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34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34화(834/863)
제834화. 로만드로의 답신
“비비…….”
책을 덮은 로만드로는 한껏 심각한 투로 중얼거렸다.
비비가 쓴 책에는 이안이 브라츠에 있었을 때부터 최근까지의 행적이 상세히 적혀 있었는데, 대부분 로만드로가 아는 내용이었다. 당연했다. 전부 로만드로가 해 준 이야기들이니까.
그런데 이게 뭐란 말인가? 이안 베로시온?
그것도, 미래에서 온 황제?
“나도 모르겠어요, 아빠. 나 진짜 이런 거 적은 적 없단 말이에요. 믿어 주세요.”
“아니, 잠깐만 비비.”
억울한 마음은 느껴지지만, 필체가 분명히 비비의 것이다. 게다가 놀랍게도 내용에는 어긋남이 없다. 단순히 어린아이의 상상력이라 하기에는 현실적인 부분이 상당 부분 담겨 있었고, 이안에 대한 의문 해소 역시 적절했다.
로만드로가 한참이나 그러고 서 있자, 비비안나가 조심스레 그를 불렀다.
“여보?”
“비비안나,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
자신이 깨닫지 못한 진실이 저편에 존재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간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세상이 계속해서 이안을 베로시온이라고 부르고 있지 않나.
토올룬의 괴소문과 러더포드 모두 신뢰할 수 없는 존재다만, 비비는 아니었다. 자신의 딸아이 비비는 전쟁에 나간 적도 없고, 심지어는 황궁에 출입한 적도 없다. 그런 아이마저 이안을 베로시온이라 기록했다니…….
이건 뭔가 있다.
“비비. 이거, 가져가도 되겠니?”
“네?”
“최대한 무사히 돌려주마.”
정성 들여 쓴 소설이 소실되지 않게끔 하겠다는 아버지의 위로. 비비는 눈물을 글썽이며 되물었다.
“괜찮아요. 이런 것보다 아버지가 더 중요해요.”
“고맙구나.”
“죄송해요, 왜, 왜 제가 이런 걸 적었는지-”
“괜찮다, 비비. 이건 오히려 단서가 될 수 있어.”
로만드로는 비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서는 웃옷을 챙겨 들었다. 비비안나가 걱정스레 물었다.
“황궁으로 가시려고요?”
“아니.”
‘이안 베로시온’은 아직 황궁에서 금기시하는 호칭이었다. 이 소설책을 가져가면 진실이 무엇인지 조사하기보다 처벌을 통하여 단호한 의지를 보이려 할 터. 그리되면 비비가 위험해진다.
그럼에도 로만드로는 책을 꽉 쥐고서 저택을 나섰다.
“새 장관님 명령부터 이행해야지. 가서 이안에게 직접 물어볼 것일세.”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말이다. 건강이 안 좋다더니, 그거랑 관련이 있는 걸까? 미래에서 왔다면 언제고 다시 돌아간다는 뜻 아닐까?
마차 안, 로만드로는 수첩을 꺼내 상황을 짐작했다.
‘생각하자, 생각해. 이안이 미래에서 온 황제 베로시온이 맞는다고 치고…….’
여기까지는 좋다.
그렇다면 그간의 의혹이 모두 해소된다.
가끔 미래를 아는 것처럼 중얼거렸던 것, 정신조작 마법에 걸리지 않았던 것, 황궁의 비밀 통로를 알고 있었던 것, 곳곳에서 그를 베로시온이라 칭했던 것까지 모두.
‘그럼 이안은 왜 이러는 거지?’
순간, 로만드로의 머릿속에 번개가 번쩍였다.
‘…전부 다 지우려는 거야.’
이곳에 남긴 모든 흔적을 이안은 지우려는 게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어떤 흔적을 지우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이안 님한테 당장 달려가요.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단단히 묶어서 감시하세요. 설마 이안 님이 로만드로 님을 해치지는 않겠지.
“아!”
반역이다.
반역죄인의 이름은 역사에서 완전히 도려내어져 그 누구도 다시는 입에 올릴 수 없게 된다. 이안은 그것을 이용하고자 한 것이다.
언제든 황제에게 반기를 들 수 있는 불순분자까지 걸러내려는 의도도 더하여서.
“이런!”
로만드로가 연신 이마를 퍽퍽 쳐 대며 마부를 닦달했다.
“이보게! 서둘러 주게! 더, 더 빠르게 가 달란 말일세!”
“아, 알겠습니다.”
아코렐라는 이안의 의도를 완전히 파악한 듯 보였다. 그 말인즉슨, 아코렐라도 이안이 미래에서 온 황제라는 걸 알고 있다는 거겠지. 서신 말미쯤을 살펴보면 확실해 보였다.
로만드로는 저 멀리 보이는 호텔 건물을 보며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히이잉!
마차가 멈추기도 전에 뛰어내린 그는 호텔 로비로 달려갔다. 지배인이 놀라서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 이, 이안을! 이안 장관님을 보러 왔네!”
