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17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17화(817/863)
제817화. 이참에
“…회의가 좀 늦어지나 봅니다.”
연회장에 모인 귀족들은 샴페인만 홀짝이며 연신 황궁 분위기를 살폈다. 쉽게 나가지 못하리라 예상하긴 했는데, 이런 식으로 아무런 안내도 못 받을 줄은 몰랐다. 그만큼 회의 상황이 어지럽고 복잡하게 돌아간다는 뜻이겠지.
귀족들은 다비온 백작, 레글리드에게 슬쩍 다가와 물었다. 황궁의 고위 관료를 제일 많이 배출한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백작님. 혹 들으신 것이 있으신지요?”
“저도 여기 계속 있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회의가 길어지는 게 의아합니다. 러더포드 그놈이 죽기 직전에 미쳐서 날뛴 것인지, 아니면 불손한 배후가 있는 것인지는 금방 밝힐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실담물약만 사용한다면요.”
“그 실담물약을 누가 만드는데요?”
마법부의 수장인 이안 장관이 주관하여 내놓는 물건이다. 대상이 대상이니만큼 신뢰할 수가 없다.
레글리드는 샴페인을 흔들며 중얼거렸다.
“특별조사단이 필요한 사안 같은데, 폐하께서 어찌 결정하실지…….”
베로시온의 이름이 걸린 문제였다. 조사단을 편성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지만, 상대는 이안 히엘로. 폐하께서 신임하다 못해 의지하는, 황궁의 주축을 담당하는 자였다. 과연 제대로 조사가 이루어질지는 미지수.
‘게다가 혼란은 기회.’
마법부를 견제하는 세력은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었다. 조사단과 힘을 합쳐 어떤 식으로든 마법부의 위상을 깎아 먹으려 할 텐데, 마법부가 그걸 가만 지켜보겠는가?
쯧! 이럴 줄 알았더라면 적당히 일정을 핑계 삼아 입궁을 거절할 걸 그랬다. 폭풍이 다가오는 게 눈에 보이건만, 어찌할 방도가 없어 막막했다.
콰앙!
그때였다. 연회장 문이 급하게 열리더니 외교부 관료가 땀을 뻘뻘 흘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보다가 레글리드를 발견하고서 성큼성큼 달려왔다.
“백작님, 잠시 시간 좀 내주시겠습니까?”
“무슨 일이지?”
관료는 여기서 말하기 곤란하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레글리드는 샴페인을 내려놓고 곧바로 관료를 따라나섰다. 혹여나 클로이가 따라오나 싶어 뒤를 돌아봤지만, 그녀는 모른 척 다른 쪽을 보며 샴페인을 홀짝이고 있었다.
쿠웅!
문이 닫히자, 클로이는 바로 그들을 쫓아 나갔다. 다른 귀족들은 궁금해서 미칠 노릇이었지만, 여기서 행동을 함부로 할 수는 없었다. 품위도 품위지만, 잘못했다가는 그대로 휘말려 꺾이고 말 터이니.
“이쯤이면 되었네. 왜 그러는가?”
“폐하께서 특별조사단을 꾸려 마법부 조사에 나선다 하십니다. 지금 황궁친위대가 먼저 마법부 건물로 가서 수색을 진행한다고 하는군요. 그쪽 업무는 명령이 있을 때까지 마비 상태입니다.”
“뭐? 정말인가? 무슨 혐의로?”
“황실 기만죄입니다.”
…폐하께서 큰 결정 내리셨군. 레글리드가 조금 놀란 듯 수염을 쓸어내렸다.
“정황상 이안 장관이 정신조작 마법을 사용한 것 같은데, 아무래도 증거를 찾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여 이번 기회에 다들 힘을 합치려 합니다. 지금이 아니면 절대로 마법부를 꺾을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이자가 어째서 자신을 찾아왔는지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레글리드는 다비온가의 수장. 황궁 내 고관들의 가주였다. 함십하는 데 있어 굉장히 큰 지분을 차지했다.
“다비온가의 상소문이 필요합니다. 마법부를 고발하고 규탄하는 상소문이요. 레이븐 장관께서 말씀하시길, 백작님이라면 충분히 하실 수 있다 하셨습니다.”
물론 동기도 충분했다. 신하의 권력은 한계가 정해져 있지 않나. 그중 대부분을 마법부가 차지하고 있으니, 그가 가라앉으면 자연스레 다른 부서의 위상이 높아지고, 덩달아 다비온가의 힘도 강해질 것이다.
