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30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30화(830/863)
제830화. 아코렐라의 답신
사장은 아코렐라에게 별 의미 없는 질문 몇 가지를 던지고는 조사관을 돌아봤다. 이제 다 되었다는 듯.
“끝났습니다.”
“벌써요?”
“예. 간단한 거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나가시지요.”
“아니, 그래도 너무 간단한데.”
뇌물 받은 조사관이 되레 권할 정도로 면담은 짧았다. 그의 목적은 애초부터 이안 장관의 서신을 전달하는 것. 이를 이루었으니 이제부터는 아코렐라의 몫이었다.
사장은 조사관의 등을 떠밀며 밖으로 나갔다.
“자자, 다들 일정이 바쁘니 서두릅시다.”
“어어, 주신 거 다시 뱉어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아이고, 저 그런 좀생이 아닙니다.”
콰앙!
아코렐라는 주위가 조용해지자 소매 속에 넣었던 서신을 조심스레 꺼냈다.
곱게 접힌 종이. 왠지 펼치기 두려웠다. 이안 님이 자신에게 무슨 말을 전하려는 걸까? 현 사태를 해결할 특별 지시?
‘아니, 근데 생각할수록 황당하네.’
이안 님은 대체 왜 숨긴 거래? 자신이 미래에서 왔다는 걸 말이다. 굳이 일을 이리 꼴 필요가 있나?
“그래, 어디 한번 봅시다!”
사락.
-아코렐라 대장. 자택에 없더군. 명령을 어기고 다시 황궁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제멋대로라니.
“크흑!”
아코렐라는 첫 문단을 읽자마자 다시 종이를 덮어 버렸다.
그랬다. 간과했다. 저 메일리데일리 사장이 이안의 부탁으로 ‘황궁’에 들어와서 자신을 찾은 것은 이안이 자신의 행방을 알고 있다는 뜻임을.
…젠장, 망했네.
‘그것도 거나하게 망했어. 황궁에 숨어 있기만 해도 어찌 넘어갈 수 있었을 건데 이렇게 들켜서 철창행이라니. 게다가 정신조작 마법 혐의로!’
끄응. 아코렐라는 나직이 신음하며 머리를 벅벅 문질러 댔다. 이안의 질책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매서운 법인지라.
그래도 읽긴 해야겠지?
-곤란하게 됐어. 자네의 행동만이 아니라 황궁 내의 상황 전체가.
황궁은 마법부를 견제하기 위해 계속된 방안을 내놓고 있고, 이는 조금씩 서로를 파멸로 이끄는 중이다. 일례로 서신을 작성하는 지금,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황궁 내 마법사들의 마력봉인석 의무 착용 법안이다.
“뭐?”
마력봉인석 의무 착용? 아코렐라가 미간을 꾹 누르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자신이 글자를 제대로 읽었는지 연달아 확인했다.
-물론 나는 황제 폐하께서 이것을 실제로 발의하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다. 어디까지나 대외적으로 마법부와의 알력 다툼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함이지. 그 연장선상으로, 나를 제외한 마법부 전체의 직위해제도 거론되었다.
“참 나, 장난하나!”
아코렐라가 소리를 빽 지르자 바깥에 있던 경비병이 움찔거렸다. 안쪽을 확인하고 싶지만 미친 마법사와 마주하는 건 상당히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법. 그는 못 들은 척 다시 정면을 쳐다봤다.
-직위해제 건은 겉보기와 반대로 나의 해임을 막기 위해서다. 내가 황궁을 떠나면 마법부를 통제할 수 없다는 걱정에서 비롯된 선택이고.
그리고 이어진 다음 문장에, 아코렐라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아코렐라 대장. 내 해임을 위해서 차기 장관이 되어 주길 바란다. 그대가 마법부를 통솔하고 제어할 수 있다는 걸 황궁에 증명하면, 마법부 전체 직위해제는 쉬이 무산될 터이니.
이것 또한 황제께서는 실제로 행하실 리 없지만, 고착화될수록 소문은 커져 가고 결국 마법사들도 이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되면 되돌릴 수 없음을 아코렐라 그대도 알 것이고.
왜요? 어째서 장관직에서 내려오려 하시는데요? 그대는 미래에서 온 황제 아닙니까? 계속 황궁에 남아 그대와 바리엘의 미래를 위해 함께 일하면 안 됩니까?
-짐작했겠지만, 내 마력이 이전 같지 않다. 그리고 더하여, 건강도.
아코렐라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거짓말.”
-나는 이 시간을 귀하게 쓰고 싶다. 훗날의 바리엘을 위해서 말이지.
이 대목에서, 아코렐라는 이안의 진짜 의도를 알아챘다. 그간의 모든 행적은 사실 이안이 돌아갈 세상을 위한 것이었다고.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나와 마법부가 별개라는 걸 황궁에 인식시키는 것이다.
