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18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18화(818/863)
제818화. 조사실
달그락, 달그락.
이미 해는 진 지 오래. 마탑 출입 마법사들은 간단한 조사를 마친 뒤 다 함께 마차를 타고 출궁 중이었다.
아코렐라가 마차 창문에 얼굴을 비비며 훌쩍였다.
“하 씨, 젠장. 진짜 조금 남았는데.”
보다 못한 마법사들은 그만 좀 하라며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다들 마법부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건만, 그녀 혼자 섞다 만 실험을 걱정하고 있었으니.
“대장은 지금 그게 걱정입니까?”
“이안 님도 걱정은 돼. 혼자 남아 계시니까. 아아- 이럴 줄 알았으면 대신 좀 섞어 달라고 부탁할걸.”
“아니, 그게 할 말이에요? 지금 빈손으로 쫓겨나고 있는데!”
“우리 원래 빈손으로 들어왔어.”
정곡을 찌르는 그녀의 중얼거림에 마법사가 멈칫거렸다. 맞았다. 사실 마법부에서 사용하는 비품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황궁에서 마련해 준 것이었다.
아코렐라는 연신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실험실을 그리워하며 덧붙였다.
“그러니까 그런 걱정은 진짜 할 필요 없어. 다른 부서였다면 또 몰라, 우리는 마법부라고. 황궁에서 마법부 책상 빠지면 무슨 일 생기는지 몰라서 그래?”
바리엘 제국이 가이아의 패권을 잡은 것은 전적으로 마법부 덕이었다.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황실은 절대 마법부를 어찌할 수 없다.
누군가 오만이라 핏대를 올려도 이는 부정 못 할 현실이었다. 그저 권력의 추를 옮기느라 푸닥거리를 한다, 정도로 여기면 될 터. 그래서 이안도 이참에 휴가라 생각하고 나가라 한 것이다.
“하긴, 그건 그렇습니다. 당장 큰 고비는 넘겼다 해도 마법부 없이 제국을 통치하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불가능해. 다른 나라에 마법사가 나타나는 것도 극도로 경계하는 마당에, 뭘 바라니.”
“근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정말 괘씸하네요.”
마법사가 큰 소리를 내었다가 마부 쪽 창문을 힐끔거렸다. 혹시 들었을까 싶어서. 그는 마부가 별 반응 없다는 걸 확인하고서 속닥거렸다.
“왜들 마법부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랍니까?”
“정확히는 마법부가 아니라 이안 님을.”
겨우 황궁 소란을 가라앉혔더니, 이번에는 러더포드 놈이 헛소리 몇 마디로 또다시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안 님은 일만 하기도 바빠 죽을 지경인데, 별 잡것들이…….
“이안 님도 좀 이상해요.”
그 소리에 아코렐라는 품에서 궐련을 찾다가 고개를 틀었다. 마법사는 뭔가 뚱한 시선으로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반박할 거리가 넘쳐 나는데 너무 소극적이십니다. 그러니까 저놈들이 이때다 싶어서 달려들고, 그로 인해 또 일이 터지고…. 지금 계속 도돌이표처럼 느껴지지 않아요?”
“이전과 뭔가 좀 달라지시긴 했지.”
“이번에 쓰러지신 것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
“그거랑은 좀 달라.”
아코렐라는 반쯤 열린 창문으로 턱을 대고서 연기를 후- 내뱉었다.
마법사의 말대로 이안의 행동은 종전 직후부터 뭔가 이상했다. 숨겨진 퍼즐 하나를 찾지 못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숨겨진 퍼즐.’
잠긴 기억.
아코렐라는 왠지 모르게 ‘지워진 기억’에 단서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궐련을 물고서 마부석을 쿵쿵 두드렸다.
“이봐!”
“무슨 일이십니까?”
“나 여기서 내리고 싶은데.”
마부는 뒤를 힐끔거리더니 단호하게 거절했다.
“안 됩니다. 마법사분들 모두 출궁해서 저택 안까지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라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아직 성 밖을 나서지도 않았어요.”
“칫.”
에라이, 젠장. 안 통하네. 대충 내려서 마법부로 숨어들어 갈 생각이었건만.
“대장, 가만히 있으세요. 괜히 소란 피웠다가는 이안 님만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맞아요. 마법부가 안전한 걸 떠나서, 황궁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마법부에 친위대원들 쫙 깔려 있습니다.”
“흥. 돌파할 구멍이 있겠지. 베릭 그 똥멍청이 따돌리는 건 일도 아니다.”
