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09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09화(809/863)
제809화. 반갑다, 친구야
“댓바람부터 몰려와서는 무슨 소리들이오?”
진은 짜증스러움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대회의는 관료들 소관이라 하지만, 수상이 없는 지금 진은 가급적 빠짐없이 참석하여 회의를 주도하고자 했다.
하지만 보아라. 책상 위도 모자라 바닥까지 침범한 서류 더미를. 일 처리가 시급하여 꼼짝도 못 하고 인장만 찍어 대고 있는데, 느닷없이 몰려와서는, 뭐라고?
“이안 장관이 새로운 사업을 전개하려 합니다. 바리엘 전역의 마력석 유통을, 마법부가 주관한다는 내용입니다.”
“짐은 들은 바가 없다.”
“예. 그리하여 지금 이리 회의가 끝나자마자 달려와 말씀드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폐하께 의논하기도 전에 이미 마법부에서 결정을 내린 듯 보였습니다. 폐하의 윤허가 필요한 중대 사안인데 말입니다. 청원컨대, 이안 장관의 불경한 행동을 엄히 다스려 주십시오.”
진은 그제야 서류를 툭 내려놓으며 신하들을 쳐다봤다. 할 일도 없는 작자들 같으니라고. 자신보고 지금 저걸 믿으라는 것인가?
진이 냉랭한 눈길을 쏘아 대자, 관료들은 슬그머니 시선을 내렸다. 아니, 진짜인데…….
“물러들 가시오. 내가 직접 확인해 보겠소.”
“폐하.”
“또 보고할 것이 있는가?”
“이안 장관의 몸 상태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안 경의 몸이 왜?”
조금 누그러진 말투였다. 이안 경은 언제나 괜찮다, 문제없다 등으로 자신의 상태를 설명했다. 그러니 이번 정보는 남을 통해 듣는 것이 더 객관적일 터.
외교부 장관 레이번이 조심스레 말을 내놓았다.
“상태가 안 좋아 보이던데, 혹 들으신 바가 있으신지요?”
“대회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만-”
레이번이 말끝을 흐리며 진의 눈치를 살폈다. 황제 역시 이안 장관의 몸 상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 보였다. 정말로 별문제가 없거나, 아니면 이안이 비밀에 부치고 있다는 뜻이겠지.
“동방의 마법사들은 공격한 적 없다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으니 상당히 의아합니다. 다 끝난 마당에 거짓된 증언을 할 리 없지 않습니까. 한번 확인해 보심을 간청드립니다.”
“무엇을?”
“전쟁 여파로 이안 경의 마력이 이전 같지 않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조금의 과장을 보태긴 했으나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과장이었고, 이는 상대에게서 원하는 반응을 이끌어 낼 때 유용한 수단이다.
아니나 다를까, 진은 펜을 가볍게 돌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안 경의 마력이 이전 같지 않다는 소문이 돌고 있음엔 많은 의미가 숨어 있다. 단순 건강상의 문제를 뜻하기도 하지만,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하니. 적어도 관료들에게는 말이다.
“그대들은 내게 올릴 보고서도 소문을 기반으로 하여 작성하는가?”
“당치도 않습니다.”
“물러들 가시오. 더는 시간을 내어줄 수 없소. 혹, 이 중 누군가 나를 대신할 수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황제의 일을 대신할 자가 누구인가? 너? 아니면 너? 진의 경고성 짙은 시선에 관료들은 기민하게 발을 뺐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황제께 말을 흘렸으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폐하, 송구합니다.”
“송구한 줄 알면 되었소. 대신들 나가신다. 마차를 준비하라!”
진은 직접 바깥에 알려 배웅을 지시했다. 집무실 문이 열리고, 관료들이 공손히 인사를 남기고서 조심스레 물러났다.
모두 사라지자, 진은 펜을 내려놓고는 두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하루라도 소란이 끊이질 않았다. 가능하다면 이안 경이 조금만 자중하여 주면 좋겠지만, 그럴 성정도 아니고…….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았겠지. 많이 힘든 걸까.’
아니, 그리 힘들면서 어찌 자꾸 일을? 진은 혼자 걱정했다가, 화냈다가, 체념하기를 반복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바깥에서 들려오는 인기척.
“폐하.”
또 뭐? 진은 자신도 모르게 문 쪽을 노려봤다. 얼간이 같은 관료들이 또 몰려온 건 아닌가 싶어서.
하지만 들려오는 내용은 다른 것이었다.
“버고스의 카일라 홀린 사절 대표와 클리포포드의 노아 왕자가 입국했다는 소식입니다. 버고스 대표는 홀린 저택을 방문하여 여독을 풀 것이고, 클리포포드의 노아 왕자는 오후 중으로 중앙에 당도할 것입니다. 전언으로는 루스웨나 출신의 한 귀족과 함께라 하였습니다.”
