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10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10화(810/863)
제810화. 쉽지 않아
“어우, 날이 덥다.”
클로이는 손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와중에도 손등이 바깥을 향하도록 했다. 시종이 시원한 차와 부채를 함께 내왔으나, 새초롬하게 눈만 깜빡깜빡. 연신 반지가 잘 보이도록 손등을 보여 카일라 앞에서 흔들어 댔다.
이쯤 되니 카일라는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저 미친것은 원하는 말을 듣기 전까지 몇 시간이고 저리 있을 것 같았기에.
“반지 뭐야?”
“어머머! 봤어? 아이참, 하긴 이게 하도 반짝여서 저 멀리서도 보인다고 하더라. 들었는지 몰라도 나, 시아오시 님이랑 혼인해.”
‘어쩐지! 클로이 네 취향과 달리 알이 소박하다 했어! 시아오시 경의 인품과 아주 잘 어울리는구나?’라고 외치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카일라는 혀끝에 힘을 주고서 어색한 웃음만 흘려 댔다. 이안 경과 다비온의 거래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그래. 축하해.”
“오호호! 고마워. 별별 일이 많았는데 결국 다 극복하고 이리 행복을 찾았단다. 사실 이안 장관의 도움이 컸어. 시아오시 님이 이안 장관과 각별한 사이잖아.”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아니 글쎄, 히엘로령을 시아오시 님께 넘겨주신다고 하더라고. 거기에 몬느에 광산 있는 거 알지? 하완이랑 대사막 그리고 루스웨나까지 인접해 있어 아주 접근성이 좋잖아. 그런 알짜배기 땅을 글쎄, 우리 시아오시 님이 관리하게 되었다니까?”
참기 힘들었지만, 보상은 즉각적이었다. 이안이 클로이를 어떻게 도와주었는지 생생히 전해 듣게 되었으니.
잠시 찻물로 목을 축인 클로이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재잘재잘 떠들어 댔다.
“그렇다고 해서 이안 장관이 감정적으로 일 처리 하는 사람은 아니잖아. 너도 알지? 우리를 도와주는 대신 한 가지 제안을 청하시더라고.”
“어떤?”
클로이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까딱거렸다.
“안건을 하나 올리실 거래. 바로, 국혼에 관하여.”
“국혼? 황후 자리를 찾는다는 말인가?”
“응. 폐하께 연인이 있는 건 알고 있지?”
“폐하의 연인인지는 모르겠고, 마음에 두신 여인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
에이린이라면 카일라도 어렴풋이 아는 존재다. 평민 출신의 성기사라고 들었는데, 전쟁에서의 공이 엄청났다고. 거기에 더해 폐하께서 마음에 품으셨다는 것까지. 버고스에 있던 그녀가 알 정도니, 사실상 바리엘 전 백성이 다 안다 해도 과언이 아닐 터다.
“아무튼, 우리 집안 사람들도 이안 장관이 추진하는 국혼에 반대할 이유는 없거든. 황실 입장에서도 서둘러 황후를 세우는 게 국가적으로 안정적이고. 솔직히 황실의 핏줄을 잇는 분이 황제 폐하 한 분이라는 건 불안한 일이니까. 당장 전쟁은 끝났어도 앞날은 아무도 모르잖아?”
“…그렇긴 하지.”
“거저먹는 것 같아서 좀 그랬는데, 원하는 바가 그거라고 하니 어떡하겠어? 꺄하하핫!”
클로이가 자지러지듯 웃자, 카일라가 눈을 흘겨 댔다. 좋아 죽네. 바보 같이. 어쨌거나 그게 마력석 유통 건이 아니라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카일라 역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되려나?’
바리엘 역사상 평민 출신의 황후가 있었던가?
카일라와 클로이는 포기했지만, 바리엘에는 황후 자리에 적합한 귀족 영애들이 발에 치일 정도로 많았다. 필시 다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것인데, 그걸 물리고 에이린을 내세울 만한 명분이 있을까 싶다. 전쟁은 에이린만 치른 게 아니니까.
“근데 이안 장관도 참 희한해. 행보를 짐작할 수가 없어. 황후 자리에까지 입김을 대려 하다니. 과하다고나 할까.”
“영지까지 넘겼다며. 이제 갈 곳도 없으니 일생을 황궁에서 보내겠다는 뜻이겠지. 기회가 있으면 잡는 것이 당연해.”
평민 출신인 에이린이 황후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황제의 신임만으로는 분명히 불가했다. 그녀를 도와줄 세력이 필요한데, 흘러가는 상황으로 봐서는 이안 장관이 그 역할을 해 주지 않을까 싶다.
