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28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28화(828/863)
제828화. 긴급체포
아코렐라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대체 어떻게 이를 잊을 수 있지? 언제부터?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지하신에게서 승리한 것도 이안이 미래에서 온 덕분이었지 않나.
놀라웠다. 그리고 동시에 두려웠다. 기억을 종이처럼 잘라 내는 미지의 힘에 속절없이 당했다는 게.
‘…대체 어떻게?’
그녀는 제 이마를 문지르며 기억을 샅샅이 헤집었으나, 특별한 원인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지하신과의 결전이 마지막 기억이니, 분명 그때 무언가 있었던 것 같은데…….
‘다른 기억은?’
새로이 떠오르는 것들은 하나같이 ‘이안 베로시온’에 관한 것. 아기아르에서 집시의 배를 갈라 이름을 되찾았던 순간부터, 마산타르 신전 아래에서 마법사들이 대마물과 결전했던 날까지, 깔끔하게 도륙 나 있었다.
‘더 있을까?’
혹여 아직도 잊고 있는 게 있나 싶어 고민해 봤지만, 기억나지 않는 걸 기억할 방법은 없다. 물에 빠지기 전에는 공기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것처럼, 촉매가 없다면 영원히 깨닫지 못하리라.
타앗!
하여 아코렐라는 다시 물약을 집어 들었다. 잊고 있었던 게 이토록 중요한 것이었다는 걸 알았으니, 아직 기억하지 못한 게 있을까 두려웠다.
“대, 대장?”
“왜 그러십니까?”
그런 아코렐라에게서 뒷걸음질 치며 멀어지는 두 관료. 당최 짐작할 수가 없는 자였다. 대체 왜 저러는 걸까? 저렇게 들이켜도 되는 건가? 그들은 주춤주춤 용기를 내어 아코렐라를 말려 댔다.
“그, 그만하시고 거두십시오. 이건 대장을 위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이 너무도 생생해서 진짜 같습니다.”
“예, 예예. 여기, 2층에 대장이 있었다는 건 모르는 일로 할 테니까요.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을 터이니 그만하십시오. 이러다 진짜 화 당합니다.”
작금의 황궁 사태가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코렐라 대장 본인이 더 잘 알 터였다. 바로 ‘이안 베로시온’이라는 괴소문 때문이지 않나. 한데 어찌 자신들의 머릿속에 이런 착각을 심어 버린단 말인가. 해도 해도 너무했다.
“러더포드 시체에 정신조작 흔적이 없음이 막 판명 났습니다. 동방 마법사들이 검증했어요. 그런데 이런 일을 벌이시면 오해가 새로이 일어날 것입니다. 부디 자중하시고, 생각을 깊게 하십시오.”
“이건 모른 척하겠습니다! 맹세합니다!”
관료들은 회상물약으로 떠오른 기억들을 도로 지워 내려 애썼다. 괴리 탓에 자꾸만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게다.
그도 그럴 것이, 황궁에서는 ‘이안 베로시온’이란 이름을 입에 올리기만 해도 당장이라도 죽일 것처럼 날을 세우는 중이었고, 아코렐라는 평상시에도 기행으로 유명한 자였으니.
“정신조작 같은 거 아니라고, 새끼들아!”
“정신조작이 아니라고요? 그럼 저희가 이걸 까맣게 잊고 있었단 말인데, 대체 어떻게요?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저희는 전쟁에 나가지도 않았단 말입니다.”
“맞습니다. 중앙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요.”
기억을 잃은 까닭을 모르니 그들은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가 기억을 잃었다면 마법의 부작용, 전사가 기억을 잃었다면 전쟁의 여파, 혹은 마물의 저주라 짐작하기라도 하지…. 그들은 전쟁이 일어나는 동안 일상을 누렸다. 여느 때와 같이.
“시발, 그러니까-”
아코렐라는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기억을 잃은 원인? 나도 몰라. 하지만 이안 님은 알고 있겠지.
그녀의 숨이 조금씩 가빠 오자, 관료들은 바깥을 힐끔거렸다. 아무래도 도움을 청하는 게 좋겠다. 그들을 위해서나, 아코렐라를 위해서나.
“밖에, 밖에 누구 없-”
“멈춰!”
지이잉!
아코렐라가 손끝으로 마력을 가볍게 터트렸다. 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어지러웠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에 두 관료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정신조작도 모자라서 마법까지 쓰다니!
“하아, 하-”
아코렐라는 거친 숨을 토하며 머리 굴렸다. 큰일 났다. 상황이 아주 개 같이 흘러가고 있다고!