‘클로이의 혼사는…….’
이안 장관의 입김 덕분에 상당 부분 진행되었다. 솔직히 아직도 시아오시가 탐탁지 않지만, 반대 이유가 하나씩 걷힌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안 장관에게 문제가 생겨도 시아오시와의 혼인 진행은 별다른 장애물 없이 진행될 터였다. 혹 정신조작 마법이 사실이라면, 가타부타 따질 것 없이 바로 관계를 끊어 내면 될 일이고.
“지금 분위기는 어떤가? 정신조작 마법은 사실인 것 같은가?”
“거의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나는 이해가 안 되는걸. 괜히 긁어 부스럼이잖아. 가만히 있으면 지금처럼 황궁을 휘어잡을 수 있는데.”
마력 손실로 장관직 해임을 걱정해서 일을 만들었나? 그렇다면 정신조작 마법은? 그걸 할 정도면 해임 걱정이 없을 건데?
레글리드는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금세 생각을 바꾸었다. 이건 사소한 일이었으므로. 황궁의 고관들 역시 다들 그리 여길 터다.
중요한 것은, 마법부의 약점을 잡을 기회가 왔다는 것. 그리고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영영 오지 않는다는 것.
“우선은 알겠네. 상소문을 준비하도록 하지. 그런데 우리, 언제 나갈 수 있나?”
“곧 있으면 함구령과 함께 안내가 내려올 것입니다.”
“젠장. 그걸로 막을 수 있겠어? 사안이 사안이건만.”
10년 전, 황궁 한복판을 침입했던 러더포드의 죽음이었다. 지금 성 밖에서 백성들의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 설명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다.
그놈의 입에서 ‘이안 베로시온’이라는 이름이 나왔다는 걸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까? 한두 명도 아니고 여기 모인 귀족들 머릿수만 백이 넘는다. 말이 퍼지면,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 찾아내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타닥타닥!
멀리서 복도를 내달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다급하고 촉박해 보이는. 레글리드는 그쪽을 힐끔거리며 다시 왔던 길로 몸을 돌렸다.
“레이븐 장관에게 알겠다고 전하게.”
“예, 백작님.”
“크흠.”
그러고서 서둘러 연회장 쪽으로 걸음 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뒤를 지켜보는 이가 있었으니. 클로이는 기둥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채 모든 상황을 눈에 담았다.
‘보자, 그러니까 지금 상황이…….’
러더포드는 어차피 죽어 버렸으니 의도 따위 알 필요 없다. 그저 폭탄은 던져졌고, 이것을 누구네 집 안으로 옮기는지가 관건이라는 거지? 마법부를 제외한 이들은 전부 동맹을 맺었고.
‘이해됐어.’
클로이는 눈을 반짝이며 스르륵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놀랍게도 그녀는 백작보다 먼저 연회장에 도착하여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생긋 웃을 수 있었다. 뒤늦게 돌아온 레글리드는 딸아이의 안색을 연신 살폈으나, 이상한 점이라곤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 * *
“황제 폐하의 명입니다. 현 시간부로 마법사들은 모두 밖으로 나와 주십시오. 압수수색 하겠습니다.”
겨우 한숨 돌리고 있던 마법사들은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어서 눈을 크게 떴다. 얼렁뚱땅 처형식은 일단락되었고, 이제 앉아서 다들 아까 ‘러더포드의 그 발언’에 대해서 말을 나눌까 하던 참이다.
그런데 뭐라고? 누가 보내?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다시 한번 알립니다. 황제 폐하의 명입니다. 정식으로 특수조사단이 꾸려지기 전까지 황궁친위대가 임시로 마법부를 통제합니다. 마법사들은 당장 업무를 중단하고 밖으로 나오십시오. 수상한 움직임을 보일 시 처벌될 수 있습니다.”
“아니, 이보십시오!”
“베릭! 뭐라고 말 좀 해 봐라!”
원래라면 황궁친위대 대장직인 베릭이 고지해야 하지만, 바르사베가 자처하여 나섰다. 마법사들과 베릭의 관계가 돈독하다는 건 황궁 내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아니나 다를까, 베릭이 다소 고분고분한 태도로 덧붙였다.
“다들 나와. 러더포드 십새끼 때문에 그런 거니까 금방 끝날 거다. 괜히 버티고 있다가 고생하지 말고.”
“잠깐만요! 이게 뭔지 알고 막 건드립니까?”
