 고개 숙였다.
“송구합니다, 백작님.”
“흠! 송구한 줄 아는 자가 어찌 이러시는가?”
“시아오시 님께 뭐라고 하지 마세요. 제가 집 가면 갇혀서 밥도 못 먹는다고 했단 말이에요!”
“밥은 네가 안 먹은 거잖아!”
“어쨌거나요!”
백작이 버럭 소리치자 클로이도 지지 않겠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뒤로 물러나 있던 베릭과 로만드로가 재밌다는 눈빛으로 서로를 힐끔거렸다.
“죄송합니다, 백작님. 제 불찰입니다.”
시아오시가 저자세로 나오자, 백작은 어디 한번 따져보자며 소매를 걷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정말 괘씸한 작자 아니던가?
한편 이안은 소란 속에서도 차분하게 차를 들이켜며 침묵했다.
“아니, 이렇게 된 거 솔직히 말해 보자고, 시아오시 경. 자네가 이래서는 안 되지. 뭐 하나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으면서 어딜 감히 다비온가의 여식을 데려가겠다고 이러는 겐가?”
“시아오시 님이 왜 이룬 게 없어요? 폐하께서 장관으로 임명하겠노라 언질 주셨단 말이에요.”
“장관 나부랭이 따위, 그게 뭐라고!”
헉쓰. 베릭과 로만드로가 서로의 팔을 껴안으며 멈칫거렸다. 시아오시와 클로이도 숨을 멈추었고, 씩씩거리던 다비온 백작도 뒤늦게 놀라 제 입을 틀어막았다.
그 장관 나부랭이가 바로 옆에 있지 않나.
달그락.
이안이 찻잔을 내리자, 다비온 백작이 사색이 되어서는 말을 더듬어 댔다.
“그, 어, 이, 이안 경.”
“장관 나부랭이…….”
아무렇지 않게 중얼거리기만 했는데도 백작은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시간을 되돌리고 제 혀를 확 꼬집어 버리고 싶을 정도다.
“아, 아니, 그런 뜻은 아니었소. 바리엘을 위해 누구보다 애쓰시는 분들 아니신가. 내 말뜻은, 그러니까, 우리 다비온가에서도 녹봉 먹는 자가 한둘이 아니지 않소이까?”
“그 말씀은, 다비온가에 나부랭이가 많으시다?”
“뭐, 겉보기와 달리 쭉정이들이 많긴 하오.”
“이런. 고민이 깊으시겠습니다.”
“예예, 그렇지요. 아무튼-”
다비온 백작은 마음을 진정시키며 마른 목을 축였다. 한숨 돌리고 나자, 격앙되었던 감정이 가라앉았다.
“아무튼, 시아오시 경. 나는 우리 딸아이가 적어도 영지를 가진 자와 만나서 고생 없이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오.”
“시아오시 님도 영지 있어요.”
“뭐?”
다비온 백작이 의심스럽게 눈살을 찌푸렸다. 영지가 있다니? 그가 알기로는 분명 작위뿐인 귀족인데?
클로이는 보란 듯이 시아오시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최근에 매입했거든요. 500에이커 정도 되는 변방 영지예요. 아직 대금은 좀 남았지만, 아버지가 체면치레 걱정할 정도는 아니에요.”
“500에이커? 하! 변바아앙? 게다가 뭐? 대금이 좀 남아? 구해도 어디서 별 거지 같은 것을 구해서는 헛소리를 하는구나. 영지가 구한다고 해서 구해지는 것도 아닌데, 어디서 사기라도 당한 건 아닌지 의심이군.”
“아버지!”
클로이가 눈짓으로 이안을 가리켰지만, 다시 열이 뻗친 백작은 그 신호를 알아채지 못했다. 베릭과 로만드로는 진짜 미치겠다는 듯 동시에 이마를 탁 치며 신음했다.
“사기 아닙니다.”
“예?”
이안은 소파 팔걸이에 몸을 기대고서 나지막이 덧붙였다. 웃음기가 조금 느껴지는 것이, 뭔가 불안했다.
“사기가 아니라, 거래입니다.”
“무슨, 무슨 말씀입니까?”
“그 거지 같은 영지가 바로 히엘로령이라는 뜻이지요.”
백작은 그대로 멈췄다. 말 그대로,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숨조차 쉬지 않았다. 클로이가 조심스레 제 아비의 무릎을 툭툭 두드렸으나 반응이 없다.
“제가 영지 관리에 소홀하여 적임자가 필요했습니다. 적당한 위임자가 나타날 때까지 시아오시 경이 맡아주면 좋겠다 여겨 제안했습니다. 히엘로가 변방에 있긴 하지만, 몬느에 광산도 있고 여러모로 괜찮은 땅이랍니다.”
“예에…….”