“아아. 베릭 새끼 생각하니까 또 열받네.”
“뭐 어쩌겠어. 걔도 대장 직책이 있는데.”
마법사들은 끙끙 앓는 소리만 내며 창문에 머리를 퍽퍽 박아 댔다. 이안 님과 로만드로 님은 대체 언제 나오실까. 모든 게 깜깜했다.
* * *
“기다리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피곤하시지요.”
바르사베는 이안의 맞은편에 앉으며 차를 권했다. 그녀는 특별조사단이 편성될 때까지 임의로 현장을 지휘하고 있었지만, 아마 별다른 일이 없다면 그녀가 조사단을 이끌게 될 터였다.
적어도 이안은 그렇게 생각했다. 황제의 최측근이며, 마력석 관련 사태와 무관하고, 마법에 대해 일반인보다 아는 것이 있으며, 성정이 곧은 자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베릭은 대장이라는 직함 외에 적합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이안은 차를 홀짝였다.
“조금.”
불평하는 것이 아닌 담백한 대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법사들을 먼저 조사하고 보내 달라 부탁한 것이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에 바르사베는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작게 한숨 쉬었다.
“바르사베 대원. 그대도 내가 이번 사건의 주도자라 여기나?”
“조사와 관련된 개인적 의견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이안 장관님께서 말씀해 주시지요. 러더포드에게 사전 보고 없이 마법을 쓰셨습니까?”
“아니. 내가 왜?”
그럴 동기가 무엇 있겠느냐는 되물음에, 바르사베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할 말이 있었지만, 차마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삼켜 버렸다.
바르사베의 낯빛을 살피던 이안이 뒤에서 들리는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이안 베로시온-”
오가다 익숙한 사내였다. 짧은 머리칼 아래 굵직한 흉터가 많은 자다. 제국방위부의 파르한 장교. 그는 바르사베에게 서류를 건네주며 말을 이었다.
“-이라는 신성한 이름을 앞세워, 제국에 혼란을 주기 위함 아닙니까? 황제 폐하의 권위에 도전하고자 한다면 황가의 이름을 가져와 정당성을 갖추는 게 우선이니까요.”
“우스운 억측이군.”
“우습다 하기에는 사안이 중합니다. 이게 무언지 아십니까. 트웰러 장관님이 제국방위부로 보낸 서신입니다.”
사락.
바르사베는 미간을 문지르며 종이를 읽었다. 벌써 여러 번 읽는 것이었음에도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이안은 그것이 무슨 내용인지 바로 알아챘다. 토올룬의 괴소문에, 바누사와 이안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겠지.
“폐하께서도 이를 알고 계십니다.”
“그러시겠지. 자네가 아는 것을 폐하가 모르실 리 없으니.”
계속해서 베로시온의 이름을 탐하는 것. 그를 갈망하는 자가 결국에는 무엇을 원하게 될지는 모두가 쉬이 상상할 수 있었다.
“황실의 핏줄이라는 정당성을 가져오려는 시도 아니었습니까? 그렇다면 모든 게 자연스레 이해됩니다만.”
“이미 몇 차례 제기되었던 사안이다. 폐하와 나에게 동질물약을 사용하면 단번에 밝혀질 것을.”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안 됩니다.”
옆에서 들려온 날 선 반응에, 이안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외교부 장관인 레이번이 앉아 있었다. 그는 초췌하면서도 집요한 눈길로 이안을 살폈다. 이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다는 듯.
“무엇이 안 된단 말입니까, 레이번 장관님.”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알 터인데요.”
동질물약 역시 마법부의 소관이다. 신뢰성이 없는 것은 차치하고, 문제는 따로 있었다.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지 거기엔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것.
‘폐하와 피를 잇지 않았는데, 이안이 베로시온임을 자처한다면?’
둘 중 하나는 황실의 손이 아니라는 뜻이 된다. 10년 전, 황제와 똑 닮았던 마물을 잊었는가? 백성들은 몰라도 중앙의 귀족들은 여전히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이안이 러더포드에게 정신조작 마법을 사용한 게 사실이라면, 그래서 그것이 다른 자들에게도 유효하다면 이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되어 제국 전역으로 번질 것이다.
‘황제를 과거 마물의 잔존으로 몰아가면 답이 없어.’
극한에 치달은 가정임을 안다. 하지만 그만큼 막중한 화로 돌아올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러니 동질물약 따위 사용하지 않고 그저 이안 히엘로를 베로시온에게서 완전히 떼어 내는 것. 그것만이 이 사태를 가장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아무튼, 당신이 베로시온의 이름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를 검증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애초에 필요가 없는 부분이니까요. 그대는 베로시온이 아닙니다.”
