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32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32화(832/863)
제832화. 초코케이크의 쓴맛
이안은 자못 심각한 시선으로 호텔 라운지 메뉴판을 살폈다. 누가 보면 황궁의 비밀문서라도 살피고 있는 줄 알 것이다.
한참이나 고민하던 이안이 손을 들어 직원을 호출했다.
“이안 장관님, 부르셨습니까”
“자허토르테 한 조각, 므로드 홍차 한 잔.”
“케이크에 휘핑크림을 올려드릴까요?”
“추천하는가?”
직원은 웃음이 배싯 새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케이크에 휘핑크림 올릴지 말지를 논하는 투가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평소 어떤 식으로 마법부 업무를 처리하는지 눈에 훤했다.
직원은 표정을 갈무리하곤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단것을 좋아하신다면 더더욱이요.”
“…단걸 그리 즐기지 않아.”
“그럼 휘핑크림은 따로 내드리지요. 조절해서 드시면 될 것입니다. 더 필요한 것은 없으신지요?”
“없다.”
“감사합니다. 금방 준비하겠습니다.”
이안은 메뉴판을 덮고서 소파에 등을 기댔다. 등에 닿는 감촉이 좋았다. 뭉친 근육이 사르르 녹는 듯하다.
‘일은 잘 되었으려나.’
메일리데일리에 방문하여 사장을 황궁으로 보낸 뒤, 그는 바로 호텔로 돌아왔다. 세상이 시끄러워지기 전에 서둘러서.
“특보입니다! 특보! 안 사면 손해!”
“마법부의 이안 장관이 하이만가의 여식을 몰래 살려 줬다고 합니다! 하이만가는 멸문하지 않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창문 밖에서 신문 날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직원들은 애써 못 들은 척하며 곳곳의 창문을 닫았다. 이안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한들 호텔에 묵는 손님인 이상 예우를 다하겠다는 듯이 말이다. 아주 훌륭한 경영 철학이라며, 이안은 만족스레 신문을 집어 들었다.
촤악!
이어 특보를 다시금 꼼꼼히 살피고는 안도했다. 되었다. 이것으로 황궁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한정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나를 해임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하나 그리하면 마법부를 통제할 수 없을 테니 난처하겠지. 이때 아코렐라가 차기 장관으로 급부상하면 숨통이 트여 자연히 그쪽을 택하게 될 터.’
그렇다면 모든 게 완벽했다.
아코렐라가 장관이 되면, 마법부는 모든 제약에서 해방된다. 이안의 모든 행보와 궤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자연히 공격받을 일도 사라질 터.
게다가 자신 역시 원하는 대로 마법부를 나올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수는 없었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조금 억울한 입장이 되겠지만, 그것은 이안의 관심사가 아니다.
‘이제 흑심을 품은 자들만 찾아내면 된다.’
“이안 장관님. 주문하신 자허토르테입니다. 홍차는 조금 우린 다음 드십시오. 감사합니다.”
달그락.
이안은 테이블에 놓인 초코케이크를 가만 쳐다봤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반란에 나서면 이런 호사는 누리지 못할 터. 죽을 때까지 먹지 못할 음식이었다.
이에 이안은 남은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하여 먹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을 하기로 마음먹은 바, 포크를 들어 초코케이크를 한 입 떠먹었다.
“…….”
한참이나 음미하던 이안이 미간을 팍 찌푸렸다. 밖으로 나와 이안의 반응을 살피던 쉐프가 걱정스레 중얼거렸다.
“입맛에 안 맞으시나? 단걸 안 즐긴다 하시더니.”
“아니요. 마음에 드신 것 같은데요?”
이번에는 휘핑크림을 살짝 올려 잘라 먹었다. 여지없이 팍 구겨지는 미간.
하지만 직원은 저것이 진짜 맛있는 걸 먹을 때만 나오는 ‘진실의 미간’이라는 걸 알아챘다. 단걸 싫어하신다더니만, 아니었나 보다.
띠링.
“어서 오십시오.”
그때였다. 다른 손님이 라운지에 들어오며 주위를 둘러봤다. 고급스러운 옷차림은 물론이고, 어딘가 낯이 익었다. 직원이 자리를 안내하려고 하자, 그는 손을 들어 거절했다. 그러고서 이안 쪽을 가리키며 웃었다.
“일행.”
“아.”
일행이 온다는 말은 없었지만, 직원들은 제지하지 못했다. 이리 라운지에 올라왔다는 것은 이미 로비에서 한 차례 신분 증명이 끝났다는 뜻이었기에.