아코렐라. 자네는 차기 장관직을 수락하여 마법사들이 불시에 개인행동 하는 것을 엄금, 저지하라. 황제 폐하의 곁에서 마법부 장관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어. 자네처럼 말썽인 자들이 있겠지만, 이번만큼은 용납할 수 없어.
“아, 젠장.”
-그저 각자의 보금자리에서 잘 쉬다 오면 돼. 그것이 나의 바람이고 부탁이다. 필요하다면, 명령이라고 하지.
“젠자아앙!”
아코렐라가 격하게 욕설을 외쳐 대자, 경비병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면 어쩔 수 없다. 윗선에 보고하여 아코렐라의 상태를 확인하는 수밖에.
“지금 그러니까…….”
차기 장관이 되어서 이안과 마법부의 연결 고리를 잘라 내라는 거지? 이거, 이안 님이 뭔 일 벌이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는데? 아니, 건강이 안 좋다면서요. 뭔 일을 벌이는 건데요? 아코렐라는 복잡한 머리를 연신 문질러 대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나더러 황실의 편에 서 있으란 거잖아.”
혹여 이안이 황실과 완전히 대립하더라도 그 피해가 마법부로 가지 않게끔.
‘선택의 여지가 있나? 진짜 영악해.’
여기서 그녀가 끝까지 이안의 계획에 반대하면 그의 명령에 불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 여파로 마법부가 몰락, 정말 파멸로 치달으면 마력봉인석 착용 등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나아가…….
‘이안 님이 마법부를 지키듯 마법부도 이안 님을 지킬 수 있어. 근데 완전히 기세가 기울어서 바닥을 치게 되면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되겠지.’
이안을 지킬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마법부 장관의 위상이 완전히 변질되기 전에 아코렐라가 지키어 꽉 움켜쥐고 있어야 한다는 게다. 그래야 정말 여차하여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더라도 이안을 구할 수 있으니까.
-아코렐라, 하나 더 덧붙인다. 내가 없어도 마법부 별채는 꼭 완성해 주길 바란다. 그 안건은 이미 마법부의 결정권 아래 있으니, 그대가 마법부 장관이 되어 황궁에 협조적인 행동을 보이기만 하면 문제없을 터. 마력석에 진심인 자네니까. 믿고 있어.
그리고 마지막 줄, 아코렐라는 조그맣게 적힌 추신 내용을 확인하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고맙네. 늘.
“진짜 짜증 나네. 우리 장관님.”
…시발. 꼭 자신이 무슨 반응일지 알고 적은 것 같아 왈칵 짜증이 일었다. 돌연 눈시울이 뜨거워진 것도 그 때문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그때, 복도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아코렐라는 서신을 갈기갈기 찢어 입에 털어 널었다.
“무슨 일입니까?”
“뭐.”
조사관이었다. 아코렐라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를 빤히 노려보았다. 빨갛던 두 눈은 어느새 반항적인 눈깔로 돌아온 뒤다.
조사관은 철창 안과 밖 모두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다시 나가려 했다.
“어이, 잠깐.”
“뭡니까?”
“폐하를 뵙고 싶다.”
“하. 또 그 말씀이시군요. 말씀드렸다시피 정신조작 혐의를 벗기 전까지는 폐하를 뵐 수 없습니다.”
“지랄하네. 지금 나랑 대면하고 있는 너는? 뭐, 사람 껍데기 뒤집어쓴 허수아비냐? 정신조작 할 힘 있었으면 진작 이거 때려 부수고 나갔지. 됐고, 말만이라도 전해. 이건 네 거가 아니라 폐하의 것이다. 이해했어?”
황제 폐하께 전하는 말이니 토씨 하나 틀리지 말고 전하라는 뜻이었다. 이를 듣고 안 듣고는 폐하의 선택이지만, 거기까지 올리는 것은 네놈의 의무라고.
그리 한껏 몰아붙인 아코렐라는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내가 차기 장관이 될 거다.”
“…예?”
“내가! 이안 님 다음인 마법부 장관이라고! 정당성도 있고 마땅한 대책도 있으니, 궁금하시면 알현 허락해 달라고 전해. 이안 님에 대한 비밀도 말씀드릴 거라고.”
그러자 조사관이 기겁을 했다.
“그, 이안 베로시온이라는 실언을 폐하 앞에서 하면 목 떨어집니다. 그쪽도, 나도.”
“넌 시발, 내가 나가면 직접 손으로 따 버릴 거야. 그거 아니니까 헛소리 말고 나가서 얼른 보고나 해. 바깥 돈 처먹을 때는 일 처리가 빠르더만, 녹봉 처먹는 일은 왜 이리 느리지?”
메일리데일리 사장한테 돈 처먹었다고 확 다 불어 버릴라.