‘이대로 외부와 접촉하면 안 돼. 밥버러지 같은 관료 새끼들이 정신조작이라고 주장해 버리면 반박할 수가 없잖아.’
물약은 아코렐라 개인이 만든 것이고, 마법부는 황궁 전체와 대립 중이다. 충분히 현실성 있는 이야기였다.
‘대비해야 해.’
반박하려면 증거가 필요했다. 기억은 사라졌어도, 필시 어딘가에는 지워지지 않은 흔적이 있을 텐데…. 그러다가 문득.
‘잠깐. 이안 님은 기억하고 있잖아? 다시 말하면, 모든 게 지워진 것은 아니다……?’
예외가 더 존재할 가능성? 오케이.
그리고 하나 더. 가능하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흔적이면 좋겠는데. 공신력이 있는 것으로…….
‘아기아르 전투와 마산타르 신전 보고서!’
아코렐라는 그것부터 확인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정신조작 마법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저 진실을 잊고 있었던 것임을 일깨워 줄 증거 확보를 위해.
“위에 누구 있습니까?”
하지만 그때였다. 황궁친위대원 하나가 의아해하며 2층으로 올라왔다. 갑작스럽게 희미한 마력을 느낀 탓이었다. 아코렐라가 관료들의 탈주를 저지하기 위해 아주 잠깐 흘렸던 마력을 기민하게 알아챈 것이다.
“아코렐라 대장?”
“사, 살려 주십시오!”
친위대원은 엉망이 된 실험대와 바닥을 짚은 채 앉아 있는 아코렐라를 보고서 멈칫거렸다. 하나 이내 관료들의 안색과 반응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채고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일입니까? 다들 진정하십시오. 아코렐라 대장, 출궁하신 것 아니었나요? 마법부는 현재 접근 금지 처분이 내려진 상태입니다.”
“조심하십시오, 친위대원님! 아코렐라 대장이 무슨 실험을 했습니다. 머릿속에 이상한 기억들이 심어지는 마법입니다!”
“뭐라고요?”
친위대원은 그제야 바닥에 엎어진 것들을 찬찬히 살폈다. 아직 열감이 느껴지는 실험 도구들. 관료들이 비틀거리며 친위대원 쪽으로 달려가 그 뒤에 숨었다.
“왜들 그럽니까?”
“부, 불손한 기억이 주입된 것 같습니다.”
“어떻게 좀 해 주십시오! 저희가 도망치려고 하니까 마법까지 썼습니다!”
다들 발까지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사태가 심각해 보였다. 친위대원은 아코렐라에게 조심히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대장, 내 말이 들립니까?”
아코렐라가 힙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턱으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저들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 주십시오.”
“시발거, 정신조작이 아니라… 되찾은 거라고.”
“이런.”
물약의 진위를 떠나, 마법부에 무단으로 침입하여 관료들에게 강제로 물약을 투여하고 마법까지 쓴 것은 사실이라는 게다.
친위대원은 난감하다는 듯 턱을 긁적거리더니, 아코렐라를 부축하며 일으켜 세웠다.
“대장, 미안하지만 따라 나오십시오. 황명 불복종 및 마력 오남용 혐의로 긴급체포합니다. 제국법에 따른 것이니 양해 바랍니다.”
“아니, 잠깐만-”
“치료를 우선으로 할 것입니다만, 관료들에게 마법을 써 위협을 가한 사실이 있으니 마력봉인석 착용을 명합니다. 이쪽으로.”
아코렐라가 몸을 비틀며 벗어나려 했지만,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 새롭게 깨달은 바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정량 복용. 실험은 꼭 타인에게 하자는…….
“아니, 그것보다 이안 님! 이안 님을 불러 줘! 아니면 폐하라도 뵙게 해줘!”
“…아코렐라 대장.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됩니까?”
친위대원이 작게 한숨 쉬며 주위를 둘러봤다. 소란을 들은 다른 관료들이 몰려들고 있지 않나. 그녀는 황제의 명을 어기고 마법부에 침입해서는 의문의 물약을 타인에게 투여하고, 마법으로 무력까지 행한 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조용히 하십시오. 다 절차가 있습니다. 이안 장관님이나 폐하를 뵙고자 한다면 조사부터 마치고 따로 요청하십시오. 대체 뭘 드신 것입니까?”
“닥쳐! 뭘 먹었는지 내가 직접 이르겠다니까 말이 많아. 너 이 새끼, 베릭 쫄따구지? 그래. 베릭이라도 불러와 봐!”
“다치십니다, 대장. 어이, 가서 팔찌 가져와.”
“네! 알겠습니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면서 무슨.
아코렐라의 발버둥이 점점 심해지자, 다른 친위대원이 그녀의 손목에 마력봉인석 팔찌를 채웠다.
