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21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21화(821/863)
제821화. 진의 반격
“폐하.”
바깥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진은 반사적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보고할 것이 있노라 할 때마다 일이 터지지 않았던가.
진은 시계를 확인하고서 펜을 내려놓았다. 시간상으로 마법부에서 진행 중인 동방 마법사 건은 아닌 듯싶다.
“무슨 일인가?”
“송구합니다. 레이번 장관 측이 올린 상소문에 대하여 철회 의견을 전달하는 서명서가 들어왔습니다.”
“무어라?”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진은 황당하다는 듯 되묻고는 아예 직접 손까지 뻗어 서명서를 받았다.
레이번 장관이 상소문을 올린 것이 고작 아까의 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번복하다니. 정신 제대로 박힌 인간들이라면 쉬이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런데도 이리했다면 필시 모종의 연유가 있다는 뜻일 터.
“…돌아 버리겠군.”
진은 내용을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다비온 백작을 제외한 방계 출신 이름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백작의 상소문 내용을 잘 알지 못했다 호소하고 있었으며, 나아가 이안 장관의 무혐의를 주장했다. 하루라도 빠르게 사태가 진정되어 황궁의 안정을 바란다는 개소리까지.
“안정을 바라는 자들이 이런 식으로 행동해?”
상소문을 번복하는 것만큼 상황을 혼잡스럽게 하는 짓이 있던가? 진이 짜증스럽게 종이를 내던지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 보아라. 필시 모종의 거래가-”
모종의 거래가 있었겠지.
누구와?
상소문을 철회하면 제일 이득 보는 사람이.
“…이안 경과 있었을 것이다.”
“예, 폐하.”
까득. 진이 이를 꽉 깨물었다.
이안이 공작을 통해 상소문 철회를 유도한 것은 단순한 사안이 아니었다. 우선 레이번 장관 측과 다비온 백작의 견제를 완벽하게 쳐낸 것이니, 황궁에서 그를 막을 막한 세력이 없다는 걸 뜻했다.
‘죽이지도, 억제하지도 못하면 계속해서 몸집이 불어나는 괴물처럼.’
그만해 달라 외쳐도 이것은 이안의 자의와 상관없이 상황적으로 흘러가는 현상이었다.
진은 자신의 손에 들린 펜이 검처럼 느껴졌다. 베어 내지 않으면 멈출 수 없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끝끝내 마지막에는 더 큰 피를 보게 될 것이다.
‘레이번 장관과 다비온 백작의 힘이 무너지면, 그것은 곧 황제의 힘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
평상시라면 그들의 권력과 황제의 권력은 반비례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진의 명령으로 특별조사단이 마법부를 감사하는 중이지 않나. 조사단이 마법부를 제압하지 못하면, 황제가 마법부를 제압하지 못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똑똑! 똑똑!
“무슨 일인가?”
시종장이 놀라서 뒤를 돌았다. 그러자 레이번 장관이 도착했다는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는 급했는지, 문 앞까지 바로 달려와 황제에게 알현을 요청했다.
“폐하! 레이번 장관입니다! 상소문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들라.”
문이 열리자마자 땀범벅이 되어서 달려오는 레이번 장관과 그 무리. 그들은 테이블 위에 놓인 철회 서명서를 보고서 사색이 되었다. 이미 늦었다는 걸 직감한 듯.
“폐하, 그, 그것이!”
“상소문 올린 지 얼마나 되었다고 철회 서명서가 올라오는가? 이것이 짐을 기만한 것이지! 이안 경을 조사하기 전, 그대들에게 황실기만죄를 묻는 게 마땅하다!”
촤아악!
진이 벼락같은 고함을 내지르며 종이를 내던지자, 장관들이 바로 넙죽 엎드렸다.
“송구합니다, 폐하!”
“저의 불찰입니다!”
“닥쳐라! 듣기 싫다!”
“폐하, 변명이라 하면 변명이겠지만, 이안 장관이 황후 자리를 빌미로 하여 귀족들을 꾀어내니, 이를 어찌할 방도가 없습니다. 폐하께서는 이안 장관이 얼마나 오만하고 간악한 행동을 일삼고 있는지 직시하셔야 합니다!”
다시금 물건을 내던지려던 진이 멈칫거렸다. 이안 경이 ‘황후’ 자리를 빌미로 귀족들과 거래하였다고? 그럴 리가.
