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24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24화(824/863)
제824화. 변화구
“폐하, 마법부 전체를 말입니까?”
수상이 난색을 보이며 덧붙였다.
마법부의 결집은 타 부서에서도 익히 알 정도로 그 유대가 끈끈했다. 특히 이안 히엘로가 장관이 된 이후로는 유별나다 싶을 정도로.
“위험할 것인데요.”
마법부원들을 통째로 직위해제 처분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황제가 더 잘 알 터였다. 전장에서 그들의 힘을 두 눈 똑똑히 보았으니까.
루스웨나와 같이 다른 나라가 어찌하여 패하였는지를 생각하면 답은 더욱 수월하게 나온다. 혹 그랬다가 그들이 안 돌아오기라도 하면?
“폐하, 마법부의 이안 장관을 해임하는 게 옳습니다. 마법부원들까지 포함했다가 자칫 일이 틀어지면 수습이 불가합니다.”
하지만 진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이안 경을 해임하면 마법사들은 모두 그를 따라나설 것이다. 이안 경이 없었던 지난 10년, 마법부의 장관직이 계속 비어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가?”
“기억하다마다요.”
“내 의지만은 아니었다.”
수상은 대꾸할 수 없었다. 당시 그도 느꼈으니까. 이안의 뜻이 없다면 차기 장관은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은 황제의 명으로 새로운 장관을 세운다 한들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짐작하게 했다.
마법부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로 이안의 힘이 필요한데, 그런 이안을 해임한다? 마법부 전체를 밖으로 돌게 하는 것과 같다.
“이안 경을 해임하면, 그 이후로는 어찌할 방도가 없단 말일세. 마법부를 정상화하여 국정에 참여시키기 위해서 이안 경의 주장을 모두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뜻이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는가?”
그때가 되면 마력석 유통 건과 황후 추대 발언 등등 그 무엇이 되어도 협상의 여지가 없다. 그가 없으면 마법부도 없으니까.
사실상 황제 자리를 내놓으라 하여도 섣불리 물리치지 못하리라. 황제가 없는 바리엘과 마법부가 없는 바리엘, 둘 중 신하와 백성들이 무엇을 더 아쉬워할지는 자명한 사실이니까.
“하지만 반대로, 이안 경이 마법부에 소속되어 있는 이상 다른 마법사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밖으로 나가라 하여도 다시 돌아올 자들이지. 이안 경만 있다면.”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수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 장관과 마법사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 지금 황궁에서 압박할 대상은 마법부 전체가 아니라 이안 장관이었다.
“이안 경은 마법부 직위해제가 가져오는 의미를 잘 알고 있을 것이오.”
지난 10년, 이안이 없던 시간, 거의 분해되었던 마법부였다. 출궁하겠노라 한 마법사들은 모두 마력봉인석을 몸에 심었고, 머무는 일대는 황궁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타국으로 이민 갈 수 없는 것은 물론이요, 감시가 닿지 않는 중앙 밖도 쉬이 허락되지 않았다.
‘일상이 아닌 일상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삶.’
게다가 마법사들에게는 가족이 있지 않나. 부모가 있고, 사랑하는 반려가 있으며, 자식도 있다. 루스웨나에서 온 마법사들은 그들끼리 가족을 이루었지만, 이미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곳에서 인연의 말뚝을 단단히 박았다. 모든 걸 포기하고 도망치기에는 쉽지 않을 터다. 이안이 아무리 소중해도.
“그러니, 마법사들을 위해서라도 이안 경은 생각을 다잡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마법부가 아니라 마법사니까.”
이안은 영리한 자이니 바로 알아챌 것이다. 황궁에서 볼모로 잡은 것은 단순 마법사가 아닌, 그들의 소중한 삶이라는 것을.
“폐하, 하나 이를 알게 된 마법사들이 어찌 나올지는 미지수입니다. 위험 부담이 여전히 큰 것은 사실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게요? 마법사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이안 경에게만 전할 내용인데.”
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마법사 전체 직위해제는 이안 경을 겨냥해서만 내놓은 카드다. 그러니 굳이 마법사들에게는 알릴 필요가 없다. 알아서도 안 되고.
“황궁에서 직위해제 카드를 만지고 있다는 것만 알아채도 뜻이 전해질 것이니 마법사들에게는 엄금하시게. 어차피 알려지기 전에 끝날 일이니.”
“끝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수상이 차분하게 질문했다.
“이안 경이 정말 불손한 의도를 지니고 있다면요.”
마법사들의 처분을 빌미로 하여 이안이 전복을 꾀할 수도 있다. 마법사들만 결심한다면 솔직히 지금 황궁의 전력으로는 막아 낼 수 없음이다.
