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29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29화(829/863)
제829화. 이안의 서신
“미치겠군.”
진이 신문을 내던지며 인상을 확 찡그렸다.
황궁 밖으로 소문이 퍼지지 않도록 조심했건만, 메일리데일리가 낸 특보에는 현 사태에 관한 내용이 적나라하게 실려 있었다.
수상 역시 이안이 했던 말의 뜻을 알아채고는 작게 탄식했다.
“이안 장관이 직접 제보한 것 같습니다.”
이안이 황궁의 통제를 벗어나게 되면 곤란해지니, 그들은 마법부의 직위해제 건을 들어서 압박하려 했다.
그러자 이안은 보란 듯이 하이만의 반역 사태와 자신을 묶어 버렸고, 황궁에서는 이안을 해임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되어 버린 게다.
수상이 신문을 옆으로 치웠다.
“황궁 모르게 저지른 이안 장관의 독단이라 밝혔으니 이는 의도가 명백합니다. 장관은 해임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가 없으면 마법부를 통제할 수 없어. 알고 있지 않나. 방법을 찾을 것이다.”
“지금 상황으로는 오보라고 주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저희도 큰 것을 잃는 셈이라.”
‘하이만’ 카드는 언젠가 이안을 압박할 수단 중 하나였다. 이를 스스로 내다 버리는 것과 다름없지 않나. 물론 이안이 해임되어 통제 불능 상태가 되는 것보다는 낫지만.
어쨌거나, 이런 식으로 황궁의 수를 받아침과 동시에 제 숨통을 트다니. 노련하고 능수능란했다. 중앙 정치의 한복판에서 평생을 지낸 수상이 보기에도.
“설령 그리하여도 메일리데일리 측에서 쉬이 인정할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쪽 사장을 만나서 적절히 합의를 보는 게 어떠십니까.”
“안 그래도 정신없어 죽겠는데 별별 곳에서 다 난리군. 메일리데일리 측에 연락하라. 지금 당장-”
똑똑.
진은 지시를 멈추고 문 쪽을 쳐다봤다. 수상 역시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폐하. 마법부 장관의 보좌관, 로만드로 경이 사람을 보냈습니다. 급히 전언할 것이 있다 하는데, 들이시겠습니까?”
“누구? 로만드로?”
“그렇습니다.”
진은 뜻밖이라는 듯 잠시 말을 멈췄다. 진과 로만드로 역시 인연이 깊지만, 어쨌거나 그는 이안 경의 사람이었다. 게다가 전방위로 견제받는 마법부의 핵심 인물이기도 했고. 대체 어떤 의도로 사람을 보낸 건지 쉬이 짐작할 수 없었다.
“들라 하라.”
일단 보고 판단하는 게 맞겠지. 진은 허락의 뜻을 보였고, 이내 등장한 이에 의해 머릿속이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로브로 온몸을 가린 여인. 머리부터 발끝까지는 물론, 손에까지 장갑을 껴 맨살을 드러낸 곳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폐하, 송구하옵니다만 시종들을 물려 주십시오.”
귀에 익은 목소리.
진은 기억을 더듬거리다가 눈앞의 여인이 멜라니아임을 알아챘다.
수상을 제외한 모두가 물러가자, 멜라니아는 로브를 벗고 얼굴을 드러냈다. 그에 그녀를 알아본 수상이 침음했다.
“…멜라니아, 하이만가의 여식.”
하나 무감정한 얼굴. 원한을 품고서 찾아온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수상의 감이 그러했다. 그는 경계심을 풀고는 물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제 발로 찾아온 것인가? 지금 그대 때문에 제국이 발칵 뒤집힐 판이거늘.”
“그 뒤집힌 판, 제가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겠습니다.”
“무어라?”
멜라니아는 예를 갖추어 진에게 자세를 낮췄다. 오랜 시간 바깥을 떠돌았어도 태생부터 배어 있는 몸가짐은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 주듯. 중앙 귀족 중에서도 제일가던 하이만가, 그 자체의 품격이 그대로 느껴지는 몸짓이었다.
“폐하, 저는 황실과 마법부 사이의 자세한 내막을 모르지만, 오늘 특보된 메일리데일리의 기사로 인해 황실이 곤란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진은 멜라니아가 무엇을 제안하려는지 알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났다. 참으로 대단한 근성이지 않나. 저 밑바닥까지 처박혔으면서 끈질기게 위로 올라와 결국에는 자신에게 손까지 뻗고 있으니.
“저를 사면해 주십시오.”
멜라니아의 발언에 수상이 멈칫했다.
“아니, 이미 사면받은 자라고 공표해 주십시오.”