아코렐라가 윽박지르자 조사관이 떨떠름하게 낯빛을 굳혔다. 그래, 뭐. 보고하는 것 자체는 자신의 일이니까.
“알겠습니다. 알겠으니까, 가만히 좀 계십시오.”
“네 눈에는 내가 지금 날뛰는 걸로 보이냐?”
“말을 말아야지…….”
“그래, 닥치고 꺼져.”
퉤! 아코렐라가 침을 뱉으려다 말았다. 아직 입안에 서신 쪼가리가 남아 있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오물거리며 코를 훌쩍였다.
그 모습에 조사관은 진짜 이상한 여자라며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대체 뭘 저리 주워 처먹고 있는 거야?’
아코렐라만이 알 일이었다.
* * *
“아코렐라 대장이?”
“예, 폐하.”
진은 담담한 얼굴로 보고서를 읽어 내렸다.
마법부 무단 침입, 불상의 물약 제조, 관료에게 강제 주입, 마력 남용……. 지금껏 아코렐라가 쳤던 사고 중에 단연 제일이었다. 그는 수상을 돌아보며 물었다.
“조사 중인 관료들은 여전히 그대로라고?”
“예. 다른 기억은 그대로인데 ‘이안 베로시온’에 대한 것만 심어졌다는 일관된 진술입니다. 전쟁 도중 들려온 소식이었다고는 하나 영 터무니없지요.”
수상은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두 사람을 제외한 모두에게는 그런 기억이 없었기에.
아코렐라 대장의 말대로 기억을 잃었다고 치자. 그런데 그것이 토올룬에서 바리엘을 아우르는 전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어떠한 기점도 없이, 갑자기? 주장이 빈약하다 못해 비약적이었다.
“하나 아코렐라 대장의 말은 제대로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법부의 차기 장관이라는 것 말인가?”
“그렇습니다. 마법부 전체 직위해제라는 강수를 둔 것은 이안 장관이 출궁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지요. 마법부 통제를 수월히 하기 위해 말입니다. 한데 새로운 장관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면, 굳이 이런 강수를 둘 필요가 없습니다. 소문은 물처럼 유연하고 공기처럼 가볍습니다.”
이안 장관에게만 슬쩍 찌르듯 벤 공격이었지만, 이게 언제까지고 비밀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험을 수반하는 패였고.
“그래. 아코렐라 대장을 데려와라.”
마력봉인석을 차고 있으니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다.
진의 지시에, 얼마 안 있어 팔찌를 찬 아코렐라가 들어왔다. 분명 경비병의 부축을 받고 있는데 일말의 위축도 없이 자세가 올곧다.
“폐하!”
“고생이군.”
아코렐라 대장이? 아니면-
“아오, 진짜! 이거 놔!”
경비병이?
진은 붙든 팔을 놓아도 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코렐라는 씩씩 숨을 고르고서 나름 예의를 갖췄다.
“모두 물려 주실 수 있습니까?”
“폐하.”
아코렐라가 부탁했고, 수상은 거절하라 종용했다. 황제의 안위를 위해서였다.
진은 수상의 뜻을 따랐다.
“그건 불가하네, 아코렐라 대장.”
“…알겠습니다.”
“그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고 있어. 자네가 마법부의 차기 장관직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다는 증거를 먼저 듣고 싶네만.”
‘마법사들이 자네를 쉬이 따를까? 이안보다?’라는 수상의 물음이었다.
아코렐라가 눈매를 가늘게 하며 대꾸했다.
“그 걱정은 마십시오. 이안 님의 마지막 명령이나 마찬가지니, 내키지 않아 하는 녀석이 있을 순 있어도 결국엔 기꺼이 따를 겁니다. 저처럼요.”
“마지막이라니?”
진이 의아한 낯으로 되물었다.
아코렐라에게 차기 장관직이 가는 건 임시다. 이안이 힘을 회복하고 상황이 정리되면 다시 힘의 순리대로 그가 장관직에 복직하는 게 당연하다 여겼다.
하나 아코렐라는 그런 진의 계획을 단숨에 깨버렸다.
“이안 님은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못 할 것입니다.”
“뭐?”
건강이 좋지 않다며 직접 밝힐 정도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겠지.
다만 모르겠다. 미래로 가려는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
“아코렐라 대장, 지금 폐하께 흥정하는 것인가?”
“아니요!”
아코렐라가 단호하게 부정하며 바닥에 제 이마를 찧었다.
쿠웅!
“저를 두고 흥정하는 겁니다!”
“아코렐라 대장!”
“제 목숨을 걸고 말씀드립니다! 죽어도 좋습니다!”
그녀의 기백에 수상과 관료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아코렐라는 고개를 들어 단호한 눈빛으로 진을 올려다봤다.
“그러니까, 들어 보십시오, 폐하. 이안 베로시온의 세상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