진은 잠깐 침묵하더니 수상을 돌아봤다.
“그럴 리는 없다.”
다른 건 몰라도 이안 경은 황궁 자체를 무너트릴 사람이 아니다. 그간 그가 보여 주었고, 아직 진의 마음에 남아 있는 딱 하나의 신뢰가 그리 장담했다.
“이안 경은 절대로 황궁을 무너트릴 사람이 아니다.”
“…지나친 비약이십니다.”
수상은 확신했다. 그럴 자가 아니라면, 작금의 상황은 대체 다 무어란 말인가. 사람의 마음은 알 길이 없는 터라 단언은 금물이다. 오랜 삶의 경험이 그리 말해 주었다. 특히나 이처럼 중요한 판단을 앞두고 있을 때는 더더욱.
“아무튼, 이안 경은 책임감이 있는 자다. 마법사들을 외면하면서까지 일을 그르치지는 않을 터. 여기서 그만 끝내는 것으로 하지.”
진이 한숨과 함께 궐련을 꺼내 들자 수상이 살짝 놀란 눈치를 보였다. 군주의 속이 얼마나 답답한지 어렴풋이 가늠되었으므로.
“수상께서 이안 경에게 직접 전달하시오.”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한데, 폐하.”
“또 덧붙일 말이 있는가?”
“혹시 모르니 만일의 사태는 대비하심이 좋겠습니다.”
이안 장관이 변심하여 옳지 않은 결심을 했을 시, 황궁에서 대비할 방책 말이다.
진은 잠깐 허공을 응시하더니, 서류 더미 사이에서 보고서 뭉치를 꺼냈다.
투욱.
“동방의 마법사에게 실담물약을 사용해 얻은 증언이오.”
수상은 조심스레 그것을 읽었다. 은랑과 호흔, 두 사람을 분리된 공간에서 심문한 결과지였다. 실담물약에 문제가 없다면, 그리고 마력이 봉인된 마법사들에게 자정작용 하는 능력이 없다면 믿을 만한 내용일 터였다.
“일단 러더포드의 시체에서 특이한 마력 흔적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지. 지금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밑부분일세.”
바로, 은랑과 호흔이 이안 장관을 처음 만났을 때의 상황 증언이었다. 진은 미간을 꾹꾹 누르며 중얼거렸다.
“놈들이 하는 말은 초지일관일세. 어떠한 힘의 대립이 있었던 게 아니라, 이안 경이 불길을 일으키자마자 자리를 떠났다는 내용이지.”
당시에는 이안이 사경을 헤매고 있는 터라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저 놈들이 잘못을 덜기 위해 거짓을 이르는 것이라 여겼을 뿐. 마법부 자체적으로도 이안의 몸 상태가 외부로 누설되면 잡음이 생길 것을 걱정하여 은폐하기도 했고.
“그런데 이안 경이 정신을 차린 이후로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어. 그리고 무엇보다-”
진이 뜸을 들였다. 마법부 내의 보고서를 탈탈 털어 본 결과,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이 드러났으니.
“이안 경의 힘이 예전 같지 않음일세.”
전쟁의 여파 탓이리라.
마력을 수치화할 수는 없어도 상황적으로는 그게 분명해 보였다. 그 이후로 마법부의 업무 내에서 이안이 직접 참여하여 마력을 사용한 경우도 없었고, 아코렐라의 마력증폭제 복용량 증가 등. 이안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시사하는 보고가 줄줄이 발견되었다.
“이런.”
수상이 인상을 찡그렸다.
복잡한 사안이었다. 이안 장관이 흑심을 품고 문제를 일으킬 경우 능히 제압할 수 있음이 다행이면서도, 마법부 전체의 전력 약화는 걱정되었고, 한편으로는 인간적으로 참 마음 쓰이는 일이 아닌가.
“마법사의 마력은 회복이 가능하다고 하였지요.”
“나도 그리 알고 있다.”
“마력을 사용하는 것 외 일상생활은 문제없이 가능했으니 따로 걱정할 건 없을 것이고요.”
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이 부족한 것 외 이안의 건강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으니까.
수상은 다행이라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되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지금이 적기인 것은 부정할 수 없게 되었군요.”
이안 장관의 힘이 돌아오기 전, 갈등의 끝을 보는 게 맞겠다. 마법부에 대한 견제 수단을 단단히 마련하여 황궁의 권세를 굳히기에 완벽한 기회.
“알겠습니다, 폐하. 제가 이안 경에게 해당 내용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수상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황제를 돌아봤다.
“멜라니아 영애 말입니다.”
“하이만의?”
