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08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08화(808/863)
제808화. 비밀입니다
대회의가 끝난 뒤-
“진짜 미친 인간 아닙니까?”
관료들은 본궁 뒤편의 정원으로 몰려들었다. 입에는 담배를 문 채 하나같이 어이없다는 낯빛이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원.”
다들 황당하여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이안의 대응은 예상을 확연히 빗나간 것이었으니까. 그들 나름대로 세워 두었던 대비책은 한순간에 무용지물로 변했다.
“아직 어려서 그런가, 돈 무서운 줄 모르고.”
“내 말이 그 말입니다. 아무리 마법사라도 그렇지요. 단순 계산으로 따져도 금화 수천 개에 달하는 금액인데, 그걸 한 번에 태운다고요? 고작 마력석 때문에?”
그러자 다비온가 출신의 사람들이 덧붙여 정정했다. 진위 여부는 이안 히엘로만이 알겠지만.
“단순 마력석 때문에 영지를 판 것은 아닐 겁니다. 시아오시 경이라고 다들 아시지요? 다비온가와의 혼인 성사를 위해, 이안 장관이 영지를 양도하려 한단 소문을 들었거든요.”
“제 생각에는 그것도 다 계산입니다. 시아오시 경이라 하면, 예전 일이긴 하지만 이안 경이 직접 황궁으로 데려온 자가 아닙니까?”
“에이, 언제 적 일인데요.”
“그래도요. 다비온가와 인연을 맺게 되면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분이 은근히 있을 겁니다. 작태를 보세요. 황제 폐하께 보고도 없이 막 질러 버리지 않습니까.”
“예전에는 안 이랬던 것 같은데.”
“생각을 잘못했어요.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고는…….”
끄응. 다들 수염을 매만지며 애꿎은 담배만 태워 댔다.
백번 왈가왈부하여도 답은 명확했다. 이안이 무역상들과 접선하기 전에 자신들이 먼저 만나서 상황을 정리하는 것.
그놈들의 입단속을 단단히 시키든지, 아니면 이안이 처리하기 전에 자신들이 먼저 처리하여 말이 새어 나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안전할 것이다.
문제는, 그 귀찮고 번거로운 일을 누가 맡을 것인가인데…….
“레이번 장관?”
누군가 묵묵부답인 레이번을 돌아봤다.
그는 대회의 때부터 어디 정신 팔린 사람처럼 넋이 반쯤 나가 있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안 장관 말입니다. 몸 상태가 어느 정도인 것 같습니까?”
“보면 모르시오? 어려서 그런가, 팔팔하더만!”
“내 말이 그 말입니다. 사경을 헤맸다고 들었는데 그 정도면 그냥 며칠 푹 자고 일어난 수준 아닙니까?”
“며칠만 더 누워 있지, 쯧.”
레이번은 고개를 가볍게 좌우로 저어 댔다. 수긍과 부정을 동시에 보여 주는 듯한 몸짓.
“아니, 뭔가 좀 이상하긴 합니다. 이안 장관은 마법부에서도 독보적인 경지의 마법사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 나이에 장관직에 올랐지요.”
“다 아는 소리를 왜 갑자기 하십니까?”
“그런데 이안 경이 혼자 못 당했던 동방의 마법사를, 다른 자들이 제압했습니다. 물론 여럿이 덤비기는 했지만, 제가 보았을 때는 헤일 대장과 아코렐라 대장이 거의 주축으로 움직인 것 같던데요.”
“그래서요?”
“아무리 전쟁의 여파가 컸다고는 하지만, 봐주기가 과하다는 겁니다. 다른 마법사들은 전쟁터에서 놀고먹었답니까? 다 같이 구르고 왔는데, 어찌 이안 경만 저리 앓아누웠는지를 모르겠습니다.”
“혼자 담당하던 부분이 많아서 그런 것 아니겠소?”
“그래요. 말조심하시오. 괜한 억측 했다간 우리만 더 불리해집니다.”
“잠깐-”
그때, 누군가 손을 들어 말을 끊어 냈다. 길게 빙빙 돌아가고는 있지만 요지는 확실해 보이지 않나.
“그러니까 지금, 이안 경의 힘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으신 거지요?”
“예. 분명히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법부의 장관이라는 자가 일개 부원보다 못하다면, 그게 어디 장관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단 한 번도 이안의 능력에 대해서 의심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당황스러웠지만, 이만큼 그럴싸한 돌파구가 또 없다. 마력이고 나발이고 뭐든지 간에, 그가 장관이기 때문에 지금 이런 사달이 일어나고 있는 것 아닌가.
근간을 뒤흔들 의문을 제기한다면 이안 역시 쉬이 외부로 시선을 돌리지 못할 터다. 일단 자기 자리부터 보전하려 들 것이니까.