‘이안 경은 내 마음을 알고 있을 것인데.’
혼인만큼은 원하는 이와 해도 된다고, 이안은 분명 그리 말했다. 또한 에이린을 대했던 태도로 보았을 때 그는 진심으로 자신의 선택을 존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황후 자리를 이용해 귀족을 결집하다니?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그런 것인가?’
이해는 되지만,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다. 진은 다시금 책상을 손으로 짚고서 잘게 한숨을 내쉬었다.
레이번 측이 정보를 가져왔으니, 사실상 황궁의 모두가 현 사태에 대해 알고 있다 볼 수 있었다. 이안 경이 특별조사단을 물리고, 상대 진영을 완벽하게 쳐냈으며, 황후 자리에 대한 권한까지 공식으로 주장하였노라고.
‘안 돼.’
이제 더는 안 된다.
진은 결국 고개를 들었다.
“지금부터 잘 들어라.”
장관들 역시 천천히 시선을 들어 황제를 올려다봤다. 황제의 낯빛은 여느 때보다 더 굳건해 보였다. 흔들리지 않는 시선. 그렇지만 조금은 조심스러운 음성.
“철회 서명을 낸 자들에게 황실기만죄를 적용하여 처벌할 것이다. 감히 황제에게 올리는 상소문을 가벼이 번복하는 처사를 두고 볼 수는 없다. 물론 그대들에게도 죄를 물을 것이지만, 이것은 나중에 사태가 마무리된 후 따로 진행하리라.”
“예, 폐하.”
“정말로 이름이 사용되는 것을 몰랐다며 억울함을 주장하는 자들에게는 따로 고소장을 접수하라 전하도록. 이에 대한 책임은 레이번 장관 측과 다비온 백작이 질 것이다.”
법적으로 따지게 되면 그게 얼마나 얕은 거짓말이었는지 바로 밝혀질 터였다. 그러니 철회 서명을 한 자들은 별다른 반항 없이 기만죄 혐의로 적합한 처벌을 받게 되리라. 이안 장관의 편으로 돌아선 자들에게, 그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사 범위를 확대하라. 이안 경이 러더포드에게 정신조작 마법을 걸었는지, 혹은 다른 괴소문을 낸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것 다음으로 마법부 내의 예산이 제대로 사용되었는지, 혹은 업무적으로 문제 되는 부분은 없는지를 살펴라.”
제아무리 일 처리가 꼼꼼하고 정직한 이안이라 하더라도 수십 명의 사람이 모여서 굴러가던 마법부다. 파고들면 분명히 먼지 하나쯤은 나오겠지. 진은 그것을 찾아보라고 지시하는 것이었다.
장관들의 눈이 반짝였다. 드디어 황제께서 본격적으로 움직이려 하시는구나!
“나아가-”
진은 숨을 토해 내듯 말을 이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밀려드는 온갖 생각 속에서 단단히 서 있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리는 수밖에 없다.
“황궁에 출입하는 마법사들에게 마력봉인석 착용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할 것이다. 장관들은 대회의를 준비하라. 다만, 원칙에 의하여 업무가 정상적으로 진행 중인 부서만 참석하도록 한다.”
업무가 중단된 마법부 측은 참석을 제외한다는 말이었다. 마법사의 견제 없이 이들을 강력하게 제안할 수 있는 법안을 내기 위해서는 지금이 적기이자 기회였다.
“그리고-”
더 남았나? 장관들이 급히 몸을 일으키려다 말았다. 진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마력석 독점 유통 건은 황궁 자체적으로 시행할 것이다. 마법부가 독점하기 전에 마무리할 것이니, 퀸타나 장관을 불러와라. 그리고 현재 바리엘 내에서 마력석을 주력으로 하여 유통 중인 상인들도 황궁으로 부르고, 카일라 대표 또한 함께하여 자리를 마련한다.”
마력석 공급처인 버고스 대표를 황궁에서 잡는다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게다가 버고스 측도 마법부의 독점을 반기지는 않을 터. 어느 시장이나 자유로운 거래가 바탕이 되어야 버고스는 이득을 얻게 되니까.
“황제의 명령이다. 이를 거부하거나 어지럽히는 자가 있다면 강력하게 처단할 것이니, 그대들은 임무 수행에 있어 나의 이름을 밝혀라. 알겠는가?”