“아, 이안 장관님이요. 송구하지만 지금 호텔에 안 계신데요.”
“뭐? 그럼?”
“잠시만요. 아까 마차를 불러 외출하셨습니다. 마부는 행선지를 알고 있을 것이니 물어보겠습니다. 오, 마침 저기 오는군요. 이봐, 하딘!”
“예?”
짐을 옮기던 마부가 돌아보더니 반사적으로 고개를 꾸벅였다.
“부르셨습니까?”
“아까 이안 장관님 모시고 외출했었지?”
“그렇습니다만.”
“어디로 가셨는가?”
로만드로는 긴장된 낯으로 손끝을 꼼지락거렸다. 제발 기분 전환 삼아 놀러 나간 것이면 좋겠건만.
“샬롯 백작저로 모셔다드렸습니다.”
“……!”
“돌아오는 건 알아서 하신다더군요.”
로만드로는 비틀거리며 머리를 쥐어 잡았다. 이런 시국에 귀족들과 접촉하는 것은 안 봐도 의도가 빤했다. 로만드로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다시금 마차로 올라탔다.
“샬롯, 샬롯 백작저로 가지!”
백작저에 허락 없이 가도 되려나? 마부는 의아해하며 코를 훌쩍이면서도 이내 채찍을 크게 휘둘렀다.
말들이 앞발을 구르며 힘차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본 지배인이 시계를 확인하더니, 직원에게 지시했다.
“이봐.”
“네, 지배인님.”
“내일 중으로 이안 장관님 돌아오지 않으면 체크아웃 처리해. 대금은 마법부에 청구하면 된다.”
“예, 알겠습니다.”
폭풍이 휘몰아치겠군. 지배인은 그리 중얼거리며 호텔 문을 단단히 닫았다.
* * *
“어서 오십시오, 이안 장관님.”
샬롯이 직접 나와 이안을 맞이했다. 그의 뒤로는 비슷한 또래의 영식들이 함께였다. 진짜로 이안이 올 줄 몰랐는지 하나같이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이안은 안으로 들어서며 예의 바르게 웃었다.
“바로 이리 뵐 줄은 몰랐습니다.”
“예, 그러게요.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모셔 올 걸 그랬습니다.”
“다들 초면은 아니라서 마음이 편하군요.”
이안은 그렇게 말하며 모인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폈다. 마치 한 사람도 잊지 않겠다는 듯 집요하게.
착각인가? 그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이안에게 인사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초면은 아니나 인사는 새로이 드리겠습니다. 이리 정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처음인지라. 저는 바이에가의 차남, 레이하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안 장관님. 언제나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데시도의 삼남인 파알입니다.”
“아아, 데시도 백작님의?”
“그렇습니다.”
이안은 한 사람 한 사람 악수를 나누며 그들의 이름을 머릿속에 각인했다. 역시나 대다수가 차남 이하, 삼남이거나 막내다. 가문 승계 싸움에서 밀려나 있는 서열인지라 기회를 엿보는 데 혈안이 된 자들.
이안은 그들 가운데 앉아 다리를 꼬았다.
“그래요, 이렇게 훌륭한 자제분들의 모임에 초대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아시다시피 현재 제국 내의 제 입지가 조금 곤란한 터라, 이런 때도 외면하지 않고 찾아 주심이 감사하군요.”
“황제 폐하께서 실수하셨습니다. 장관처럼 충성스럽고 능력 있는 자를 이리도 내치시다니요.”
“그러게 말입니다. 황궁 내의 간신들이 폐하의 심중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증거겠죠.”
이안이 미간을 찡그리며 중얼거리듯 대꾸했다. 상심이 커 보이는 말투였다.
귀족들은 서로의 눈치만 살피다가 이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혹시 아십니까?”
“어떤?”
“아코렐라 대장이 지하 감옥에 수감되었다는…….”
이안이 찻잔을 집으려다 멈칫했다. 황궁에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지하 감옥이라니? 이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사이 들켜 잡힌 것인가? 아코렐라도 참. 기왕 숨어든 거, 계속 잘 숨어 있기나 할 것이지.
한편-
‘아코렐라가 황제 폐하 앞에서 이안 베로시온이라 외친 것을 알고 있으려나? 알고 있다면 필시 이것은 이안 장관이 꾸민 일이다. 더할 나위 없이 반역의 단초.’
귀족들은 미궁에 빠졌다. 그들은 이안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 질문한 것이었으므로.
하나 이안은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했다. 그저 황제의 명을 어기고 마법부에 숨어들었으니 그 죄로 지하 감옥에 갇힌 것이라 여겼다.
이안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고 있습니다. 바로 지하 감옥으로 갈 줄은 몰랐지만, 어쨌거나요.”
결국 이안이 긍정했다. 아코렐라의 사태에 대해서 알고 있노라고.
이에 귀족들이 작게 탄성을 내지르며 서로를 힐끔거렸다. 출항할 배가 준비되었으니, 이제 올라탈지 말지만 결정하면 된다.