안 그래도 마법부의 위상이 높다 못해 저 까마득한 데까지 다다라 있건만, 황후의 뒷배까지 차지하면…….
“대단하긴 하군.”
카일라가 혀를 차 댔다. 이안 히엘로. 언제나 한계 그 이상까지 도달하는 자가 아닌가. 그녀는 더더욱 마력석 독점이 마법부로 넘어가면 안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한 번 추가 기울면 돌이킬 방법이 없으리라.
“원래 사람이 아프고 나면 마음이 좀 간질간질하고 그러잖아. 그래서 더 힘쓰는 것 같던데.”
“이안 경 말이니?”
“응. 마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소문이 돌아. 며칠 전에 봤을 때는 여전해 보였지만. 마법사에게 마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너도 알고 나도 알잖아. 아마 그걸 보완하려고 애쓰는 중이지 않을까? 소문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클로이가 싱긋 웃었다. 뭐가 되었든, 이안 장관이 황궁에서 힘 꽉 쥐고 있는 것이 그녀와 시아오시의 혼인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침은 틀림없었다. 혼인 이후의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될 일이고.
“마력이라…….”
카일라는 찻잔을 내리며 중얼거렸다. 이안이 힘을 잃는다는 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로 인하여 복잡하고 어지러이 얽혀 있는 다국 간의 관계에도 변화가 찾아올 터였다. 카일라는 입궁하면 이에 대하여 알아보는 게 좋겠다 생각했다.
대화가 일단락되자, 클로이는 다시금 손부채를 해 대며 웃었다.
“어우, 오늘따라 덥네! 오호호홋!”
“클로이, 혹시 보석이 너랑 안 맞는 거 아니니? 아까부터 자꾸 덥다고 하는 걸 보니 걱정되는구나. 시아오시 경께서 혹 이상한 걸 사 오신 건 아닐까? 하급 마력석 같은 건 일반인이 구분하기 힘들잖아.”
“그럴 리가-”
“아. 혹시 네가 산 건 아니지?”
“너, 정말-!”
“아니면 말고. 계속 그리 더우면 꼭 시아오시 경께 반지를 바꾸자 말씀드리렴. 평생 끼고 찰 건데 자꾸 그럼 어째?”
들을 만한 정보 다 들었겠다, 카일라는 참지 않고 속에 차오르는 말을 다다다 뱉어 냈다. 그에 클로이의 눈이 번뜩였고, 카일라 역시 턱을 치켜들고서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백날 자랑해 보렴. 눈 하나 깜빡할 줄 알고?
때마침 디저트를 들고 응접실로 들어서던 집사는 심상치 않은 기운에 슬그머니 뒷걸음질 쳤다.
* * *
노아 왕자는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이안을 보자마자 멈칫거리고 말았다.
분명 환대의 의미일 것이다. 자신은 타국에서 온 사절단이자, 클리포포드의 왕자이지 않나. 응당 미소로써 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데…….
‘어찌 이리 불길하지?’
노아 왕자는 자신도 모르게 목덜미를 문지르며 떨떠름하게 이안을 쳐다봤다.
“오랜만입니다, 노아 왕자님. 불편하신 점이라도?”
“아닐세. 여독이 아직 안 풀렸나 봐.”
“그러시군요.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안 장관님.”
“메이 사절. 역시 오랜만입니다. 루스웨나 왕궁 이후로는 처음이지요. 무탈해 보이시니 다행입니다.”
그들이 끌고 온 마차에는 클리포포드산 포도주와 루스웨나 왕궁의 보물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동맹국의 선물이자, 패전국의 공물이다.
마법사들과 황궁 직원들이 이를 하나씩 옮기며 정리하는 동안, 노아 왕자가 누군가에게 손짓했다.
“파라이스 경. 인사하시게. 이쪽은 바리엘의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 경일세.”
“안녕하십니까, 장관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루스웨나 동부 지역의 토올로 파라이스 백작입니다.”
키가 작고 마른 사내였다. 나이는 서른 중후반 정도. 그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고서 이안의 인사를 기다렸다.
클리포포드가 우호적 세력 중 선별한 적임자였다. 루스웨나 수습을 함께하는 자이기도 했고, 나아가 평화협정에서 의결을 행사할 자이기도 했다. 이안은 손을 내밀며 환영한다는 뜻을 보였다.
“먼 길 오셨군.”
“아닙니다. 다시 한번 영광입니다. 그리고 지난 왕조의 잘못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고자 합니다. 히엘로령에서의 비극은 진심으로 유감입니다. 이제 와서 어찌하겠느냐마는, 작은 위로라도 되실 수 있게…….”
