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27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27화(827/863)
제827화. 멜라니아의 기회
“호외요, 호외! 메일리데일리에서 특보를 냈습니다!”
모자를 눌러쓴 소년 소녀들이 신문지를 옆구리에 끼고서 힘차게 내달렸다.
안 그래도 요즘 황궁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느끼던 차에 호외라? 사람들은 기꺼이 동전을 건넸다.
“무슨 일이라는데?”
“보자…. 이안 히엘로 마법부 장관이 10년 전 반역 가문 하이만의 여식을 살려서 도망치게 했다?”
“뭐? 지금 뭐라고?”
“이봐! 나도 한 부 줘 봐.”
“호외요! 메일리데일리 단독 특보입니다! 안 보면 손해! 황궁과 마법부에서 아주 큰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촤아아악!
말 그대로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갔다.
길 가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었고, 담배 태우던 사람들은 잿더미가 웃옷을 태우는 줄도 모른 채 신문을 정독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 까치발 들어 목을 길게 뺐고, 노인들은 안경을 가져와 눈매를 가늘게 떴다.
글자 하나하나가 가져오는 파급력이 엄청났다. 그러니까 지금 이게…….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가 반역을 저질렀다는 건가? 하이만의 여식이라면 분명 멜라니아겠지?”
“대역죄인을 도망치게 하다니! 아무리 러더포드를 추격하기 위함이었어도,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그래도 덕분에 지하신을 처단하고 가이아의 평화를 이루지 않았나. 참작할 여지가 있을 것 같은데.”
“미쳤나? 반역죄라고! 당시 하이만은 황궁 반란에 가담하여 군대까지 일으킨 가문일세.”
“아니,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람? 여기 이거, 황후에 대한 추천장은 또 뭔 소리고?”
“왜, 황제 폐하께서 마음에 두신 성기사가 있다며. 저기- 중앙 뒤쪽 골목 주점에서 일하는.”
“아아, 맞아. 그집 꿀맥주가 참 맛있어.”
“얼마 전부터 행방불명이라 하더라고. 주점 주인장이 울면서 찾아다니는데 글쎄 마음 아파 죽겠더라니까. 너무 갑자기 사라져서 혹시 황궁과 연관 있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
“이안 히엘로가 납치했다?”
“여기 적혀 있네. 신변에 관여했노라 시인했다고.”
“문제구먼.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사람들이 흥분해서 떠들어 대는 소리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옳고 그르다는 차치하고, 상황 자체가 주는 충격이 컸다.
“…….”
술렁이는 길가 한쪽. 로브를 뒤집어쓴 여인이 지나가던 신문 배달부를 붙잡고서 동전을 건넸다.
“나도 신문 좀 주게나.”
“여기 있습니다, 부인.”
멜라니아는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들어가 신문을 자세히 살폈다. 첫 줄부터 막막했다.
동방의 마법사를 안내한 대가로 재기를 노려 보려 했건만 이는 사실상 실패. 동방의 대마법사를 만나지 않는 이상 그쪽으로는 살길이 없다.
더하여 황궁의 정세가 심상치 않아져 로만드로의 저택에서 나와 이곳저곳을 떠돌던 차였는데, 이런 기사까지 나다니…. 조막만 한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젠장.”
이런 식으로 자신의 존재가 대외적으로 알려지면 곤란했다. 정세에 휘말려서는 자신이 원하는 기회를 붙들 수 없으니까.
멜라니아는 침착하게 호흡하고는 글자를 다시금 꼼꼼하게 읽어 내렸다.
“제발, 제발-”
있을 것이다. 분명히.
위로 나아갈 수 있는 돌파구가.
‘잠깐.’
기사 끄트머리에 적힌 한 문장. 이안 히엘로가 모든 것을 시인했다는 내용이 눈에 확 들어왔다.
멜라니아는 뭔가 깨달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멈칫했다.
‘…이안 히엘로가 시인해? 뭔가 이상하잖아. 아무리 봐도 이건 그에게 불리한 내용인데. 잡아떼도 모자랄 판에.’
그녀는 곧장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드레스 자락 끄트머리가 흙탕물에 젖었지만 이깟 거적때기나 다름없는 것, 신경 쓰지 않았다.
한참을 내달려 도착한 곳은 로만드로의 저택. 현관문을 힘차게 두드리자, 비비안나가 놀란 낯으로 나왔다.
