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26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26화(826/863)
제826화. 적셔
“잠깐만!”
메일리데일리 사옥. 건물 안에는 신문을 찍어 내는 인쇄 소리만이 울렸다.
직원들은 담배를 문 채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호텔 심부름꾼을 쳐다봤다. 개중 하나가 한참이나 말을 고르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술 처먹었습니까?”
“아니요.”
무례하다 여겨질 법도 하건만, 그 자리의 누구도 개의치 않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도 충격적인 제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안 히엘로 장관이 10년 전 하이만 가문의 막내딸을 빼돌려서 도망치게 했다고요? 러더포드를 추격하기 위해서?”
“그렇다니까요.”
“그런데 그 제보자가 이안 히엘로 본인?”
“맞습니다.”
“돌겠네. 혹시 술이 아니라 약 드셨습니까?”
“아니라니까요. 정 그러면 호텔로 모시겠습니다. 직접 가서 다시 여쭤보면 되겠네요.”
심부름꾼이 단호하게 부정하자 메일리데일리 직원들은 단체로 신음을 터트려 댔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충격적인 폭로였다.
그들은 담배를 하나씩 물고 모여서는 회의를 시작했다. 심부름꾼이 멀뚱멀뚱 서 있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이거 함부로 냈다가는 역풍 맞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근데 제보자가 이안 히엘로 본인이라잖아요. 저의가 딱 보이지 않습니까? 메일리데일리에서 안 내면 다른 쪽으로 돌릴 게 분명합니다. 지금 이안 히엘로는 이걸 바리엘 전역에 퍼트리고 싶어 하는 거라고요.”
“맞습니다. 게다가 서신도 아니고 사람을 보내서 전달했으니…. 이거, 정보가 새어 나가는 건 신경 안 쓰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안 내면 분명히 다른 곳에서 냅니다.”
“동의합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반역죄입니다. 이리 제보를 받고도 내지 않으면 이안 히엘로를 두둔했다고 우리가 오해받을 수 있어요.”
“근데 물증이 없잖아. 아무리 본인 제보라 해도 당사자가 온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말만으로 기사를 쓰는 건 위험합니다.”
“그렇다고 이안 장관한테 직접 와 보라고 할 순 없잖아? 우리가 갈 수도 없고, 참.”
단독 보도라는 게 다 뭔가? 시간 싸움이다. 이래저래 망설이는 동안 다른 곳이 먼저 터뜨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당사자가 제보한 마당에 찾아가서 진위를 확인한다? 그것도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에게? 웃기는 일이다.
“아, 저기-”
가만히 듣고 있던 심부름꾼이 슬쩍 손을 들어 덧붙였다.
“마법부에 가면 증거가 있을 거라 하던데요.”
“마법부? 어떤 증거요?”
“거기까지는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이리되면 보도할 방법은 생겼다.
하지만-
“…….”
더 큰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다. 뻐끔뻐끔. 메일리데일리 직원들은 담배만 빽빽 피워 대며 서로 눈치를 살폈다.
“누가 갈래?”
“…….”
요즘 황궁 정세가 시끄럽다는 건 거리의 꼬마들도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 한복판에 증거가 있다니.
대체 황궁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이게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 마법부 장관이 직접 제보한 것으로 봐서는 그쪽에 유리한 증거라는 거거든요.”
“난 진짜 감도 안 잡힌다. 대체 상황이 어떻길래 하이만 측이랑 스스로 엮이면서까지 이러는 건지.”
“지금 마법부에 마법사들 없잖아요.”
마법부에 유리하다는 것은 황궁에 불리하다는 뜻. 그것을 취재하기 위해 마법부 내의 증거를 확인하는 걸, 황궁에서 허락할까? 재수 없으면 입궁했다가 일 마무리될 때까지 못 나올 수도 있다. 아니, 그럼 다행이지. 소리 소문 없이 슥삭 될 수도.
“…그래서, 누가 갈래?”
