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07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07화(807/863)
제807화. 입질
“도착했습니다!”
대회의장 밖에서 들려오는 신호에 관료들이 눈에 힘을 빡 주고 대기했다.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 그 독한 자가 이제 겨우 정신 차리고서 돌아다닌다 들었는데, 그 기세를 몰아 대회의까지 참석하겠노라 한 것이다. 마침 황제도, 수상도 없는 이 때에.
관료들은 긴장한 낯을 가다듬으며 시선을 주고받았다.
“괜찮겠지요?”
“물론입니다.”
이안 장관이라면 마력석 시세 폭등에 관하여 모를 리가 없다. 별채 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으니 더더욱.
그들은 살짝 떨리는 마음으로 서류를 뒤적이며 만반의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그들끼리 괜히 말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시세 폭등 건과 관련하여 책임질 일은 없었다. 날갯짓은 황궁에서 시작되었지만, 폭풍이 일어난 것은 어쨌거나 무역상들 측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한 것입니다. 합당히요.”
“예. 이것을 따지고 들면 월권입니다. 그럼요.”
“하아, 근데 왜 이리 목이 타지.”
그때였다. 밖에서 누군가 후다닥 달려 들어왔다.
“드, 들어옵니다.”
담배를 태우러 나갔다가 이안과 맞딱뜨려 황급히 되돌아온 게 분명했다.
이내 천천히 열리는 대회의장 문. 조금 여윈 듯한 이안이 보고서 뭉치를 옆구리에 낀 채 모습을 보였다.
“아, 아이고, 이안 장관!”
“몸이 안 좋다고 들었는데 이리 거동하셔도 되는가?”
“거 고생이 많았소.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이안은 그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만 까딱여 보였다.
반면 함께 들어온 로만드로는 세모눈으로 대회의장을 둘러보았는데, 한껏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로만드로의 태도로 미루어 관료들은 상황을 파악했다.
‘알고 있군.’
‘알고 있어.’
이안은 자리에 앉자마자 외교부 장관 레이번을 돌아보며 인사했다.
“레이번 장관님.”
“예? 왜, 왜요?”
“동방의 마법사들 때문에 저택에 문제가 생겼다 전해 들었습니다.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아니, 때려 부순 것은 동방의 마법사가 아니라 그쪽 마법사들이라니까? 레이번은 목구멍까지 치솟는 말을 겨우 넘기며 어색하게 웃었다.
“저희가 더 빠르게 일 처리를 했다면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인데요.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아잇, 아닙니다. 뭘 그런 말씀을. 마법사분들이 구해 주셔서, 예. 목숨 부지하고 있는 것이지요. 크흠.”
“그리 생각해 주시니 감사하군요. 생활은 좀 괜찮으십니까? 마법부에서 도울 것이 있다면 말씀하십시오. 무엇이든 돕겠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껏 친절한 제안이었으나 레이번을 비롯한 관료들은 더 없이 긴장하여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었다. 혹해서 물었다가는 그대로 낚일 수 있음을 모두가 알았다.
레이번은 잠시 고민하더니, 다른 관료들의 시선을 알아채고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그러실 것 없습니다.”
“오. 정말이신지요?”
어딘가 불길한 어투에, 레이번은 깜짝 놀라 이안을 돌아보고 말았다.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어딘가 서늘해 보이지 않나.
이내 레이번은 이안의 제안이 ‘마지막으로 베푸는 기회’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아. 그러면, 그, 나중에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시지요. 지금은 자리가 자리인 만큼.”
허! 이것 봐? 다른 관료들은 레이번의 대답에 황당하다는 듯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마지막 권유라는데. 레이번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무언의 신호를 계속 보낼 뿐이다.
이안은 보고서를 정리하며 물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레이번 장관님.”
“…말씀하십시오.”
“어째서 무역상들에 대한 통행 허가 업무를 중단하셨습니까? 해당 무역상들은 자격에 아무 문제가 없는 자들인 것 같던데.”
아무렇지 않게 묻는 말이었지만 레이번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올 것이 온 게다. 레이번은 밤새 달달달 외웠던 내용을 반사적으로 쏟아냈다.
“해당 무역상들이 수입 신고했던 목록과 실제 목록이 맞지 않는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말입니다. 이를 조사하기 위해 임시로 조치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조사는 끝나셨고요?”
“물론입니다. 지금은 문제없이 허가를 내어주었답니다.”
“다시 거두심이 좋겠습니다.”
“예?”