기사 전체에 조목조목 반박하는 것보다 이 한마디가 훨씬 주효할 터였다.
이안 장관이 독단적으로 저지른 일이 아니라 황궁의 안배 아래 행한 선택이었노라고. 멜라니아는 비록 역적의 핏줄이나 제국에 충성을 맹세하였고, 반역자를 잡아들이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노라고.
러더포드를 잡아들이는 과정에서 멜라니아가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지 않나.
“그리되면 황궁에서 이안 경을 해임할 필요가 없으니, 곤란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멜라니아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진이 자신의 제안을 무조건 받아 줄 것이라는 듯이 말이다.
“제 가문의 죄를 평생 씻겠다는 각오로 제국에 충성하겠습니다. 더불어 이로써 현 사태가 해결된다면, 저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시길 간곡히 청합니다.”
진과 수상이 시선을 나누었다.
황궁에서는 특별히 손해 볼 게 없는 수였다. 아니, 오히려 멜라니아만큼이나 얻는 게 많겠지. 일단 이안의 수작을 완벽히 저지할 수 있으니까.
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수상 역시 동의한다는 뜻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좋다.”
황제의 허락에, 멜라니아가 고개를 휙 들었다.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도 모른 채.
몰락한 가문의 재건. 요원하기만 했던 꿈이 실은 이리도 간단한 것이었던가. 감정이 벅차올라 목이 매었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하여 감사의 뜻을 보였다.
“…감사합니다, 폐하.”
“말을 맞추는 게 좋겠군. 성명문을 쓸 것이다. 메일리데일리 특보에 반박할 기삿거리가 되도록. 멜라니아, 그대는 잠깐 여기서 대기하도록. 수상?”
“예, 폐하. 준비하겠습니다.”
수상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멜라니아를 향해 따라오라 눈짓했다.
그녀는 수상을 따라 행정부 건물로 들어섰다. 행정부의 직원들은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서류를 건네고 받으며 일 처리에 정신이 없어 보였다.
“수상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결재 누락이…….”
“어? 옆에는 누구십니까? 낯이 익습니다.”
“자자, 다들 주목.”
짜악!
수상이 가볍게 손바닥으로 소리를 내자, 아수라장이던 행정부가 일순 멈췄다. 마법이 따로 없다.
“메일리데일리에서 낸 특보에 반박하는 황궁 성명문을 쓸 것이다. 여기, 멜라니아에 대한 내용이 주다.”
멜라니아? 아아.
맞네. 멜라니아네.
…어? 멜라니아?
“이 여인이 그 멜라니아?”
일순 의식의 흐름이 끊기며 충격이 내려앉았다. 그러니까, 이 여인이 하이만가의 멜라니아라고? 이안 경이 남몰래 빼돌렸다는?
관료들은 그녀의 정체에 수군덕댔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수상의 설명에, 황궁의 정치적 수를 기민하게 읽어 냈기에.
멜라니아 또한 관료들에게 자신의 행적을 낱낱이 전하였고, 이내 머리를 맞대 적합한 거짓을 꾸미기 시작했다.
“수상님, 보고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지?”
“메일리데일리 사장이 입궁해 있다는 정보입니다. 그리고 마법부에서 아코렐라 대장이 사고를 쳤다더군요.”
“아코렐라 대장? 그자가 왜 궁에 있단 말인가?”
“모르겠습니다. 조사 중인데, 사태가 좀…….”
수상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보고서를 확인했다. 수상한 물약을 먹여? 게다가 마법까지 썼다?
이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중대 사안이었다. 수상은 보고서를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잘 되었다는 듯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하이만 카드가 날아가서 이안 장관을 저지할 새로운 수단이 필요했는데.
“일단 알겠다. 메일리데일리 사장은?”
“본궁으로 들어간 것 외에는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이쪽으로 불러라. 성명문은 그자에게 직접 전달하면 되겠군.”
“알겠습니다.”
수상의 지시에 관료가 밖으로 뛰어갔다. 본궁이라 하면 바로 옆 건물이니 그리 먼 곳이 아니었다.
* * *
“아코렐라 대장. 사실대로 말씀하십시오.”
“아 나. 시발! 안 해. 안 해!”
콰앙!
큰 소리가 난 것은 아코렐라가 책상에 제 머리를 박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이 분개했다는 걸 숨기지 않고 드러냈는데, 그럴 때마다 조사관은 기가 죽어 말끝을 흐렸다.
“아니, 그러지 마시고-”
“변호사 불러, 젠장할. 내가 잘못한 거는 말이지, 마법부에 몰래 들어간 것 말고는 없다고! 물약은 회상물약이 맞아. 여차하면 내가 실담물약 먹겠다니까?”