“멜라니아?”
“하, 하아, 로만드로 님 계십니까?”
“멜라니아, 미안하지만 여기 오면 안 됩니다. 지금 이안 님께 문제가 생겨서요.”
비비안나가 주위를 살피며 작게 속삭였다. 비비안나도 신문을 본 것이 분명했다.
멜라니아로 인해 이안이 반역죄에 가담한 것으로 기사가 났는데, 그의 보좌관 저택 앞에 그것도 벌건 대낮에 이리 떡하니 서 있다니. 혹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쩐단 말인가?
하지만 멜라니아는 괜찮다며 손을 들어 보였다.
“제게 답이 있습니다. 로만드로 님을 불러 주세요.”
“이보세요, 멜라니아-”
“멜라니아 영애?”
소란을 들은 로만드로가 모습을 보였다. 그의 손에는 신문이 들려 있었다. 조금 어두운 안색. 로만드로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집 안으로 들이고는 찰칵, 문을 잠갔다.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하아, 하아, 죄송합니다. 근데 한 가지 확인할 것이 있어서 말이지요. 신문 보셨습니까?”
“보았지요. 미치겠습니다, 정말. 이게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로만드로는 연신 머리털을 쥐어뜯으며 거실을 오갔다. 이안이 묵고 있는 호텔로 갈까 싶었지만, 자신이 부르지 않는 이상 오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던 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멜라니아는 비비안나가 건네준 물을 단숨에 비우고는 덧붙였다.
“이안 경이 직접 제보한 것이 맞습니까?”
“그건 모르겠지만, 시인했다는 것으로 봐서는-”
“지금 황궁과 이안 경은 대립 중이고요.”
“말해 뭐 하겠소. 아주 서로 혈안이지.”
“그럼 이 기사는 이안 경이 황궁을 겨냥한 공격이라 봐도 되겠군요.”
이안 경은 자신의 몰락을 원한다.
즉, 그를 반대로 말하면.
‘황궁은 이안 경의 몰락을 원치 않는다’
“이안 경이 사임하면 황궁이 곤란하다는 걸 이용한 공격입니다.”
로만드로는 장관을 제외한 마법부 전체의 직위해제 사안을 모르는 터라 상세한 과정을 알 수는 없었으나, 멜라니아의 추론이 합리적임을 인정했다. 그는 긴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로만드로 님은 이안 경이 사임하길 원하십니까?”
“아니, 이런 식으로는 원치 않네.”
건강 문제 때문에 언젠가는 자리에서 내려오겠지만, 이런 불명예스러운 퇴임은 절대 반대다. 그가 바리엘을 위해 한 게 얼만데!
로만드로가 결연하게 주먹을 꽉 쥐자, 멜라니아가 미소 지었다.
“그럼 저를 황궁으로 보내 주십시오.”
“그게 무슨 말인가? 자네가 황궁으로 들어간다니? 이런 상황에서 무얼 하게?”
멜라니아는 신문을 들어 보였다. 그 어디에도 황궁의 입장에 관해서는 실린 내용이 없었다.
“이 내용을 부정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이안 경의 사임을 막기 위해서는 딱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녀의 음성은 어딘가 묘하게 들뜬 것 같았다. 실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로, 제가 반역과 무관해지는 것이지요.”
멜라니아가 반역죄에서 말끔히 벗어난다면 이안이 10년 전 그녀를 도망치게 했던 것은 죄가 아니게 된다. 그로 인해 오히려 러더포드까지 추격할 수 있었으니, 오히려 치하받아 마땅한 일이 되겠지.
“제가 하이만 가문의 혈통이라는 건 어찌할 수 없겠지만, 여기에 서사를 부여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10년 전의 일이지 않습니까. 황궁에서는 복잡한 증거를 내놓을 필요 없이, 그저 한마디로 상황을 타개할 수 있습니다. 제가 죄인이 아니라는 말 한마디요.”
로만드로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묘수 중의 묘수이지 않나.
‘당시 하이만가는 반역을 꾀했으나, 멜라니아만큼은 제국에 충성하여 황궁에 정보를 전달했고, 이를 참작한 제국은 그녀에게 사형 대신 러더포드를 추격하도록 명했다.’
-라는 서사를 꾸며내기만 한다면, 지금의 소란은 금방 가라앉을 것이다.
“…자네, 대단하군.”
