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35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35화(835/863)
제835화. 반란
“이안 경?”
이안의 시선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창밖으로 가 있었다. 여기까지 찾아온 로만드로를 계속 곱씹듯이.
그것도 잠시, 그는 귀족들의 부름에 웃으며 고개를 돌렸고, 이내 신경 쓰지 말라는 듯 가로저었다.
“로만드로 보좌관이 어째서 여기까지 온 것일까요?”
“음. 글쎄요.”
이안도 그것이 신경 쓰이던 참이다. 분명히 출궁할 때 명령을 내리지 않았던가. 자신이 부르기 전에는 절대 찾아오지 말라고.
로만드로는 허투루 명을 어기는 자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분명히-
‘명령권자가 바뀌었다는 뜻이겠지.’
이안의 명령이 무효해졌다. 이 말인즉 아코렐라에게 보낸 서신이 제대로 갔다는 뜻이다. 지하 감옥에 갇혔다고 하더니만, 메일리데일리 사장 재주가 어지간히 좋은 것 같다.
‘아코렐라가 마법부 장관 업무를 수행 중이라 함은 황궁에 줄을 대었다는 뜻. 잘 되었어. 이로써 내 행보로 인해 마법부가 피해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안 장관. 그런데 말입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이안은 듣고 있었다는 듯 반응했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두신 바가 있는지요? 혹 마법부도 같이 움직이는 것인지…….”
‘그’ 이안 장관이시니 거사에 병력 따윈 필요 없다는 건 잘 알겠다. 당장 마법으로 황궁을 날려 버릴 수도 있고, 손짓 한 번으로 수천 명의 목숨을 거둘 수도 있으니 그 무엇이 문제겠는가?
물론 이는, 귀족들이 현재 이안에게 작은 마법 하나 부릴 힘도 없다는 걸 모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합당했다. 눈앞의 아이는 너무도 태연하고 의연해 보였기에.
일전의 건강이상설도 그저 전쟁의 여파로 인한 호들갑이라 치부했다. 누구보다 거사의 중심인 본인이 그렇다고 해명하였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이 물음은 의심이 아닌 호기심이었다. 그 이안의 계획은 과연 무얼까 하는, 순수한 호기심.
이에 이안은 간단히 답했다.
“마법부는 거사에 동참하지 않습니다.”
“예? 수족처럼 따르는 이들이 아닙니까? 혹시 다른 어떤 까닭이……?”
“각자의 사정이지요. 나를 따랐던 것은 사실이나, 이번 거사 때 마법부는 전원 자택에서 대기할 것입니다. 출궁 전에 제가 그리 지시했으니, 그리 아시면 됩니다.”
“그러셨군요.”
사실 마법부의 가담 여부는 중요치 않았다. 이안이 곧 마법부니까. 귀족들을 놀라게 한 것은 이안의 막힘없는 의지였다.
‘출궁할 때부터 이 일을 계획하고 있었구나. 아니, 어쩌면 그 훨씬 전부터일까.’
귀족들은 새삼스레 이안의 모습에 살짝 긴장했다. 그 누구도, 이 자리에서 이안을 만나기 전까지는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이래서 사람의 속은 알 수 없다고 하는 걸까. 황제의 최측근이, 그중 가장 신의 있던 충신이 반기를 들 줄 누가 알았겠는가? 좀 과장해서 신도 모르셨을 게다. 하여 거사도 가능한 거겠지만.
하나 그들은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느라 이안이 이른 ‘나를 따랐던 것은 사실이나’란 표현을 놓치고 말았다. 이를 이안이 되짚었다.
“혹여 마법부가 사달을 알아챈다 하더라도 쉬이 움직이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들과 저는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어요.”
이안이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모른 척할 수도, 혹은 협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이든 거사에는 문제가 되지 않노라고, 이안은 귀족들을 안심시켰다.
“가능하다면 백성들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게끔 마무리할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마지막 베로시온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겠지요. 민심을 생각해서라도 최대한 은밀하고 신속하게 끝을 봐야 합니다.”
마지막 베로시온.
귀족들은 그 표현에 머리털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그들이 지금 무슨 짓을 행하려 하는지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경들의 역할은 간단합니다. 저와 함께 입궁하여 폐하와 마주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정당성이 제게 있음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되겠소? 폐하의 곁에는 친위대가 있는데.”
“괜찮습니다. 현 유일한 친위대장인 베릭은 제가 오래 보아서 압니다. 쉽게 제압할 수 있습니다.”
이안이 희미하게 웃으며 그리 대답했다. 귀족들은 그 냉랭한 모습에 미소를 굳혔지만, 정작 이안은 다른 생각 중이었다. 베릭이 이 말을 면전에서 들었으면 필사적으로 반박했을 거라고. 이길 수는 없지만 쉽게 당하지는 않을 거라고 말이다.
‘베릭은 지금 뭘 하고 있으려나.’