“안녕하십니까, 이안 장관님.”
사내는 이안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절반 정도 남은 케이크. 이안은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사내를 올려다봤다. 어디서 봤더라?
“샬롯?”
“맞습니다. 알아봐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잠시 앉아도 되겠습니까?”
샬롯 백작가의 차남, 램버트 샬롯이었다. 이안은 허락한다는 뜻으로 소파를 권했고, 그는 웃옷을 정리하며 맞은편에 앉았다.
“혹 제가 개인적인 시간을 방해한 게 아닌지요?”
“샬롯 경께서 무슨 용건으로 찾아왔는지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차, 한잔하시겠습니까?”
“네, 고맙습니다.”
이안은 차를 손수 따라 주며 샬롯가에 대한 정보들을 떠올렸다. 장남은 군대를 다녀온 이력이 있고, 차남은 클로이 영애에게 구애한 적이 있다 하였지. 사교계에서 금방 사라진 소문이긴 하지만.
“그래서, 무슨 일로?”
이안은 사실 샬롯의 의도를 짐작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귀족이 자신을 찾아오는 경우는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위로하기 위해. 둘째는…….
‘기회를 잡기 위해.’
전자는 위로를 가장한 조롱일 테고, 후자는 이안이 기다리던 것이다.
“특보, 봤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안 장관께 존경심을 가진 터라 현 상황이 안타까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답니다.”
전자인가? 이안은 찻잔을 기울이며 홀짝거렸다.
“마음 써 주셔서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사실 그대로인 것을요.”
“그렇습니까? 확실히 요즘 정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혹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성심성의껏 돕겠습니다.”
“성심성의껏 돕겠다라.”
이안이 찻잔을 내려놓으려는 순간이었다. 샬롯이 나지막이 정보를 건넸다.
“멜라니아 영애가 입궁했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어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황제 폐하를 알현하였다고 하더군요.”
“멜라니아 영애가요?”
이안이 살짝 놀라 되물었다. 그리고 바로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아챘다. 멜라니아가 결국 기회를 붙잡은 것이었다.
진과 멜라니아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모르나,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자명했다.
‘하이만가의 전격적 사면.’
황궁은 하이만가의 마지막 혈통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멜라니아를 대역죄인이란 족쇄로부터 해방시킬 것이고, 이에 따라 이안 자신도 면죄부를 얻게 될 터.
“예, 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이런 식의 모함도 이젠 끝입니다.”
샬롯이 어째서 이안을 찾아왔는지도 알겠다. 이안에 대한 반역은닉죄가 황궁의 주도하에 해명될 것이니, 이안의 명성과 명예에는 문제가 없을 거란 판단이다. 그러니 즉, 이안에게 줄을 대 놓기에는 지금이 적기라 판단한 것이다.
“글쎄요. 당장은 그렇겠지요.”
이안은 흐물흐물해진 휘핑크림을 보며 중얼거렸다. 안타까운 기색이 역력했다.
‘뭐, 어찌 되었든 잘 되었다. 안 그래도 귀족들을 한번 만날 때가 되었는데. 샬롯 백작 정도면 입김도 세고 적당하지.’
이안이 보란 듯이 한숨을 내쉬자, 샬롯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간의 의문스러웠던 점에 대해 알고 싶은 게 산더미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우선, 이안 장관의 건강이상설. 이자의 마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럼요. 전쟁에서 무리를 좀 한 것 가지고 사방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대니, 사실 좀 황당합니다. 일반인도 운동 좀 격하게 하고 나면 며칠을 앓아눕는데, 저는 장장 몇 달 동안 가이아 전역을 돌며 지하신과 맞서지 않았습니까.”
“예예, 하긴. 그렇습니다.”
“황궁도 무심하시지. 저를 어찌 이리 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안 베로시온-”
이안이 베로시온의 이름을 입에 올리자, 샬롯이 멈칫거렸다. 혹 주위에 듣고 있는 자가 없는지 기민하게 살피는 모습. 거의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이라고 자꾸 저를 몰아 대는 것도 지칩니다. 폐하께서는 제 아비와 어미가 누구인지 누구보다 잘 아시면서.”
“한데 어째서 러더포드 그놈은 그런 망발을 남겼던 것일까요?”
“마지막까지 바리엘을 혼란스럽게 하려던 것이겠지요. 이리도 적나라한 간계에도 폐하께서는 중심을 잡지 못하시니, 원.”
쯧, 하고 혀 차는 소리가 노골적이었다.