파라이스의 수신호에 시종들이 짐마차 뒤를 활짝 열었다. 황제에게 바치는 것 외, 히엘로령의 보상금으로 따로 준비한 금은보화였다. 지나가던 마법사들이 입을 떡 벌릴 만큼 반짝이는 것들이 많았다.
‘어지간하군.’
패전국의 숙명일 터였다. 제 왕궁을 무너트린 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보석을 갖다 바치면서 사과하는 것이. 파라이스는 이안이 황실에서 핵심 권력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호의를 사기 위해 기꺼이 모든 금고를 털어 낸 게다.
“히익! 이게 다 뭐람?”
로만드로 역시 마차 안을 힐끔거리고서 놀란 투로 이안을 돌아봤다. 이거이거, 참으로 타고난 운이라는 게 있단 말이지. 누구는 평생 집 한 채 못 사서 빌빌거리는데, 누구는 영지 팔고 있는 돈 족족 태워 대도 어디서 자꾸 돈이 굴러들어 온다니까?
로만드로가 부러운 눈치로 이안을 돌아보자, 파라이스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충성심이 남다른 자라고 들었다. 이리하여도 분명 황제 폐하께 헌상하라 이를 것이-’
“잘 받겠네.”
“예?”
“잘 받겠다고 했다.”
이안은 거절 따위 하지 않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로만드로에게 지시했다.
“저건 헌상품이 아니니 따로 빼 주십시오.”
“아, 알겠네.”
잘됐네. 안 그래도 요즘 돈 쓸 일 많았는데. 꼭 그리 생각하는 것처럼 이안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어 보였다.
그 뜻밖의 반응에 파라이스가 노아 왕자를 힐끔거렸다. 뭔가 일이 시작부터 조금 삐걱거린다는 듯이.
“황제 폐하의 업무가 과중하니, 저녁 만찬 때 인사를 드릴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푹 쉬시어 여독을 푸십시오. 필요한 게 있다면 무엇이든 말씀하시고요.”
이안이 노아 왕자와 메이 사절을 안내했고, 다른 마법사가 파라이스를 담당했다. 건물이 갈라져서 조금 당황한 듯 보였지만, 방도가 없다.
“여긴-”
“예전에 노아 왕자님께서 묵으셨던 그 건물입니다. 이전 기억이 새록새록 나실 것입니다.”
진짜 별별 일이 많았지. 노아는 피식 웃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한데 이안은 물러날 기색 없이 그 자리에 서서 노아 왕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안 경?”
맞네. 이거, 아까 이안 경이 생글생글 웃으며 맞이할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 했어. 괜히 모골이 송연한 게 아니었다니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서운데.”
“어찌 그러십니까. 제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앉으시게. 도착하자마자 이러는 것으로 보아 급한 일인 듯싶군.”
“급하다기보다, 말을 맞추는 게 중요한 사안이라서요.”
노아 왕자의 권유에, 이안이 웃으며 테이블 앞에 앉았다.
노아의 얼굴을 본 이안은 놀랐다. 루스웨나에서는 너무 급박하여 제대로 얼굴을 보지 못했는데, 이자도 참 변한 것이 없지 않나? 짙은 구릿빛 피부에 주황빛의 머리칼이 여전했다. 분위기야 좀 성숙해지긴 했다만.
이안이 본론을 꺼냈다.
“현재 황실의 적통은 황제 폐하 한 분이십니다.”
“그렇지.”
“전쟁도 성공적으로 끝났고, 황실의 안정이 곧 바리엘의 안정이 되는 시기가 올 것입니다. 이를 견고히 하기 위해서는 황제 폐하께서 서둘러 반려를 맞이하시는 게 중요합니다.”
“그걸 왜…….”
노아가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기겁하며 벌떡 일어났다.
“내 동생들을?!”
“왕자님. 공주님은 너무 어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내 말이!”
이제 겨우 열세 살 되었나? 10년 전에 베릭의 등에 올라타 말놀이를 하였으니까 말이다. 바리엘의 황후 자리는 더없는 기회였지만, 노아 왕자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쪼끄만 아이를 어찌 보내?!
“제 뜻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폐하께서는 마음에 두신 분이 따로 있습니다.”
“그, 그래?”
“한데, 조금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요.”
헛물켠 것이 면구하여 노아가 헛기침을 해 댔다. 상황 여의치 않은데, 뭐? 그걸 왜 자신에게 말한단 말인가?
이안은 싱긋 웃으며 덧붙였다.
“안 물어보시네요. 무슨 상황인지.”
“알면 귀찮아질 것 같아서.”
“솔직하시어 좋습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니, 괜찮다니까?”
“이 부분은 클리포포드 왕실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우리 왕실? 왜?”
이안은 기억이 안 나냐는 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제게 빚이 하나 있으실 터인데요. 기억 안 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