“클리포포드가 선택한 루스웨나의 대표자군.”
“아마 그럴 것으로 추측됩니다.”
‘드디어…….’
진은 날짜를 헤아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각국의 손님들이 하나둘씩 도착하면 곧 러더포드와 다몬의 처형이 진행될 것이다. 진정으로 이 전쟁의 종지부를 찍게 되겠지.
진은 다시 펜을 다잡으며 지시했다.
“해당 사안에 대한 마법부의 보고서를 가져와라. 그리고 덧붙여서, 대회의 기록지도.”
“예, 폐하.”
진은 멈췄던 서류 작업을 이어 가며 집중했다. 어서 일 끝내고 이안 경의 몸 상태를 보러 가겠노라 생각하며.
* * *
“카일라!”
홀린 공작은 체면도 잊은 채 달려 나와 딸아이를 끌어안았다. 분명 전장으로 떠날 때만 해도 두 발 단단히 서 있던 아이였는데, 그 누구보다 반짝이며 검을 호쾌히 휘두를 줄 아는 아이였는데, 이제는 걷는 것조차 불가하여 움직임이 여의치 않았다.
카일라는 휠체어 바퀴를 고정시키며 제 아비를 가볍게 안았다.
“건강하셨습니까?”
“네 소식을 듣고 걱정이 많았단다.”
“조금 달라졌지요?”
“무슨 그런 농담을…….”
보내지 말걸 그랬나? 황후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클로이가 시아오시와 눈 맞을 줄 알았더라면, 보내지 말고 기회를 엿보게 하는 것인데…. 당시 카일라의 출정을 반대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는 게 조금 후회되었다.
카일라는 그런 아비의 마음을 눈치채고서 가볍게 웃었다.
“아버지. 제가 돌아온 것이 기쁘지 않으십니까?”
“그럴 리가.”
“그러면 웃으십시오. 아버지의 딸은 전쟁에서 왕좌를 쟁취했습니다. 이만큼 값진 승리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어디 이름도 못 들어 본 변방 소국 따위가 아니다. 무려 버고스의 새 왕조 시작을 홀린 가문이 장식하게 되었으니, 이는 어찌 보면 황후가 되는 것보다 더 큰 영광과 이득이었다.
카일라는 자신을 마중 나온 다른 형제자매들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요. 나눌 대화가 많습니다.”
“그래. 이쪽으로.”
“오는 길에 들었습니다만, 마력석 가격이 급등했다 하던데요. 아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바로 일 얘기로구나. 다른 형제자매들은 대단하다는 듯 서로를 힐끔거렸지만, 홀린 공작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부가 주관하는 별채 건설 사업에 문제가 있다 들었다. 그를 방해하려고 모종의 세력이 잠깐 장난을 친 듯싶어.”
“그것참 대단한 모종의 세력들이로군요. 손모가지 날아갈 만한 짓을 장난으로 하다니. 녹봉을 단단히 먹어 대서 그런가.”
카일라는 그 세력의 뒷배에 이안의 정치적 경쟁자들이 있음을 바로 알아챘다.
홀린 공작 역시 피식 웃으며 휠체어를 밀었다. 집사가 대신 하겠노라 일렀지만, 그는 단호히 거부했다.
“이에 이안 경이 강수(強手)를 두었더구나. 마법부 자체에서 바리엘 전역에 대한 마력석 유통을 관리하겠다고.”
“정말입니까?”
“모를 일이다. 그저 경고성으로 그리한 것일지도. 종전 후 마법부를 견제하려는 시도가 많았으니.”
“견제요? 가당키나 합니까?”
말이 되나? 견제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이안과 마법부가 전쟁에서 세운 공이 얼마인데.
그에 홀린 공작은 말도 마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안이 황족이라는 소문부터 시작하여, 별별 일이 많았다. 종전 직후부터 지금까지 얼마 되지도 않은 기간 동안.
카일라는 휠체어 손잡이를 툭툭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마법부에서 유통을 독점하면 저희에게는 불리할 것 같은데.”
사는 사람이 많아야 가격이 올라가는 법. 한데 제국 전체에서 산다는 사람이 마법부밖에 없다면?
게다가 버고스는 패전국 입장에 홀린은 바리엘에 적(籍)을 두고 있는 가문이다. 마법부에서 가격 조정을 ‘제안’하면 거절할 방법이 없다는 뜻.
홀린 공작 역시 이에 동의했다.
“다른 부서도 아니고, 마법부면 그렇지.”
마법부가 유통을 독점했을 시 긍정적인 상황은 딱 하나였다. 마법부에서 값을 의도적으로 높게 쳐주는 것. 값을 정할 수 있다는 이점을 활용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하나 이 또한 터무니없는 가정이었다. 이안과 마법부가 그럴 리가 없지 않나. 이런 일 처리에 관해서는 깐깐한 작자들이니까. 저기 어디, 뒤가 구린 자들도 아니고.