“거긴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대장 불러와! 어서!”
마법사들이 허둥지둥 친위대원들을 막아섰지만,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 한 이겨 낼 수 없는 상대였다. 게다가 폐하의 명이라 하지 않나. 이곳은 어쨌거나 황궁이고.
“업무와 관련된 문서는 모조리 압수합니다. 더하여 전날 마탑에 출입했던 마법사 명단을 확인할 것입니다. 해당되는 마법사들은 함께 가 주시고, 동결 마법 책임자도 불러와 주십시오.”
“동결 마법 책임자면 아코렐라 대장인데.”
“이안 님은 어디 계십니까?”
“그 외의 마법사들은 모두 밖으로 나오십시오.”
“이안 님은 어디 계시냐고요! 바르사베 대원!”
“죄송합니다. 압수수색과 관련되지 않은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타닥타닥!
친위대원들이 마법부 곳곳에 들이닥쳤다.
한편 위층, 마력석관리부. 갑자기 벌컥 열린 문에 아코렐라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보안경을 쓴 채로 실험 중이었다.
“미친 새끼가, 똑똑 하라고-”
“아코렐라 대장, 밖으로 나와 주십시오.”
“뭐여. 친위대가 왜? 처형식 끝났어요?”
“황제 폐하의 명으로 마법부를 압수수색 중입니다. 협조하십시오.”
아코렐라는 뭔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단 황제의 명이라고 하니 따르긴 따를 건데-
“잠깐만, 나 10분만. 이거 마무리만 하면 되거든요?”
왜 하필 지금이야? 제일 중요한 때에?
“뭐 하시는 겁니까?”
“여기서 멈추면 또 며칠 동안 마력석 갈아야 한다고. 10분만 주면 진짜 내가 뽀뽀해 준다.”
“업무 기록된 실험입니까?”
“그건 아닌데… 대의에 그런 게 어디 있겠습니까? 안 그래요? 이게 기억을 되찾게 하는 물약이거든. 완성만 되면-”
“…나오십시오.”
“잠깐만! 제발! 시발!”
으아아아! 아코렐라 대장은 질질 끌려가면서도 애절하게 손을 뻗어 댔다. 휘휘 저어 주기만 하면 되는데! 저 불이 꺼지면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한다고!
하지만 친위대원들은 그녀의 두 팔을 단단히 잡고 아래로 끌고 내려갔다.
처억!
마법사들이 모두 밖으로 나오자, 그들은 일렬로 줄을 만들어 넘어오지 못하도록 벽을 쳤다. 한순간에 쫓겨난 마법사들은 황당하다는 듯 제자리에 서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이안 님!”
그때, 누군가의 외침에 마법사들이 동시에 고개를 휙 돌렸다. 저 멀리 이안과 로만드로가 다가오고 있었다. 로만드로는 상황을 보고서 연신 이마를 퍽퍽 쳐 댔다.
하나 이안은, 이상할 정도로 평온해 보였다.
“이안 님! 저것 좀 보십시오!”
“아니, 막! 막! 이렇게 끌어내고 저렇게 잡아당기고…. 흐윽. 흐어어엉!”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러더포드 관련해서 대회의 가신 거였잖아요. 근데 왜 저희에게 이럽니까?”
다들 이안에게 몰려와서는 이르듯 조잘거렸다.
이안은 잠시 진정하라며 손을 들며 일렀다.
“마법부 업무 중지 명령이 떨어졌다. 마탑 출입 마법사는 소환되어 간단한 조사가 있을 예정이니 협조해라. 금방 끝날 것이다. 다들 이참에-”
이참에?
마법사들은 촉촉해진 눈을 깜빡였다. 어쩐지 이안이 미소 짓는 것 같은 기분은 착각이려나?
“휴가다.”
“예?”
“무급이어도 괜찮겠지. 다들 출궁하여 자택에서 쉬도록.”
이안은 마법사들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덧붙였다.
“눈과 귀를 막고 잠시 황궁의 소란에서 벗어나 있어라. 온전히 휴식에만 집중하라는 뜻이다. 알겠는가?”
“이안 님은요?”
“나는 이곳이 쉼터인걸.”
“…십새끼들이 막아 놨지 않습니까.”
마법사들이 작게 잇새로 속닥거렸다. 전쟁터에서 함께 굴렀던 전우애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황제의 명은 명이고, 짜증 나는 건 짜증 나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라. 그대들이 돌아올 때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와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