“예, 폐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명 받들겠습니다!”
진은 썩 꺼지라는 듯 몸을 돌렸고, 이어서 장관들은 앞다투어 밖으로 달려갔다. 배신자들을 처단할 시간이다. 상소문에 이름을 올려놓고,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쳐?
“다비온 백작님.”
“예, 맡겨 주십시오.”
다비온 백작은 두고 보라며 이를 아드득 갈아 댔다. 본궁에서 지시를 전달받은 각 부서의 관료들이 바쁘게 내달려 갔다.
드르륵.
한편, 진은 서랍 안쪽에 보관해 두었던 트웰러의 서신을 챙겼다. 한참이나 그 끄트머리를 만지작거리다가, 작은 금색 케이스를 꺼냈다.
언젠가 진상품으로 올라왔던 고급 궐련이었다. 진의 기호와는 맞지 않아 이대로 썩겠거니 싶었던 것인데.
치익.
속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다. 진은 궐련에 불을 붙이고는 한숨과 함께 연기를 뱉어냈다. 이안 경, 제발 여기서 꺾여 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의 길은 정말로 돌이킬 수 없으니까.
“밖에 있는가.”
“예, 폐하.”
“…수상을 불러와라.”
저택에서 근신 중인 수상을 불러오라는 명령. 황궁에서 진을 대신하여 칼날을 휘두를 자가 필요했다. 적어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수상이 제일 적합해 보였다.
* * *
“이, 이, 이안! 이안!”
로만드로가 사색이 되어서는 이안을 불러 댔다.
조사실 소파에 앉아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이안이 고개를 들었다. 방금까지 자고 일어난 사람 같지 않게 눈빛이 또렷했다.
“소란이십니다.”
“아니, 소란 아닐세! 큰일 났어! 황, 황제 폐하께서 상소문 철회를 주장한 자들에게 황실기만죄를 적용하여 기소하겠다는 뜻을 보이셨네.”
황제에게 올리는 서명문이 장난질도 아니고, 사실 이리 번복한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이안 쪽으로 세력이 모일 것이 눈에 훤하니, 미리 싹을 잘라 버리겠다는 조치. 이안의 편을 든 자들은 그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
이안은 작게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결단이 빠른 것 같다. 아니, 레이번 측의 행동이 빨랐다고 해석하는 게 맞으려나? 무엇이 되었든 적절했다.
“그뿐만이 아닐세. 마력석 독점 건을 아예 황궁에서 주관하고자 퀸타나 장관과 카일라 대표가 회담 중이라 하네.”
“시중의 마력석을 사들이는 것은 어찌 되었습니까? 상황이 이리되면서 조금 곤란해지긴 했군요.”
“이드갈은 어느 정도 모아져 가지만… 아니, 아직 말 안 끝났어. 폐하께서 수상도 다시 입궁하라 명하셨다고!”
이안의 인상이 조금씩 굳어 갔다. 대응이 너무 몰아치고 있었다. 하지만 로만드로가 흥분한 이유는 따로 있었으니.
“대회의를 주관하기 위해서! 지금 대회의 안건이 무엇인 줄 아는가? 아니 글쎄, 황궁 내 마법사들의 마력봉인석 착용 의무화라 하지 않아?”
“…예?”
이안이 반응하며 몸을 일으켰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로만드로가 방 안을 서성거리며 연신 불안해했다. 마법부가 박살 난 김에 제약이란 제약은 모조리 걸어 두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면서.
“어쩌지, 이안?! 아무래도 귀족들을 결집한 것이 황제 폐하의 심기를 단단히 거스른 것 같네. 강수를 두시는 것으로 보아 이번 기회에 잡음이란 잡음은 모조리 절멸시키겠다는-”
로만드로가 다급하게 고개를 휙 돌려 이안을 쳐다봤다.
놀랍게도, 이안은 조금 짜증 난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간 한 번도 본 적 없는 반응이었다.
“음.”
그는 이마를 가볍게 문지르더니 침묵했다. 로만드로는 그의 머릿속이 어지럽다는 걸 알아채고서 숨소리를 죽였다.
“이건…….”
이안은 입매를 비릿하게 말아 올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조금 곤란하네요.”
그는 로만드로에게 따라 나오라 지시하며 웃옷을 집어 들었다. 평소와 달리 조금 급해 보이는 몸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