잘그락!
“야! 이것들이 진짜! 돌았나! 나 아코렐라야! 마법부 아코렐라라고!”
실처럼 얇은 팔찌였지만, 마력을 제어하기에는 충분했다. 아코렐라는 황당해하며 관료의 멱살을 붙들었고, 동시에 머리로 턱을 올려 쳤다.
빠악!
“으아아악! 내 코!”
“대장!”
“이거 놓으라고!”
“이럴수록 대장만 곤란해집니다!”
“이안 님은-!”
아코렐라는 있는 힘껏 소리치고 싶었다. 이안 베로시온이 맞노라고, 그는 미래에서 온 황제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냅다 외쳤다가는 어찌 될지 눈에 훤했다. 아코렐라는 분하다는 듯 이를 빠드득 갈다가 체념하며 몸에서 힘을 풀었다.
“하아.”
안 그래도 속 울렁거리고 머리 아파 뒈질 것 같은 판에… 젠장.
친위대원은 힘 빠진 아코렐라를 부축하여 마차에 태웠다. 치료가 급했다. 성질 못 죽여서 한바탕 난리를 피우긴 했지만, 그녀의 상태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안 좋아 보였다. 파리해진 안색과 바싹 마른 입술, 그리고 흠뻑 젖을 정도의 식은땀.
“위에 함께 있었던 두 사람.”
“예!”
“둘도 동행하지. 조사실로.”
“아, 알겠습니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이렇게 되어 버렸네. 관료 둘은 눈물을 머금으며 마차 뒤에 올라탔다.
이윽고 마차가 떠나자, 사람들은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가며 술렁댔다.
“근데 아코렐라 대장은 언제 들어온 거람?”
“마법을 사용했나? 진짜 앞뒤가 없네. 이런 상황에서까지 저러다니.”
“물약은 무슨 물약?”
“모르겠어. 관료 둘이 먹었다는데 입을 딱 다물었거든. 조사하다 보면 밝혀지겠지. 어어? 저기, 마차 한 대 더 들어오는데?”
아코렐라를 태운 마차가 나가자마자 새로운 마차가 들어섰다. 황궁이 아닌 외부의 것이다. 경비병이 마차로 다가가 창문을 두드렸다.
툭툭.
“누구십니까? 여기는 마법부입니다. 당분간 관계자 외 출입을 금하고 있습니다만.”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메일리데일리에서 나왔습니다만, 크흠. 그게, 찾는 사람이 있어서요.”
“메일리데일리? 본궁은 반대쪽입니다.”
“마법부에 볼일이 있는데…….”
메일리데일리 사장은 연신 눈치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아니, 이안 장관? 말이 좀 다르지 않소? 마법부에 가면 아코렐라라는 대장이 있을 거라며?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은데?
이에 경비병은 썩 물러가라는 듯이 한 발짝 다가오며 안내했다.
“본궁으로 가십시오. 마법부와 관련한 볼일도 그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에, 수고하십시오.”
사장은 창문을 닫고는 마부에게 본궁으로 가자 신호했다. 아코렐라 대장? 뭐, 황궁 어딘가에는 있겠지. 마법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거짓 제보했을 리는 없으니 일단은 본궁으로 가서 메일리데일리 기사에 대한 추가 입장이 있는지를 받아본 뒤, 면밀히 살피는 게 좋겠다.
히이잉!
두 번째 마차마저 마법부를 떠나자, 경비병은 한숨 돌렸다는 듯 손을 탁탁 털었다.
그때-
“음?”
저 멀리서 대로를 가로질러 지나가는 마차 한 대. 익숙한 깃발이 걸려 있었다.
“마법부?”
잘못 봤을 리 없다. 분명히 마법부의 깃발이다. 경비병은 이쪽으로 오나 싶어 다시금 자세를 바로 했지만, 마차는 멈춤 없이 본궁으로 직진했다.
이를 본 사람들이 다시금 술렁이기 시작했다.
“뭐야?”
“어? 저 마차, 로만드로 님 마차 아닌가?”
“그래? 난 모르지.”
“맞는 것 같은데.”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 거람?”
황궁에 들이닥친 두 명의 외부인-
바로 메일리데일리 사장과 멜라니아였다. 둘을 각각 실은 마차 두 대가 동시에 본궁으로 들었다. 아코렐라가 호송된 길을 뒤따라서.
타닥타닥!
“서둘러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저 멀리 본궁이 가까워오자, 멜라니아는 로브를 벗고 당당히 얼굴을 노출했다. 황궁에 들이닥칠 새로운 바람을 예고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