“시아오시 경과 클로이 영애가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크고, 백작께서 우려하셨던 부분도 모두 오해이시니, 조금 너그럽게 봐주심이 어떻겠습니까.”
“저기, 크흠.”
“혹, 아직도 오해가 아니신지?”
이안의 음정이 한음 낮아지자 백작이 화들짝 놀라 손을 저어 댔다. ‘장관 나부랭이’, ‘거지 같은 영지’ 발언을 전면으로 부정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서면 진짜 어영부영 클로이를 보내야 할지도.
“며, 면천되었다고는 하나 다비온가 역사상 단 한 차례도 노예 출신인 자와는 혼인한 바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 역사 한번 써 볼게요!”
“클로이, 가만히 있지 못하겠냐!”
다비온 백작은 어느새 시아오시가 아닌 이안을 보며 변명하고 있었다. 희한하게도 당사자들보다 이안의 의견이 상황을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 사실 다비온만이 아니라 그 어떤 명문가에서도 그런 사례가 없긴 하지요.”
“제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 그 부분에 대해선 제가 확실히 안심시켜 드릴 수 있겠습니다.”
안심? 웃기시네. 이안의 발언에 더 불안해지는 다비온 백작이었다.
“무, 무엇을요?”
“시아오시의 눈동자를 보십시오.”
다비온 백작은 힐끔 시아오시를 돌아봤다. 갈색과 회색의 눈동자. 그래! 저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디 잡종처럼 섞여 든 색이지 않은가.
“저 오드아이는 바리엘 개국 당시 공신이었던 라알리 가문의 흔적입니다.”
“엥?”
의아한 소리를 낸 것은 베릭이었다. 그러자 로만드로가 재빨리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다행히 백작은 너무 황당한 나머지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모르는 눈치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라알리 공작께서는 갈색과 잿빛의 눈동자를 가지고 계셨다 전해지지요. 그 자손들 역시도 피를 이어 같은 눈을 가졌다 합니다. 전염병으로 인해 대가 끊어지지만 않았어도, 이 중앙의 어느 곳에 라알리 가문의 대저택이 건재했을 터인데요.”
라알리? 들어 본 적도 없는 가문이었다. 하지만 이안의 태도로 보아 거짓을 꾸며낸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금방 탄로 날 거짓말을 구구절절 떠벌릴 성격도 아니었고.
“말도 안 됩니다. 그거랑 시아오시 경이랑 무슨 관련이 있답니까? 오드아이면 저기, 뭐, 다 그쪽 혈통이란 말입니까?”
“아니라는 증거는요?”
“예?”
이안이 나른하게 웃으며 되물었다.
“아니라는 증거 말입니다.”
무언가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뒷받침할 증거가 필요했다. 이안은 시아오시의 오드아이를 내세웠으니, 아니라 반박할 자들은 그에 맞는 증거를 갖고 와야 할 것이다.
“노, 노예 시장 출신이지 않습니까!”
“예, 그러니까요. 제가 그때 시아오시 경을 보고 얼마나 마음 아팠는지 모릅니다. 개국 공신의 핏줄이 핍박받으며 살아가고 있었으니까요. 하여, 제가 직접 값을 치러 면천까지 시켜 준 것이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무엇 때문에 그리했겠습니까? 혹, 제가 머저리라서?”
“머, 머저리?”
그새 또 하나의 망언이 추가될 위기에 빠지자, 다비온 백작이 경악했다.
이를 보던 베릭이 코를 훌쩍였다. 저거저거, 싹 다 구라다. 그때 일이 얼마나 많았는데. 때마침 시아오시가 필요해서 산 거면서.
궁지에 몰린 다비온 백작이 시아오시를 돌아보며 뭐라 말해 보라 눈짓했다. 설마 뻔뻔하게 저걸 방패 삼지는 않겠지? 하지만 이안이 선수 쳤다.
“시아오시 경은 모르는 사실입니다.”
“하! 이보십시오, 이안 경!”
“트웰러 장관께서는 이에 대해 알고 계신 것 같던데요. 아니면 혹시-”
이안은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는 듯 가녀리게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자 로만드로는 끝났다며 저도 모르게 목덜미를 손날로 그었다. 이안이 저렇게 하는데, 누가 이겨 먹겠는가?
“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생각합니까?”
이안의 결정타에 백작의 얼굴은 아예 죽상이 되었다. 속마음으론 아주 강하게 긍정하고 싶었다. 예, 물론이지요! 입에 침이나 바르십시오! 둘러댈 거면 그럴싸하게라도 하든가, 어디서 거짓말을! 집어치우시지요. 뻔뻔하십니다! 망할 헛소리!
하지만 백작은 입술을 달싹이며 겨우 대답했다.
“…그, 그럴리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