“사장님이 가세요.”
“뭐? 내가?”
“황궁이 어디 뒷집 창고도 아니고. 사장님 정도는 되어야 출입 허가가 떨어지죠.”
“아나, 이것들이.”
똑똑.
그때였다. 누군가 메일리데일리 문을 두드리는 것 아닌가. 괜히 놀란 직원들이 흠칫거렸고, 심부름꾼 역시 불안에 떨며 슬그머니 책상 뒤로 숨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누구십니까?”
“이안 히엘로, 마법부 장관일세.”
벌컥!
직원이 놀라서 문을 열어젖혔다.
진짜였다. 금빛 머리칼에 녹안. 10년 전 그를 기억하는 메일리데일리 직원들은 놀라서 입을 살짝 벌렸다.
이안은 그런 그들을 지나치며 안으로 들어섰고, 인쇄기가 멈춰 있는 것을 보고는 눈썹을 까딱거렸다.
“아니, 여,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안 그래도 방금까지 그쪽 얘기 중이었습니다만.
“일이 좀 꼬여서. 부탁할 게 생겼거든.”
차기 장관인 아코렐라가 아직 황궁 내에 있다는 걸 알았으니 그녀에게 전언해 줄 자가 필요했다. 메일리데일리 정도면 남들의 시선을 피하여 움직이기에 적당한 자들이었으니까.
“부탁이라니요?”
“그 전에, 제보가 사실인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하이만가의 여식을 빼돌리셨다는 것 말입니다.”
“아니, 대체 왜 그러셨습니까? 그리고 지금 와서 이걸 밝히는 의도는 무엇이고요?”
쉬이. 이안은 잠시 조용히 해 달라는 뜻으로 손을 들어 직원들을 진정시켰다. 그에 직원들은 습관적으로 펜과 종이를 챙겨 들었다. 이안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한 음절도 흘리지 않겠다는 듯.
“사실일세.”
“하아, 세상에.”
“그것만이 아니지. 나는 황궁의 이권 다툼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황제가 아끼시는 성기사의 신변에도 손을 댔다. 여러모로 불충한 행동들을 일삼았으니, 황궁 입장에서는 나를 장관직에서 제명하는 게 옳을 터.”
황제가 아끼는 성기사? 에이린이라는 여인을 말하는 건가? 저게 사실이라면 이안 히엘로는 정말 큰 사고를 친 것이다.
“게다가 러더포드는 죽음의 순간에서 나를 이안 베로시온이라 불렀다. 그자가 왜 그랬는지는 영영 알 수 없게 됐지만, 황궁에서는 이것을 심히 불경한 사태라 생각하고 있다.”
급하게 놀리던 직원들의 펜이 멈추고 말았다. 전쟁터부터 계속 따라다니던 이안 히엘로에 대한 괴소문이 다시 점화하고 말았으니. 이쯤 되면 진짜 뭔가 있는 것 아닌가?
메일리데일리 사장이 잠시 멈추라며 고개를 저었다.
“하나 더 궁금합니다. 대체 이것을 왜 저희에게 제보하신 겁니까? 차라리 황궁에서 했으면 이해라도 하지요. 스스로를 구렁텅이에 빠트리려는 저의가 뭔지 밝혀 주십시오. 혹여나 괜히 기사를 냈다가 정세에 휘말려-”
“메일리데일리는 신문사가 아닌가?”
이안이 나지막이 그의 말을 잘라 냈다.
“그저 진실을 전하는 신문사. 내가 전한 내용에는 거짓이 없으니 그대들이 이를 기사화하는 것 또한 문제가 없다. 이것이 가져올 파장을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 이득을 계산하려 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언론인인가?”
메일리데일리의 의무를 다시금 상기하라는 말이었다. 정세를 가늠하고 처신하는 건 정치인들의 일이지, 그대들의 일이 아니라고.
