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836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836화(836/863)
제836화. 믿음은 선택하는 것
“이안 장관의 동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코렐라가 목숨을 걸고 진언한다며 외치던 것이 아직 생생하건만, 그것이 무색하게 이안의 행보는 종잡을 수가 없다.
이안은 알고 있을까? 아코렐라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에게 머리를 조아렸는지? 베로시온이어도 문제고 아니어도 문제인 지금, 제발 가만히 좀 있어 주면 좋겠는데.
“무슨 일인가?”
“자택에서 기거하던 마법사들이 회동했다 합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아 알아보니, 이안 경이 호텔에서 샬롯 백작의 차남과 만났다 합니다.”
“뭐?”
시종장이 머리를 조아리며 덧붙였다.
“아코렐라 대장이 로만드로 보좌관을 통해 서신을 전달한 모양입니다. 그저 이안 장관을 자중시키라는 내용이라 허락했다고 하는데, 어째서 마법사들이 회동했는지는 상관관계 파악이 어렵습니다.”
진이 아랫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마법사들이 단체로 황궁으로 몰려오는 중입니다.”
“아코렐라가 로만드로에게 은밀한 지령을 내렸고, 이에 따라 마법사들이 결집했다?”
“파악하기로는 그렇습니다만, 판단하시기 전에 자세히 살펴보심이 좋겠습니다. 우선 확실한 사실은, 이안 경과 접선한 샬롯가 차남의 저택에 중앙 귀족들 수십 명이 모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누가 보아도 반란의 전초였다. 마법사들의 갑작스러운 움직임, 이안과 접촉한 귀족들의 회동, 그리고 야심한 밤…….
진의 손이 작게 떨려왔다. 그가 10살 때 겪었던 내란은 아직도 뇌리 깊이 각인되어 있다. 부모 혹은 형제 등 소중한 사람이 여럿 죽어야 끝났던 내란이다. 필시 이번에도 그러리라. 소중한 사람이 죽거나, 자신이 죽거나…….
“폐하.”
그때였다. 그림자처럼 기척을 숨기고 있던 베릭이 모습을 드러냈다.
“베릭.”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법사 놈들, 겉과 달리 속은 여린 놈들 아닙니까. 허튼 생각 따위 돈을 준다 해도 못 할 놈들입니다. 제가 알듯이 폐하도 아는 것입니다.”
아무리 황제보다 장관을 더 따른다고 하지만, 그들도 결국에는 황궁의 관료이자 제국의 백성. 베릭은 검집에 손을 올리며 맹세했다.
“분명히 다른 연유로 오는 것입니다.”
“베릭 대장, 단언은 위험합니다. 상황이…….”
“혹,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목숨 걸고 폐하를 지킬 거다. 폐하의 안위에는 조그마한 흠집도 생기지 않게 할 거니까, 시종장 그쪽은 폐하께 쓸데없는 걱정 심지 마라.”
확 씨, 엎어 버리기 전에.
-라는 말까진 하지 않았지만, 시종장은 괜히 눈치를 살폈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자였다.
시종장이 한 걸음 물러나자, 베릭이 진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와 책상 위의 자료를 내려다봤다.
“폐하, 이안이가 미래에서 온 베로시온이라는 말, 믿고 싶으십니까?”
진은 침묵했다.
믿고 싶었다. 그리고 동시에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가 정말 미래에서 온 베로시온이라면,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 거라는 의미니까.
하지만-
“그래.”
이런 식으로 서로를 파멸의 길로 이끄는 것보다는 낫다. 이것만큼은 분명했다.
진이 그렇게 결정을 내리자, 책상 위 한구석에 놓여 있던 아코렐라의 물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동시에, 언젠가 이안이 했던 말도.
“혼란스러우실 것 잘 압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판세를 읽으시고, 그것을 유리하게 이용하셔야 합니다.”
언제였더라? 아마 아르센 사태 때였을 것이다. 이안에게 어찌하여 자신을 따르는지 물었을 때, 이안이 내놓은 대답이었다.
“그 말은, 이안 경이 어떤 마음을 품었든 우선은 그대를 이용하라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하의 권위가 안정되신다면 다시금 숨을 고르시고 저를 보세요. 그러면 다른 시야가 트일 것입니다. 어찌 보십니까?”
“…진실을 말했노라 믿고 싶다.”
“예. 그러면 그리 믿으시면 됩니다. 저하께서는 세상의 중심이시라, 저하의 믿음이 곧 진실이지요.”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자신이 곧 세상의 중심이니, 나의 믿음이 곧 진실이다.
진이 물약을 집어 들었다. 모든 건 자신이 결정하고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걸 어찌 잊고 있었을까.
“폐하, 저는 말입니다. 솔직히 지금 상황이 X도 이해 안 됩니다. 다들 서로 아끼면서 왜들 이러는 건지.”
“아껴서 그런 것이다. 아껴서.”