“황제 폐하의 도움이 필요하겠군요.”
예전에는 자체 선출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임명에 황제의 최종 승인이 필요했다. 그 말인즉, 해임 역시 황제의 권한이라는 뜻.
황제가 마법부 장관을 신뢰하고 있다는 건 잘 알지만, 제국의 체면이 달린 문제이니만큼 이전처럼 덮고 봐주실 수는 없을 게다.
“대회의에서 발칙한 발언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빌미로 조금씩 말을 흘려 봅시다.”
이안 장관을 정말 파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소불위처럼 행동하는 그에게 견제 수단이 있다는 걸 상기시켜 주고, 마력석 유통권만 저지해도 큰 수확일 터다.
솔직히 말해서, 종전 이후 자신들이 마법부 눈치를 얼마나 보았던가?
‘하완 사태가 틀어져서 더 곤란해진 것도 있지만.’
애꿎은 마법부를 잡으려다 되레 자신들의 발목이 잡혀 버리고 말았지만, 이대로 질질 끌려다닐 수는 없다.
“아무튼, 그럼 나뉘어서 일을 봅시다. 황제 폐하께 가서 일을 보고하는 쪽과 무역상 일을 처리하는 쪽으로.”
“제가 폐하께 가겠습니다.”
“저도요.”
“그럼 제가 무역상들을 만나면 되겠군요.”
그들은 다 타 버린 담배꽁초를 비벼 끄고서 일어났다. 얼추 할 일이 정해졌으니 이제는 움직일 시간. 하나둘씩 흩어지며 사라졌다.
그 와중, 이를 지켜보는 자가 있었으니.
“이안!”
로만드로가 저 멀리서 서류를 챙겨 들고서 호다닥 달려왔다. 그러고는 이안이 내려다보는 쪽을 힐끗거렸으나, 정원은 텅 비어 있었다.
이안은 고생했다는 듯 로만드로에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몸을 돌렸다.
“좀 들어 드릴까요?”
“아니아니! 뭐 얼마나 무겁다고. 근데 무얼 그리 보고 있었어? 아무도 없는데.”
“그냥, 재밌는 일이요.”
“왜? 누가 으슥한 데서 멱살잡이라도 하던가?”
“비슷했습니다.”
아이고, 아까워라! 나도 보고 싶은데! 로만드로가 발을 타닥 굴리며 아쉬워하자, 이안은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로만드로 님.”
“으응?”
“차기 마법부 장관으로, 헤일과 아코렐라 중 누가 더 적임자 같습니까?”
“으이? 무슨 그런 걸 물어?”
“며칠 누워 있더니 별별 생각이 다 들어서 말입니다.”
로만드로는 입을 비죽거렸으나 이내 진지하게 고민했다. 두 사람 다 능력 좋고 신망이 두터운 자들이지 않나? 다만 성격이 완전히 반대인 터라 각기의 장단점이 있지.
“헤일은 진중하고 마력이 제일 강하니 대장으로는 적임자지만, 워낙에 올곧고 처세에는 융통성을 보이지 않아 정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일세.”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아코렐라 대장은 영민하고 머리도 이리저리 잘 돌아가서 복잡한 황궁 정세를 읽을 줄도 알고 나름 처신도 잘 할 수 있겠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좀… 미친 자라서. 저 내킬 때만 정상인이지 않은가.”
“예. 그것도 동의합니다.”
단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실 누가 올라도 잘할 것이고, 동시에 모자람을 보일 것이다.
로만드로는 무덤덤한 이안의 옆모습을 살피며 조심스레 충고했다.
“그런데 이안.”
“말씀하십시오.”
“대회의에서의 발언은 조금 부적절했네.”
“황제 폐하를 언급한 것 말씀입니까?”
“그래. 저번에도 폐하 앞에서 이상한 소리를 하지 않았던가. 자네의 마음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는 있네만, 모두가 같은 뜻으로 듣진 않을 테니 조심하게. 저 독사 같은 인간들이 눈을 번뜩이며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누가 들을세라, 마지막 말은 한껏 낮춘 목소리였다. 물론 저치들은 이안을 두고 독사 같은 인간이라 하겠지만.
그럼에도 로만드로는 불안했다. 하완 사태가 겨우 마무리되고 오해가 풀린 상황이다. 빌미를 잡았으니 어느 정도 치고 나가려는 이안의 의도는 알겠다만, 너무 서두르다가는 되레 상대를 자극하는 꼴이 될 수 있었다. 이안이라면 알 것이라 생각하고는 있다만, 어쩐지 요즘 하는 게 영…….
‘뒤가 없어.’