“그-”
“나는 황궁에서 물러나고 싶은데, 폐하께서 놓아주질 않으시니 이렇게라도 하는 것일세. 차기 장관은 마법부의 아코렐라 대장. 지금 마법부 건물 어딘가에 있는 것 같으니, 그녀를 만나서 내 서신을 전해 주게.”
이안은 곱게 접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사장은 슬쩍 눈치를 본 다음 그걸 가져왔고, 이내 바로 품에 넣었다. 내용이 궁금했지만 이안 앞에서 대놓고 볼 수는 없었다.
“장관직에서 물러나는 것 정도로 끝날 사안이 아니지 않습니까?”
“내 걱정까지 부탁한 적은 없네만.”
“…기사를 안 내면 다른 신문사를 찾아가시겠지요.”
“잘 아는군. 10년 전 그때처럼.”
비비안나가 직접 찾아와 신문을 찍지 않으면 다른 곳을 찾아가겠노라 엄포를 놓았던 날.
메일리데일리 사장은 그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했다. 그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기점이었으니까. 그때 그가 비비안나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지금 제국 제일의 신문사라는 명예를 얻지 못했을 터였다.
그리고 지금, 다시 그 기회가 왔다.
“마법부에 증거가 있다고 하던데.”
“동방 마법사와 관련된 보고서에 내가 멜라니아와 함께 있었다는 내용이 쓰여 있다. 황궁이 증거를 내어줄지는 모르겠군. 찾기 어렵다면, 그 서신을 아코렐라에게 전달하고 도움을 청하도록.”
“읽어도 됩니까?”
“물론. 마음대로.”
이안은 이제 볼일 다 보았다는 듯 손바닥을 가볍게 쳤다. 짜악! 짧지만 단호한 소리에 직원들이 정신을 바짝 차렸다.
“자아, 다들 일하지?”
이안의 한마디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어서 신문을 찍어 내라. 증거는 후속 기사에 담으면 된다. 뭐든지 정보전은 시간과의 싸움이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사장 역시 직원들에게 눈짓으로 일을 지시하고서 웃옷을 집어 들었다.
“사장님이 가시게요?”
“언제는 내가 가라며?”
“예, 뭐. 그러긴 했는데 막상 진짜 가신다고 하니…….”
“빈말 고마워.”
“예에. 가서 이것저것 잘 물어 오십쇼.”
사장은 혀를 쯧, 차며 웃었다. 그러고는 나가려는 이안을 불러 세운 다음 손을 내밀었다.
“제국의 위대한 마법사를 또 언제 뵙겠습니까.”
기사가 나면 그의 앞날은 어찌 될지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다. 이안이 지금껏 세운 공적이 있으니 처형만큼은 피할 수 있겠지만, 파면은 물론이요, 여차했다가는 일평생 대외적으로 모습을 보일 수 없을지도.
이안은 그런 그의 손을 가볍게 맞잡았다.
“고마운 일이 많았습니다, 장관님. 내막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저는 이안 장관님을 지지합니다.”
“위험한 발언을 하는군.”
“뭐 어떻습니까. 사실인 걸요.”
제국의 수호자, 천재 마법사, 변경의 서자에서 장관직에까지 오른 운명의 주인공. 그 어떤 꾸밈말도 이안을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다.
사장은 진심을 담아 맞잡은 손을 흔들었고, 이안도 살포시 웃었다.
“메일리데일리의 명성이 계속되길 바라네. 제국을 넘어 시대를 아우르기를.”
“노력하겠습니다.”
자신을 도륙 낼 칼자루를 직접 쥐여 주고서 아무렇지 않게 떠나는 아이의 뒷모습은 현실성이 영 없었다. 사장은 이안이 사라질 때까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결국 마차에 올라탔다.
“황궁으로.”
그러고는 이안 장관이 차기 장관에게 건네주라 일렀던 서신을 펼쳤다.
그렇게 정갈한 글씨를 묵묵히 읽어 내려 가던 그는, 일순 크게 놀라며 숨을 들이켰다.