촛불이 일렁이는 이안의 눈동자가 유독 말갛다.
“…저도 동의합니다. 그래서 계속 일관된 주장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이 사태와 무관하며 오히려 피해자임을요.”
“모두 잠시 자리를.”
레이번이 고갯짓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바르사베를 비롯한 황궁친위대원과 제국방위부 관계자들이 조사실을 떠나자, 레이번은 이안 가까이 다가와 책상에 걸터앉았다.
“이안 장관.”
그는 피곤하다는 듯 눈두덩이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왜 이리 일을 복잡하게 만드십니까. 아실 만한 분이.”
작금의 사태가 일어난 게 무엇 때문인지 정말 모르는가? 러더포드든 러더포드 할애비든, 사실은 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은 마법부와의 알력 다툼.
‘마법부가 지금과 같지 않았더라면 온 신하들이 나서서 이들의 억울함을 대변하고, 그저 러더포드 혼자 미쳐서 날뛴 것으로 사건을 무마했을 게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되레 기회라 여겨 이를 드러냈지.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이안 장관. 그만하십시오.”
마력석 독점 건에 관해서는 손을 떼고, 마법부에 집중된 권력을 분배하여 ‘이안 베로시온’이라는 헛소문이 퍼져도 그 누구 하나 위기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라는 뜻이었다.
가능하다면 마법부 별채 건설까지 멈추었으면 좋겠지만, 이는 글쎄. 하나쯤은 쥐여 주고서 달랠 필요가 있겠지. 그래, 별채는 신하들이 합심하여 양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들 잘 해 보자고 그런 것 아닙니까.”
누군가는 부를 원했고, 누군가는 마법부의 위세가 버거웠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이, 누군가는 자신을 지키고 싶은 두려움이 컸다. 이 모든 것들이 얽히고 얽혀 사태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되었으니, 원흉인 마법부가 한발 물러나면 모두가 평화로워질 터.
“기울었습니다. 느껴지지 않습니까?”
마법부의 업무가 중단되었다. 그것도 황제의 명으로. 신하들은 합심하여 상소문을 올리고, 모두가 눈을 부라리며 이안을 견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한 조사라는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겠는가?
레이번은 담배를 꺼내 물며 넌지시 던졌다.
“이안 장관이 마탑에서 러더포드와 긴 시간 함께했다는 증언이 셀 수 없습니다. 마법사들은 모르겠다며 시치미를 떼지만, 어디 그 자리에 마법사들만 있었습니까?”
병사들도 있다.
그리고 병사들은 제국방위부 소속이다.
“가까이 접근하지 말라 명하기까지 했죠. 왜 그랬습니까? 남들에게 밝혀져서는 안 될 무언가 때문이라 생각됩니다만.”
“소설을 잘 쓰십니다. 작가 하셔도 되겠어요.”
“이 모두 보고서에 올라갈 내용입니다. 이안 장관이 계속 그리 버티신다면요.”
이안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서 잠깐 생각했다. 자신은 계속해서 아니라고 하는데, 누구도 들어주는 이가 없다.
“레이번 장관.”
그는 상체를 레이번 가까이 기울였다.
“보고서를 쓸 때는 사실만을 적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화를 입습니다.”
“이안 장관이 할 말은 아니지요.”
“제 입지가 이러하니 신뢰가 안 가는 모양입니다. 그럼 어디 해 보십시오.”
이안은 싱긋 웃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미소 지을 여유가 있다니. 레이번이 혀를 내두르려는 찰나, 이어 들려오는 말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러더포드를 조종해서 황실을 모독했다 보고해 보란 말입니다. 그럼 저는 폐하의 앞에서, 사실 레이번 장관이 시킨 일이라 이르겠습니다”
“뭐, 뭐요?”
“말도 안 되지요? 하지만 증명하셔야 할 겁니다. 그쪽도 꾸며 내는 일을 나라고 못 하겠습니까?”
레이번의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이안은 자세를 일으켜 더욱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저를 끌어내리고 싶으면-”
어딘가 서늘하면서도 간지러운 경고였다.
“칼날을 제대로 가십시오. 어설프게 덤볐다가는 다 죽습니다.”
이안은 딱딱하게 굳어 버린 레이번의 눈을 빤히 들여다봤다. 자아, 서둘러 가서 폐하께 일러 보라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