잘만 하면 음지에서 숨어 지내던 반역자 신분에서 바로 제국을 위해 희생한 영웅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가문을 잘못 만난 죄는 10년간 떠돌며 제국의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갈음하면 되고.
“이안 경이 이런 식으로 불명예를 짊어지는 건 원치 않으시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멜라니아가 로만드로의 손을 붙잡으며 부탁했다. 어느새 그녀의 눈동자는 희망과 열망 그리고 야망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니 저를 황궁으로 보내 주세요. 황궁이 이안 경의 사임을 막고자 한다면 필히 제 도움이 필요할 것입니다.”
로만드로는 잠시 고민했다. 이안이 호텔로 찾아오지 말라 하였지만, 황궁으로 사람을 보내지 말라 하지는 않았잖아?
그게 아니어도 보좌관이 되어서 그저 넋 놓고 구경만 할 수도 없는 노릇, 로만드로는 결국 비비안나를 돌아보며 부탁했다.
“마차를 불러 주어, 여보.”
“괜찮으시겠어요?”
“황궁에서 결정할 사안이네. 그리고 멜라니아 영애, 그대가 선택한 운명이고.”
멜라니아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 있어 보였다.
“네. 제가 선택한 기회이자 줄곧 바랐던 순간입니다. 로만드로 님. 고맙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고마워하지 마시게. 나는 그저 이안을 위해 선택한 일이라서.”
비비안나가 밖으로 나가 황궁으로 들어갈 마차를 구하는 동안, 로만드로는 멜라니아에게 자신의 통행증을 건넸다.
“하나만 약조해 주게.”
“말씀하십시오.”
“황궁 안의 정세가 궁금해. 틈틈이 서신으로 전달해 주게. 이안은 눈 감고 귀 닫은 채 저택 밖으로 나오지 말라 일렀지만… 나도 돌아가는 상황은 알아 두는 게 맞지 않겠나.”
멜라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낱낱이 전하겠습니다.”
“기다리고 있지.”
“마차가 도착했습니다! 나오십시오!”
“그럼, 이만.”
멜라니아는 로만드로에게 눈인사를 남기고는 마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이내 꼭 싸맨 로브 아래로 얼굴을 감추었다.
히히힝.
마차가 사라진 뒤에도 로만드로는 한참이나 서서 바라보다가, 천천히 문을 닫아 잠갔다.
* * *
아코렐라는 펜을 붙잡고서 두 직원을 관찰했다. 물약을 마신 이후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빠짐없이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두 직원은 한참이나 입맛을 다시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뭐, 뭘 말하면 됩니까?”
“아무거나.”
“맛이 좀… 더럽네요.”
“그딴 거 말고!”
콱 씨. 아코렐라가 윽박지르려는 순간이었다. 직원들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그리고 이내 안색이 파리해지는 것 아닌가?
“뭐야. 왜 그래?”
“아, 아코렐라 대장, 우리가 방금 먹은 게 뭡니까?”
“말했잖아. 기억을 되찾아 주는 거라고.”
“거짓말 마시고요. 무, 무슨 짓을 하셨어요?”
“엥? 뭐래?”
직원들은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치더니, 제 머리카락을 잡아 뜯을 듯이 쥐었다.
“마법을 거셨죠?!”
“아니라니까! 진정해!”
“해도 해도 너무합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는 모습.
아코렐라는 의아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저러는 걸로 봐서는 도려진 공통된 기억이 있다는 뜻인데. 마법부만의 문제가 아니었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려 나간 기억이 있어?
“대장, 어서 되돌려주십시오!”
“닥쳐, 내가 먹어 보려니까.”
안 되겠다. 스스로 실험체가 되는 수밖에.
그녀는 식어 버린 회상물약을 들이켰고,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더러운 맛이라는 말이 뭔지 알 것 같기도…….
“아.”
그리고 그때, 아코렐라의 눈동자 역시 커졌다.
안개 속에 잠겨 있던 무언가가 서서히 움직이며 걷히는 느낌. 토막 났던 기억의 이음새가 견고해지고, 잊었던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
커진 아코렐라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톡, 하고 떨어졌다.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제 이름은 이안 베로시온-”
그리고 잊혔던 것만큼이나 선명하게 떠오는 음성.
“100년 후의 바리엘에서 온 황제입니다.”
아코렐라는 말문이 막혀 제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는 신음 같은 욕설을 중얼거렸다.
“…세상에,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