뜻밖의 언질에 레이번이 고개를 휙 돌렸다. 지금 자신이 잘못 들은 것 같다며. 하지만 이안은 또박또박 다시금 일렀다.
“통행증을 다시 거둬들이시라 제안드렸습니다.”
“어, 어째서 말입니까?”
“보아하니, 그자들이 마력석 가격을 담합하여 시장경제를 해치고 있는 듯합니다. 아시다시피 마력석은 단순한 보석 장신구가 아닙니다. 마법 연구는 물론 각종 산업, 국방까지 아울러 사용되는 요긴한 물질이지요. 한데 사사로운 이득을 꾀하고자 장난질을 쳐 대니, 이는 마법부로서 묵과할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뭐 어쩌겠다는 건데?
이안은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살짝 키웠다.
“사건과 관련된 무역상들을 모두 처단하고, 앞으로 바리엘 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마력석은 마법부가 관리하는 게 좋겠습니다.”
“아니, 이보십시오. 이안 장관!”
“그게 말이나 됩니까?”
은근히 귀기울이고 있던 다른 관료들이 화들짝 놀라 일어나고 말았다. 마법부가 바리엘 내의 모든 마력석을 관리하게 된다면, 안 그래도 부와 권력이 넘쳐나는 마법부에 날개를 달아 주는 셈이 된다.
하나 이안은 당최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왜 말이 안 된다고 하시는 겁니까?”
“바리엘에 마력석 무역상이 어디 한둘이오? 그 많은 것들을 마법부에서 어찌 처리하신다고요?”
“감사하지만, 마법부의 업무량까지 신경 써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들 계속해서 말씀하시지 않았던가요? 안 그래도 공간 남아도는 마법부, 별채까지 짓는 것은 과하다고. 그 과함에 맞춰 업무를 늘려 보고자 합니다.”
이게 무슨 개똥 논리? 관료들은 할 말을 잊고서 입만 벙긋거려 댔다.
반면 이안은 아주 잘 되었다는 듯, 연신 만족스러운 낯이었다.
“마력석을 마법부 소관으로 둔다면 앞으로 이런 사태는 일어날 일 없겠지요. 외교부 장관님, 안 그렇겠습니까? 어디서 감히 수입 신고 목록을 거짓으로 작성하여 제국을 기만하려 하는지.”
“아니, 그건 아니었습니다. 신고만 그렇게 들어왔고, 조사하니 별문제 없었어요.”
“아니요. 이참에 근간을 다잡는 게 좋겠습니다.”
“저기, 이보십시오, 이안 장관.”
이안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 펜으로 테이블을 툭툭 두드렸다. 그러고는 한쪽 턱을 괴며, 마치 악동처럼 입매를 말아 올렸다.
“아주 새로운 방식으로요.”
이안의 선언에, 관료들은 얼빠진 얼굴이 됐다. 이거 원, 별채 건설 막는 겸 소소하게 이득이나 보려 했는데, 일이 어찌 이리 돌아간단 말인가? 그들은 정신 차리자는 듯 머리를 털어 대더니, 더듬더듬 이안의 제안에 반박하기 시작했다.
“이안 장관. 그대 의견은 존중하오만, 지금 당장 시중에 유통되는 마력석들은 어찌 거둬들일 셈이오? 비효율적이오. 그렇다고 마법부 업무를 돕겠답시고 국고를 열 수도 없는 노릇이외다.”
“예, 맞습니다. 정리를 하려면 응당 대가를 치르는 게 순리 아닙니까. 이 정도 처분이면 저거, 뭐더라, 무역상 측에서는 밥줄을 옥죄는 것이니 앞으로는 쉬이 물건을 풀지 않을 것인데요.”
“미리 말씀드립니다! 마법부의 예산 외에는 한 푼도 내어드릴 수 없습니다!”
“그야 물론이지요-”
소란 속, 이안은 활짝 웃으며 관료들에게 걱정하지 말라 손짓했다. 아이의 폴랑거리는 소맷자락에 관료들은 다시금 넋을 놓았다.
“제 선에서 처리하겠습니다.”
“처리라니, 어떻게-”
“이런. 소식이 늦으시군요. 저, 히엘로령을 반납하기로 했는데요.”
“뭐라고요?!”
다비온가 출신의 관료들은 그제야 뭔가 깨달았는지 슬그머니 제 이마를 짚었다.
“거금이 한 번에 들어올 것이니 예산 관해서는 말씀 얹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 저기-”
“무슨 문제라도?”