황궁 일이 바쁘니 폐하의 곁을 지키고 있겠지, 아마. 밥이나 잘 챙겨 먹고 있나 모르겠다.
“날짜는……?”
이안이 시계를 확인했다. 곧 밤중이었다. 사람도 얼추 모였고, 황궁 내의 상황도 어지러워 보였으며, 자신도 이제는 지쳤다. 다 끝내고 싶은 마음뿐. 오래 끌 필요가 없다.
“내일 입궁하면 적당하겠군요.”
“내일 말씀입니까?”
“예. 문제 될 거 있습니까?”
이안이 눈썹을 까딱거렸다.
이안의 의지와 샬롯의 주도로 마련된 자리긴 했으나, 여기 모인 이들은 아직 이안을 신뢰하지 않았다.
더불어 이안이 진심으로 반란을 모의했으면 절대 이런 식으로 성급하게 일을 도모하지 않았으리란 것도 그들은 잘 알았다.
하지만-
“좋습니다.”
“검도 단숨에 뽑으라고, 이왕 이리 모인 거 그리합시다.”
“장관만 믿겠습니다.”
귀족들은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쉼 없이 휘몰아치는 이안의 수에 정신을 빼앗긴 줄도 몰랐다. 오히려 기밀이 누설되지 않게끔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하는 게 합당한 선택이지 않겠느냐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그들은 한목소리를 내었다.
“그대 의견은?”
이안의 고개가 샬롯을 향했다.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 샬롯은 한참이나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없지요. 당장 뭔가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이안 장관의 입궁을 황궁에서 막을 것도 아니니까요. 의지를 보이기만 하면 되니 무엇을 걱정하여 지체하겠습니까. 시간이 흐르면 황궁에서 이안 경을 억압하기 위해 또 어떤 계책을 내놓을지 모릅니다.”
이안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민심. 전쟁 영웅으로 명성이 드높은 지금, 황궁이 이를 저해하기 전에 움직이는 게 좋을 터다.
이안은 동감이라는 뜻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마음이 샬롯 경의 마음과 같습니다.”
이는 진심이었다.
이안은 나름 반역자의 마음가짐으로 이들을 경계하고자 했다. 괜히 시간 끌다가 이들 중 또 배신자가 나올지 또 아는가? 황궁에 밀고하기라도 하면 일이 복잡해진다.
‘뭐, 밀고해도 상관은 없다만. 그래도 깃발을 들었으니 흔들기는 해야지. 제국의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황궁 건물 하나 정도 박살 내면 되려나. 지금 몸 상태로는 그게 최선일 것 같은데.
마력을 모두 소진하고 나면 이번에는 진짜 자리에서 못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리되면 그대로 눈감아 미래로 가게 되겠지. 아마도.
‘아니라면 나움을 보러 가게 될 것이고.’
이안은 지금의 경험이 나름 신선했다. 황제의 자리에서 반역을 맞이한 적은 있어도, 이런 식으로 반역을 일으킨 적은 처음이지 않나. 아마 그의 삶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일 터다.
이쯤 되니 역지사지의 여유가 생겨 반역자 놈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놈들도 어지간해. 작당 모의한 자들 중 밀고자가 나올지 계속 마음 졸이며 그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 아닌가. 웬만한 의지가 아니면 불가한 일이다. 그만큼 그들 사이의 결속을 이어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거고.’
이안은 문득 크로니를 떠올렸다. 그가 장악한 제국방위부와 마법부의 경우를 보면 맞는 말인 것 같다. 이해관계의 완벽한 결속이 없다면, 반란은 일어날 수 없다.
‘나중에 다시 그런 상황이 오면…….’
혹 미래로 돌아갔을 때, 다시 반란과 맞부딪친다면, 그때는 절대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려던 차였다.
“아.”
이안은 문득 깨달았다. 기억은? 자신이 미래로 간다 한들, 여기서 겪었던 것들을 기억이나 할까?
“…….”
이곳에서의 제 흔적이 지워졌듯, 미래에서의 제 기억 또한 지워질 수 있음을 이안은 인지했다.
“왜 그러십니까, 이안 장관?”
“…아닙니다.”
오만했구나. 자신은 당연히 이들을 기억하리라 생각했는데, 너무도 큰 오만이었다.
‘나만이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전쟁에서 있었던 이안 베로시온의 조각을.’
자신은 기억하고 있으나, 남들은 모두 잊은 상황. 기억의 격차로 인해 잘못된 판단을 했나 보다. 지금 자신만이 기억하는 것들도 언젠가는 지워질 것인데, 그것도 모르고.
이안은 감정을 추스르고는 모두에게 일렀다.
“…황궁의 하루가 시작되는 새벽 네 시에 입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는 대신들도 자리에 없는 터라 폐하께 간청하면 독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들도 시간 맞춰 입궁하시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이안 장관.”