“두 번 아꼈다간 다 죽겠습니다.”
진이 희미하게 웃으며 물약을 삼켰다. 낯선 감각이 식도를 타고 흘러내렸다. 시종장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낯빛으로 황제를 지켜보고 있었고, 베릭은 팔짱을 낀 채 옆을 지켰다.
진이 입가를 닦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자 순간, 대지가 꺼진 것처럼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폐하?”
“아…….”
진의 머릿속에 광풍이 이는 듯했다. 그것은 조각난 기억 사이사이를 헤집으며 지하신의 흔적을 씻어내리기 시작했다.
심연의 바다 저편, 깊숙이 잠겨 있던 찬란한 이름이 반짝였다. 베로시온, 베로시온. 그 영광스러운 이름 베로시온…….
진이 비틀거리며 주저앉자, 시종장이 다가왔다.
“폐, 폐하?”
하지만 베릭이 바로 막아섰다. 진을 바라보지 않은 채였다. 폐하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돌아보지 않을 셈이었다. 시종장도 그 뜻을 알아채고는 눈과 귀를 막고 물러나 집무실을 벗어났다.
“베릭, 베릭…….”
“예, 폐하.”
베릭은 정면에 시선을 고정하고서 답했다. 황제의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어찌하면 좋은가.”
고개 숙인 진의 코와 턱을 타고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대체 왜 그토록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안이 자신과 피를 이었다는 사실, 바리엘의 승리. 그 모든 것들이 진실로 기쁘고 행복했거늘. 어찌 도려져 있었단 말인가. 무심하기도 하시지. 신께 이르는 원망이었고, 이안에게 이르는 투정이었다.
“나는, 나는-”
진이 몸을 둥글게 말며 숨죽여 울었다.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는 것이 느껴지자, 베릭이 깊은 숨을 내뱉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이안이 베로시온이라는 건 사실인가 보다.
“…나는 이안 경을 의심했네.”
“괜찮습니다. 이안이가 의도한 것 아닙니까.”
“그래도 그러면 안 됐어.”
“그리하지 않았더라면 이안이가 실망했을 것입니다.”
“내가 잘못을 하였네.”
잘못했다. 내가 실수했다. 그래서는 아니 되었는데…. 진이 쉰 목소리로 연신 중얼거렸다.
베릭은 황제의 울음이 멈출 때까지 등을 돌린 채 기다렸고, 얼마 안 가 바깥에서 아른거리는 불빛을 발견했다.
마법사들이 온 것이다.
* * *
“부탁합니다! 폐하를 뵙게 해 주십시오!”
“이러시면 안 됩니다, 마법사님들! 지금 얼마나 위험한 행동을 하시는지 모르십니까?”
“물러나십시오! 본궁에 들어서시면 안 됩니다!”
“아니, 제발 말 좀 전해 달라고요! 정말 중대한 일입니다!”
“예, 이렇게 부탁합니다!”
마법사들이 떼로 몰려오자 경비병들이 긴장하며 경계했다. 그들은 이미 출입문 쪽에서 연락을 받아 마력봉인석이 내재된 창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여차했다가는 무력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팽배했다.
“부탁한다고 다 되는 일이 아닙니다! 낮에, 정식으로 절차를 밟아 알현을 요청하십시오! 경고는 이제 없습니다!”
“아니! 잠깐만!”
로만드로가 마법사와 경비병들 사이로 파고들어 손을 내저었다. 그는 모두에게 한 발씩 뒤로 물러나라 신호하며 침착하게 중재했다.
“국가의 중대사가 달린 일인데, 어찌 경비병들이 함부로 판단하시는가? 폐하께서 직접 명한 것인가?”
그러자 경비병들이 멈칫거렸다. 사실 황명이 내려온 것은 아니었다. 보고는 올라갔으나, 이는 경비대장과 시종장님 선에서 내려온 임시 명령일 뿐.
마법부 일이라면 즉각 직접 하명하셨을 터인데, 어쩐 일인지 오늘은 아무 지시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주무실 리는 없는데.
“아니면 누구의 명으로 이리 막아서는 것인가? 우리는 저기, 마법부 장관의 명으로 이리 온 것인데. 마법부 장관보다 직위가 높은 자의 명인가?”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게 문제라고요! 이안 장관과 황궁이 지금 어떤 관계인지 아시잖습니까.”
“말고! 현재 마법부 장관님은 아코렐라다!”
“예?”
“아코렐라다? 이거 좀 하대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네. 크흠. 아무튼,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길 좀 터 주시게. 나, 이러면 정말!”
“저, 정말?”
로만드로가 소매를 휙휙 걷으며 눈을 부라렸다.
“못 참아!”
“못 참아아아!”
마법사들 역시 거들며 크게 소리쳤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주먹을 날릴 것 같았는데, 역설적이지만 그 덕에 경비병들의 긴장이 사르르 풀렸다. 주먹 대 주먹이면 솔직히 할 만해 보여서.