이안 경은 당최 뒤가 없으신가? 한 푼 두 푼 모아서 집 사고 땅 사고 해도 모자랄 판에, 현금만 생겼다 하면 그걸 죄다 마법부에다 들이부으니 이게 맞나 싶다. 대체 어느 미친 인간이 사비 털어서 직장 일에 보태느냐는 말이다.
이안은 차분하게 서류를 정리하며 덧붙였다.
“아무튼, 일단은 그리 아시면 됩니다. 조만간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무역상들도 만나 볼 것인데, 또 다른 소식이 있다면 바로 공유해 드리도록 하지요.”
이안이 무역상을 만나는 건 예상했던 바, 근데 그것이 마력석 가격 문제가 아니라 마법부의 사업 진출로 인한 것이라면, 이건 말이 달라지지 않나?
무역상들은 제 밥그릇이 위태롭다는 걸 바로 알아챌 것이고, 이를 면하기 위해 자신들과의 유착 관계를 이안에게 실토할 가능성이 상당했다.
‘어, 어쩌지요? 이런 건 계획에 없었는데.’
관료들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안은 작게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대회의 준비에 나섰다.
“황제 폐하께서는 알고 계신가?”
누군가의 물음에 이안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황제를 언급한 것은 일종의 승부수였다. 하완 반란군 수뇌부 몰살 사건의 오해로 황궁 모두가 마법부의 눈치를 보고 있음은 분명했다. 그래서 어영부영 마법부 별채 건설도 시작된 것이니까. 그런데 마법부가 마력석 유통 권한까지 독점한다면, 이는 말이 달라지지 않나? 돌파구가 필요했다.
“아니요. 아직 보고 안 드렸으니 모르실 것입니다.”
이안은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런데 크게 상관있겠습니까?”
황제께서도 막을 수 없다. 명분은 지금 마법부의 손에 쥐어져 있으니까 말이다.
발칙하고 당돌한 발언이었지만 그 누구도 보는 앞에서 반박하지 못했다. 적어도 수상이 있었더라면 그래서는 안 될 것이라 덧붙여 주의 주었겠지만.
‘역시.’
이안은 예상한 반응이라는 듯 살짝 한숨을 쉬고는 모른 척 고개 숙였다. 이어 은근히 흘리듯 덧붙였다.
“아시다시피 제가 요즘 몸이 좀 안 좋아서 말입니다. 이런 사소한 일보단 밀린 급한 업무들부터 선행하고, 폐하께는 틈이 나는 대로 바로 보고하겠습니다. 다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걱정은 무슨. 그런 것 아닙니다.”
“예, 이안 경께서 알아서 잘 하시겠지요.”
다들 겉으로는 저리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복잡한 셈이 오가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이안은 손끝을 툭툭 두드리며 잠시 기다렸다. 혹, 자신의 미끼를 알아채고서 잡으려 드는 영리한 자가 어디 없는지.
“그런데-”
그리고 놀랍게도, 입질을 문 것은 예상 밖의 인물이었다. 바로 외교부 장관 레이번. 사절단을 대하던 경험이 있어서일까, 그는 이안을 조심스레 살피며 물었다.
“몸이 많이 안 좋으신가요? 이전보다는 좀 야위신 듯하여도 판단은 맑으신 것 같은데.”
“겉으로 보기에 괜찮다니 다행이군요.”
“일전에 토올룬 전쟁에서 무리하셔서 그런 건가요?”
다른 관료들은 뭐 저런 걸 묻나 싶었지만, 이안은 그가 나름 잘 해내고 있다 생각했다. 살고 싶으면 어떻게 해서든 돌파구를 찾아내는 게 맞지.
“그런 셈이지요. 피로도 누적되었고, 여러모로.”
이안은 짤막하게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러자 레이번 장관은 뭔가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까딱거리더니, 이내 정면을 쳐다봤다.
관료들 전부 이안의 파격 행보에 대처하기 위해 숙덕대고 있었다. 그들은 레이번에게도 연신 눈을 찡긋거렸으나, 그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느라 반응하지 못했다.
‘여러모로라. 참 의미심장하네. 마법을 쓸 정도는 되는 건가?’
끼이익.
“다들 일찍이들 오셨군요.”
그때, 퀸타나 장관이 안으로 들어서며 인사했다.
황제도 없고, 수상도 없는 자리인지라 회의 주도권은 그녀에게 있었다. 퀸타나는 평소와 같지 않은 대회의장 분위기를 살피더니, 조심스레 봉을 집어 통통 두드렸다.
“정숙하십시오. 지금부터 대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