“지금 바리엘 중앙에 있는 것 같더군요.”
호흔과 은랑이 만났던 정보상, 마르코가 수상의 집까지 찾아와 건넨 소식이었다. 반역 가문의 핏줄이 중앙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수상은 황제의 낯빛을 살피며 나지막한 음성으로 전했다.
“찾아볼까요?”
반역 가문의 여식을 살려 보냈을 때는 당시 진 역시 동의하였던 일이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것이 대외적으로 알려지면 황궁의 위상에 의구심이 제기될 터였다. 하이만의 죄목은 다름 아닌 ‘반역죄’였으니까. 반역자의 말로에 삶의 여지가 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않나.
“…나중에.”
하지만 진은 이것을 알고 있음에도 고개를 저었다. 딱히 사용하고 싶지 않은 무기였다. 설령 사용한다 하더라도 지금은 아니다.
“정보상에게 들었다고.”
“예. 하지만 새어 나갈 걱정은 하실 것 없습니다.”
수상의 저택에 제 발로 찾아온 마르코는 이미 죽었으니까.
황제는 나가 보라는 듯이 몸을 돌렸고, 수상은 허리를 깊게 숙이며 예를 보였다. 여느 때와 같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 * *
타닥타닥!
중앙의 고급 숙소인 리나 호텔.
황궁의 깃발을 꽂은 마차가 그 앞에 서자, 지배인이 직접 마중 나왔다. 부유한 상인들은 물론 타지의 귀족, 혹은 왕족들이 주로 거처로 삼는 곳인지라 황궁의 방문이 당황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현재 정세가 어지럽다는 것과 그 중심인 이안 히엘로 장관이 호텔에서 묵고 있다는 게 문제지.
“수상님이 직접 오셨군요.”
“이안 히엘로 장관을 만나러 왔다.”
“연락을 올리겠습니다. 잠시.”
지배인은 마차 뒤를 따라온 황궁친위대원들을 힐끔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 틈에 호텔 직원들이 수상을 로비로 안내했다.
철컥.
황궁친위대원들이 걸을 때마다 검집이 달그락거렸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완전무장 한 상태. 수상은 긴장한 채로 이안을 기다렸고, 이내 계단으로 내려오는 자를 발견했다.
“이안 장관. 여기일세.”
이안은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그는 고개를 까딱거려 인사하더니, 이내 친위대원들을 살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 이는 이안만이 아니라 로비를 오가는 일반 직원들도 눈치채는 대목이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수상께서 직접 오시고.”
조사할 내용이 있으면 사람을 보내라 했는데, 수상이 직접 오다니. 이안은 소파에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이드갈 폐기 사안이 황궁으로 들어간 것일까?
“중대한 일이라서 말이지.”
“폐하의 말씀입니까?”
“정확히는 황궁의 의지일세.”
수상은 어찌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이 눈썹을 까딱거렸다. 잠깐의 침묵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이안 장관. 이런 식으로 황궁에 날을 세우는 것은 서로에게 좋지 않네. 다시 황궁으로 들어와 의견을 나누고 바리엘의 안정을 도모하지.”
“제 의견은 이미 전달했습니다. 황궁에서 결정한 그 어떠한 사안에 대해서 동의할 수 없음이라고요.”
“…그리하다가는 파면될 것일세.”
이안은 직원이 내어준 찻잔을 들다가 멈칫거렸다. 드디어, 결단을 내리셨나? 자신의 해임 건에 관하여? 예상도 했고 각오도 했다만, 막상 실제로 마주하려니…….
“자네가 아닌 마법부 전체가 말일세.”
이안이 멈칫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수상을 쳐다봤다. 담담한 듯 보이지만 그만큼 적막한 시선이다.
“…마법부 전체?”
“이안 장관. 최악의 경우 자네를 제외한 모든 마법사가 직위해제 처분될 것일세. 그대가 계속해서 마법부의 권리를 찾으려 한다면 말이지.”
마법사‘들’의 직위해제.
이안의 숨이 일순 멈췄다. 그는 한참 후에나 탄성을 짧게 내질렀다. 저 문장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챈 뒤였다.
“하.”
어이없으면서도 당황스럽고 멍했다. 솔직히 말하면 허를 찔린 것 같았다.
이안은 찻잔을 떨구듯 내려놓았다.
‘이거-’
“진심입니까?”
달그락, 잔에서 찻물이 넘쳐흘렀다. 그것을 보던 수상은 이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의 심중을 읽으려는 듯이.
‘한 방 먹었습니다, 폐하.’
이내 수상은 작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런 이안의 속내를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지금부터는 모두 이안에게 달렸다는 사실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