“황제 폐하께서는 지금 제 말을 들으려 하질 않으시니, 여러분들께서 저를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아, 예예. 물론입니다. 제국의 마법부 장관이신데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고맙습니다. 제가 기억력이 좋아서 한번 도움받은 것은 절대로 잊지 않는답니다.”
이안은 잠깐 고민했다. 이 우매한 영식들을 발판 삼아 가주들에게도 손을 뻗어 볼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내 그만두기로 했다.
그들의 자식이 반란죄로 엮여 들어간다면, 가주들은 황제에게 약점이 잡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중앙 귀족을 모두 갈아엎을 수는 없는 노릇, 가주에 대한 지배력을 황제가 쥐는 것만 해도 충분히 성공적일 것이다.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조심스러운 질문이었다. 혹 병력이 필요하면 준비할 시간이 좀 필요했다. 귀족들은 소유할 수 있는 사병 수가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비자금을 써 외부 용병을 구하는 수밖에 없다. 반란과 관련된 것이라 그것도 제대로 구해질지는 모르겠고…….
“이름만 빌려 주십시오.”
이안은 복잡한 생각 집어치우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불순분자를 거르고, 황제의 지배권을을 강화하는 것이었으니. 괜히 무고한 시민들을 끌어들여 피 볼 생각은 조금도 없다.
“우르르 몰려든다고 의미가 있겠습니까?”
제국의 마법부 장관, 이안 히엘로가 있는데 병력이 무슨 소용인가? 결집할 필요 없이 그저 자신과 함께하겠다는 뜻만 보이라는 말이었다. 속된 말로, 상당히 싸게 먹히는 뱃삯이다.
“제가 시기를 보아 거사를 진행할 것인데, 그대들은 그저 나와 뜻을 같이한다고만 마음먹어 주십시오. 가주를 설득하거나, 혹 그게 불가하다면 황궁에 힘을 보태지 않게끔 잡아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크, 크흠.”
이것으로 진짜로 발을 들이고 말았다. 귀족들은 긴장되면서도 어쩐지 흥분한 기색으로 연신 헛기침을 해 댔다.
“저, 그럼-”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했다. 거사의 시작은 언제로 할 것인가. 이를 물으려는 찰나, 집사가 다가와 인기척을 내었다.
똑똑.
“말씀 중에 송구합니다.”
“무슨 일인가?”
“이안 장관님의 손님이 오셨는데요.”
“뭐?”
귀족들이 이안을 돌아봤다. 정작 이안은 누가 왔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집사가 슬쩍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이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윽.
커튼을 걷자, 저 멀리 대문 앞에서 서성이는 로만드로가 보였다. 그는 연신 철문을 잡아 흔들면서 외쳐 댔다.
“이안! 이아아안! 나일세, 로만드로!”
귀족들은 보좌관이 온 것을 보고서 이안을 힐끔거렸다. 무슨 일인지 말 좀 해 보라는 듯.
이안은 잠시 침묵하더니 다시금 커튼을 쳤다.
“제 손님이 아닙니다. 만날 일도 없습니다. 돌려보내 주면 고맙겠군요.”
“…알겠습니다.”
배는 이미 출항했다. 앞으로 위험천만한 항해만이 남았으니, 로만드로와 만나게 되면 그가 위험해진다. 이안은 속으로 미안하다 중얼거리며 다시 귀족들을 돌아봤다. 그간 보여 준 적 없는, 아주 낯설고 냉랭한 눈빛.
“자아, 그럼 대화를 계속해 볼까요?”
“아아, 그럽시다.”
끼이익.
집사는 응접실 문을 닫고서 정문으로 나갔다. 눈물 콧물 범벅인 로만드로가 철창에 얼굴을 끼워 넣은 채로 집사에게 물었다.
“무어라 하시던가? 당장 보자고 하시지?”
“송구하오나, 손님이 아니라고 하시네요.”
“뭐?! 나, 로만드로라니까!”
“예, 알고 있습니다. 한데 허락하질 않으시니 출입은 불가합니다. 소란 그만 피우시고 돌아가 주시길 바랍니다.”
“아니!”
“그러지 않으면 경비병을 부르겠습니다.”
“잠깐!”
로만드로가 손을 뻗었으나, 집사는 할 말만 남겨두고 사라졌다.
…큰일 났다. 로만드로는 거대한 바윗돌이 이미 언덕에서 구르기 시작했음을 직감했다.
“이안…….”
그는 철창에 이마를 대고 훌쩍이다가, 번뜩! 고개를 들었다. 눈이 그 어느 때보다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이안!”
네가 그렇게 나오면 나도 생각이 있어! 로만드로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며 다시 마차에 올라탔다. 피로에 찌든 마부가 행선지를 물었다.
“저택으로 모실까요?”
“아니!”
“그럼…….”
뭐야, 왜 저렇게 빡쳤어?
“마법사들의 저택으로!”
“예?”
“자! 출발! 모두 돌려면 시간 좀 걸리겠어!”
로만드로는 정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마부는 오늘 칼퇴는 글렀다며, 속으로 꿍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