“아니, 그 실담물약을 본인이 만드셨잖아요.”
“물건의 용도만 봐! 그 뒤에 뭐가 엮여 있을지는 생각하지 말고! 아, 답답하네. 일 처리가 이따위여서 발전이 있겠어?”
조사관은 질린다는 듯 미간을 꾹꾹 눌러 댔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아코렐라의 수상한 물약이 ‘이안 베로시온’이라는 거짓 기억을 심었노라 하였다.
이대로면 아마 다음에 있을 대회의에서 큰 문젯거리로 논의될 터인데, 그 파장이 얼마나 클지 짐작할 수 없었다.
“아코렐라 대장, 이거 진짜 큰 문제입니다.”
“알겠어. 알겠다고. 그러니까 폐하 알현 신청하게 해 줘. 나, 여기서 조사 성실히 받았다?”
“안 됩니다. 정신조작 혐의가 있는 터라 당장은 폐하를 뵐 수 없습니다.”
“말이 다르잖아!”
콰앙!
아코렐라가 다시금 이마를 받아 대자, 조사관은 이제 되었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속해 봤자 시간만 낭비다. 평행선을 달리는 것처럼 답이 나오질 않으니, 원.
“다시 안으로.”
“예, 알겠습니다.”
조사관의 지시에 아코렐라는 다시 질질 끌려가 감옥에 갇혔다.
지친 기색으로 조사실을 나선 그들은, 이내 복도를 서성거리는 낯선 자를 발견했다.
“거기, 누구십니까?”
“아!”
메일리데일리 사장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감옥에 왠 낯선 얼굴이지? 일단 황궁 안이니 신원은 확실한 자일 것인데… 누구더라?
“여긴 외부인 접근 금지 구역입니다. 어느 소속의 누구십니까?”
“나는 저기- 메일리데일리 사장, 록소라고 합니다. 여기, 명함이요.”
“메일리데일리요?”
“아니, 이번에 낸 특보 관련해서 황궁의 입장을 듣기 위해 입궁했다가 재밌는 소식을 들어서요. 마법부 대장이 여기 있다면서요?”
오가는 사람을 죄다 붙들어 물은 결과, 사장은 아코렐라가 잡혀 있는 곳을 알아낼 수 있었다. 무엇 때문에 이리 잡혀 있는지도.
“그런데요?”
지금은 사장이지만, 그도 젊었을 적에는 이리저리 발로 뛰고 목숨 걸어가며 정보를 수집했던 기자 출신.
사장은 주위를 둘러보며 아무도 없음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품에서 동전 한 닢을 꺼내 조사관에게 쥐여 줬다.
“뭡니까?”
은화 한 닢.
갑작스러운 뇌물에 조사관이 당황해서 목소리를 낮췄다. 놀란 것과 별개로 동전은 여전히 그의 손아귀에 들어 있다.
“마법부 대장에게 취재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서 그런데, 만나게 좀 해 주면 안 됩니까?”
“취재라니요?”
“별거 아닙니다. 실담물약 상용화에 대한 논의 당시 아코렐라 대장의 부적격한 발언에 관한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단순 대질 정도도 괜찮으니, 꼭 좀 만나게 해 주십시오. 내가 급하게 나오느라 빈손인데, 언젠가 메일리데일리 본사로 찾아오시면 거하게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사장이 조사관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현 사태에 관한 게 아니라 다른 건이라. 조사관은 헛기침을 큼큼 해 대며 사장에게 따라오라 고갯짓했다.
“짧게 하십시오.”
“아이고, 그럼요! 물론입니다! 얼마 안 걸려요.”
끼이익.
잠시 후-
다시 되돌아온 조사관을 보곤 아코렐라는 짜증스럽게 눈을 부라렸다. 유별나게 부은 이마는 덤이다.
“뭐냐. 왜 또 왔어? 뭔데.”
“크흠! 안녕하십니까, 아코렐라 대장. 저는 메일리데일리의 사장 록소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조사관 어깨 너머, 록소가 철창 틈으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아코렐라는 그 손을 빤히 쳐다만 봤다. 그에 록소가 제발 손 좀 잡아 달라는 듯 애원하는 눈빛을 보내자, 그녀는 별수 없이 대충 맞잡았다.
“메일리데일리면…….”
그때,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종이 질감. 악수하는 척 그녀에게 이안의 서신을 전달한 것이었다.
아코렐라가 놀라서 눈을 깜빡거리자, 록소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예, 예전에 이안 님께 도움 많이 받았던 그 신문사.”
이안 님이 보낸 게 맞는다는 뜻.
아코렐라는 조심스레 서신을 뒤로 숨겼다. 조사관은 관심 없다는 듯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