* * *
“아, 아, 아코렐라 대장?”
“대장이 왜 여기 있습니까?”
관료들은 쿵쿵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서 아코렐라를 올려다봤다. 지금 상황이 이게 맞나? 누가 누구보고 동작 그만이라고 하는 거지?
아코렐라는 팔짱을 낀 채 턱을 치켜들었다. 헛소리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지금 한 말이 뭔지 설명해.”
“저희가 무슨, 무슨 말을 했는데요?”
“이안 님 해임 건-!”
콱 씨, 이것들이! 아코렐라가 한 대 칠 것처럼 주먹을 들어 올리자, 관료들이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리며 대답했다.
“소, 소문만 들었지, 저희도 잘 모릅니다!”
“대회의에서 워낙 많은 말이 오가서 말입니다!”
아코렐라는 관료들을 통해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챘다.
레이번 장관 측이 상소문을 올리자, 이안이 황후 추천 건을 빌미로 귀족을 결집. 이에 황제는 마력봉인석 의무 착용이라는 수를 내밀었고, 이안은 보란 듯이 출궁과 에이린 신변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흔들었다는 걸.
그리고 나아가, 마법부의 해임 건까지.
“마법부 전체를?”
아코렐라가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내 그것은 진이 이안을 붙잡기 위함이라는 걸 바로 알아챘다.
좀 재수 없는 방법이긴 하지만, 이안이 장관직에서 물러나는 건 그녀도 원치 않는 바. 아니, 그래도 그렇지. 폐하가 너무하셨네!
“시벌,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구르고 왔는데.”
고오오오. 그녀의 주위로 보이지 않는 기운이 휘몰아치는 것 같았다.
다만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이면 이안에게 도움이 되면서 마법부를 지킬 수 있을지였다. 돌아가는 꼴을 보니 마법부면 마법부, 이안이면 이안, 둘 중 하나만 선택하는 수밖에 없겠는데…….
스윽.
아코렐라가 골똘히 생각하는 동안, 관료들은 스리슬쩍 뒷걸음질 치며 도주를 시도했다. 밑층으로만 가도 황궁친위대원들이 있다. 여기에 대장이 있다는 걸 알리기만 하면-
휘이익!
그때, 귓불을 스쳐 지나가 벽에 꽂히는 주사기. 관료들이 그대로 돌처럼 굳어 버렸다.
“어딜 가?”
“…대, 대장?”
“살려 주십시오…….”
아코렐라는 손가락에 끼운 주사기를 까딱거렸다. 헛짓거리하지 말고 이쪽으로 오라며.
“너희 이제 못 나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일단 이쪽으로.”
상황을 더 자세히 파악할 때까지 잡아 두는 게 좋겠다.
그리고 겸사겸사…….
“근데 너희 요즘 깜빡깜빡 하거나 뭐 그런 증상 없니? 기억이 도려졌다거나, 아니면 뭔가를 잊은 것 같다거나.”
“예? 저, 저희 아직 젊은데요.”
“누구는 늙었냐?!”
“히익!”
아코렐라가 멱살을 잡아 흔들며 으르렁거리자 관료들은 눈물을 찔끔 흘려 댔다. 소문이 맞았다. 마법부에는 미친 자가 산다.
아코렐라는 됐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그들의 멱을 질질 잡아끌었다.
“차 한잔하면서 좀 더 상세히 얘기해 보자. 황궁 돌아가는 꼬라지가 영 거지 같은 게, 대충 해서는 정보 습득이 영 안 돼.”
“차…….”
관료들은 책상 위에 놓인 의문의 액체를 발견하고는 말끝을 흐렸다. 오색찬란한 무언가인데 아무리 봐도 먹는 게 아닌 것 같다.
아코렐라는 싱긋 웃으며 머그잔에 액체를 콸콸 따르고는 쿠웅,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자, 적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