“저희도 반대하는 게 좋겠네요.”
“황궁에서 벌써 연락이 왔다.”
“도와달라고요?”
“그래. 무역상들에게도 소식이 들어간 듯해. 이안 히엘로가 영지 판 돈으로 물량을 싹 매입할 수 있으니 다 함께 힘을 합치자고 말이지.”
“영지를 팔아요? 왜요?”
“관리가 어렵다나.”
“미치겠네.”
관리가 어렵다고 영지를 파는 영주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었다. 여기서 ‘관리’란, 전적으로 영지민의 생활 수준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떻게 살든 이득만 꼬박꼬박 나면 뭐가 어찌 돌아가든지 상관할 바가 있나? 세금 잘 내고, 금고에 돈만 잘 채워 넣으면 되지.
카일라는 믿을 수 없다며 혀를 차 댔다. 이안 히엘로. 역시 상식 밖의 인간이다. 상식 이하의 인간도 골치지만, 이처럼 아예 벗어나 버린 자는 또 처음이었다.
“다몬 왕의 시체는?”
“회수하여 돌아갈 것입니다. 새 왕조의 정통성을 위해서 꼭 필요해요.”
“그래. 일단은 좀 쉬고 내일 입궁하도록 하자.”
“참, 오는 길에 재밌는 소식을 들었는데-”
카일라가 고개를 들어 제 아비를 쳐다봤다. ‘설마’ 하는 시선.
“클로이, 결혼한다던데요?”
“아아.”
근데 언제부터 영애라는 호칭을 생략한 것일까. 홀린 공작은 궁금했지만 적당히 넘어갔다. 그래도 전쟁터에서 동고동락하며 전우애가 생겼나 보지.
“하! 진짜 어이없어서, 원.”
“왜 네가 어이가 없니?”
“그러게요? 뭔가 좀 그렇더라고요.”
“…여기에도 이안 장관의 입김이 들어가 있긴 하다. 이안 장관과 시아오시 경의 관계가 특별하니까. 다비온가의 협력을 두고서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소문도 파다해.”
“어떤 협력이요?”
“거기까지는 알려진 바가 없구나.”
“이거 일이 희한하게 돌아가네요.”
혹시나, 마력석 관련한 안건을 끌어내기 위해 이를 사용한다면 위험했다. 카일라가 클로이를 만나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할 때였다.
“저기, 주인님.”
“무슨 일인가?”
시종 한 명이 다가와 나지막이 전달했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누구?”
“클로이 다비온 영애입니다.”
“누구?”
카일라는 황당해서 되물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클로이. 머리칼과 치렁치렁한 장신구, 심지어는 드레스의 옷감까지 반짝이지 않는 게 없다.
클로이는 콧소리를 쨍- 하게 내며, 카일라에게 손을 흔들었다.
“어머머머, 카일라! 네가 돌아왔다는 소식 듣고서 찾아왔어.”
손등이 바깥으로 향하게끔 말이다.
그녀의 약지에는 큼지막한 보석이 박힌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아마 시아오시와의 약혼반지일 터. 호호홋! 하고 웃는 꼴이 귀엽게 느껴지는 건, 필시 여독으로 인지부조화가 온 까닭이겠지?
카일라 역시 지지 않으며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겼다. 다이아몬드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래? 고마워. 소식도 빠르고, 행동도 빠르구나.”
그동안 할 일도 참 없었나 봐?
“내가 요즘 기운이 넘쳐나거든.”
요즘 행복한 일이 많아서. 내 자랑 좀 들어 볼래?
“…….”
“…….”
잠시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치열하게 힘 싸움 했다.
하지만 이내 싹 돌아오는 얼굴색.
“다행이다. 안 그래도 좀 보고 싶었어.”
“정치인 다 됐네. 침도 안 바르고.”
“들어올래? 너, 이안 경이랑 뭐 좀 있다며?”
다비온가와 이안 경 사이에 맺은 ‘협력’이란 게 대체 무언지 궁금했다. 이에 클로이는 콧대를 올리며 어디 좋은 차 좀 내와 보라 눈짓했다.
“뭐, 있지. 안 그래도 여기 오기 전에 마법부발 서신을 받았단다. 듣고 싶니?”
거, 더럽게 재네. 카일라는 빠직, 미소를 유지하며 대답했다.
“그러엄! 클로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너무 궁금해.”
이 말도 안 되는 대화를 보면서, 홀린 공작과 시종들은 슬쩍 시선을 돌렸다. …다른 건 몰라도, 카일라가 전쟁터에서 ‘친구’를 만들어 온 건 확실해 보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