살살 캐내고, 돌려 치고, 적기를 기다렸다가 급소를 노리는 느낌이 아니라, 다 덤벼들라 도발하며 적진으로 몸을 내던지는 기분. 로만드로는 이안을 굳게 믿었으나, 그와 별개로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로만드로 님.”
앞서 걷던 이안이 걸음을 멈추고는 그를 돌아봤다. 솨아아- 찬 바람이 이안의 금빛 머리칼을 훑고 지나갔다. 문득 로만드로는 낯선 두려움을 느꼈다.
“저, 문제가 있습니다.”
“문, 문제라니?”
“로만드로 님만 알고 계셨으면 합니다. 제 일을 가장 가까이서 봐주시는 분이니까요. 숨길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이리 말씀드립니다.”
반은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하지만 진심이 담긴 결정이기도 했다. 마법부에는 알리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로만드로는 예외지 않나. 그는 자신의 수족이었으니까. 이안이 다치면, 필연적으로 함께 다칠 사람이라는 뜻이다.
로만드로는 주위를 휙휙 둘러보더니 한 발짝 가까이 다가왔다. 아무도 듣는 이가 없다.
“왜? 뭔데?”
“저, 이드갈을 만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뭐라고?”
“더하여 마력 역시 거의 잃은 듯합니다. 목숨은 부지하고 있지만, 힘을 섣불리 쓸 수 없을 정도로요.”
로만드로의 안색이 잿빛으로 변했다. 그는 한참이나 적합한 말을 찾는 듯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래, 놀랄 만도 하겠지. 제국에서 제일가던 빛이 바래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아마도…….
“그럼, 힘을 쓰지 않으면 무리는 없어?”
이안의 눈이 커졌다. 뜻밖의 반응이었으므로.
“건강 말일세.”
“…….”
“마법사가 마력을 잃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아. 정말 괜찮은 거 맞지? 설마… 잘못되는 건 아니지?”
로만드로는 울먹이며 이안의 손을 붙잡았다. 달달 떨리는 손끝에서 그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둘러대지 못했다. 마력을 사용하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이다.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로만드로에게 거짓을 고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 계속 아팠던 것이 이것 때문이었어. 맞아. 자네, 고생 많이 했잖아.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일이지. 미안하네. 내가 진작 알아챘어야 했는데 너무 무뎠어. 뭘 아는 게 없어서-”
“저도 예상치 못한 일입니다.”
“당연하지! 본인 건강을 꿰고 있는 자가 세상 어디 있단 말인가?”
로만드로가 허튼소리라며 가볍게 꾸중했다.
그에 이안은 창문에 어깨와 머리를 기대며 희게 웃었다. 누군가 자신을 위해 울고 있다는 사실이 썩 좋았다. 어쩌면 자신도 미쳐 버린 걸까. 아코렐라처럼.
“로만드로 님. 저는 바리엘 마법부 장관입니다. 그런 제가 힘을 잃었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하지만은 없습니다.”
이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이치였다. 다른 부서도 아니고 마법부이지 않은가.
로만드로도 상황이 꽤 심각하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
“관료들이 이를 눈치채는 것도 오래 걸리지 않겠지요. 지금 황궁 내에서 마법부의 존재는 독보적입니다. 제 건강 문제는, 이를 견제할 유일의 수단이고요.”
“그럼 어쩌겠다는 건가? 정말 내려오려고?”
“내려가긴 할 것인데, 정리해야 할 게 많아서요. 가능한 한 일을 다 보고 가려 합니다.”
로만드로는 그제야 왜 이안이 그토록 별채 건설을 서둘렀는지 알 것 같았다. 후임이 누가 되든지 간에 후환없이 이어받을 수 있게끔 한 것이다.
“별채 건설 말고 또 일이 있던가? 물론 당분간은 종전으로 정리할 것이 많지만, 그래도 이안 자네가 무리할 만한 것은 없어.”
“있습니다.”
“마력석 유통, 그거 진심이었어?”
“아니요. 그거 말고요.”
이안은 다시 움직이자며 앞서 걸었다. 여기까지는 로만드로가 알 필요 없는 부분이다.
‘변절자의 싹을 모조리 잘라 내는 것.’
진의 미래를 위해 그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이안은 서둘러 따라오라며, 우뚝 선 로만드로에게 고갯짓했다.
“지금의 대화는 비밀입니다. 맹세해 주십시오.”
“왜! 안 그러면 금언 마법이라도 걸게?”
“그래도 되겠습니까?”
“…자꾸 무서운 말을 해. 힘쓰면 아프다는 사람이. 걱정하지 마! 아무한테도 말 안 할 테니까. 근데 베릭도 모르나? 폐하도?”
“아무도.”
“이거, 원.”
…엄청난 비밀을 알아 버렸네.
로만드로는 코를 훌쩍이더니 맹세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두 눈을 글썽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