“어이고, 달밤에 지랄들.”
그때였다. 정복 차림의 베릭이 본궁 계단을 내려왔다. 놀란 경비병들이 뒤돌아 경례했고, 마법사들은 울먹이며 그를 올려다봤다. 하, 이럴 때 보니까 또 반갑네.
“베릭!”
“베릭아! 우리 이안 님 말이다!”
“됐어. 그만 시끄럽게 하고 올라와.”
“헉! 베릭 님!”
“폐하의 명이다. 이제부터는 친위대장인 내가 수행할 것이니 경비병들은 각자 위치로 돌아가라. 아, 그리고 너! 너는 지하 감옥 가서 아코렐라 데리고 오고.”
베릭이 손을 휘휘 내저으며 등을 돌렸다. 경비병들은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지만, 이내 베릭의 명에 따라 경계를 풀고 흩어졌다.
마법사들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후다닥 계단을 뛰어올랐다.
타앗!
타닥타닥!
그들은 결연한 낯으로 빠르게 복도를 뛰었다. 그 누구도 쉬이 입 여는 자가 없다. 한마음 한뜻으로 폐하께 전부 쏟아 내겠다 다짐한 것이다.
마침 미리 언질을 받은 시종장이 침실 문을 열어 두고 있었다.
“폐하, 마법부의 마법사들 들었습니다.”
여전히 걱정 가득한 목소리였지만, 시종장은 황명에 토를 달지 않겠다는 듯 의연한 몸짓으로 문을 닫았다.
진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담담한 얼굴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그는 마법사들을 올려다봤고, 시선의 높이가 맞지 않음을 알아챈 마법사들이 넙죽 엎드렸다.
“폐하!”
“…밤이 깊건만, 소란이다.”
“폐하, 송구합니다. 하나 꼭 들어주셨으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코렐라 대장이, 아니 그러니까, 아코렐라 장관님이 이미 말씀하셨겠지만, 분명하게 확인해야 할 진실이 있습니다. 그리고 진실을 가리기 위해서는 폐하의 의지가 꼭 필요합니다!”
로만드로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낡은 책 한 권을 내려놓았다. 비비의 소설집이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서 일렀다.
“폐하, 이것은 제가 이전부터 남몰래 짓던 소설입니다. 하늘에 맹세하여 저는 그 어떤 불순한 의도가 없었습니다. 한데…….”
진실에 다가서기 위한 촉매 역할로는 소설이 꼭 필요한데, 그렇다고 해서 비비를 위험하게 만들 수는 없다. 로만드로는 기꺼이 자신이 쓴 것이라 주장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전에 없던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적지 않은 내용이 이리 또렷이 적혀 있습니다.”
“이안 경을 따라다닌 무수한 괴소문과 마법부를 위해 결단할 수밖에 없었던 내막, 그리고 결국에는 폐하를 위한 선택이었음을 짐작합니다.”
“폐하, 부디 청하건대 진실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자들의 간언을 잠시 물리시고 같이 찾아주십시오. 이안 님의 진실을요.”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안 그러면 이안 님,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마법사들이 엎드린 채 엉엉 울며 손을 빌어 댔다. 황궁이 떠나가라 울어 젖히는 애원이 이어졌다.
진은 목이 메어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긴 침묵의 끝, 그는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며 숨을 골랐고, 이내 바깥의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끼이익.
아코렐라였다. 그녀는 족쇄를 찬 채로 들어와 상황을 보고서 어리둥절해하며 눈을 깜빡였다. 마법사들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로 그녀를 돌아봤다.
“다들…….”
“아코렐라 대장…….”
“무슨 일 있어? 왜, 왜 그래?”
아코렐라의 눈동자에 설핏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 한참이나 침묵하던 진이 그녀에게 명령했다.
“아코렐라.”
“예?”
“가서 물약을 가져와라.”
“…실담물약 말씀이세요?”
“아니.”
“그럼 설마……?”
“그래.”
아코렐라의 두 눈에 이채가 돌았다. 그 말이 무얼 뜻하는지 이제야 알아챈 것이다. 나는 되었다. 이미 마셨으니. 이제는 베릭과 마법사들이 마실 차례다.
아코렐라는 그제야 책상 위에 놓인 빈 병을 발견하고서 내적 비명을 질러 댔다. 이어 얼굴이 벌게져서는 입술을 옴짝달싹하며 뒷걸음질 쳤다.
“예, 예! 회상물약이요! 그, 금방 가져오겠습니다! 야! 너희들 딱 기다려! 그만 처울고!”
“그러는 대장은 왜, 왜, 크흡, 우는데요.”
“시꺼! 기다려! 베릭, 나 이것 좀 풀어 줘!”
진이 턱짓으로 허락하자 베릭의 검이 휘둘러졌다. 깔끔하게 두 동강 난 아코렐라의 족쇄. 그녀는 바로 마력을 터트리며 날아갔다.