샬롯은 어색하게 웃으며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황궁과 마법부의 관계가 어긋났다고 예상은 했는데, 생각보다 갈등의 골이 깊어 보였다.
“황궁에서는 다들 저를 보고 위험 인자라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참으로 아둔합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피해자이지 않습니까.”
전쟁 영웅이라 숭배하여도 모자랄 판에, 이런 푸대접이라니. 이안이 냉랭한 미소를 지었다.
“특보도 보셔서 아시지요. 하이만가의 여식을 살려 보낸 것은 황제 폐하와 함께 결정한 것인데, 이리 저를 모함하다니.”
“하오나 황궁에서 곧바로 성명문을 내지 않았습니까. 분명한 오보라고요.”
“저 혼자만의 일로 몰아가려 하다가 뒤늦게 황제 폐하까지 엮여 있음을 깨달아서 그런 것입니다. 제가 가만히 있을 리 없으니 한발 물러선 것이겠지요.”
이안은 그럴듯하게 거짓을 꾸며 냈다. 샬롯의 정보망이 어디까지 닿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영 거짓은 아닌 내용이니 상관없다.
“…그, 이드갈도 전량 폐기해 버렸다는 소문이 있는데.”
“네. 바리엘 중앙에 유통되고 있는 것은 모조리 처분했습니다. 마력봉인석으로 마법부를 그리 옥죄려 하시니, 이드갈까지 내버려 둘 수는 없어서 말입니다. 애초 그것들 모두 제가 만든 것이니 논박의 여지가 없지요.”
“그렇긴 합니다만, 하하.”
이안은 샬롯의 반응을 살피며 계속해서 몰아붙였다. 자신은 지금 황궁에 굉장히 화가 나 있고, 이런 식으로 계속했다가는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른다는 인상을 주는 게 목적이었다.
“특히 폐하의 곁에서 간언하는 자들은 내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본보기를 보일 것입니다.”
이안의 살벌한 결심에 샬롯은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돌아가는 형국이 생각보다 더 심각하구나.
이안은 마침 잘 되었다는 듯 샬롯에게 부탁했다.
“샬롯 경이 저의 결백함을 믿으신다면 귀족들에게 말씀 좀 전해 주십시오. 저, 이안 히엘로를 지지할 자가 필요하다고요. 저는 거의 벼랑 끝까지 몰려 있는지라, 가능한 모든 수단을 이용하여 마법부의 영광을 되찾을 것입니다.”
‘가능한 모든 수단’이라는 건 참으로 위태로운 발언이었다. 하지만 샬롯은 애써 정정하지 않았다. 이안 히엘로의 힘이 그대로고, 전쟁 영웅에게 모함을 씌우려 했다는 게 사실로 밝혀지면 제국민들의 지지도 올라갈 것이니까.
“지지하는 분이 계시다면 제게 연락 좀 부탁드립니다. 서신도 좋고, 이리 직접 찾아뵙는 것도 좋겠습니다.”
“물론이지요.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안 장관께 억울한 일이 생겼는데, 그 누가 가만 보고만 있겠습니까?”
“고맙습니다, 샬롯 경. 어두울 때는 그림자도 자신을 저버린다고 합니다만, 그럼에도 등불은 항상 존재하는 법. 도와주신다면 잊지 않겠습니다.”
부탁하는 입장임에도 태도는 고고했다. 사실상 귀족들이 힘을 보태도 좋고, 안 보태도 상관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럴 만도 했다. 이안 홀로 마법부 전체를 압도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 혹 전복(顚覆)을 원한다면…….
‘내가 미쳤군.’
샬롯이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렵니까?”
“예, 이안 장관님의 휴식을 방해할 수는 없어서요. 그리고 무엇보다 장관님의 상황이 다급하니 쉴 틈이 없겠습니다.”
이안이 고맙다는 듯 싱긋 웃었다.
면전에서는 제 편인 듯 굴어도 밖에 나가면 어찌 변할지 모르는 게 인간이다. 이안은 부디 그대로 자신에게서 멀리 도망치기를 바랐다.
“그럼, 이만. 즐거웠습니다.”
“예,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하지만 일단 샬롯을 통해 귀족들에게 입질을 넣었으니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올 것이다.
이안은 샬롯이 떠나가는 것을 보고서 다시금 포크를 집었다. 녹아 버린 휘핑크림에 케이크가 엉망이었다.
스윽.
다시 한 입 먹어 봤지만, 이전처럼 맛있지 않았다. 어쩐지 되레 쓴맛이 도는 것 같아 이안은 인상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