“저는 결심을 세웠으니, 혹 두려워 마음이 변하신다고 하더라도 막아설 생각 하지 마십시오. 차라리 마법사들처럼 자택에 기거하며 눈과 귀를 막으시길 바랍니다.”
막아선다면 산산이 조각내 부수고 말리다. 이안의 살벌한 경고에 귀족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승기는 이미 안 봐도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는지 훤했다. 전쟁 영웅이자 가이아의 수호자, 그리고 강력한 마법사인 이안을… 현 황제가 이길 방법은 없어 보였다.
“걱정을 거두십시오, 이안 장관. 함께하겠습니다.”
“예, 마땅한 역사의 흐름입니다.”
“인덕이 없는 황제 폐하의 패착이지요.”
그들은 각기 잔을 들고서 이안과 함께할 것을 맹세했다.
“역사의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위하여.”
이안도 화답하듯 술잔을 들었고, 모두가 동시에 들이켰다.
이안은 쓴맛이 감도는 혀끝을 가볍게 찼다. 호텔에서 먹었던 초콜릿케이크, 그게 안주로 딱일 것 같은데.
‘혹 마력을 쓰고도 다시 눈을 뜬다면, 그걸 부탁해야겠군.’
불길을 일으킨 것만으로도 밤낮없이 수일을 앓았는데, 황궁 건물 하나를 부수며 날뛰면 어찌 될지 빤했다. 이안은 손아귀를 가볍게 쥐었다 폈다.
‘많이 안 아팠으면.’
차라리 고통 없이 바로 숨이 끊어지면 좋겠다.
소중한 이들에게 마지막 인사조차 남길 수 없음은 아쉽지만… 아무리 이안이라도 단두대 위에서 히엘로로서의 삶을 마무리하는 건 사양이다.
* * *
새벽 네 시의 아직은 어스름한 하늘.
나지막한 종이 울리자, 황궁 시종들이 바삐 움직였다. 황궁의 일과가 공식적으로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일이 많아 밤을 새운 자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지만.
타닥타닥!
황궁 정문 앞으로 다가오는 마차들에, 경비병이 창을 들어 잠시 멈출 것을 지시했다. 새벽부터 대체 무슨 일인가 싶지만, 요새 하도 뒤숭숭하고 시끄럽다 보니 또 어디 부서에서 일이 났구나 하는 마음이다.
“어? 이안 장관님?”
하지만 이내 출입하려는 자가 마법부 장관이라는 걸 확인하고는 의아히 여기며 고개를 돌렸다. 그 뒤로 줄지어 선 낯선 마차들. 모두 중앙 귀족의 것들이다.
“황제 폐하를 뵙기 위해 왔네만.”
“아, 예예. 문을 열어 드리지요.”
다들 신분과 출입 목적이 확실하니 질문할 거리도 없다. 경비병 둘이 출입문을 밀자, 마차가 천천히 들어섰다.
타닥타닥!
히이잉!
긴장해서 바짝 움츠러든 귀족들과 달리, 이안은 굉장히 평온한 기색이었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하는, 되레 아쉬움이 묻어나는 낯빛. 모든 게 계획대로, 그리고 제 생각대로 되고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도착했습니다, 이안 장관님.”
“수고했네.”
본궁에 당도한 이안이 먼저 내려서 계단에 올랐다. 그 뒤를 따르는 수십 명의 귀족.
본궁 중앙 홀에 도착한 이안은 익숙한 걸음으로 황제의 처소 쪽으로 향했다. 사위가 고요한지라, 서두르는 발걸음 소리만이 주위에 가득했다.
“……?”
그러다 문득, 모퉁이를 돌려던 이안이 주위를 둘러봤다. 귀족들이 의아한 눈으로 그의 반응을 살피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닙니다.”
뭔가 이상했다. 이안은 평소와 다른 무언가를 찾아내려 애썼고, 이내 알아챘다.
‘경비병들이…….’
이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사전에 어떤 지시라도 받은 것처럼 말이다.
이안이 이를 깨닫고 멈칫거리는 순간이었다.
벌컥!
벌컥!
“헉!”
“이, 이게-!”
곳곳의 문이 열리더니, 무장한 병사들이 들이닥쳐 이안과 귀족들을 둘러쌌다. 마력봉인석이 잘 벼려진 창끝이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이안 경!”
그리고 천둥처럼 울리는 고함.
이안은 뒤돌아 소리친 이를 바라봤다. 진 베로시온. 황제였다. 정복을 갖춰 입는 것도 잊었는지, 떨리는 손을 따라 흰 셔링 자락이 길게 늘어졌다. 이안의 눈이 조금씩 커졌다.
“이안 경!”
다시금 이안의 이름만 하염없이 부르는 진. 단단하고 힘 있는 고함과 달리 그의 얼굴은 애달피 구겨져 있다. 뒤이어 나타난 로만드로, 아코렐라, 그리고 마법사들…….
이안은 다시금 생각했다. 아, 역시나 뭔가가 잘못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